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044
"누구세요?"
문을 열고 나온 건 한 여자아이다.
이제 막 스물은 됐을까 싶은.
제자라고 했으니 나이가 좀 찬 사람일 텐데.
"여기…."
누구를 만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름을 모른다.
"…델라즈 스승님 부탁을 받아 왔습니다."
"오빠 만나러 온 건가요?"
"네."
아마도 맞겠지? 여자애는 나를 안으로 들이고 앞장섰다.
"무슨 일이신가요?"
"델라즈 스승님 추천으로 한 번 만나뵈러 왔습니다."
"스승님…. 그쪽이 델라즈 님 제자인가요?"
"네."
여자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날 안내한 곳은 좀 커다란 방이었다.
아니, 정정하자. 매우 커다란 방이다.
농구장 두세 개는 합쳐놓았을 법한 크기다.
그녀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만 하고 방에서 나갔다.
만일 여기가 그 사람의 방이라면 사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 듯하다.
그나마 책상과 침대가 유일한 사치품으로 보인다.
그 외에는 독서를 좋아하는 건지 책장에 수많은 책이 꽂혀 있다.
표지만 봐도 꽤 수준이 높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겉표지의 글씨체가 어디서 많이 본 글씨체라는 것이다.
'델라즈.'
델라즈 저택에 들릴 때마다 보았던 델라즈의 필기체다.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꽂혀 있다.
비단 학술서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책이 있다.
개중에는 「아타나시아 연대기」가 보인다.
무려 일곱 권이나 된다.
이 방 주인이 같은 책을 일곱 권씩 소장하는 패티쉬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저 책 시리즈가 일곱 권이나 된다는 소리이리라.
'맨날 책만 쓰고 있더니.'
내가 저택에 들릴 때마다 델라즈는 깃펜을 손에 잡고 있었다.
가끔은 다크서클이 한참 밑으로 뻗친 게 안쓰러워 내가 직접 힐을 써주기도 했다.
그동안 왜 저렇게 사나 싶었는데, 책에 진심인 모습을 보니 이해가 좀 된다.
책의 겉표지를 흝으며 구경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인기척이 들렸다.
"…어?"
이건 인기척이 아니다. 이건──
"노바, 실드."
실드를 영창함과 동시에 문이 가로로 썰리며 칼날이 날아들어왔다.
칼이 실드에 부딪혀 튕겨나가고, 인카르너로 총을 만들었다.
인기척이 아니다.
살기(殺氣).
무척이나 불안정한, 요동치는 마나의 물결이 여기에까지 밀려들어왔다.
칼날은 하나만 날아오지 않았다.
이어서 대여섯 개의 칼날이 연달아 날아들어왔다.
마법이 아니라 물리적인 무기다.
굳이 쳐낼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해 몸으로 받아주었다.
마지막으로 날아온 칼은 한 손에 쥐었다.
칼이 날아온 방향으로 총을 쏠까 싶었지만, 죽이지는 말랬으니 함부로 쏠 수도 없었다.
나는 칼빵을 맞을 뻔했는데 정당방위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다.
음.
부조리하다.
그래서 그냥 쐈다.
"…후우."
그냥 쏘진 않았고, 살기가 느껴지는 곳에서 살짝 꺾은 방향으로 쐈다.
유도한 대로 상대방은 총에 맞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체격의 남자였다.
한 손에는 스태프를, 한 손에는 치도(薙刀)와도 비슷한 것을 들고 있다.
저거, 두 손으로 드는 무기일 텐데.
남자는 투지를 숨기지 않았다.
살기를 있는 그대로 방출해 나를 압박하려 들었으며, 나는 그런 걸 가만히 당해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나 역시 투지를 숨기지 않았다.
짧은 대치가 이루어지고, 먼저 입을 연 건 남자였다.
"너, 누구냐."
화가 나도 보통 난 게 아닌 듯하다.
목소리에도 노여움이 녹아들어 있다.
"레블 아카데미에서 마학 강의를 맡은 에레브라고 하는데, 그쪽은 이름이 뭐길래 다짜고짜 칼빵부터 시도하시나?"
내 비아냥에 남자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남자의 스태프에 박혀 있는 수정이 맑게 빛났다.
그 순간, 왼팔 손목 언저리에서 촉각이 느껴졌다.
다만 촉각뿐이었다.
손목을 쓸듯이 지나간 무언가는 이내 곧 사라졌다.
남자가 표정을 찌푸렸다.
"누구냐고 물었다."
"방금 말했는데?"
"네가 누군데 내 마법이 안 통하냐고."
아, 방금 그거 마법이었나.
"무슨 마법이었는데?"
"내 알 바 아니고, 누구냐니까? 말귀 못 알아쳐먹냐?"
아, 짐승 맞구나.
델라즈는 짐승이라 표현하지 말랬지만 얘는 짐승이 맞다.
짐승이 아니면 대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은가, 싶을 정도로 짐승에 가까운 짐승 그 자체다.
- 분수를 깨닫게 해주되, 죽이지는 마라
죽이지만 않으면 쥐어패도 된다는 말이리라.
선빵까지 맞았으니 명분도 있겠다.
"네가 델라즈 스승님 이전 제자라매요?"
"네가 누군데 스승님을─"
"제가 지금 그분 제자입니다. 너 5서클이죠? 저는 님 같은 짝퉁이 아닌 노바, 7서클 진퉁이랍니다."
"노바?"
남자의 표정이 구겨졌다.
"스승님이 제자를 새로 들였다고?"
"레블 사람들 모두가 아는데, 여기는 아닌가보네."
"인정할 수 없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 이곳저곳에 아까 느낀 촉각이 느껴졌다.
"이게 뭔 마법인지는 모르겠는데, 안 하는 게 좋을걸요?"
나도 모르게 자꾸 깐족거리게 되네.
이런 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푸는 거에 만족해야 되나.
남자는 다만 입을 꾹 닫고 나를 노려볼 따름이었다.
촉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난 경고했음. 노바, 리사이클."
발동된 마법을 보다 높은 격으로 재발동시키는 마법─리사이클.
남자의 팔과 다리에서 피가 주르륵 흐른다.
뭔진 몰라도 자상(刺傷) 같은데.
"이건…."
"경고했잖아요?"
남자의 얼굴이 벌개졌다.
다만 벌개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남자가 내게로 도약해왔다.
남자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그걸 손바닥으로 받고 땅으로 내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파닥이 파이며 남자의 몸이 땅 속으로 살짝 꺼졌다.
얘도 생각이 있으면 실드를 둘렀을 터,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왜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 들어요?"
남자가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일어났다.
"스승님이 날 버리셨을 리 없다."
"버려?"
"날 버리고 제자를 새로 들이시다니.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네가 얕은 수작으로 스승님을 꾀어냈거나, 스승님이 책 집필의 피곤함에 쩔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신 거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리고 높은 확률로 난 전자라고 본다."
얘도 델라즈에 대한 평가가 꽤나 신랄했다.
꼬라지 보니까 델라즈를 무슨 우상 숭배하듯이 대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한테 아무리 가정이라 한들 사리분별 어쩌고 해도 되는 거냐.
"스승님이 딱히 널 버리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요?"
남자가 표정을 찌푸렸다.
"제자 두 명을 동시에 키우신다는 얘기냐?"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난 진짜 소개받고 온 거에요."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군.
아까부터 존댓말과 반말이 번갈아서 나간다. 너무 낯설어.
"…스승님이, 너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신 연유는?"
"널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래요."
"사람?"
"네가 생각했을 때, 너는 얼마나 강해요?"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5서클 중 최강이다. 명예를 만들어 모두에게 수여할 예정이지."
델라즈가 말한 것처럼 '세계최강'을 연호하진 않는다.
그냥, 좀, 빡대가리 같은데.
5서클 중 최강이니까 노바랑도 비벼볼 만하다, 그래서 나한테 덤볐다, 뭐 이런 건가?
내가 그렇게 약해보이나.
얼굴에 흉터라도 좀 남겨놓아야 관록이 붙으려나.
"나는 이길 수 있어요?"
"붙어봐야 아는 일."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도약해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치도를 비스듬히 세워 양손으로 잡고 찔러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까 남자가 사용했던,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남자를 둘러싸듯이 휘감아 돌진해온다.
그 모양으로 설명하자면, 흡사 파리지옥과도 비슷한 형태.
피할 이유가 없었다.
정면으로, 박투술로, 마법 없이 싸우는 것 또한 내가 사랑하는 싸움 방식이다.
인카르너로 똑같은 치도를 만들어내 꼬나쥐고 역시 정면으로 달렸다.
마나를 사용한 도약은 속도가 굉장했다.
불과 2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치도와 치도가 맞붙었다.
칼날과 칼날이 맞닿아 쇠가 갈리는 소리가 잠깐 울리고, 나는 물 흐르듯이 치도를 비껴내어 앞으로 찔렀다.
"캔슬!"
"노바, 리사이클."
남자는 학습능력이 없었다.
캔슬로 내 치도를 없애려고 시도하길래 리사이클로 되돌려주었다.
남자가 행한 모든 마법이 취소되었다.
나를 덮치려던 보이지 않는 무언가 또한 하늘로 증발해 남자에게는 치도만이 남았다.
"푸에고."
내 치도가 남자에게 닿기 직전, 나는 푸에고를 읊었다.
남자의 치도가 손잡이부터 타오른다.
칼날까지 녹이지는 않았어도 느껴지는 열기에 남자가 치도를 놓고, 거리를 벌리려고 시도했으나.
마데라.
땅에서 갑자기 덩굴이 자라나 남자의 발목을 옭아매었다.
발이 걸린 남자는 뒤로 도약하려다가 넘어져 뒷통수를 바닥에 박았고, 나는 치도의 칼날을 그의 눈 앞에 가져다대었다.
"너 나 못 이겨요."
"이래서 재능 넘치는 놈들이 더럽다는 거다…!"
남자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나는 너 같은 더러운 재능만 넘치는 여자와는 다르게 죽도록 노력했다! 너 따위는 내가 재능만 있었으면─"
"재능이라."
누가 누구 앞에서 재능을 논하는 걸까.
분노가 차오르기보단 이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일종의 연민, 동정심이었다. 내 처지를 남자에 빗대어서 느끼는 동정심이 아니었다.
저 남자가 말하는 노력이 과연 진실된 노력인지, 그걸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나는 동정심을 느꼈다.
이런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노력이란 언제나 상대적이다.
최선의 노력이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만큼, 노력과 결과 사이의 격차는 꽤 넓다.
그 사이를 재능이라는 놈이 보충해주는 것 또한 나는 안다.
그렇기에 노력이란 상대적이다.
내가 한 노력과 상대가 한 노력을 비교하며 내가 저들보단 낫다며 우월감을 가진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심리적인 우월감이라도 느껴야 내가 하는 노력에 회의감이 안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 남자는 다르다.
저 남자에게 노력이란 이미 재능이란 벽에 막혀서 끝났다.
지금의 자기 자신이 노력의 결과라고 믿으며, 그 이상의 정진에 대한 꿈을 접었다.
그건 노력이 아니다.
노력이란 다만 멈추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반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재능이 채워주는 건 맞지만, 재능의 크기를 진즉에 가늠하고 노력의 크기를 정해놓고 하는 건 노력이라 부를 수 없다.
그건 숙제다.
알 때까지 반복하는 복습과, 해야만 하는 양이 정해져 있는 숙제는 엄연히 다르다.
"죽을 뻔했던 적, 얼마나 있어요?"
"무슨 소리냐."
"나라고 뭐, 태어났을 때부터 7서클이었던 건 아니라서."
남자의 손가락을 발로 밟았다.
"윽…."
"댁 같은 사람만 보면 좀 화가 나서요. 네가 한 건 자기 자신의 정진을 위한 노력이 아니에요. 다만 남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지."
앨버트의 경우에는 달랐다.
현재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절망하면서도, 계속해서 높은 경지로 오르길 빌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전부 하면서 노력했다.
2서클이 8서클이 되고 싶다고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각오인지 이 남자는 알까.
"이렇게 으리으리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지원을 받으면서 설렁설렁, 대충 노력한 결과가 이건데, 왜 남의 재능을 탓해요?"
손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더했다.
"나는 죽을 만큼 노력을─"
"그래서, 정말로 죽을 뻔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요?"
남자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난 적어도 수백 번인데."
"무슨─"
"슬라임이, 점액질만 내뱉는 줄 알아요? 걔네도 밥 먹을 줄 아는 놈들이에요. 크기가 좀 큰 놈들은 인간을 잡아먹으려 든다고요. 점액질 속으로 밀어넣어서, 질식사 시킨 다음 천천히 사람을 녹여먹는 게 슬라임이에요. 1서클 슬라임이야 그럴 일이 없지만, 자이언트 슬라임은 그런 놈들이죠. 더스크, 더스크가 그냥 거미인 줄 알아요? 걔네가 사람을 잡아먹는 방법은, 고치로 만들어서 빨대를 꽂아 피를 먼저 빼요. 피가 다 빠졌다 싶으면 그제야 고치 째로 김밥 썰듯이 잘라서 냠냠 먹어요. 화락조, 걔네 불이 진짜 더럽게 안 꺼져요. 5서클 아쿠아 이상만 불을 끌 수 있는 놈들인데, 3서클 때 화락조 무리 만나면 어떤 생각 드는지 알아요? 주마등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요. 아, 내가 지금 여기서 죽을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고요. 그놈들 내가 어떻게 상대했게요? 내 주위에도 토벽 두르고, 화락조들 바깥쪽으로도 토벽 둘러서 압축시켜서 압사시켰어요. 이따금 튀는 불똥이 내 머리칼에 붙진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면서, 화락조들의 머리가 뭉개지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어야만 겨우 잡을 수 있는 놈들이에요. 지하충 알죠? 두더지마냥 땅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놈. 구멍 안에다가 5서클 푸에고만 집어넣으면 끝이지만 3서클은 그게 아니거든요. 머리를 내미는 순간 칼로 썰어버려야만 죽일 수 있어요. 기회를 잘 보고 나오는 놈들이라 잘못하면 내 발목이 먼저 썰릴 지경인데, 다른 놈들이랑 싸울 때 지하충이 갑자기 나오면 그때가 내가 죽을 날인가 싶게 느껴져요. 나팔꽃 알죠? 꽃으로 볼 때는 그것 만큼 예쁜 게 따로 없는데, 크기가 커지고 마나가 담기면 네펜데스마냥 살아 있는 모든 걸 빨아먹으려고 드는 놈 말이에요. 그게 코끼리처럼 큰 거 봤어요? 와, 나, 시발, 내 살다살다 인간이 되어가지고선 꽃한테 먹힐 뻔한 건 그게 처음이었어요. 피라냐도 진짜 무서웠는데. 마데라랑 테라 어떻게든 엮어서 뗏목 타고 가는데 갑자기 물이 시꺼매져요. 아니, 물이 시꺼매진 게 아니라 시꺼매진 무언가가 물 속에서 다가오고 있던 거에요. 물고기가 모여 있는데 왜 시꺼멓냐고요? 애들이 입 쩌억 벌리고 이빨만 드러내고 있더라고요. 실수로 화락조 하나 떨어뜨렸는데 10초도 안 돼서 뼈만 남더래요? 결국 나는 그렇게 되기 싫어서 이틀 동안 밤 지새우며 피라냐들이 뛰어드는 거 스태프로 계속 쳐내야만 했어요. 마물만 있어요? 함정도 있습니다. 땅이 꺼지면서 가시가 드러나요. 하늘이 무너지면서 쇠공들이 날아옵니다. 찔리면 죽고, 스쳐도 죽어요. 땅에 파인 자국은 없나 항상 조심해야 하고, 하늘에서 흙이 떨어지진 않나 조심해야 돼요. 그뿐만이에요? 라이트 꺼지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나마 마나 흘려서 지형지물 대충 파악하고 애들 날아오는 거 피해가면서 겨우겨우 다시 불 켜야 되는데, 그 사이에 마물 새끼들이 아이고 마법사님 거 라이트 키실 때까지 좀 기다려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다려줄 줄 알아요? 천만에요. 불만 꺼지면 쟤네 세상이라 이때다 싶어 나 죽이려고 달려드는 게 마물들이에요. 마나만 있음 다 된다고요? 마나수정이 있으니까 돼요? 마나수정 그거 개당 10레블, 그게 싼 건 줄 알아요? 개당 10레블이라니까 와닿지 않는 거지 열 개면 100레블이에요. 응? 체감이 좀 되나? 저어 멀리 어딘가에는 마나를 태우는 독가스까지 나와요. 마법은 안 쓰는데 마나가 빠져나가는 감각, 알아요? 피가 빨리는 느낌이에요. 이딴 거 하나라도 겪어봤어요? 아니잖아요. 노력? 노오력? 가문에서 뒷바라지 해주는 거 오냐오냐 받아먹어가면서 내가 5서클 최강이다! 죽도록 노력했는데 여기까지밖에 올라오지 못했다! 스승님은 그런 날 버리고 노바를, 제자를 새로 들이신 거다, 이러면서 그냥 찾아온 사람한테 다짜고짜 칼부터 날리고, 네? 그게 잘하는 짓입니까? 스승님이 와서 댁 보시면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시겠네요. 싸가지 밥 말아먹은 새끼야. 빡대가리도 아니고, 만나자마자 정답게 칼부터 나누는 게 프로바이오 인사법입니까? 이딴 데 다시는 오기 싫네요. 스승님 부탁으로 온 건데 하기가 싫어졌어요. 내가 왜 댁 같은 짐승새끼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해요? 피해망상에 오만으로 찌든 짐승 새끼를? 내 알 바 아니에요. 죽이지는 말랬으니까 죽이지는 않을게요. 내 눈에 다시는 띄지 마요. 별 개 같은 벌레 새끼 하나 만나서 이 지랄 옘병을 떨고 앉았네. 그따구로 살지 마세요. 너보다 실력 좋은 마법사 널렸으니까. 5서클 최강? 지랄하고 앉아 있네."
발로 남자를 걷어찼다.
멍하니 내 말을 듣고 있던 남자는 내 발길질에 밀려 저 멀리로 굴렀다.
"겸손하게 구세요. 스승님한테는 아직은 그쪽이 머리 검은 짐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씀드릴게요."
말을 끝내는 즉시 발을 돌려 방 밖으로 나왔다.
별 수 없었다. 갑자기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갑자기 다짜고짜 칼빵을 맞을 뻔했던 것만 해도 충분히 억울하고 화가 난다만, 저놈의 행실을 보니 더더욱 열불이 난다.
저놈은 노력이 무엇인지, 죽을 각오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이런 걸로 위세를 떠는 나도 같잖지만,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하는 피해망상 환자는 더더욱 같잖다.
"저, 저기…."
문을 열고 나가니, 아까 나를 안내해준 여자아이가 거기 있었다.
"집 어지럽혀서 죄송합니다. 물어드릴 테니 청구서는 스승님 앞으로 보내주세요."
"…오빠는, 죽은 건가요…?"
"아뇨, 저한테 팩트로 얻어맞은 것뿐이라 살아 있습니다. 상심이 좀 클 텐데 잘 달래주세요. 객관적으로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됐을 때 일이지만."
여자아이를 지나쳐 건물에서 나와 날아올랐다.
"별 개 같은…."
앨버트가 보고 싶다.
저런 쓰레기 같은 놈에 비해서는 앨버트가 훨씬 더 낫다.
앨버트는 키워주는 재미라도 있지, 쟤를 키워주려면 내가 암 걸려서 먼저 죽을 확률이 100에 수렴한다.
"아재."
델라즈의 저택으로 당당히 들어가 델라즈를 찾았다.
"왜 벌써 왔냐."
"만나보고 왔는데, 뭣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무슨?"
"저 제자 놈이라는 새끼, 훈련 어떻게 해왔어요?"
델라즈가 눈을 껌뻑였다.
"아직도 자기가 죽도록 노력했다는 말을 하더냐?"
"네."
"그놈은 천성이 게으르다. 남들도 다 하는 걸 죽도록 노력했다고 표현하는 놈이지. 그놈 가문이 좀 명문가인데, 아카데미 다니면서 편하게 훈련하며 자란 놈이다. 그렇기에 5서클이 최대지."
"진짜 짐승이던데요."
짐승이라는 표현도 아까웠다.
아무리 짐승이라고 해도 자기보다 강한 놈 앞에서는 빌빌 기면서 살아남을 구석을 찾는다.
근데 저놈은 상대가 누군지도 파악하지 않고, 그저 델라즈의 제자라는 말만 전해듣고서 내게 칼을 날렸다.
내가 5서클 이하였다면 대응하지 못하고 죽었을 거다.
사람 목숨 벌레만도 못하게 보는 놈, 나는 사람 취급해줄 생각 없다.
"네가 그놈 사람 좀 만들어놔라."
"진짜 엮이기 싫은데. 걔 나 보자마자 칼빵 날렸다니까요?"
"칼빵을 날려?"
"아저씨 제자라는 말 한 마디만 해놓으니까 바로 칼 대여섯 개 던지던데? 나 노바 아니었으면 그때 바로 절명했어요."
"그래서 치마가 그꼴이구나."
고개를 밑으로 향했다.
치마 밑단의 마감이 다 뜯어져 있다.
"나 실드 둘렀는데."
"너 딱 보니까 지금 굉장히 감정적으로 되어 있잖냐. 이성을 되찾아라. 마나 흘리는 일 없게."
마나 컨트롤이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긴 하다.
실드에 허점이 생길 정도로 내가 분노했던가?
"아무튼, 안 합니다."
소파에 풀썩 드러누웠다.
"네가 내 제자라는 말은 한 거지?"
"네."
"그럼 저쪽에서 알아서 찾아올 거다. 그때만 상대해라."
"뭘요."
"누가 더 내 제자에 어울리는가."
"…내가 그냥 이기는데요? 방금 전만 해도 나 이기고 온 건데."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압도하라는 말이다. 자존심이 강한 놈이니."
모르겠다.
죽을 고비 한 번 넘기게 해주면 자기 분수 알고 꼬리를 말려나.
"심심한 건 다 풀렸냐?"
"심심한 건 풀렸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짜증나요."
"으음."
델라즈가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달력을 꺼냈다.
"아카데미 개교시켜라."
"왜요?"
"곧 운동회 시즌이야. 운동회, 반대항전 등 여러 이벤트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교수도 참여 가능하다. 이것저것 별 게 다 있으니 참여해라."
그걸로 스트레스가 풀리려나. 모르겠다.
조금 큰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쓸 수 있는 큰 마법은 메테오다.
애들 떼거지로 죽이고 싶은 게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하다.
"알겠어요…."
놀고 먹으며 즐기자.
억지로라도 즐기다보면, 진심으로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