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55화 (55/247)

(EP.55)055

***

벌떡 일어났다.

느낌 상으로는 등과 땅의 사이가 틀어져 자석의 같은 극이 밀어내듯이 내가 일어나버린 듯했다.

나는 한동안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서 눈을 껌뻑였다.

기지개를 키며 몸을 풀자 그제야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차례차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운동회는 끝났고, 모험가 길드의 쌍년한테는 복수했으며, 오늘은 아폰과 격 대조가 있다.

그 외로는 짐승 새끼가 찾아오거나, 개교했으니 애들 수업해주고 길드 의뢰 같이 해결해주거나, 그런 일이 남아 있다.

운동회 끝난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이벤트 하나는 끝났군.

"하아암."

총장과의 합의 하에, 개교는 오늘부터이지만 나의 교사로서의 활동은 격 대조가 끝난 이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지금 시각은 오전 10시. 아카데미의 등교시간은 오전 6시인가 7시인가 그랬지. 한참 늦었군.

델라즈는 12시까지만 오라고 했으니 문제가 없다만.

아폰. 노바의 첫 번째 제자.

그와의 격 대조라.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서로 마법을 쓰고 캔슬로 취소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려나.

그게 가장 확인하기 쉬울 것 같은데.

"으."

공기가 텁텁해 창문을 열었더니 서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바람을 맞으며 옷가지를 정돈하고, 로브를 감싸고 식당으로 날았다.

식당으로 날아가는 도중, 문제가 없나 확인하기 위해 공원에 들렀다.

게시판에는 여전히 신문부에서 발주한 인쇄물이 떡하니 붙어 있다.

대충 나에 대한 오보를 정정한다는 내용이다.

굳이 따지면 오보가 아니라 좆같은 소문 때문이다.

'문제없네.'

게시판에다만 두른 게 아니라 레블 전체로 공문 돌리듯이 돌린다고 했다.

명색이 신문부니까 신문 정도의 역할은 했을 터.

나에 대한 오해가 점점 소문으로써의 기능을 잃어버리겠지.

쌍년의 말에 따르면 모험가 길드의 A, B급 모험자들한테 퍼뜨렸다고 했는데.

살짝 불안한 게 그들 중 일부는 레블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신문부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레블까지만.

다른 도시, 가장 가까운 지방도시인 프로바이오만 하더라도 락토를 건너야 하니 소문이 정정되긴 힘들다.

만일, 레블의 모험가가 소문을 들은 다음에 프로바이오까지 가서 퍼뜨린다면?

끔찍하군. 하지만 그 정도면 괜찮다.

내가 프로바이오에 갈 일이 뭐가 있겠는가. 레블에서만 이상한 눈초리 안 받으면 되는 문제다.

프로바이오에서 누군가가 레블로 찾아와 소문을 퍼뜨리는 건 불가능하겠지.

만세.

식당은 아직 식당으로써의 제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배급받아 조리되는 음식보다, 어제 뷔페로 차려진 음식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조리사가 보이지 않는다. 나야 사람이랑 엮이지 않고 먹어서 좋으니까 뭐.

다만 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드문드문 보인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인 내가 나오질 않으니 쟤네도 자체로 휴일을 가진 듯한데.

굳이 가서 아는 체하진 않았다.

사람이 적어서인지 사람 목소리보다 식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더 컸다.

구석에 박혀서 조용히 빵을 집어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건너편에 앉았다.

"교수님."

페일리가 진중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무서워.

"왜 그래요?"

"왜 수업 안 하시나요?"

"잠깐 제가 일이 있어서.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에요."

페일리는 그런 내 말이 못마땅한 듯했다.

"개교한다고 해서 좋았는데…."

"내 수업이 그렇게 좋아요?"

잘 모르겠는데.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페일리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서클 올리고 싶으니까요."

페일리는 그렇게 말하며 가져온 빵을 깨작인다.

하긴.

내가 따로 강습해주는 여덟 명의 아이들은 의욕이 넘치는 아이들이었지.

"아직 2서클이죠?"

"네."

2서클에서 3서클 올라가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다.

1서클부터 4서클 사이는 쉽고, 4서클부터 7서클 사이는 어렵다.

다만 이 아이들은 재능이 없어 쉽사리 올라가고 있지 못할 뿐이다.

나이가 스무 살 정도 되는데도 2서클밖에 안 되는 거면 진짜 심각한 거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페일리나 앨버트도 결코 빠르다고는 못 하니까.

에르와 노브가 조금 빨랐던 걸 감안하면 이 아이들은 조금 느리다.

보니까 3서클과 4서클은 전공과목이 세분화가 되어 있는 것 같던데, 이 아이들은 그런 것도 없지.

마학(魔學). 마법의 근원이 되는 마(魔)에 대한 기본적인 배움.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기본이지만, 도리어 기본밖에 되지 않기에 이 아이들은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리라.

모든 학생들이 마학을 통하긴 하니까, 올라갈 만한 애들은 빨리빨리 올라가는 것이겠고.

"술식지는, 푸는 거 있어요?"

"이제 실드는 편하게 풀 수 있는 것 같아요."

"잘했어요. 다음에 실습 갈 때는 본인 실드 두르고 해봐요."

언제까지나 내가 실드를 둘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1서클들은 아직 무리이겠지만, 2서클들은 가능할 거다.

페일리가 또 머리를 내밀었다.

식탁 위에서 그러니까 어째 도게자하는 것처럼 보여서 웃기지만, 칭찬의 의미로 쓰다듬어주었다.

"앨버트한테는 이런 거 안 해주시죠?"

"아예 안 해주는 건 아닌데요."

당장 어제만 하더라도 마타샤 가게에서 밥 먹을 때 쓰다듬어줬고.

"앨버트랑 대체 무슨 경쟁을 하는 거에요? 이해가 안 되는데."

이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판돈으로 내걸고 있는 걸까.

아니, 내기가 아니라 경쟁이니까 조금 다르려나?

"누가 더 빨리 서클을 올리나? 정도요?"

"왜 의문형이에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너가 모르면 누가 아냐, 같은 핀잔이 내 입에서 나오진 않았다.

그렇게 모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

나는 나대로 다 먹은 후 최대한 빨리 돌아오라고 배웅하는 페일리를 뒤로한 후, 델라즈의 저택을 찾아갔다.

'응?'

델라즈의 저택 앞에 웬 마차가 들어서 있다.

합리적 추론으로 아폰이 도착한 건가? 말투에 조심… 아니, 제자 아닌 거 다 알잖아.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해?

괜히 긁어부스럼 일으키기 싫으니까 일단 스승님이라고 부르자.

"스승님?"

계단을 올라 델라즈의 방문을 여니, 델라즈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한 초로의 노신사가 소파에 앉아 있다.

들어가지 않고 얌전히 문을 닫았다.

눈빛이 너무 사나워.

델라즈가 중개자로서 있어야지만 내가 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문에 기대어 델라즈를 기다렸다.

머릿속으로 풀파워 메테오를 마물 수만 마리에 날려버리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 왔냐?"

델라즈가 어느새 나타나 그렇게 물었다.

델라즈 근처에 커피잔이 두둥실 떠올라 있다.

"3분 전쯤?"

"12시까지 오라니까. 지금 11시밖에 안 됐어."

"할 것도 없어서요. 혹시 그럼 안 됐어요?"

"그런 건 아니다만."

몸을 슬쩍 비켜주니 델라즈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따라서 들어가기는 좀 뭣해서 얌전히 밖에서 대기하고자 멍하니 있었는데.

"들어와라."

하고 말하는 델라즈에 의해 방으로 들어가 조심히 문을 닫고, 문 앞에 섰다.

노신사와 눈이 맞은 건 그때였다.

"앉아라."

나한테 말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물음마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노신사는 나를 강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소파에 차분히 앉았다.

"드시죠."

델라즈가 그에게 커피잔을 건네고, 노신사가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음미를 끝낸 그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페토라르 산(産) 커피만 마시나?"

"커피의 본고장 아닙니까. 그 나라보다 원두 더 잘 볶는 나라는 없습니다."

"가끔씩은 다른 것도 마시고 그래야지."

델라즈가 극진히 예를 차리는 걸 보니 이건 이거대로 또 새롭다.

학생들이 날 보며 하는 생각이 이러했을까.

"파견 근무는 잘 마무리 되셨습니까?"

"로렌스 놈들은 죄 병신이다."

나도 모르게 침을 뿜을 뻔했다.

"고작 토룡 하나를 못 잡아서 나를 부를 줄이야."

토룡이란, 진짜로 용이 아니라 흙으로 이루어진 마물인데 용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마물이다.

그냥 용의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인 마물.

용의 형상만 하는 건 아니고, 다른 형상을 할 때도 있지만 주로 용의 모습만 갖추고 있기에 용이라고 불리운다.

모든 5원소에 용을 접목시킬 수 있다.

토룡. 화룡. 풍룡. 전룡. 수룡. 그중 토룡은 조금 까다로운 존재이긴 하다.

동급 이상의 테라로 부수어버리지 않는 이상 잡을 도리가 없으니.

요관에도 작은 거 한 놈 있긴 해서 도망만 다녔지.

근데, 그게 나라 안에 있다고?

"혹시 로렌스도 불법 양식이 자행되고 있습니까?"

"아케즈에서는 플룻래빗으로 마물들을 양식했다지?"

"그렇습니다."

노신사가 턱을 쓰다듬는다.

"오룡(五龍)은 보통 마물이 아니야. 생물을 공격한다는 본능을 가진 자연, 달리 말해 천재지변이다. 그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토룡이 나라 안에…."

"로렌스가 우리 원로원을 흉내내고 있더군."

노신사가 코웃음을 쳤다.

델라즈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아케즈에게 영향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자국적으로 국방 또한 겸해보겠다는 이야기이겠지. 여전히 베르노바는 아무 말 없더냐?"

"없었습니다."

"쯧, 모자란 놈."

원로원의 모두가 베르노바가 병신인 걸 아는 듯하다.

마음 같아서는 '다들 모여서 탄핵하죠' 하고 몰아낸 다음 델라즈를 옹립하고 싶다마는, 세계 최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만큼 무너뜨리기에는 힘들겠지.

그나마 베르노바가 폭정으로 독재정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욕심이 없는 남자라서 다행인 걸까.

"그럼, 로렌스 내부에서 마물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로렌스 놈들은 기껏해야 7서클밖에 없으니 말이다. 8서클을 따라잡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이건 처음 알았다.

로렌스에는 8서클이 없구나.

점점 더 베르노바가 병신이 되어간다.

"그건 조금 위험하군요…."

델라즈가 탄식했다. 이에는 동의한다.

로렌스가 아케즈를 일방적으로 잡아먹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럴 만한 군력을 갖추지 못해서이다.

우리 아케즈가 로렌스를 군사력으로 압도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무언가를 고민하던 델라즈가 입을 열었다.

"대책은 있습니다."

"대책?"

"아케즈에서도 무기를 개발 중입니다."

"무기라 한들 한낱 장병기(長兵器) 아니더냐? 그것으로는 마법을 이길 수 없다."

델라즈가 나를 쳐다본다.

"마법사도 심장이 꿰뚫린다면 살아남을 수 없지요. 아무리 서클이 높든 말입니다."

"서클의 기원이 심장이니 그럴 수밖에."

"아주 빠르게, 심장을 뚫어버릴 수 있는 무기입니다."

총 말하는 거구나.

노신사는 그래도 흥미가 가지 않는 듯했다.

"어차피 실드 두르면 어떤 물리적인 공격이든 막아낼 수 있다."

"무기에 마나를 실을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노신사가 침묵했다.

"마나를 실어?"

"에레브, 만들어봐라."

인카르너.

총을 만든 다음 델라즈에게 건넸다.

"이게 무기라고?"

"마나의 집합체를 빠른 속도로 쏘아내는 무기입니다."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노신사는 그것을 받아들더니 이리저리 살펴본다.

"비유하건데, 활과 화살이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맞습니다."

"그럼 결국 화살에 마나를 두른다는 소리인데, 이건…."

한동안 그는 말없이 총의 외관을 이리저리 흝어보았다.

사용 방법을 알려달라길래 마나탄을 만들어서 장전하고, 쏘아내는 것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탄알은 날아가는 도중 소멸시켰다.

"대(對) 마법사 용 무기로는 부적합하다. 마나가 지나치게 낭비돼. 효율만을 따지자면 마법이 나을 수준이다."

거기까진 나도 파악했다.

"하지만, 그래. 싸움이 아니라 암살이라면 빛을 발할지도 모르겠군."

"전쟁…에서라면 어떻습니까?"

델라즈가 조심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신사가 델라즈를 지긋이 노려본다.

"…불가능하네."

델라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침묵이 방안을 휩싸았다.

"인카르너로 만들면 이 정도인데, 물리적인 무기로 제조한다면 얼마나 효율이 떨어질지 안 봐도 뻔하군."

"마물은 편하게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안 돼. 살상 자체에 대한 실효성을 따지자면 괜찮지만, 악용될 소지가 너무 강해. 만일 제조 중에 있다면 당장 중지시키고 폐기해라."

"아타나시아가 허락한 일입니다."

노신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아이는 평민의 입장에서 판단할 수 없는 아이다."

"…."

"또한, 마법을 쓰지 못하는 무인들의 입장에서도 판단하지 못하겠지. 생각해보아라. 재료만 있다면 활과 화살과는 다르게 편하게, 빠르게 쏘아낼 수 있는 무기다.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기인지, 대부분의 사람은 판단하지 못할 거다."

대표적으로 레라지아가 그랬다.

하지 말라고 해도 행인들을 조준했었지.

"잘못 보급되었다가는, 레블이 지옥도가 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진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야 현실에서 살다보니 총이라는 게 이름값이 얼마나 무거운 무기인지 알고 있다지만, 총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게 웬 장난감인가 싶을 것이다.

당기기만 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

미처 그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 무기를 담당하고 있는 대장장이에게 전해라. 중지하라고. 아타나시아가 반발하면 내게 찾아오라 전해라. 그래도 굳이 만들어야겠다면 원로원 사이에서만 인카르너로 원리를 공유하도록 하지."

노신사는 그 이상으로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화재를 돌렸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격을 대조한다. 아이야, 네가 노바로부터 이어받았다면 필히 나와 동급일 터. 나 또한 노바로부터 직접 이어받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노바로부터 이어받은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다른 노바들은 이 노신사를 통해서 명예를 수여받은 것인 듯하다.

내가 만일 노바에게 직접 수여받은 게 맞다면, 나는 이 노신사를 제외한 모든 노바보다 위라는 말이다.

"노바, 푸에고."

노신사의 손바닥 위에 푸른 불꽃이 넘실거린다.

노바의 명예를 사용해 읊은 마법. 푸에고.

"꺼뜨려보아라."

내가 노바의 명예를 사용해서 캔슬을 읊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서 내 행보가 달라진다.

내가 정말로 노바로부터 직접 이어받은 게 맞다면, 원로원에서 날 포섭해갈 가능성이 높다.

불에 집중하며, 읊었다.

"노바, 캔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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