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58화 (58/247)

(EP.58)058

"아폰 대신 직접 보고하도록 하지."

델라즈가 날 불러서 한 말은 그게 첫 번째였다.

"뭘요?"

"로렌스가 파견을 요청했다는 것 말이다. 아직 보고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는 현재 통령의 거처인 성대(聖臺)로 향하고 있다.

어째서인지 와즈로 날아드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델라즈가 날 막아세웠다.

"나는 입 닥치고 있으마. 너가 알아서 다 해라."

"알겠어요."

그 편이 내게도 편하다.

"총은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멈추긴 했다마는, 아무래도 제작법 자체가 퍼지는 건 막지 못한 듯하다."

"괜찮아요 그건."

인카르너로 만들어서 보여준 건 제대로 된 총이 아니다. '작은 마나의 집합체를 빠르게 발사한다' 정도의 얕은 지식만 섞어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건 더블액션 리볼버였다. 그걸 보고 만들더라도 동그란 가운데에 무언가를 넣는다,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 정도만 파악했을 터.

공이치기 그딴 거 모를 거다.

알아도 만들 수 없겠지. 지금 당장은 괜찮다.

설령 만들더라도 단속시키면 된다.

베르노바한테 들키지 않는 게 상책이긴 한데, 어쩔 수 없이 퍼지게 되면 통령 령으로 단속하면 된다.

우리 둘은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델라즈가 입을 다문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갖가지 상념에 푹 젖어 있다.

계획은 수립했어도 여전히 불안하다.

분위기를 타서 전쟁이니 어쩌니 운운하긴 했는데, 내 생각대로 돌아갈지가 의문이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서 느낀 건데, 구멍이 조금 많다.

내가 솟아날 구멍도 있고, 내가 땅으로 꺼져버릴 구멍도 많다.

무엇보다, 나는 로렌스로 가서 죽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게 가장 관건이다.

죽지 않을 자신은 물론 있다. 만약 날 죽이려 들면 회중시계로 녹화해서 그대로 도망나오면 된다.

대인전투에서는 질 자신이 없으니 괜찮은데.

이 모든 계획의 목표이자 요체는 결국 정권의 교체다.

베르노바를 실각시키고 아타나시아를 옹립시켜야 한다.

그를 위한 초석이 로렌스를 떨쳐내는 것. 그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아니야.'

생각하지 말자.

로렌스에서 죽지만 않으면 내가 손해를 보는 부분은 거의 없다.

아케즈만 건재하면 된다. 아케즈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죽을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분명히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줄 수 없다. 어차피 위선이니까.

나는 다만 내가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단지 그것만을 위해, 혹은 아케즈와 원로원을 위해 사람과 사람을 싸우게 만든다.

내가 의도한 대로라면 본격적인 전쟁에는 들어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사상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120억과 내가 모르는 사람 수십, 수백 명.

저울에 올리면 어느 쪽이 더 무겁지?

"다 왔다."

델라즈와 내가 멈춘 곳은, 한 큰 건물 앞.

크기는 현실의 4층 빌라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조금 더 으리으리한 곳에서 오만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네.

"이 근처에 원로원 연구동도 있다."

델라즈는 그리 설명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겉은 4층 빌라인데, 속으로 들어가니 또 조금 화려하다.

다만 4층 빌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1층에 안내원이 있다는 점일까.

"무슨 볼일이세요?"

"통령 각하와 면담을 부탁하네."

델라즈가 신분증을 내밀었다.

"원로원, 베르노바…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안내원이 잠시 어딘가로 향한 후.

"좀 떨리는데."

"이제 와서?"

"나 높은 사람은 처음 만나봐요."

현실에서도 그렇고, 여기에서도.

델라즈는 내 말이 웃긴지 코웃음친다.

"무서워서 그런 줄 알았다."

"아예 틀린 건 아니긴 한데…. 두려움보다는 긴장이 더 크네요."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안내원이 돌아와 윗층으로 안내하고, 우리는 접견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어떻게 말하면 될지 머리로 생각을 정리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곧 다가올 순간이 계획 전체의 초석이 되는 거니까.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끼이익, 하며 문이 열렸고.

'…!'

한 남자와 눈이 맞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뭔….'

흘러나오는 마나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 불온했다. 7서클인 내가 8서클의 마나의 흐름을 알 정도면, 대체 얼마나 요동치고 있는 거야?

'감정 기복?'

척 봐도 남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겉모습도 정상은 아니지만, 마나를 읽어서 알아낸 남자의 내면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한 나라의 통수권자라고?'

이러니까 나라가 썩어 문들어지지.

"통령 각하."

"…델라즈 경. 오랜만일세."

그렇게 나이가 들어보이진 않았다.

기껏해야 40대 후반일까. 의외로 젊은 것 같다.

하지만, 나이와는 상관없이 남자의 행색과 행동거지가 조금 이상했다.

한 나라의 주권자라고 표현하기 미안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옷은 일단 위아래 검은색 통일이다.

여기까진 좋은데, 옷의 마감이 이상하다. 군데군데 뜯어져 있다.

행동거지는 딱 하나만 짚어 설명하자면, 자리에 앉아서는 다리를 꼬고 흔들고 있다.

'시발.'

이게 뭐야.

통령이 이래도 돼?

"전조없이 갑작스레 날 찾아온 연유가 뭔가?"

"한 가지 간청드릴 것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델라즈가 날 눈짓했다.

베르노바 또한 델라즈의 눈짓을 타고 나를 바라본다.

"이 아이가 에레브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경의 제자라고 불러주길 원하나?"

제자가 아닌 건 이미 다 알고 있었군.

델라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이 그렇게 부탁하니 내 그러지. 그래서, 무슨 일인가?"

나는 손을 슬쩍 들어 발언을 청했다.

"그래, 말해보게."

"국방을 여미는 것을 허락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방을 여며?"

베르노바가 그리 되물었다.

어째서인지 그가 말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뇌리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언령(言霊)이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다.

"통령 각하께서는 근국 로렌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우방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로렌스 덕분에 편히 살고 있었다."

속으로 열불이 치밀었다.

우리라니! 베르노바. 너가 말하는 '우리'에는 너만이 포함되어 있을 거다.

"로렌스가 불온한 움직임을 취했던 것, 알고 계십니까?"

베르노바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모를 리가 없다.

"알고 있네."

"로렌스가 취하는 불온한 행동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요청드릴 바가 있습니다."

"말해보게."

"로렌스가 앞으로도 그런 행보를 보일 때, 강경대응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사실 허락하고 말 것도 아니다.

당연히 해야 되는 건데.

"강경대응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뜻하지?"

"국방의 의무를 지겠습니다."

"국방의 의무라…."

베르노바가 말끝을 흐렸다.

국방의 의무라는 건, 굉장히 애매모호하게 표현한 거다.

베르노바 입장에서는 내국이 요동치지 않아야 하니까 국가를 방비해야 하는 게 맞고, 우리 입장에서는 아케즈를 침범해올 로렌스를 몰아내는 것이니 국방이 맞다.

"그게 끝인가?"

베르노바가 손가락을 톡톡 쳤다.

"그대들이 로렌스와 내 사이를 알고 있듯이, 나 또한 그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네. 다시 묻겠네. 그게 끝인가?"

"로렌스를 떨쳐내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베르노바가 입꼬리를 슬쩍 올린다.

"로렌스는 나의 우방이다."

"원로원의 모든 권리를 넘기겠습니다."

어귀에 맞지 않는 대화.

하지만 베르노바도 나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했다.

'로렌스를 버려서 내가 얻을 이득을 말해보아라.'

'굳이 로렌스가 아니더라도 각하께서 편하게, 아무런 방해 없이 생활하실 수 있게끔 각하의 독재를 인정해드리겠습니다.'

"각하께서 잘 지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말을 이리 꼬아서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접견실 내부에 회중시계가 있을 테니까.

베르노바든 나든, 말이 말인 만큼 밖에 적나라하게 풀어놓을 수는 없는 말이니까.

"내가 거부하면 어찌할 생각인가?"

나는 그 말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거부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계획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 베르노바가 훼방을 놓을 따름이다.

하지만 베르노바의 저 말은 그냥 떠보기다.

내 예상이 맞다면, 베르노바는 하나의 조건을 내밀면서 수락할 것이다.

십수 초의 침묵이 공기를 짓눌렀다.

내 침묵에서 무엇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베르노바는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조건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원로원의 모든 마법 연구동을 철거하게나."

역시.

베르노바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원로원이다.

원로원이 마법을 연구하여 베르노바에 필적하는 힘을 갖게 된다면, 베르노바가 이 이상 독재하며 이득을 취할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양날의 검.

그것이 베르노바가 생각하는 원로원이었다.

과하게 키우면 권위를 위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애버리면 나라를 대신 관리해주고 국방을 지켜줄 사람들이 사라진다.

악랄한 새끼.

결국에는 저 말은 내 안녕을 위해 너희의 발전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저렇게 한결같은 개새끼가 또 있을까.

저 개새끼가 능동적인 개새끼가 아님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나는 마법 연구동을 사수해야 한다.

내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저 연구동에 들어가서 마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 연구동이 날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베르노바 모가지는 따야 해.'

베르노바가 원로원을 적대시하고 있는 게 명확해진 이상, 베르노바가 주권을 잡고 있을 때는 어차피 사용하지 못한다.

베르노바를 실각시킨 후에 다시 짓고 사용하는 게 낫다.

그렇기에 나는 무덤덤했지만, 델라즈는 아닌 듯했다. 표정이 굳어 있다.

"알겠습니다."

"아르체시투스."

베르노바가 서약서를 하나 소환했다.

"서약으로 진행하지.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원로원의 모든 권리를 통수권자 베르노바에게 일임. 또한 원로원의 마법 연구동을 철거.

근국 로렌스가 아케즈에 불온한 행동을 취할 경우 국방 차원에서 강경대응.

이와 같은 내용이 서약서에 적혔다.

"베르노바."

"노바, 에레브."

서약서는 샛노랗게 타들어갔다.

샛노랗게.

아니.

이런 씨발.

"이번엔 내가 하문하지. 그대들은 아케즈에 헌신적인가?"

"그렇습니다."

델라즈가 말문이 막힌 나 대신 대답했다.

"델라즈 경. 자네의 입장이 원로원을 대변함으로 기억하고 있겠네. 용건은, 이것 말고 더 있나?"

"로렌스에서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제 제자인 에레브를 보내려고 합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마음대로 하게나."

그 말을 끝으로 베르노바는 사라졌다. 말 그대로 눈 앞에서 그냥 사라졌다.

보나마나 텔레포트겠지.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델라즈와 건물을 나왔다.

성대를 나와서 나는 말했다.

"노란색, 베르노바 마나색이에요?"

"아니다."

"저거 8서클 아니죠?"

델라즈는 침묵했다.

다만 그 침묵이, 긍정을 뜻하는 침묵임을 난 알았다.

노바의 명예는 푸른색, 베르노바의 명예는 자색이다.

샛노란색은 본 적 없다. 저 색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9서클.

통령은 서클 아홉 개를 갖고 있다.

마나색이 노란색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새로운 명예까지 만들었다는 소리다.

9서클 명예가 표방하는 색이 샛노란색이다.

9서클의 주인을 찍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명예를 만들 수는 있으니까.

서약서가 불타면 이미 계약은 맺어진 거다. 바꿀 수 없다.

"어떻게 할래."

"…일단 그대로 가요."

이제 와서 길을 바꿀 수는 없다.

"마법 연구동을 철거하라니…."

"필요에 의한 희생이에요."

"원로원 놈들 설득을 어떻게 해야 되나…."

"로렌스 때려잡는다는 말만 해도 해결되지 않을까요."

"…난 모르겠다."

델라즈는 될 대로 되라는 포지션을 잡아버렸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진리를 깨우친 듯하다.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막 지르는 것 같다. 너무 빨라."

"로렌스만 밀어버리면 모든 게 다 해결됩니다."

"마법 연구동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잖냐."

"이판사판이에요. 총을 준비하세요."

달리 말해, 베르노바를 죽일 준비를 해라.

델라즈가 경악했다.

"너, 솔직히 말해라.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판 깔았지?"

"아니 그럼 원로원 권리 넘겨주고 호구잡힐 생각이었어요?"

"9서클을 무슨 수로 잡냐. 완전히 틀어막혔어. 마법 연구도 못 한다."

"요관 뚫는 거로 수련합시다."

델라즈가 눈가를 찌푸렸다.

"난 아케즈 밖으로 못 나간다."

"그거, 계속 감시당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타나시아 설득하고, 뚫으러 갑시다."

"실패하면 너부터 죽이마."

"뭐 어떻게 죽이게요?"

"종마랑 너를 한 곳에 가둬버릴 테다."

등골이 오싹했다.

"미친 사람…."

"네가 미치게 했잖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말았지만, 델라즈는 진지했다.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계획을 수립한 것만으로 그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열국이 우리를 지지해주고,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로렌스를 잡는 것까진 어떻게 성공한다고 치더라도 마법 연구동이 날아가서야 죄다 무쓸모야. 베르노바를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애초에 원로원의 가장 말단인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부터가 아니야."

"베르노바를 죽인다, 에 원로원 분들 동의하게만 하세요. 그 방법이랑 마법 연구에 대한 것은 대충 생각나니까."

델라즈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아직은 가설 단계에요. 확실해지면 설명할게요."

어쩌면 누군가 한 명에게 가혹해지는 방법이겠다만,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나를 위한.

"각자 준비하고, 요관 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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