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7)067
페일리는 다시금 에레브의 손을 꽉 잡았다.
정확하게는, 에레브의 손이 로브 속으로 도망가려는 걸 붙잡았다.
"우리 꼭 손을 잡고 있어야만 할까?"
"네."
에레브의 불만 섞인 불평에도 페일리는 아랑곳 않았다.
어쩌겠는가. 에레브는 그냥 놔두면 안 될 정도로 귀여웠다.
특히, 저 로브 바깥으로 살짝 삐져나온 손가락이 무엇보다도 귀여웠다.
저런 귀여움은 손으로 잡아서 보호하는 것이 마땅했다.
"하아, 그래서, 어디 가는데?"
"마법 체험이라도 하러 갈래요?"
"…나 노바인데?"
"모든 마법을 다 알고 계시는 건 아니잖아요."
확실히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에레브.
페일리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함에 만족했다.
페일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에레브에게 귀여운 옷을 입히고, 같이 데이트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선물을 가지고 나와서 준다.
사실 계획 자체는 비틀렸다. 귀여운 옷을 입히지도 못했고, 선물은 주기도 전에 정체를 들통났다.
그래서 페일리는 다른 점에서 위안을 얻었다.
세 가지!
고양이귀 장신구를 머리에 씌웠다.
에레브의 몸이 멋진 검붉은색으로 도배되었다.
그리고──예상치 못한 수확.
반말하는 에레브는 갭모에가 상당했다.
페일리가 에레브에게 존댓말을 해달라고 한 건, 에레브가 그 반대로 행동할 걸 예상하고 한 말이었다.
결과는 흡족스러웠다.
비록 지금 당장은 에레브가 하얀색 로브를 두르고 있는 것이 하나의 단점이라지만, 그 나머지는 완벽했다.
'사랑.'
페일리는 에레브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애욕(愛慾)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훨씬 더 건전한 사랑이었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플라토닉 러브.
그것이 그녀가 에레브에게 갖고 있는 감정이었다.
페일리가 에레브에게 사랑을 갖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압도적인 재능.'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서클 일곱 개를 달았다.
그 사실이 다른 학생들에게 미치고 있는 파급력을 에레브는 알고 있을까? 페일리는 자문했다.
그리고, 곧 해답은 나왔다. 모르고 있을 것이다.
확고하게 깨닫고 있었다면, 빈틈을 보이지 않았겠지.
페일리가 생각하기론, 에레브는 스스로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보아라. 그녀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1서클과 2서클이다.
빠른 속도로 3서클로 올라가는 사람도 몇몇 있지만, 마학을 수강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곳에 정체된 사람들이었다.
많으면 스무 살까지도 있었다.
같은 스무살이지만, 서클이 무려 여섯 개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페일리는 그와 같은 사람을 존경했다.
오로지 실력만이 사람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노라고 그녀는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낙제생이었다.
마법사라고 한들 바람속성밖에 다루지 못했다. 직접적인 공격조차 불가능한 비엔토다.
보통은 같은 약자인 불속성끼리 뭉쳐서 합을 이룬다. 하지만, 페일리가 보기에는 그것은 너무 진부하고, 또 빈약했다.
그렇기에 페일리는 비엔토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바람을 장해물로 쓰는 것.
강제로 바람길을 만들어서 마물의 행로를 고정시켜서, 벽이나 바닥에 박는 것.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그녀가 열일곱 살이다. 그에 반해 에레브는 어떤가. 5원소 전부를 다룰 수 있다.
잠깐의 영창으로 큰 운석을 떨어뜨릴 수도, 허리케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같은 인간이 맞는가 의심될 정도의 경지였다.
물론, 그녀보다 뛰어난 마법사도 있다. 있지만, 모두 자신으로부터 멀었다.
어느 누가 감히 원로원과 사적으로 친분을 쌓고 싶어하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다만 바람으로써 끝냈다.
마학 학생들에게 첫 번째 희망으로 다가왔던 건 델라즈였다.
무려 원로원, 베르노바가 아카데미에 파견된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뛸 듯이 기뻐했지만, 여타 교수들과 다를 바 없는 수업에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정상적인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감도 컸던 것이다.
에레브가 교수로 취임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이론을 강의할 때까지만 해도, 페일리, 그녀는 에레브에게 무신경했다.
학생들에게 직접 맞아가면서 설명하는 교수는 없었기에 잠깐 흥미가 일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에레브의 진가는, 실습을 다니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교육에 진심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가면서까지 실습을 시켜주는 교수, 페일리는 에레브 외에 보지 못했다.
그녀에게 교육열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나 경지가 드높은지도 실감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재능.
물론 본인도 피 터지는 노력을 감행해왔으리라.
하지만, 분명히 스무 살에 노바가 되기 위해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이 필수불가결했다.
그런 사람 밑에서 배우는 것이야말로, 아카데미 학생의 꿈이라고, 달리 말하자면 자신은 지금 꿈을 이룬 것이라고, 페일리는 믿었다.
그런 에레브는 때때로 빈틈을 보였다.
우선, 강의 첫날. 책받침대와 키가 맞물리지 않아 멍하니 있던 걸 페일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론을 설명할 때 직접 맞아가면서, 심지어 실드를 푼 상태로 맞아가면서 학생들을 교육해주던 것을 페일리는 기억하고 있다.
또한, 에레브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마다 희미하게 미소짓는 것도 기억하고 있으며, 그녀가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 있으면 경계심이 바닥까지 내려가 입꼬리가 요동친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본인은 모르는지 고쳐지지 않고 있지만.
바로 그런 면모에서 빈틈을 느꼈고, 귀여움을 느꼈다.
학생이 교수에게 가지는 감정이라기엔 적잖이 불순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작은 키에 맞지 않는 긴 로브를 땅에 질질 끌고다니고, 머리에 큰 꼬깔모자를 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드문 적발이라 눈에 띄는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심장을 불태울 만큼 귀엽기까지 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귀여움의 극치라는 것을 에레브는 알까.
'모르시겠지.'
알 리가 없었다. 알면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교수님, 그렇게 신기해요?"
"어? 어. 신기하네."
에레브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스테이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갖가지 마법들이 하늘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에레브 그녀가 쓰던 마법들에 비하면 한참 못하는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에레브는 그에 열중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면모에서 페일리는 존경을 사랑으로 키웠다.
'8서클, 아니, 8서클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7서클은.'
7서클이 페일리의 목표가 되었다.
적어도 서클 여덟 개를 달아 위에서 내려다볼 순 없더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그런 점에서, 앨버트는 눈엣가시였다.
앨버트가 에레브를 천사 대하듯이 우상화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기저기 널리 퍼져 있었다.
페일리는 그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 내가 에레브 교수님에 대해서 가장 잘 압니다.
'어림도 없지.'
페일리는 인정할 수 없었다.
정보에서 밀릴지언정, 사랑과 존경에서는 밀릴 리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페일리는 언제부턴가 앨버트를 경쟁자로 취급하고 있었다.
'앨버트를 이길 수 있을까?'
페일리는 개인적으로 앨버트와의 싸움에 대한 승률을 7할 정도로 잡았다.
정말로 다행히도, 자신은 여자였다.
남자가 천사로 대하며 숭배하는 것보다, 같은 여자가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어달라는 게 훨씬 에레브에게 덜 부담스러울 터였다.
'검붉은 로브.'
검붉은 로브를 선물한 것은 앨버트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네가 두르고 있는 하얀색 로브를 치워버렸다. 이제는 나의 로브를 두르고 계신다.
'하얀색 로브를 그렇게 좋게 여기지는 않으시는 듯했어.'
그를 위한 검붉은 로브였다.
천사가 싫다면 악마. 굉장히 간단한 논리였지만, 페일리는 자신이 있었다.
마법사와 악마는 밀접한 관계에 위치해 있으니까.
"슬슬 다음으로 가실래요?"
"응? 응."
어느새 페일리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에레브였다.
페일리는 속으로 미소지으며 에레브에게 길을 안내했다.
"여기가 놀거리가 엄청 많아요."
"뭐 있는데?"
"각종 아티팩트를 써볼 수 있는 체험소도 있고, 마나를 사용하는 게임 시설도 있어요."
에레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여워라.
"마나를 사용하는 게임 시설?"
"제가 알기로는, 특정 용량의 마나를 주입해야만 열리는 금고라던가, 그런 신기한 것들이 있어요."
"별 게 다 있구나…."
"모르셨어요?"
에레브가 저 멀리 대답하는 것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이런 걸 즐길 기회는 없었으니까."
"수련하셨다는 게, 폐관수련 같은 건가요?"
"응? 응. 그렇지. 어…. 한, 5년 동안? 밖에 못 나왔거든."
5년 동안 수련만을 반복해왔다니.
그 같은 노력에 페일리는 다시금 반해버릴 뻔했다.
'대단해.'
문득, 귀신의 집에서 벌벌 떨던 에레브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고는 해도, 마나가 다 떨어지면 일반인.
그와 같은 모습을 에레브는 보여주었다.
손가락을 일일이 집어가면서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던 건 단순히 에레브의 반응이 귀여워서였다.
'또 보고 싶다.'
"교수님, 귀신의 집 다시 가보는 건 어떤가요?"
"무리. 난 춤 같은 거에 자신 없다."
"마법 시연해주시면 되잖아요?"
"…너 그냥 내가 고생하는 거 보고 싶을 뿐이지?"
페일리는 해맑게 웃었다.
"네."
"…솔직해서 좋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페일리는 안면에 만개한 미소 말고도, 속으로도 미소지었다.
'에레브 교수님이 내게 집착하시게끔 만들어야 해.'
조금씩 끌어당긴다.
더 이상 내가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 정도로, 생활 전반에 '나'를 깊숙이 침투시킨다.
"이거 신기하네. 5원소 마법을 고리로 만들어서 허공에 띄우는 아티팩트라니."
"머리에 씌워드릴까요?"
"…난 천사가 아니야."
이렇게 같이 놀면서.
"그냥 마나로 찍어누르는 거면 잘 하겠는데, 마나를 일정량만 주입하라니. 이거 푸는 거 어려워."
"귀여워요."
"…아니, 대체 어디에서? 나 그냥 존댓말 쓸래. 느낌 이상해."
쳇, 눈치도 빠르셔라.
"둘러보니까 어떠세요?"
"괜찮네요. 솔직히 나올 때만 해도 조금 귀찮았는데, 즐거웠어요."
"가장 마음에 드시는 게 뭔가요?"
에레브가 손을 로브에서 꺼내보였다.
"문신이랑 반지요."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마이너한 취향을 갖고 있는 에레브였다.
"저도 할래요."
"비쌀 텐데요. 굳이?"
"용돈 다 써도 상관없어요."
사랑의 지름길을 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지름길이 생긴 것이니.
"교수님이랑 같은 걸로, 이거요."
"…반지까지요?"
"네."
"미리 말해두는데 왼손 약지에는 안 낍니다?"
"…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거에요?"
"…미안합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페일리는 내심 조마조마했다.
에레브의 반지도 왼손 약지에 끼우게 만들고, 자신도 왼손 약지에 끼울 생각이었다마는.
'아쉽다.'
같은 문신을 하고, 같은 반지를 샀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성과였기에.
'앨버트.'
나의 숙적.
"와, 벌써 네 시간이 지났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시게요?"
"돌아가야죠. 내일부터는 바빠질 예정이라."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인지 궁금한 페일리였으나, 노바인 만큼 그녀만의 고충이 있겠거니, 싶었다.
"강의 때 봅시다."
"오늘 감사했어요!"
"나도요."
같은 기숙사이지만 다른 층을 쓰기에, 에레브와는 계단에서 헤어졌다.
방에 돌아오고 나서, 페일리는 반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에레브의 손가락이 거기 있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