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63화 (63/247)

(EP.63)063

나 또한 인카르너로 커다란 우산을 만들어서 썼다.

불투명한 파란색 막 위로 보이는 것은 뼈만 남은, 혹은 그을려진 채 떨어지는 박쥐의 사체들.

나는 한동안 땅에 뼈가 울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이게 되네.'

이전까지는 이렇게 처리하지 못했다.

수백 마리의 박쥐가 넓게 펼쳐져 있는 거면, 못해도 수십 미터는 된다는 소리다.

그 수십 미터를 나는 불의 장막으로 둘러 놈들을 태워죽였다.

마나가 남아돌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놈들을 태우기보단, 내 몸에 불을 두른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나는 쟤네를 직접적으로 죽이지 않지만, 쟤네도 감히 내게로 몸을 부닥쳐올 수 없게끔.

마나가 찔끔찔끔 빠져나가긴 해도 굉장히 똑똑한 해법이었다고 나름 생각하고 있었다마는.

'그냥 마나가 많으면 장땡이구나.'

살짝 억울하다. 그냥 여자인 채로 살까? 하는 생각도 든다마는.

그건 일단 현실로 돌아갈 여건을 챙긴 다음에 되돌아보도록 하자.

막말로 현실로 돌아가면 마법이 없으니까 남자였을 적이 그리워지겠지.

떨어진 박쥐의 사체들을 모두 모아 강에다가 던졌다.

그게 그냥 뼈든, 아니면 살점이 붙어 있는 뼈든 피라냐들은 일단 물어뜯고 봤다.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까드득거리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얘네 자체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방금 말한 것처럼 그냥 무시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건 얘네만을 상대할 때를 말하는 거지, 다른 놈들이 추가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의 막만 두르는 게 아니라, 실드까지 두르고 박투술로 싸우는 거다.

바로 이때 때문에 마나 수정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이 필요했다.

바로 이곳을 통과하고 나는 잠을 청했지. 그나마 한 숨 돌릴 수 있는 부분이기에.

하지만 박쥐를 몰살시킨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으로도 수월하게 싸울 수 있고, 굳이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루 정도는 밤을 새도 괜찮을 듯한데.

어차피 로렌스 가서도 그럴 거 아니야?

뼈가 다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강물에다가 히엘로를 써 완전히 얼려버린 다음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천장이 높다. 언젠가 저 위를 올려다보며 회한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에 후회가 들었고 짜증이 났다. 인생이 더러웠다.

더러움을 무릅쓰고 성공하나 싶었는데, 이 세계로 떨어져 다시 더러워졌다.

지금 와서 보면 또 그 더러움을 무릅쓰고 성공하나 싶었더니 여자가 되어버렸다.

이게 뭐야 시발.

인생 참 기구하다.

그래도 이따끔 볼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내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저 위에 뭐가 있길래 물이 떨어지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 자그마한 물방울이 내가 죽지 않는 것에 일조해준 셈이었다.

마물과 싸우는 것 자체는 괜찮았다.

내가 다 이기니까.

하지만, 내가 마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마법이 없으면 나는 보통 사람만도 못한다. 그렇기에 마나의 관리가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마나가 적었다.

그냥 적은 것도 아니고, 억!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적었다.

괜히 마물 사체 갖다 팔면서 에르와 노브한테 마나 수정 샀던 게 아니었다.

마나 수정은 내 목숨줄과도 같았다.

마법사도 결국엔 사람이다. 잠을 자야 하고, 먹어야 한다.

먹는 건 어찌저찌 4서클 이후로는 화락조 잡아가면서 때웠다고는 해도, 문제는 잠이었다.

진짜 개 같은 게, 요관에서는 어디 하나 편하게 잠들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초반에는 요관에서 잠을 잔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쓰러질 것처럼 무리했다 싶으면 곧바로 도망쳐나와서 요관 앞에서 모포 덮고 구름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

일어나면 전날 잡았던 화락조를 먹고, 남은 마나수정을 들고 다시 요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 강을 건넌 것도 6서클을 찍은 다음이었다.

그 전까지는 고블린과 오거, 오우거 군락에 막혀 강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홀에 도달했을 때.

졸려서 죽을 것만 같았을 때, 홀이 보여 겨우겨우 달려갔다.

달려가서 손을 뻗었는데, 홀이 사라져서 그대로 뻗었지.

수많은 피로가 날 덮친 것이었다.

그나마 7서클 테라로 관 같은 거 만들어서 들어가 자면 가능하긴 한데, 처음에 그렇게 시도했다가 관짝 뚜껑 열어젖히는 오우거한테 뜯어먹힐 뻔한 이후로는 아예 자는 것 자체를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콰르릉.

"에이 시팔."

땅이 꺼지는 걸 보고 뒤로 달릴까 싶었지만 그냥 앞으로 크게 뛰었다.

흙이 멎고 가시가 드러나지만 나는 안전하게 착지한 후였다.

아무리 못해도 한 시간에 한 번은 꼭 함정이 나오는 듯하다.

그래서.

박쥐가 지나가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아재, 얘네가 오룡이에요."

수룡과 토룡을 제외한 삼룡.

전룡, 화룡, 풍룡.

"오룡이 좆 같은 게, 결국 기본 5원소를 토대로 만들어진 거라서 토룡 수룡 빼고는 실체가 없거든요."

그냥 말 그대로 용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인 번개, 불, 바람이다.

풍룡은 공기가 굴절되는 걸로 알 수 있다.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거든.

그나마 화룡은 물로 끌 수 있는데 전룡 풍룡은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다.

그냥 존나 많은 마나로 찍어눌러야 한다.

아무리 마나를 잘 보존해와도 여기서 늘 마나가 바닥났지.

그때에 비해서 내 마나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선 화룡.

"노바, 토네이도."

그래도 토룡을 제외한 나머지들도 준 7서클 급이라, 노바는 붙여줘야 한다.

조금 큰 회오리를 만들어 화룡을 가두었다.

화룡은 불을 뿜어내며 물을 증발시키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

마나를 더해가며 회오리의 크기를 점점 줄여가자, 물에 닿은 화룡은 점점 실체를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한 놈 클리어.

"와, 씨발. 이게 마나가 많다는 느낌인가."

이렇게 좋은 걸, 지금까지는 못하고 살았다고?

진짜, 왜 자살하지 않고 이제까지 살아 있냐.

요관 뚫던 때에 마나량 많은 다른 마법사랑 비교라도 됐어봐.

억울해서 쏟은 눈물에 익사했을 거다.

"으."

뿜어져나오는 전격을 회피했다.

전룡 저 새끼는 참 특이한 게, 전기로 이루어진 채찍 같은 걸 휘두르는 느낌이다.

굳이 따지자면, 긴 더듬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기분 나쁘다.

손날로 내리쳐 끊어내려고 해도 실체가 없는 놈이기에 끊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저 놈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냐.

"노바."

마나 자체를 감당할 수 없게 주입하는 것.

아무리 준 7서클이라고 한들, 결국에는 6서클 급이다.

7서클 노바인 내 마나를 억제 없이 갑자기 많이 받아들이면 몸이 감당하지 못한다.

마법사라면 서클이 끊기겠지만 얘네는 마나 자체가 증발해서 죽는다.

전룡이 휘두르는 채찍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마나를 계속 주입했다.

그냥 한꺼번에 확 주입해서 터뜨릴 수도 있지만, 얼마나 넣어야 터지는 건지 좀 감을 알아두고 싶어서.

결국 삼십 초쯤 지났을 때.

전룡의 몸을 감싸고 있던 노란 전격들이 분산되나 싶더니, 곧 형체를 잃었다.

다음, 풍룡.

풍룡은 수룡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크게 위험한 놈은 아니다.

방금 전만 해도 봐라. 지 친구인 전룡이 얻어터지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 했잖아.

얘는 화룡 따까리라고 보면 된다. 불길이 크게 번지는 걸 도와주는 놈인데, 아쉽게도 화룡은 내가 시작하자마자 죽여버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거다.

뭘 하면 좋은 것인지.

"노바."

하지만,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내 등 뒤에는 마물이 한 마리도 없어야 한다. 안전을 위하여.

역시 마나를 계속 주입해 형체를 잃게 만들었다.

그러고선 마나 수정 복용.

"…호오."

일곱 개를 복용하니 그제야 배가 부른다.

마나를 많이 쓰긴 썼는데, 몸으로 느끼지 못한 것을 보아서는 마나량이 진짜 많긴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는 유추가 불가능했지만, 방금 그거로 내 마나량이 얼추 밝혀진 거다.

남자였을 때는 아무리 많아도 네 개 먹으면 배가 불렀다.

마나가 다 떨어져서 푸에고를 써도 가스레인지 수준의 불밖에 나오지 않을 때 먹으면 그러했다.

헌데 지금은 뭔가. 마나가 얼마 빠져나간 것 같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곱 개를 복용하니 겨우 배가 불렀다.

다른 건 몰라도 마나량만으로는 내가 레블에서 탑 텐 안에 들 거다. 진짜다.

기절하고 일주일씩이나 잔 이유가 있었군.

그럼 이제, 오룡 중에서 네 마리를 죽였다.

나머지 한 마리는 토룡인데, 홀 직전에 있다.

사룡을 지나고 나서 바로 나오는 건 아니고,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마물들이 나온다.

말 그대로 모든이다. 피라냐도 예외는 아니다.

물웅덩이에서 피라냐가 사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나도 그때 상식개변이라는 게 뭔지 깨닫게 되었지.

나는 놈들은 떨어뜨려서 꿰뚫고, 걸어다니는 애들은 머리를 부수고, 수영하는 애들은 물 째로 얼리고, 땅 속을 오가는 애들은 구멍 속을 화마로 채워 태워죽였다. 수 시간 동안 그걸 반복한 결과, 토룡을 제외한 나머지 마물들은 거의 씨가 마르게 되었다.

내가 못 본 놈들도 있겠지만, 애초에 나오지 않은 놈들이니 제외하고.

그렇게 내 앞에 등장하게 된 것은.

- 크르흐….

흙먼지가 우스스 떨어지는 거대한 흙덩어리로 이루어진 용.

토룡.

5원소 중 가장 강한 것을 뽑으라면, 단연 테라다.

불도 막고, 전기도 막는다. 그나마 물와 바람이 타격을 입힐 수 있긴 한데, 테라의 힘을 훨씬 웃도는 힘이 아닌 이상 힘들다.

차라리 같은 테라로 주먹다짐을 시키는 편이 이롭다.

그래서, 내가 이 토룡을 어떻게 잡았냐 하면은.

"흡!"

토룡의 위로 빠르게 뛰어오른 다음, 실드를 두르고 리젤을 써 몸을 '무겁게' 만들어 내리쳐 토룡의 몸체를 박살냈다.

실체가 있는 놈이라 위험하지만, 도리어 실체가 있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몸이 완전히 박살나 더는 용이라고 부를 수 없는, 흙덩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쿵, 하고 흙먼지가 인다.

보통 이쯤이면 마나도 없고 졸리기까지 해서 다 죽어가야 정상인데, 어째 지금은 쌩쌩하군.

"아재, 끝이에요. 생각보다 쉽네. 왜 안 까다롭지."

진짜 쉬웠다. 허세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편하게 돌파했다. 하루도 안 걸렸다.

꼼수를 쓴 것도 아니고, 위협을 최대한 제거해나가면서, 마물을 전멸시키면서 전진했는데도 마나는 쌩쌩했다.

마나 수정을 한 열 개는 먹었을까. 배불러서 위장으로 들어간 것도 있으니 여덟 개에서 아홉 개 정도로 볼 수 있겠군.

기억하고 있는 마물들 중에서 안 나온 놈들도 있다.

요관은 순번이 바뀐다 했으니 아마도 다른 요관에 있는 놈들을 본 게 아닐까.

"잘했구나."

델라즈가 은신을 풀고 땅에 착지했다.

나와 델라즈는 그 이상으로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고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결국 원룸 정도 되는 크기의 방이 나오고, 방에 들어가니 하나의 돌받침대가 있다.

"이 위에 있었죠? 홀이."

"그래."

아직도 기억이 난다.

손을 뻗었더니 저거 위에 있던 게 사라졌다.

멘탈이 무너져서 울면서 정신을 잃었다.

"너를 발견했을 때, 한 가지 의문인 점이 있었다."

"응?"

"네 주위에 마물들이 꽤 있었어. 근데 널 공격하지 않고 그저 주위에 진을 치고 바라보기만 했다."

마물이 나를 공격 안 했다고?

쓰러져 있는 나를?

그러고보니, 지금은 내가 마나가 남아돌아 모든 마물을 죽이면서 왔다지만, 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마물이 남아 있었을 터.

내가 쓰러지자마자 델라즈가 날 발견한 게 아닌 이상에야 마물들이 내게 접근해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내버려뒀다고?

"왜요?"

"나야 모르지. 그래서 그냥 너 둘러메고 도망치기만 했다."

분명.

그와 비슷한 게 한 번 더 있었다.

학생들을 데리고 리틀 마스카르를 잡으러 갔을 때.

학생들에게 덤비지 않고, 내 앞으로 놈들이 모였었지.

대체 왜?

짐작가는 게 없다.

"그냥 그랬다고. 알아만 두라는 거다."

"뭔가 찜찜한데…."

"나도 그래. 근데 뭔지 모르잖냐."

그건 그렇다.

당장 떠오르지도 않는 걸로 끙끙 앓을 바에야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게 나았다.

"그럼, 끝인가?"

"끝이지. 나가자."

"로렌스 가서 안 죽겠죠?"

"이틀 정도로만 잡으면 죽을 일은 없겠구나. 너가 애들 죽이는 게 더 문제일 것 같다."

"에이."

그럴 리가.

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델라즈와 함께 날아서 요관 밖으로 빠져나왔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공중을 날으니 두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다.

요관을 나와서.

"아재. 여기 연구소 세울 수 있을까요?"

"웬 연구소?"

"혹시나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연구소 하나 더 세우는 거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몰라?

"왜요?"

"마법의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게, 마법을 마음껏 쓰는 거랑 다를 게 없다. 다만 그런 마법들을 받쳐주는 아티팩트가 하나 있어야 해. 연구동에 그게 있다."

"그거 가져오면 돼요?"

"문제는 세계에 세 개밖에 없고, 아케즈에는 하나밖에 없다. 연구동에 있지."

더욱 알쏭달쏭해진다.

"그럼 그냥 그거 가져오면 되잖아요."

"애매하다. 통상적인 '마법연구동' 에는 그 아티팩트가 포함되는 말이야."

"…좀 애매하긴 하네."

그걸 가져오면 '네놈들 왜 철거 안 했냐?' 하고 베르노바가 인정하지 않아서 서약 찢어버렸다간 감당이 안 되기도 하고.

"그리고, 벌써부터 실패를 생각하면 어떡하냐?"

"그냥, 혹시 몰라 물은 건데."

"그 혹시 몰라도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무조건 성공해야만 한다."

그것도 그렇지.

백에서 딸기 생크림 빵을 하나 꺼내들어 씹으면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음.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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