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4)054
경기가 끝나고, 나는 얌전히 돌아와 앉았다.
돌아오는 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이 한 몸으로 받아내야 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떳떳했지만 어째 수십 수백의 시선은 불편했다. 자연스레 위축되었다.
너무 심각하게 조용하다 싶었는지 총장이 이벤트를 즉석에서 하나 더 만들어내었다.
바로 마법 시연. 방금 전에는 7서클 노바의 전투를 관람했다면, 마법 시연은 8서클 베르노바 델라즈의 보여주기식 마법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잘은 모르겠다만, 델라즈는 공원 한가운데 서서 유성(流星)과도 비슷한 것을 만들어 하늘에 띄우고, 마치 지금이 새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다.
신기했다. 해는 쨍하게 떠 있건만 햇빛을 무시하듯이 공기는 어두웠다. 해가 달이 된 이 기분.
그 아름다운 광경에 많은 사람들이 홀려 그저 하늘만을 바라본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저 광경이 한 눈에 담기에 과분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우리, 관중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회전하는 성체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어두워 성체는 유독 더 빛나보였다.
그 많던 유성들을 이번엔 안개가 감쌌다.
비록 성체의 모습은 직접 보이지 않더라도, 안개 너머로 뿜어져나오는 빛으로 성체들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어슴푸레 빛나던 성체는 안개 사이로 드문드문 빛났다.
바람이 불고, 안개가 걷힌다. 유성들이 떨어지다 말고 모여 하나의 고리를 이룬다.
헤일로처럼 모인 광배는 천천히 돌더니 이내 곧 퍼져 짧게 명멸하다 소멸되었다.
짧지만 굵은 시연이었다. 낮을 새벽으로 바꾸고, 별을 만들어내는 마법이라니. 여기 있는 학생들, 교수는 물론 나도 저런 마법은 몰랐다.
어떤 마법인지, 어떤 원리로 저렇게 되는지 하나도 가늠이 안 된다.
어쩌면 9서클 마법이려나. 아타나시아가 아포리스모 같은 마법을 쓰는 걸 보면 델라즈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 에레브 교수님, 잠시만 나와주세요!
그때 총장이 날 불렀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단상으로 걸어갔다.
델라즈랑 싸우라거나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총장이 날 멈춰세운 건 델라즈의 앞이었다.
총장이 내게 부탁한 바는 간단했다.
마법 시연을 끝으로 경기의 행렬이 장식되니, 마지막에 좀 멋있게 끝내달라는 말이었다.
"할 수 있겠냐?"
"뭐, 생각나는 게 있긴 한데요."
인카르너로 총을 만들어 폭죽 쏘듯이 하늘로 쏘았다.
델라즈가 아직 채 다 소멸시키지 않아 작게 깜빡이던 유성들과 불꽃이 만나 하늘에서 만개한다.
비록 어둡고 깜깜한 하늘이지만 어슴푸레한 태양과 함께 공중을 빛낸다.
델라즈도 나도, 빛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저건 뭐냐."
"5원소 죄다 집어넣은 마나탄 폭발시킨 거에요."
"아름답군."
그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저건 좀 지나치게 아름답다. 으악.
"운동회는 이걸로 끝이에요?"
"행사 자체는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 이상 큰 이벤트는 없을 거다."
"얼마 걸리지도 않았네. 왜 오후에 시작했는지 알겠어요."
운동회는 오후 한 시쯤 시작했다.
왜 평소처럼 6시에 시작하지 않는 거지, 하고 의아했지만 이제 와서는 알 것 같다.
큰 이벤트가 서너 시간 안에 끝난다면, 축제 자체가 저녁까지 이어질 걸 감안해서 시간을 조정해야만 했겠지.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일, 격 대조를 할 거다."
"아, 드디어?"
"노바의 첫 번째 제자가 복귀했다더군."
노바의 첫 번째 제자.
달리 말해 명예를 맨 처음 수여받은 자인가.
"이름이 뭐에요?"
"아폰."
특이한 이름이군.
그렇다면 내일, 격을 대조해 내가 노바로부터 이어받은 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노바한테 이어받은 게 맞으면, 달라지는 게 있어요?"
"너가 원로원에 들어올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단지 노바로부터 이어받은 것만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본 걸까,
델라즈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노바가 5년 전에 사라졌다는 얘기, 했었나?"
"네."
"원로원은 그 이후로 노바를 쭉 찾고 있다."
5년 동안 찾지를 못한 건가.
나에게 명예를 수여하고 대체 어디로 간 건가.
"우리 원로원의 임무는 국가 내외에서 닥쳐오는 위협을 견제 및 안전을 사수하고, 요관을 관리하는 거다."
"요관을요?"
"노바가 요관을 간다고 한 다음에 사라졌거든. 찾는 거지."
요관으로 가서 날 만난 건가.
"그래서, 확률이 왜 올라가요?"
"너도 노바를 찾는 데 동원될 거라는 소리다. 요관의 관리는 어디까지나 노바를 찾기 위한 일. 노바로부터 직접 명예를 수여받은 너를 필요로 할 수도 있지."
어찌 보면 합리적이긴 하다.
노바로부터 직접 수여받았으니 잘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 걸 뭐라고 하진 않겠는데, 명예가 뭐 GPS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찾아?
"홀은 관리 안 해요?"
"요관을 관리하는 김에 하는 거다. 겸사겸사야."
그렇기에 나는 원로원에 들어가야만 하는 건가.
노바를 찾는 데 성공하면 홀을 더 빨리 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일이 수월하게 풀리긴 할 거다.
노바를 찾아서 나쁠 건 없겠군.
교수직에 싫증이 나는 건 아니니 적당히 병행할 수 있을 듯하다.
"근데, 요관은 아케즈 밖에 있는데 왜 아케즈가 관리해요?"
"…로렌스와 맺은 협약 중 하나다."
베르노바 병신.
확실히, 로렌스와 아케즈는 꽤 가깝게 붙어 있다.
"다른 나라는요?"
"거리가 좀 되지. 요관으로부터 아케즈가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요관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는 우리 아케즈다. 그 다음이 로렌스."
그렇기에 아케즈가 방파제 역할을 맡는다, 라.
"베르노바 병신."
"동의한다."
나와 델라즈가 피식 웃었다.
적어도 아타나시아의 부친이 병신이라는 사실에는 우리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고 한 나라를 책임지는 통령이란 작자가 일신의 안위만을 보살피며 내정은 개무시하는데, 욕이 안 나올 수가 있나.
어느새 하늘은 검은 먹색이 옅어지고 본래의 푸른색이 빛을 되찾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상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폭죽을 한 번 더 발사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날이 개었다.
**
"교수님 진짜 세네요."
"그럼요. 당연합니다."
240명을 전부 수용할 수 있는 뷔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 개교하기 직전이니, 저녁에 학생들 불러다가 요리사들이랑 계약 맺고 아카데미 식당에서 뷔페를 차렸다.
학생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허겁지겁 집어먹었다.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뭘 저리 서두른대.
학생들이 식사를 하면서 입에 담는 대화의 주제는 단연 나, 여교수 에레브였다.
나 또한 음식을 담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덕분에 학생들의 대화를 수월히 들을 수 있었다.
- 메테오!
- 토네이도!
- 일레트로닉!
어째 대화가 아니라 내가 했던 영창들을 죄다 따라하면서 깔깔거리며 놀고 있다마는.
학생들의 뇌리에 내가 깊숙이 각인되었음을 뜻하겠지.
나쁠 거 없었다.
"원로원은 아니시죠?"
"아직… 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아닙니다."
"와아…."
학생들이 작게 '그럼 원로원은 얼마나 강한 거야' 하고 중얼거린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단 10명이서 마물 수천 마리를 때려잡으면서 국방을 자처했을 정도면, 적어도 사람의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중 대빵인 베르노바가 가장 강한데, 사람 새끼가 아니라는 게 함정.
"아무튼, 많이 먹으세요. 제가 또 돈은 많아서."
내 돈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가능할 거다.
델라즈한테는 저택 하나 지어줬다는데 이 정도도 못해줄까.
물론, 내 예상이 빗나간 구석도 있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 식당에 뷔페를 차린 것이다보니, 마학 수강생이 아닌 학생들도 들어와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이 남는 것보단 더 차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안 말리고 있다.
"교수님,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런데 진짜 특별하시네요."
"응? 내가요?"
"네."
저건 또 무슨 말일까. 내 고개가 절로 갸웃거렸다.
"왜요?"
"하나하나 나열해볼게요."
학생이 나열한 바는 이러했다.
말투.
나이.
행동거지.
컨셉.
출신.
외모.
반전.
"내 말투가 왜요?"
"반존대 하시잖아요."
아, 그건 그렇긴 하다.
델라즈한테 하던 게 뭔가 편해서 아무한테나 막 이러고 있지.
존댓말이 나올 때도 있고 반존대가 나올 때도 있다. 요컨대 내 마음대로다.
"이건 패시브 같은 거라."
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무시했다.
"나이는 뭐, 노바인데 엄청 어리다 그런 거죠?"
"네."
"그거는…. 특별한 게 아니라 특이한 거니까 넘깁시다."
애초에 난 스무 살이 아닐 뿐더러, 아타나시아라는 괴물이 한 명 더 있다.
"행동거지는 왜요?"
"뭔가…. 남자 같으세요."
"…."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침묵했다.
남자한테 너 남자같아! 라고 하면 뭐….
"컨셉은 뭔데요?"
"그거 컨셉 아니셨어요? 꼬깔모자랑 하얀 로브."
꼬깔모자야 늘상 쓰고 있던 거고, 하얀 로브는 앨버트가 선물해준 거 그냥저냥 두르고 있었다마는. 이게 왜 컨셉이라는 거지.
내가 표정으로 묻자 학생이 머쓱하게 대답했다.
"천사 코스프레 하시는 줄…."
"…."
앨버트를 죽인다.
아니, 애초에 천사는 헤일로가 있어야 되잖아. 난 꼬깔모자인데? 미쳐돌아가는구나.
"출신은 왜요?"
"아무래도 베르노바의 제자인 노바, 라는 게 특이하니까요."
"다른 원로원 분들의 제자 분들은 본 적 없어요?"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요."
하긴, 델라즈랑 알고 지내는 나도 아직 얼굴도 못 봤는데.
아, 아니다. 그 짐승 새끼는 얼굴 한 번 봤지.
"외모는 내가 예쁘다는 겁니까?"
"어…. 그것도 맞긴 한데, 본인 입으로 말씀하셔도 돼요?"
"사실인데요 뭐."
정작 나는 별 생각 없다마는.
학생이 날 신기한 것 보는 눈으로 보고 있지만 무시했다.
"그것보다는, 머리카락이 빨간색이시잖아요."
내 머리칼은 적발이다. 아주 새빨간 적발은 아니고, 갈색이 조금 섞인 적색.
스파이시 레드에서 살짝 어두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확실히, 은색 금색은 보이더라도 적색은 보지 못했지.
"거기에다가 뭔가…. 어린애같아요."
"어린애요?"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엽다는 느낌?"
저게 학생으로서 교수한테 할 말인가 싶다.
"그런 칭찬 별로 달갑지 않아요."
"아, 죄송합니다."
"전 보통 여자가 아니라서."
남자다.
"반전은 뭔데요?"
"좀 약해보였는데 아까 그거 보고 엄청 강하시다 싶어서요."
이거 봐라. 이러니까 델라즈가 직접 판을 마련해줬지.
이게 다 아론 놈들 때문이다. 에르를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아니, 하다못해 메티브한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연기하지는 말걸.
"…메티브 내가 이깁니다."
학생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머릿속에서 계산을 때리고 있는 듯한 눈치다.
안다 나도.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거. 슬프다 시발 거.
"나라는 인간이 참 특이하다는 건 알겠네요."
"욕하는 건 아니에요…."
"압니다. 그냥 객관적으로 돌아보니까 나만큼 신기한 사람 또 없겠다 싶어서요."
일단 이세계로 전생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나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아, 또 성별도 바뀌었지. 시발.
시바아아알!
"아무튼, 열심히 먹으세요. 오늘만 해줄 거 아니니까."
"다음에도 열어주시는 거에요?"
"애초에 약속한 바가 그거였잖아요. 오늘 축제에서 먹고 마신 사람은 많이 못먹겠다 싶어서."
학생들이 나의 현명함과 배려심 넘치는 모습에 감탄한다. 라고 생각한다. 뭐.
잘 먹겠다고 재차 감사 인사하는 학생들을 제치고, 나는 오늘의 메인으로 향했다.
본관 신문부(?) 동아리실.
"아, 오셨어요?"
"어떻게 되고 있나요?"
"부지는 끝났고, 유통만 남았어요. 게시판에도 적어두었습니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얘네한테 맡긴 게 괜찮은 선택이었다.
멍하니 작업이 돌아가는 걸 구경하고 있으니, 한 학생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저는 진짜인 줄 알았어요."
"뭐가요?"
"그, 교수님한테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다는 말."
왜지. 얘가 말하는 말투를 미루어보건데 뭔가 근거가 있나.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모험가 길드 직원분이 말하길, 교수님이 그 에레브라는 남자를 열렬히 옹호했다고 들었거든요."
적잖이 멀리 퍼졌나본데.
그리고 에레브라는 이름 자체를 끽해야 한 번밖에 언급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첨삭을 가하기라도 한 건가.
"사실무근이에요."
"그런가요…."
암만 생각해도 여교수 에레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내 기준에서는 결코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새끼들은 나를 주역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를 원하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지금의 나는 금욕의 신 그 자체다. 남자든 여자든 원하지 않는다.
아, 고양이는 키우고 싶어. 귀여워.
인쇄물이 방방곡곡 날라지는 걸 확인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 쌍년, 아직도 꿈을 꾸고 있을까? 마나를 거두진 않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