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87화 (87/247)

(EP.87)087

에레브의 돌진은 중간에 멈췄다.

싸움은 곧바로 실행되지 않았다.

아놀드와 에레브, 둘은 서로의 무인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들을 동원했다.

에레브는 적진에 물을 뿌렸고, 아놀드 또한 적진에 물을 뿌려 전장은 아예 진창이 되어버렸다.

저 밑에서는 탁큰과 로렌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탁큰의 무인들은 에레브에게 보급받은 장병기와 무기들을 휘둘렀고, 로렌스의 무인과 마물들은 그런 탁큰의 모험가들을 물어뜯었다.

일진일퇴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일보, 이보씩 앞으로 향하는 것은 탁큰의 무인들이었다.

로렌스는 여전히 밀리고 있었다.

둘은 함부로 큰 마법을 난사하지 않았다.

큰 마법을 쓴다는 것은 즉, 마나가 크게 소비된다는 것을 뜻했다.

서로의 거리를 수 초 내로 0에 수렴하게끔 주파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마나를 크게 쓴다는 것은 패배를 향한 지름길이었다.

물론, 에레브는 메테오 한 번으로 적군을 몰살시킬 수 있었고, 아놀드는 토네이도로 적군을 수장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사용하지 못했다.

서로에게 사용하기 위해.

마침내.

- 마물 새끼들이 도망친다!

- 뒷꽁무니를 쫓지 마! 조금씩 밀어붙여! 그러면 이긴다!

로렌스의 길들여진 마물들이 패주하기 시작했다.

로렌스의 전력이 약해진 틈을 타, 탁큰의 무인들이 보다 한 발을 넓게 지르기 시작했다.

로렌스의 패배였다.

이미 진창이 되어버린 초원에서 등을 돌려 도망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발이 걸려 넘어졌고, 탁큰의 무인들의 칼날 앞에 시체가 되었다.

지옥도가 펼쳐지는 전장 위에서, 에레브가 심호흡했다.

후─, 하─, 하고.

그녀는 우선, 서클을 반으로 접었다.

비록 몸의 일부분이 6서클급이 되었다지만, 아놀드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서클을 접고, 마나를 모아 농도를 높여야만 가망이 있었다.

한방 싸움.

그녀가 노리는 것은 단 한방이었다.

서클을 접은 이상 오래 끌어서 좋을 것도 없을 뿐더러, 마나량의 이점을 살려 찍어누르기 위해서는 한 번에 크게 공격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이번 전쟁의 명운이 단 한 합에 달려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자 에레브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요관을 돌파할 때도 긴장 한 번 않고 나들이 온 기분으로 임하던 에레브였다.

그런 에레브가 긴장해 숨을 죽이고, 어깨를 떨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심호흡이 끝나고, 어깨의 떨림이 멈추자, 그녀는 빠른 속도로 아놀드에게 달려들었다.

수십 미터의 거리가 불과 이 초도 걸리지 않아 주파되었다.

"끄으읍…!"

"후읍!"

공중에서 아놀드와 에레브의 손이 맞닿았다.

힘겨루기였다.

각자 가능한 선에서 몸에 마나를 쏟아부어 힘을 더했다.

둘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금강은, 왜, 안 가져왔대?"

"크흐웁."

"알폰스 때문이지?"

에레브가 씨익 미소지었다.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 짐작했던 금강은 아놀드에게 없었다.

정확환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알폰스에게 있다고 확신했다.

무제한 총력전!

에레브가 마나를 끊임없이 쏟아붓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힘에서 조금씩 밀리는 것은 아놀드였다.

서클 접기와 마나량만으로 서클과 격의 차이, 둘을 모두 극복하고 있었다!

"너야말로, 의도가 너무 뻔한 거 아니냐?"

아놀드가 킥, 하고 웃었다.

"난 빨리 끝낼, 생각이 없는데."

"인카르너."

아놀드가 맞잡고 있는 에레브의 손에서 칼날이 돋았다.

아놀드는 손바닥이 뚫렸음에도 굳건했다.

"넌 이런 거 못 하지?"

에레브가 비웃었다.

에레브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온 칼날은 회전하며 아놀드의 손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제서야 아놀드가 손을 떼고 물러났다.

힘겨루기에서는 에레브가 이겼다!

"바리에이션."

아놀드의 손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만 힘을 쏟고, 미처 실드를 완전히 두르지 못한 탓이었다.

그의 손바닥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힘없이 뚫렸다.

"머리가 좀 많이 아팠어. 돌려주고 싶더라."

"머리를 친 거랑 손바닥을 뚫는 거랑은 다를 텐데."

"어차피 네 모가지도 따야 되는데?"

에레브가 비웃음을 흘렸다.

아놀드도 그에 지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기게 된다면, 널 그냥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럼?"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한테 당한 한이 많아서 말이다. 너에게 풀 생각이다."

적나라한 희롱이었다.

적나라한 희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레브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해봐. 병신아."

"입이 험하군."

"인카르너."

에레브가 잽싸게 총을 만들어내 아놀드에게 쏘았다.

아놀드는 즉각 실드를 둘러 탄착을 피했다.

에레브의 총격은 한 발로 끝나지 않았다.

쉴새없이 몰아친다.

아놀드는 실드로 막아내다가, 아예 에레브에게로 돌진했다.

"캔슬."

아놀드가 에레브의 몸을 붙잡고 영창하자, 에레브의 날개가 사라졌다.

땅으로 떨어지려는 에레브의 목을 붙잡고, 그대로 하강한다.

"끄, 윽!"

목이 붙잡혀 영창이 불가능해 무영창이라도 시도하지만, 아놀드를 마땅히 떼어낼 방법이 없었다.

이에 에레브는 아예 아놀드의 몸을 붙잡았다.

꼭 붙잡은 상태에서, 서클을 한 번 더 접었다.

서클이 미친 짓 좀 그만 하라며 성화이지만, 아놀드를 떼어내기 위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에레브는 서클을 접은 상태에서 마나를 아놀드에게 뭉텅 주입했다.

"허윽?!"

이변을 느낀 아놀드가 즉시 에레브를 떼어내 허공에 던졌고, 에레브는 다시 안정적으로 날아올랐다.

"무슨…."

"신기하지?"

에레브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씨익 웃더니, 또 다시 총을 만들어내 아놀드에게 쏘았다.

"이런…!"

가까이 접근하면 9서클 마나를 강제로 주입당하고, 거리를 벌리면 탄착당해 마나가 깎인다.

아놀드는 재빨리 상황의 타개를 위해 머리를 굴렸다.

'날 말려 죽이려는 심산이다.'

에레브가 바라는 것과 아놀드가 바라는 것이 우연하게도 맞아떨어졌다.

한방 싸움!

아놀드는 말려 죽지 않기 위해, 에레브는 우위를 점한 현 상태에서 승리하기 위해 큰 한방만을 노렸다.

"…."

잠시 대치가 이루어졌다.

십수 초의 대치 끝에, 먼저 행동을 보인 것은 에레브였다.

"흐읍!"

그녀는 인카르너로 만들어낸 광선검과 장검을 양손에 들고 휘둘렀다.

칼날이 아놀드의 목선을 따라 휘어지나 싶더니, 이내 아놀드가 슬쩍 뒤로 물러나며 허공을 갈랐다.

공격에 실패한 에레브의 몸의 균형이 무너지자, 아놀드가 틈을 타 파고들어 에레브의 복부를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에레브가 신음을 흘리며 무기들을 떨어뜨리자, 아놀드는 에레브의 목을 한손으로 붙잡고 옥죄임과 동시에,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려친다.

"끄윽."

숨이 막혀 벌벌 떨면서도, 서클을 꾸역꾸역 접어 9서클의 마나를 아놀드의 몸에 집어넣는 에레브.

"후우."

이번에도 아놀드는 공격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에레브를 떨쳐낼 수밖에 없었다.

7서클의 몸으로 9서클의 마나를 어떻게 흘려보내는지도 모르겠지만, 마나량 자체가 너무 많았다.

자칫 잘못 받아들이다간 서클이 죄다 꼬여버릴 수도 있었다.

"크헤엑, 후욱."

그 사이, 에레브는 가쁜 숨을 들이쉬며 태세를 정비했다.

'9서클을 계속 유지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제약이 있다는 뜻. 저걸 돌파하기 위해서는, 숨을 가다듬을 여지를 주면 안 된다.'

아놀드가 거기까지 계산하고선, 에레브의 품속으로 빠르게 돌진했다.

"우?!"

에레브가 당황해 무기를 만들어 휘두르지만, 아놀드가 미세하게 더 빨랐다.

그의 주먹이 에레브의 배를 후려치고, 에레브가 뒤로 밀려난다.

"크훅…."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아놀드는 멈추지 않고 돌격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에레브가 마나를 주입하기 위해서는 몸을 붙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붙잡히는 걸 피하며 둔탁한 타격으로 내상을 입힌다.

"욱!"

에레브는 계속해서 아놀드의 주먹을 붙잡으려 시도하지만, 결코 붙잡을 수 없었다.

주먹에 타격당해 조금씩 뒤로 밀리면서 신음을 흘린다.

결국 에레브의 가드가 완전히 풀렸을 때.

"커윽…."

아놀드는 마나를 크게 써 팔꿈치로 에레브의 머리를 찍었다.

휘청거리는 에레브의 팔을 붙잡고 마나를 주입해 서클을 망가뜨리려고 시도하지만.

"윽."

파도처럼 밀려닥치는 9서클의 마나에 결국에는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손을 떼고, 무력화된 에레브의 목을 잡아 읊었다.

"캔슬."

그리고 날개가 사라진 에레브를 땅에다가 던졌다.

에레브는 힘없이 낙하했다.

'수뇌부를 친다.'

수뇌부를 쳐서, 전황을 유리하게 가져오는 것이 아놀드의 목표였다.

아놀드는 에레브에게서 눈을 떼고 즉시 은신하고 연합군의 사령부로 날았다.

알폰스가 주문한 것은 에레브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었지만, 아놀드의 생각은 달랐다.

'로렌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다.'

더욱 정확히는, 로렌스가 근국들을 모두 먹어치우기 위해서다.

에레브는 분명히 적군에서 가장 강력한 적이지만, 이를 쓰러뜨린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저쪽에는 로부르크가, 카웅이, 데이지가 있었다.

각국의 수장을 무너뜨리게 된다면 필히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알폰스가 아놀드에게 내린 명령은 이러했다.

- 에레브만 노려라. 압도하지 말고 천천히 밀어내라. 수뇌부를 건드리지 마라.

수뇌부를 건드리지 마라.

아놀드는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뜻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하여 날았다.

수백 미터를 날아서 도착한 그곳에, 사령부가 있었다.

아놀드는 그곳에 로부르크밖에 없음을 확인하고 칼을 만들어내었다.

로부르크, 데이지, 카웅. 셋 중 가장 위험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로부르크였다.

죽일 기회가 있을 때 죽여두는 게 좋았다.

로부르크의 옆까지 가, 칼을 높게 치켜세운 다음, 내려치──

"윽?!"

려다가, 풀썩 쓰러졌다.

인카르너로 만들어낸 칼은 물론이요, 등 뒤에 달고 있던 날개까지 사라졌다.

그리고.

"…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로부르크를 미루어 보았을 때, 카체보우스, 은신마저 풀렸다.

아놀드는 황급히 다시 인카르너를 외치려고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무영창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을 발동시킬 수 없었다.

그 같은 사실을 깨닫고 경악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은 여전했다.

애초에 마나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잘은 모르겠다만, 직접 찾아와줘서 고맙다."

아놀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로부르크가 노란 전격이 이리저리 튀는 기다란 봉을 꺼내들어, 자신에게 휘두르는 것이었다.

**

죽다 살아났다.

말 그대로였다.

날개가 사라져 땅으로 쳐박혀 모가지가 꺾이기 직전에, 내 몸이 갑자기 두둥실 떠올랐다.

솔직히 눈 꼭 감고 믿지도 않는 세 여신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살아나니 진짜 여신이 날 도운 것인가 싶었다.

눈 앞이 핑 도는 것을 꾸역꾸역 참으며 어떻게든 날개를 다시 만들어내 사령부로 날았다.

내가 쓰러진 사이에 아놀드가 아군 사령부에 침입해 난동이라도 부렸다간 큰일이었다.

"전, 하…!"

간신히 로부르크를 찾으며 막사 안으로 들어가니.

"…어?"

로부르크가 아놀드를 전기구이로 만들고 있었다.

광선검을 아놀드의 몸에 가져다대었다가, 떼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 무슨…?"

"패배했군."

로부르크가 덤덤히 말했다.

"이 자가 8서클 마법사, 맞나?"

"마, 맞습니다."

"공중에서 갑자기 떨어졌다."

떨어져?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로부르크는 절대로 아놀드를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었다.

뭘 어떻게 하면 광선검으로 저렇게 갖고 놀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색 화염이 보였다."

"…아."

로부르크의 저 한 마디로 깨달았다.

자색 화염이란 곧 베르노바의 명예, 즉 아케즈의 8서클 마법사를 뜻한다.

그리고 아놀드를 이길 수 있는 베르노바는 아타나시아밖에 없다.

아타나시아가 왔던 거다.

하지만, 자칫하다간 베르노바가.

'…아.'

아니다.

사령부가 밀리면 계획이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다.

로렌스를 밀어버리지 못하는 이상 베르노바도 죽일 수 없으니. 애초에 예의주시하고 있던 건가.

그렇다면 결국 내 실력을 온전히 믿고 있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난 방금 패배했으니까.

내가 떨어지다가 몸이 두둥실 떠오른 것도 아타나시아가 해준 게 아닐까 싶다.

"죽이겠나?"

로부르크가 내게 그리 물었고,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네."

죽이는 편이 이롭다.

아놀드는 어째서인지 바닥에 쓰러져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포리스모.'

아타나시아가 왔던 게 확실해졌다.

"인카르너."

나는 칼을 만들어내고 아놀드의 목에 가져다대었다.

아놀드가 경악해서는 버둥거리지만, 결코 마법을 발동시키지는 못했다.

마나의 흐름 자체가 끊겨버린 탓이었다.

망설임없이 칼을 밀어넣었다.

살과 근육을 헤집는 감각과 함께 칼날에 피가 묻어나온다.

"너에게 너무 큰 것을 기대한 건가?"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 아니,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7서클 마법사를 하나 희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거다.

아타나시아가 이와 같은 상황을 예상해 손을 써두지 않았다면, 참극이 벌어질 뻔했다.

"애초에, 이 자는 알폰스의 말에 거역한 듯하군."

"예?"

"알폰스는 결코 나와 데이지, 카웅을 죽이지 않는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죠?"

"로렌스는 방어적으로 나와야만 하는 입장이다. 이미 한 번 선을 넘어 협공당하고 있는데, 대륙의 눈치를 본다면 우리를 쉽게 죽일 수 있을 리 없지. 로렌스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지 않다. 패배하지 않는 걸 목표로 두고 있다."

"그렇다면 아놀드는…."

"거기까지 예상하지 못하고 명령을 거역하고 홀로 행동한 것이겠지."

로부르크는 아놀드의 시체를 주워들어 막사 구석에 집어던졌다.

"이로써 승리에 한 발자국 가까워졌군. 에레브. 알폰스를 찾아 죽여라."

설마 하니 죽이라는 말까지 할 줄은 몰라 순간 당황했지만, 로부르크의 목표가 내 목표와 일맥상통함을 깨닫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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