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0)090
총성이 울린 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제외하면, 무거운 정적만이 바로 이곳에 존재했다.
델라즈와 나는 물론이요, 모든 원로원들이 긴장한 채로 성대를 응시한다.
아타나시아는 저 위에 떠올라 있다.
슬쩍 고개를 올려 아타나시아의 안색을 살폈는데, 결코 좋다고 볼 수 없었다.
어라.
그냥 안 좋은 게 아닌데?
부친을 직접 죽이게 되어 짓는 표정이라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델라─"
내가 델라즈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성대가 갑자기 폭발했다.
건축에 사용된 대리석 따위가 파편이 되어 날아왔다.
"실드."
파편에 직격했으나, 직격하기 직전에 델라즈가 실드를 영창해주어 무사할 수 있었다.
방금 나 델라즈 아니면 죽었겠지.
난 떨떠름하게 감사를 표했다.
"고, 고마워요."
"이것도 네 계획의 일부냐?"
델라즈가 아타나시아를 가리켰다.
아타나시아는 총을 내리고 멍하니 부서져버린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요."
내 계획대로라면 베르노바는 벌써 뒤졌어야 정상이다.
최종보스를 잡는 게 아예 쉽게 풀릴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안 하긴 했는데, 초장부터 말아먹다니.
이건 아예 예상 밖이다.
"베르노바, 메테오."
"네?!"
델라즈가 갑자기 메테오를 영창했다.
이 미친 아저씨가!
이 일대를 다 날려버릴 작정인가.
하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잔해와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성대에만 큰 돌덩어리가 하나 쿵, 하고 떨어졌다.
명중률 미쳤네. 이게 짬에서 나오는 실력인가.
돌덩이는 하나만 추락하지 않았다.
몇 개의 돌덩이들이 연달아서 성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땅에 직격할 때마다 주변이 크게 울렸다.
운석이 땅에 충돌하는 것이다.
일전에 마물 수천을 섬멸했던 운석이, 이제는 한데 모여 성대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 일대의 사람들을 대피시켜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끔찍하군.
"이걸로 죽을 리가 없지."
델라즈가 상황을 냉철히 분석했다.
"에레브, 아타나시아를 확보해라."
"네."
나는 높이 날아올라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 아타나시아를 끌고 내려왔다.
용케 파편에 직격당하지 않았군.
아타나시아의 안전은 확보했다.
"아타나시아."
"…."
"어떻게 된 거에요. 못 죽인 거에요?"
아타나시아의 안색이 창백했다.
나는 아타나시아의 낯빛을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방금 그 일격으로 베르노바는 죽지 않았고.
우리는 전면으로 싸워야 한다, 그거지.
"…."
아직 성대 근처는 먼지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파편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지만,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비엔토."
아타나시아가 비엔토를 영창해 먼지구름을 죄다 걷어내었다.
거기서 보인 것은.
──홀로 초연히 서 있는 베르노바.
베르노바는 홀로 선 채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원로원 모두와 눈을 한 번씩 마주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
시간이 느려지고, 저 멀리 있던 베르노바가 갑자기 눈 앞에 보였다.
베르노바는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아, 칼이었다.
칼을 쥔 손을 내게 향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지만, 결코 몸을 움직여 피하진 못했다.
죽는다.
라고 생각했을 때.
"…."
아타나시아가 내 몸을 와락 안았고, 베르노바의 행동이 멈췄다.
베르노바는 손을 거두고 나와 시선을 주고받나 싶더니, 갑자기 다시 사라졌다.
"크후악!"
멀리서 들려온 비명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베르노바는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아폰이 있던 자리 위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베르노바가 쥐고 있는 칼에 새빨간 핏물이 묻어나 있었다.
아폰.
아폰은 어디 있는가?
고개를 돌려서 확인한 그곳에는, 저 멀리 구석에 아폰이 처박혀 있었다.
죽지는 않은 듯 괴롭게 신음하고 있지만,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타나시아. 아포리스모. 써봐요."
"…."
"아타나시아?"
아타나시아는 아예 혼이 몸 밖으로 나가버린 듯했다.
몇 번을 몸을 흔들고 불러도 대답 한 번 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얘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씨발!
"아타─"
"아타나시아."
"히끅."
어느새 베르노바가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아타나시아가 내 몸을 여전히 감싸안고 있는 덕에 베르노바는 날 공격하지 못했지만, 그의 몸을 흝고 있는 귀기(鬼氣)가 너무나도 불온했다.
베르노바가 쥐고 있는 칼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베르노바가 지금 칼을 한 번 휘두르기라도 하면 나는 그대로 절명하겠지.
몸이 두 동강이 난 채로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타나시아를 꼭 끌어안았다.
"놓아라. 너까지 베기는 싫다."
아타나시아는 나를 잡고 놓치지 않았고, 나 역시 아타나시아를 놓치지 않았다.
"아타나시아. 너는 내 유일무이한 혈육이다. 이들을 선택할 테냐, 아비인 나를 선택할 테냐."
"…."
"9서클의 명예도 수여해주마. 너라면 능히 빠른 속도로 올라올 수 있겠지."
나는 아타나시아를 붙잡고 있는 팔뚝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제발 저것 좀 거절하고 나를 살려달라는 무언의 신호였고, 아타나시아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아타나시아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눈이 죽어 있었다.
아타나시아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베르노바를 직시했다.
아타나시아의 표정은 모르겠지만, 그걸 본 베르노바의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거절하는 거냐."
그와 동시에──
"노바, 텔레포트!"
베르노바가 칼을 쥐고 있는 팔을 크게 휘둘렀다.
나는 가까스로 아타나시아를 데리고 저 멀리 텔레포트했다.
베르노바의 팔은 쓸데없이 허공을 갈랐다.
미친 새끼.
방금 베르노바는 진심으로 아타나시아와 나를 죽이려고 했다.
영창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내 목과 몸이 분리되어 땅바닥으로 떨어졌겠지.
베르노바의 주변만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대에서 베르노바를 접견할 때 보았던, 바로 그 불온한 마나의 기류다.
베르노바의 감정이 극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아타나시아."
아타나시아, 하고.
"아타나시아."
베르노바는 몇 번이고 아타나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베르노바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노바이지, 네가 아니다."
아타나시아가 움찔했다.
"혈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려주려고 했는데, 지아비에게 칼끝을 겨누다니."
"그게, 무슨…."
아타나시아가 짧은 목소리를 흘리면서 고개를 베르노바에게로 향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베르노바가 노바를 사랑했다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름만 닮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뭣보다, 베르노바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베르노바의 아내밖에 없을 거 아닌가.
베르노바의 아내가 노바야?
그럼, 아타나시아의 모친이 노바인 거라고?
"노바를, 사랑해…?"
"아타나시아. 너는 모르겠지. 너의 친모가 노바라는 것을."
내 팔을 붙잡고 있는 아타나시아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노바를 사랑했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베르노바가 팔을 휘두르더니, 이내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튕겨져나갔다.
소리가 들린 직후 베르노바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델라즈가 있었다.
"어차피 그대들도 노바를 찾는 데 일조하긴 커녕 아예 신경을 껐지."
베르노바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원로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그나마 아폰, 델라즈, 힐다. 네놈들이 수색에 진심을 다하는 듯했으나, 그것도 결국엔 나를 향한 기만이었다."
요관을 관리하는 이유가 노바를 찾기 위해서라는 설명은 이미 들었었다.
헌데, 그것이 베르노바의 지시 아래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너희는 모두, 살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베르노바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내게 있어서 삶의 이유란 노바가 전부다. 그래, 원로원 따위 그냥 밀어버리면 되는 문제였어! 나의 실책이다. 너희가 내게 창끝을 향하는 이유는 단지 너희가 나를 단죄하기 위함이다."
베르노바가 실소했다.
"아케즈에 헌신하지 않는 쓰레기 같은 작자들아, 결국 너희가 나와 다른 게 무엇이냐? 오로지 마법 연구를 위해 너희는 반역을 도모했다. 너희라고 해서 정상인 것 같더냐?"
베르노바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아케즈를, 올바르게 통치할 의향이 있나요?"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 모두를 죽이고 로렌스에 아케즈를 할양할 작정이다. 이제 와서 변심을 고집하지 마라. 너희 모두의 무덤이 여기, 성대이다."
베르노바가 눈을 번뜩인다.
"이대로 모든 것이 그분의 뜻대로 흘러갔다면, 나는 노바와 재회할 수 있었을 텐데. 너희가 모두 망쳤다."
협상은 결렬.
베르노바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서클을 접고, 읊었다.
"텔레포트."
베르노바의 바로 앞까지 와서, 베르노바의 팔을 붙잡고, 마나를 한계치까지 끌어모아 외쳤다.
"노바, 아포리스모!"
베르노바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날개가 사라지고, 저 아래로 추락한다.
나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텔레포트를 읊어 아타나시아에게로 돌아왔다.
비틀거리는 나를 아타나시아가 안아들었다.
"흐아압!"
원로원은 멍청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준 기회를 살리고자 저마다 무기를 빼어들고 베르노바에게로 달려들었다.
적어도 내 눈에 확인된 바로는, 베르노바의 몸을 여러 개의 칼날이 꿰뚫었다.
성공한 건가─싶었지만.
"아…."
베르노바는 곧장 다시 날개를 만들어 날더니,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목을 붙잡고, 땅바닥으로 메쳤다.
서클을 접고, 마나까지 끌어모아 사용한 아포리스모다.
아무리 내가 7서클이었다지만 저게 저렇게 쉽게 파훼될 수가 있는 건가.
땅에 메다꽂힌 사람은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아타나시아."
"…."
"…아타나시아. 제발."
아타나시아는 내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눈이 흐리멍텅했다.
원로원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록 베르노바가 마나를 되찾았다지만, 기껏 만들어놓은 기회가 사라지지 않게끔 공격에 공격을 거듭했다.
나는 그걸 아타나시아에게 안긴 채로, 뜬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타나시아."
아타나시아를 연호해도 아타나시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 크아악!
이번에도 사람 한 명이 떨어져나갔다.
낯이 익은 목소리.
델라즈였다.
델라즈와 아폰이 떨어져나감으로써 아타나시아를 제외한 네 명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몇 번이고 아타나시아를 연호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노바, 텔레포트."
마지막 남은 마나까지 끌어모아 델라즈에게로 텔레포트했다.
델라즈는 땅에 처박혀서 숨을 깊게 몰아쉬고 있었다.
"…왜 왔냐."
"마나 수정 있어요?"
델라즈가 품속에서 마나 수정을 꺼내 내게 건넸고, 나는 그걸 받아들여 마셨다.
델라즈가 건넨 다섯 개를 전부 비워냈다.
"아재. 아타나시아는 글렀어요."
"하아…."
델라즈는 아예 드러누워버렸다.
"도망칠 준비나 하자."
"아직 아니에요."
나는 델라즈에게, 품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것을 건넸다.
델라즈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왜 이걸 이제야…."
"조건문을 안 읊은 건 맞는데, 서약이 이상하게 발동하면 어떡해요."
금강.
마법연구동이 철거됨과 동시에, 나는 금강을 확보했다.
통상적으로는 마법연구동 자체에 금강이 포함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상적일 뿐, 모든 것에 통용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금강을 확보한다고 해서 서약이 강제로 끊어지거나 그러진 않았다.
다만, 이것을 베르노바에게 보였을 때 어떻게 될지 몰라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있던 거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지.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 정도는 괜찮나봐요."
"…그걸로 뭐 어쩌자고."
"이거 아무나한테 맡기고 어떻게든 실드 한 번만 풀어보라고 해요."
델라즈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무슨 수로?"
"나 8서클 찍었어요."
공중에 작게 서클 여덟 개를 펼쳐보았다.
델라즈가 입을 떡하니 벌린다.
아놀드와 싸우고, 아포리스모에 진심으로 영창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서클이 하나 늘었다.
허무하다.
너털웃음이 흘러나온다.
차라리 소리내어 웃고 싶다.
이와 같은 생각들이 무표정에 묻어나올 정도로 내 기분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농담이라면 웃어넘기고 말겠으나, 현실로 닥쳐오니 그저 막막하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은 대체 무엇이었나, 싶다.
결국엔 경험이 필요했던 건가.
아놀드와 베르노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8서클로는 부족하다.
"무슨."
"아포리스모 썼더니 되더라고요. 나 한 번 믿어볼래요?"
난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람들의 믿음을 져버렸다.
내가 계획한 모든 일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으며, 누가 나를 믿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완벽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델라즈는 그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나를 불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입으로, 직접 물었다.
나를 믿어줄 수 있냐고.
"…이걸 힐다에게 전해주고 오마."
"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베르노바도 힐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나.
노바의 수색에 진심을 다하는 듯했다는.
"다녀오마."
델라즈는 그 말을 끝으로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베르노바 쪽을 슬쩍 올려다보니, 베르노바에게 덤비는 사람들이 네 명에서 세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저쪽 밑에서 델라즈가 힐다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금강을 쥐어주고 있었다.
둘은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델라즈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델라즈가 내 눈을 직시한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려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 하으아악!
나는 지금부터 내게 있어 가장 큰 위험을 감당하려고 한다.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고서 베르노바를 죽이려고 한다.
무엇을 위하여?
아케즈를 위하여.
내 학생들을 위하여.
120억을 위하여.
아케즈를 살려 원로원에 입단해 마법을 연구할 것이며, 내 귀여운 학생들이 아카데미에서 옳게 배울 수 있게 할 것이다.
그 결과가 120억으로 이어질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이 실패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며, 성공하더라도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럴 확률이 너무 높다.
나는 그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내게 주어진 기회가, 마지막 기회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저울질에 능통하지 못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느 것에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여기서 위험을 감수하는 게 옳은가?
실패한 지금, 아타나시아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도망가는 게 옳은 걸까?
여기서 도망치면, 다음에는 기회가 있을까?
나는, 각오가 되어 있나?
"…하."
아타나시아가 실패한 이유는, 아마도 저울질에 실패해서겠지.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하고 납득했어도 부친을 자기 손으로 죽인다는 패륜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몸이 체감해버려서일 거다.
나는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었다.
이제 와서 저울질에 실패한다니.
지금까지 희생된 이들을 기만하는 행동이다.
- 베르노바!
그렇기에, 나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이것은 저울질에 실패한 게 아니다.
인생을 건 도박이다.
코인에 몇 백만 원 넣는 것도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한 번 해봐서 그런가, 두 번 하기가 그렇게 어려워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모두, 120억을 위해.
내 앞날을 위해.
"마나 수정, 다 꺼내봐요."
델라즈가 바닥에다 늘여놓은 마나 수정은 총 아홉 개였다.
나는 하나씩, 모두 목 너머로 넘겼다.
비록 배가 부르진 않지만, 마나가 어느 정도 차오른 것이 확인되었다.
"내가 합니다. 나한테 마나 쏟아봐요."
"뭐?"
"아재도 마나량 엄청 많잖아요. 우리 둘이 합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여전히 머리 위에서는 베르노바와 원로원의 노바와 베르노바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비명에 가까운 기합소리가 대기를 매운다.
"남의 마나를─"
"큰일 나는 거 알아요. 근데, 방법이 그거 말고 더 있어요?"
서걱, 하고.
칼날이 날아와 내 머리를 스쳐 바닥에 꽂혔다.
적색 머리카락이 몇 가닥 허공에 나풀거린다.
"이러다 다 죽어요"
나는 델라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델라즈는 그걸 내려보나 싶더니만, 마주잡았다.
금강으로 베르노바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그거대로 좋겠지만,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금강의 작동 매커니즘도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알폰스는 그저 내게 들이미는 것으로 내 마법을 취소했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쐐기를 박는다.
잠깐이라도 마법이 전부 취소되면, 베르노바는 9서클의 마나가 몸에 흐를 뿐인 일반인이 되어버린다.
실드를 두르지 않은 상태라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보다 높은 서클의 마나로 찍어누를 수 있게 된다.
내가 아니라 델라즈가 한다는 선택지도 있겠으나, 델라즈는 아무래도 베르노바의 아래인 만큼 불안요소가 많다.
반면에 나는 노바의 직통이다.
노바와 베르노바가 같은 격으로 이어진 건 아니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베르노바에게 명예로 영향을 받는 위치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한다.
"몸 좀 기댈게요."
나는 아예 델라즈의 품에 등을 기대었다.
여전히 손을 통해서 델라즈의 마나가 들어오고 있다.
심장이 요동치며 숨이 거칠어진다.
나는 그에 그치지 않고, 서클을 접었다.
두 번.
"으욱…."
델라즈는 다른 말 없이 내 손을 더욱 꼭 잡아주었다.
어떠한 말이든 지금 여기에 불필요하다는 것을 델라즈도 알고 있겠지.
지금 여기서 필요한 건 괜찮냐며 안부를 묻는 말보다, 더욱 많은 마나다.
더욱.
더욱 많은 마나.
"흐으으…."
이마와 관자놀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땀방울은 한두 갈래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흐르며 내 시야를 가로막는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땀방울을 쳐내었다.
머리가 흔들린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델라즈의 마나는 보통 많은 게 아니다.
노바인 내 마법을 무영창으로, 순수한 마나로 찍어누를 정도로 많은 마나를 갖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되며 마나량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아졌다.
우리 둘의 마나를 합치는 거다.
양을 불리는 거다.
"베르노바, 인카르너."
델라즈가 영창했고, 델라즈와 맞잡고 있는 내 손의 반대편 손에 총이 하나 만들어졌다.
나는 그걸 쥐고, 베르노바에게 겨누었다.
- 베르노바아아아!
구토감이 밀려온다.
헛구역질이 나오려고 하지만, 간신히 참아낸다.
지금 입을 벌려 공기를 토해냈다간 멈추지 못하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마나가 끊임없이 밀려들어온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
눈 앞이 흐릿해진다.
금강.
금강은 어디에 있는 거냐.
총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 시야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꺼풀에 힘을 주며, 저 위에서 날뛰고 있는 베르노바를 올려다보고, 총을 겨눈다.
베르노바가 눈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안간힘을 쓴다.
마침내.
- 흐우읍!
한 여자가 날아들어 베르노바에게 금강을 들이밀었고.
베르노바의 날개가 사라져 휘청이는 것을 본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