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17화 (117/247)

(EP.117)2부 014

나는 숨을 추스렸다.

말은 저렇게 가볍게 해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느끼던 죽음의 공포를 방금도 느꼈다.

실족사는 처음 겪어보는 유형이었다.

함정에서 떨어지는 건 꼬챙이가 되는 관사(貫死)이니 조금 달랐다.

아니, 시팔. 지금 이딴 거 구별할 때가 아니지.

"왜, 그랬어요?"

"…."

"아니, 말 안 해도 돼요. 대충 예상이 가니까."

아타나시아는 우리 둘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서클을 끊어버리려고 시도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내가 너를 이해하고, 너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게끔 너와 똑같은 처지가 되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서클을 끊어냄으로써.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잠깐만 생각해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케즈의 인민을 구하고 영웅 대접을 받았는데도 서클을 잃은 것으로 자해하고 우울해했다.

반면에 아타나시아는 무엇인가?

고작 나 하나를 달래기 위하여 서클 여덟 개를 끊어내려고 했다.

이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아타나시아는 베르노바의 죽음 이후 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과 권리, 두 가지 분야에서 아타나시아 만한 적합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현 시점에서 마법사로서 최고위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전 통령의 후손인 아타나시아밖에 없었다.

아타나시아가 서클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스스로 지지기반의 절반을 버린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사람들은 권리 면에서는 아타나시아에게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실력을 인정할지언정 베르노바의 후손인 게 되레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제 다시 권력을 휘둘러 불합리한 행위를 자행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시민들 속에 자리잡은 것이었다.

서클을 다 잃으면 물론 그럴 힘이 없어 의구심 자체는 사라지겠지만, 그때는 실력이 사라지게 된다.

실력은 없지만 권리는 있을 때, 실력은 있지만 권리는 없을 때, 둘 모두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하겠지.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아타나시아는 아직까지도 원로원 소속이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 원로원을 보다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베르노바와 똑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이겠지.

무엇보다 아직 노바에 대한 수색은 중단되지 않았다.

아타나시아는 이것마저 포기하려고 든 거다.

대체 내가 뭐길래?

왜 아타나시아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는가.

"…날 왜 내버려두지 않는 거에요?"

내 목에서 쉰 소리가 새어나왔다.

질책이 아니었다.

그저 의문스러웠고, 질문으로 표출했을 뿐이었다.

내 협소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타나시아에게 있어 나는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던가?

"사과, 받아줬으면 된 거잖아요.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요?"

대체, 왜.

어째서.

나는 본래 누군가에게 영웅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델라즈나 아타나시아는 진실을 알았다.

내가 아케즈를 구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서라는 것.

인민을 구하겠다는 대의? 그딴 거 없었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베르노바를 죽였을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서클을 잃은 것은, 어디까지나 내 과욕이 불러일으킨 참사였다.

그래서 나는 꾹 참았다.

나를 영웅으로 대하는 것을 막지는 않을지언정, 그것을 권세로 삼아 휘두르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나한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가.

내가 병동에서 편하게 머무르며, 델라즈와의 서약이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델라즈의 신분증을 통해 돈을 사용하는 것은,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병동에서 상념에 빠지거나 돈을 사용할 때마다 나는 그와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하고 합리화했다.

그 반동으로 내 목과 손목의 상처는 더욱 심각해져갔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감당해야 할 업보였다.

아타나시아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이유 따위는 없는데도.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때만큼 내 혓바닥과 입술에 신경을 집중한 적이 없었다.

머릿속으로 단어를 골라가며, 겨우 말을 떼었다.

"나 같으면, 진즉에 떨어져나갔어요."

나는 일부러 아타나시아에게 매몰차게 대했다.

떨어져나가라고.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나 굉장히 이기적인 편에 속하거든요.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단, 그냥 무시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해요? 내가 서클을 잃었으니까, 에레브의 기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서클도 부순다, 이건가?"

이성이 열세에 몰렸다.

"대체, 왜?"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타나시아는 어딘가 불안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그저 책임을 질 뿐이에요."

"책임, 이요?"

"네, 책임."

까드득, 하고, 내 이가 갈렸다.

"…필요없어요."

"네?"

"그럴 필요 없다고요."

어느새 내 말에서는 독기가 빠진 상태였다.

내 스스로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아까보단 훨씬 부드러웠다.

우스운 일이었다.

"책임을 질려면, 다른 방식으로 지세요. 서클 끊어내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요?"

나는 아타나시아에게 바라는 게 딱히 없었다.

원하는 것도 없었을 뿐더러, 바랄 이유조차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따져가면서 찾는다면, 단 하나가 있긴 있다.

"플룻래빗. 양식해주세요."

나는 아직 플룻래빗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노브가 할 수 있는 걸 나라고 못할까.

그게 내 지론이었다.

노브는 메티브와 에르, 그러니까, 친남매가 싸그리 죽어버린 것으로 마음이 새까맣게 물들어 내게 복수를 꾀했다.

친남매를 잃은 슬픔과, 서클 여덟 개를 모조리 잃어 5년을 부정당한 슬픔, 어느 쪽이 더 슬프다고 단정짓지는 못하겠지만, 지지 않을 자신만은 있었다.

"…그거면 되나요?"

"법적인 제재를 풀어달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국가에 종속된 토지 하나만 사유지로 만들어서 거기에 큼지막한 우리 하나만 만들어줘요. 내가 거기서 키우고 경과를 볼 테니까."

절대로 작은 규모의 부탁이 아니었다.

통령 권한으로 위법을 저지르며 땅을 일부 떼어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이라면 이것을 거절하겠지만.

"좋아요."

아타나시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일부러 조금 무거운 것을 부탁했다.

서클을 끊어버릴 각오까지 한 사람에게, 가벼운 것을 부탁해봤자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들키면 조금 위험하지만, 들킬 위험이 적으며 규모 자체는 거대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요청했다.

들켜도 내가 사유지에서 몰래 단독범행을 벌인 것이라고 하면 된다.

질타를 받으면 즙 좀 짜면 되겠지.

아마 그렇게 되면 아타나시아가 타격을 좀 받겠으나, 그 정도라면 지금 내가 부탁하는 것과 맞물리니 딱히 상관이 없다.

아, 이기적인 새끼.

"…하아."

곪아버린 한숨을 몸 밖으로 밀어내며 생각했다.

진짜 못해먹을 짓이라고.

"…우리, 사이 풀린 거 맞죠…?"

아타나시아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끄덕이진 못했다.

침통한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아타나시아도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내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 시발.

이해한 게 맞나.

"미안, 해요."

"…."

나는 품에 아타나시아를 안은 채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달빛이 내려쬐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더 몽환스럽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어나요."

내 상의가 무언가에 의해 젖어가는 것을 느낀 나는 아타나시아를 떼어내었다.

두껍게 입긴 했어도 옷이 젖는 것 자체가 싫었다.

아타나시아가 눈물을 글썽이는 걸 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묵묵히 갈무리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에레브 양…?"

"기분 풀렸으니까 일어나요. 더 늦으면 의사가 내 발목에 족쇄 채울지도 몰라요."

아직도 나는 의사가 족쇄를 들고 나를 심각한 표정으로 내려보던 것을 잊지 못했다.

그 끔찍한 광경을 한 번 더 겪기는 싫었다.

애매하게 끝났지만, 이 정도가 딱 좋았다.

내 이성은 이미 아타나시아와 관련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잊었다.

감정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에 태도가 차가울 뿐이었다.

그래.

아타나시아를 적대해서 내가 얻을 게 뭐 있다고.

기숙사에서 나온 나는 아타나시아를 먼저 돌려보냈다.

텔레포트를 써서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아타나시아를 한사코 말리느라 또 시간이 좀 걸렸다.

아무리 특권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좀 아니었다.

병동 앞까지 다다르니, 내 눈에 띄는 사람들이 몇 보였다.

'…저 사람은 분명.'

각국에서 보내온 선물을 확인하러 기숙사로 향할 때 보았던, 삼성교의 교주를 대신해 내게 말을 전했던 그 남자.

그 남자와 다른 사람 몇 명이 말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병동 앞에서?'

민폐였다.

내가 들어가서 잠을 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민폐였다.

나는 싸움을 중재할 심산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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