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88화 (88/247)

(EP.88)088

아타나시아에게는 감사한다.

아타나시아가 없었으면 계획이고 뭐고 다 말아먹을 뻔했다.

솔직하게, 매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오롯이 혼자 뭘 한 게 지금까지 없다.

그나마 있다면 노브를 죽인 거.

그거 외에는 다 뭔가를 하려다가 실패했다.

아놀드를  헤스와 히스토리아에게 맡기고 알폰스를 죽이려고 했다가 애꿎은 헤스만 죽었고, 아놀드와의 싸움에서는 패배했다.

내가 주력인 싸움에서 꼴사납게 패배해 죽을 뻔했다.

그것을 만회해야 한다.

알폰스를 죽여서.

아놀드가 죽은 지금, 전쟁 자체는 이긴 것이나 다름없지만, 후환을 아예 제거하기 위해 알폰스를 죽여야 한다.

로부르크가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죽일 셈이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몰래.

일국의 황제를 죽이는 것만큼 반발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최대한 몰래 처리하려고 했지만, 로부르크는 나와 뜻이 맞았다.

여차하면 명령을 받아서 죽인 거라고 하면 되겠지.

알폰스는 적진에 있을 터였다.

치료를 받고 있겠지.

"아쿠아."

적군의 수뇌부로 향하는 도중, 적진에다가 물을 뿌려버렸다.

그나마 싸우던 적군도 진창에서 헤메며 아군에게 목이 따이는 걸 확인하고 날아가는 도중.

"에레브."

"…."

적군이 차려놓은 막사 바로 앞에서, 아론과 맞닥뜨렸다.

나는 이에 솔직하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죽기 싫으면 물러나세요."

내가 그나마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아론은 날 막지 못한다.

그나마 바로 죽이지 않고 존댓말로 비키라고 말해주는 게 나의 마지막 인정(人情)이다.

일종의 시험이었다.

비킨다면 살려주고, 비키지 않는다면 죽인다.

날아서 넘어갈 수도 있으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 번 비키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내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아론 입장에서는 딸아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겠지.

따라서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렇기에 시험이다.

바로 비킬 것인가?

"아케즈를 포기하겠다."

막 날아오르려던 나를 그 말이 붙잡았다.

"포기해?"

"아케즈를 포기하면 전쟁할 이유가 없다."

"알폰스의 뜻이 그거에요?"

아론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의 뜻이다."

"…그쪽이 뭔데 황제를 대신해요?"

"폐하께선 상태가 위독하시다. 전상(戰狀)을 돌볼 여력이 되시지 않는다."

"그쪽이 황제 대리에요?"

아론이 고개를 다시금 내저었다.

그럼 뭐지.

"아케즈를 집어삼키길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황제 폐하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 폐하만 없다면 굳이 로렌스를 칠 이유는 없지 않나."

"뭐 죽이기라도 하게요? 그쪽 다 서약으로 이어져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알폰스가 죽으면 분명 아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터, 인데.

"유폐한다."

그러니까, 아론의 말은, 알폰스를 목숨만 붙여둔 채로 유폐시켜 자신들 목숨도 살리고 전쟁도 끝내겠다 이건가.

"제가 그쪽을 어떻게 믿고요?"

알폰스가 살아 있는 이상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설령 쿠데타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전쟁을 끝내놓아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겠지.

뭣하러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론의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아론의 입장도 이해한다.

내가 알폰스를 죽이려 하는 걸 저들도 알 거다.

그리고 알폰스가 죽으면 자신들도 죽지.

그러니까 이렇게 필사적으로 막아세우는 게 아닐까.

"황제 폐하를 참하면 로렌스라는 나라 자체가 무너진다. 나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고 근국들에게 천천히 뜯어먹히겠지."

"그렇겠죠."

감히 반란은 꿈에도 생각 못 하도록 알폰스는 주요 인사들에게 전부 서약을 맺어놓았을 거다.

날 죽이면 너희도 죽는다, 라고.

그리고 이런 협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협박을 당하는 쪽이 권력을 잡고 있어야만 역설적으로 유지된다.

따져보자.

나는 권력자인데, 알폰스와 서약으로 맺어져 있다.

알폰스를 참하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시키고 싶어도 내 목숨줄이 달려 있기에 그러질 못한다.

서약으로 맺어져 있지 않은 자들이 그것을 시도하더라도, 나는 내 목숨을 위해 그들을 막아세워야 한다.

바로 이것을 알폰스는 노리고 권력자들과 서약을 맺었겠지.

자신의 목숨과 지위를 굳건히 지키기 위하여.

즉, 내가 알폰스를 죽이면 로렌스의 그런 권력자들이 죄다 죽어버린다.

나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행정부터가 망가지고 기능을 상실하는 거다.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 각오가 되어 있느냐."

아론은 내게서 동정심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지금 누구보다 나를 증오하고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은 아론일 거다.

그런 아론이 내게 동정심을 이끌어내며 인정을 호소한다.

하지만.

"네."

아론은 나에 대해서 한참 잘못 파악하고 있다.

나는 알폰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로 나 때문에 사람 수십 수백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는 결국 사람을 죽였다.

노브의 팔다리를 잘라 고문하다가 목을 자른 것도 나고, 전쟁을 벌여 저 뒤의 사람들이 도륙나게 만든 것도 나다.

나를 스무 살의 여린 소녀라고 파악했는가. 아론.

미안하지만, 나는 여리지도 않을 뿐더러, 스무 살도 아니며, 소녀도 아니다.

너는 나의 근본을 잘못 알고 있다.

나는 나를 위해서라면 사람도 서슴없이 죽이고, 전쟁도 서슴없이 발발시키는 이기주의자다.

아무리 '복수'라고, '아케즈를 위해서'라고 포장해본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인 거다.

이미 나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제 와서 망설일 것일랑 아무것도 없다.

아론은 그저 침묵했다.

침묵하며, 내 눈을 직시했다.

"대체, 무엇이 너를 그토록…."

아론은 결국 허물어졌다.

힘이 빠져 쓰러지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론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개 또한 숙였다.

"로렌스를 살려다오…."

"알폰스가 살아 있는 이상 저는 가만히 관망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알폰스를 포함한 아케즈를 집어삼키겠다는 야망을 가진 모두를 말살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후계자라던지.

"게다가 알폰스만 죽여서 끝나는 게 아니죠. 알폰스의 가족은 어디 있나요?"

알폰스는 일국의 황제다.

황위를 계승시킬 후계자가 있을 거다.

나는 훗날의 안위를 위해 모두를 죽이려고 한다.

권력자가 죄다 죽더라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자, 황위를 이어받을 자가 있다면 그를 중심으로 다시금 단결할 가능성이 있었다.

아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투사트."

"에?"

저거 분명 자폭 마법일 텐데.

아론의 몸이 형형하게 빛난다.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선, 내게로 달려든다.

"로렌스를 위해!"

아론은 내 허리를 붙잡고선 그리 외쳤다.

아론의 몸이 붉게 발광하나 싶더니, 이내.

팍, 하고.

터졌다.

"…."

나는 아론의 시체를 옆으로 치웠다.

자폭으로 날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론이 몇 서클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게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조용히, 몰래 영창해서 기습했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겠다만, 내가 실드를 두를 시간을 저렇게 마련해주는데 내가 죽을 리가 없지.

'로렌스를 위해서, 인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칠 정도의 사람은 아닐 텐데.

만약 그렇다면 국가와 한몸인 황제를 유폐시키겠다고 말할 리 없지.

결국엔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다.

스스로의,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남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런 사람이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천박한 농담이다.

나는 곧장 모든 막사들을 헤집으며 알폰스를 찾으러 다녔다.

막사 내의 모든 사람들과 한 번씩 눈을 맞대고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 모두가 날 보자마자 경악에 빠져 몸이 굳었다.

어차피 알폰스만 죽으면 따라서 전부 죽을 이들, 굳이 시간을 내어 죽이진 않았다.

막사의 가장 뒷편.

다른 막사보다 크기가 네 배는 더 커 보이는 그곳에 알폰스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있었다.

"이, 악마…!"

"내가 악마라니."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쪽 황제 폐하를 탓하세요. 내가 아니라."

날 보며 도망치는 자들도 있었고, 칼을 빼들어 내게 휘두르는 자들도 있었다.

도망가는 놈들은 뒤를 쫓지 않았고, 칼을 휘두르는 놈들은 전부 목을 날렸다.

이 분이 지나고, 막사 내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와 알폰스밖에 없었다.

전쟁이 시작하기 전의 나였으면 분명 이들을 막아세우지 못해 당황했겠지.

알폰스. 너를 죽일 수 있게 해준 건 결국에는 너다.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내 이름이 몇 번이고 호명되는 소리가 밖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내가 여기 있음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건가.

"…아놀드 경이 진 건가."

어느샌가 알폰스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고 있었다.

다만 누워 있는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제가 졌어요."

"무슨 뜻인가."

"제가 졌는데도, 우리가 이겼어요."

알폰스가 쿨럭, 기침하며 눈을 감았다.

"죽일 셈인가?"

"네."

"바로 죽이지 않고 이러고 있는 이유는 뭔가."

"자식, 있어요?"

알폰스가 표정을 찌푸렸다.

"너는 악마다."

"폐하도요."

"수십 수백에 그치지 않는다. 비단 관료들만 죽는 게 아니야. 5서클 이상의 모든 마법사와 정부 인사들이 죽는다. 모두 나를 죽여서 얻는 결과다. 그래도 날 죽일 테냐."

"네."

나는 번복하지 않는다.

"…자식은 없다."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

있더라도 말하지 않겠지.

나는 망설임없이 알폰스의 목에 칼을 쑤셔넣었다.

알폰스는 커억,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각혈하며 세상을 등졌다.

애초에 우리가 이기고 들어가는 전쟁이었다.

아니, 전쟁도 아니었다.

차라리 섬멸에 가깝겠지.

아놀드라는 변수만 아니었음 진즉에 끝났을 싸움이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싱겁게 끝났다.

감회고 뭐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알폰스를 죽이는 것만으로 전쟁을 끝낼 생각은 없었다.

로부르크가 명령한 건 알폰스를 죽이는 것이지만, 완전히 싹을 지워두기 위해서는 그 자식까지 죽여버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혼비백산이 된 막사들을 뒤로 제치고 황궁으로 날았다.

황궁을 이 잡듯이 뒤졌다.

대부분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꼭 사람들이 한두 명씩은 죽어 있었다.

알폰스와 연결된 사람들이었겠지.

나는 이를 무시하고 모든 문을 열어재꼈다.

그리고.

"흐, 끄윽…."

한 시체에게 안겨 있는 남자 아이를 발견했다.

이제 갓 열세 살쯤 되었을까.

남자 아이는 비루한 행색이었으나, 나는 금발을 보고 직감했다.

알폰스의 아이라고.

"엄마…."

아이는 자신을 안고 있는 시체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시체의 옷이 다 젖어 어둡게 물들 정도로 아이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남자 아이가 안고 있는 시체는 다나였다.

"네가, 황태자야?"

남자 아이는 나를 보더니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 행동에서 확신을 얻었고, 알폰스가 남긴 희대의 쓰레기짓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 아이는 다나를 보고 엄마라고 했다.

남자 아이는 황태자, 즉 알폰스의 아들이다.

다나는 시녀다.

다나는 단지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뺨을 맞았다.

다나는 알폰스가 죽음으로써 같이 죽었다.

이 남자 아이는 사생아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미래의 내가 지금을 후회하겠지. 미안하다"

내가 칼을 뽑아드는 것을 본 남자 아이가 비명을 질렀고, 나는 그런 아이의 가슴을 꿰뚫었다.

피가 솟구치며 남자 아이는 절명했다.

알폰스는 희대의 쓰레기 새끼였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죽인 것이 더욱 후회되지 않았다.

나는 곳곳이 시체로 도배된 황궁을 나와, 또 시체로 도배된 막사를 지나, 또 시체로 도배된 전장을 지나 아군의 사령부로 돌아왔다.

"죽였나."

"예."

로부르크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제가 밀어버릴까요?"

"이쯤하면 됐다."

하긴, 적군이 꼴사납게 패주하는 가운데 내가 굳이 메테오를 연사할 필요는 없겠지.

"전쟁이라는 게, 원래 이런가요?"

나는 몸을 축 늘이고선 물었다.

후회하지 않는다지만 기분이 더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군이 유리한 상태에서,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버리고 승리를 취했는데도 기분이 이리 더러운데, '진짜' 전쟁이 벌어진다면, 또 거기에서 패배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원래 이렇다."

"…그런가요."

"자색 화염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라."

여기도 회중시계가 있나보다.

아타나시아라고 말을 못 하는 걸 보아하니.

나는 여기 막사에서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대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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