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042
"와…."
앨버트가 짧은 감탄사를 흘렸다.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기 등에 붙어 있는 날개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애를 쓴다.
"노바, 와즈."
날개에 대한 관심이 다대한 듯하여 내 등에도 날개를 만들고 등을 돌려 보여주었다.
"이게 지금 앨버트 등에 달려 있는 거에요."
"저, 만져봐도 되나요?"
"…살살?"
지금까지 촉각을 느낀 적은 없긴 했는데, 혹시 모르는 일이다.
앨버트는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내 날개를 만지작거린다.
촉각이 아예 없진 않았다.
다만 머리카락이 몸에 닿을 때처럼 무언가가 내 날개를 만지고 있다, 라는 원초적인 감각만 느껴진다.
촉각이랑은 다르다.
"이거 한 번 퍼덕여주실 수 있나요?"
마나를 흘려 날개를 슬쩍 퍼덕였다.
"와…."
"구경은 이쯤 하고."
날개를 없앴다.
"앨버트가 도와줄 부분은, 날개를 사용하는 데 제 마나가 소모되는지, 앨버트의 마나가 소모되는지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만약 전자라면 학생들 전체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이곳저곳 날아다닐 수 있다.
내 마나량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마나수정을 들고 다니면 그 정도는 쉬울 거다.
이점은 그 한 가지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한테 사용시킬 수 있는 마법이 와즈밖에 없어서 그렇지 와즈와 비슷한 다른 마법도 많을 거다.
신체의 시간을 뒤로 돌리는 마법도 있으니, 신체 자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마법도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전자면 대박이고, 후자면 쓸모가 없다.
2서클 마나로 8서클 마법을 발동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리젤."
앨버트의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감각에 앨버트가 당황한다.
"날개, 퍼덕일 수 있어요?"
"음…."
"마나를 어깻죽지로 흘리면서, 날개를 퍼덕인다는 생각을 하면 돼요."
앨버트가 내 설명을 듣고 눈을 감고 집중한다.
하지만 십 초가 지나도, 이십 초가 지나도, 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서클 접고 한 번 해볼래요?"
앨버트는 내 요구를 수용해 서클을 접고 집중했다.
하지만 역시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제 마나가 소모되는 것 같은데요…."
"소모된다기보다는, 쓸 수가 없는 거죠. 술식지로 푸는 게 아니더라도 마법 자체에서 감지정과 농도문양은 반응하니까요."
깔끔하게 포기했다.
같은 서클이나 바로 아래 서클에게는 써줄 수 있을지 몰라도, 한참 아래의 서클에게는 사용해봤자 장식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서클이나 바로 아래 서클에게는 써줘봤자 의미가 없지.
그래도 그 마법을 익히지 않은 놈한테 써주면 마나만 흘리는 걸로 커버가 될 테니, 아주 쓸모가 없진 않겠다.
"안 되는 건가요?"
"그런 것 같네요. 괜히 기대했네."
솔직히 조금 기대했다.
내 마나로 공수부대를 만들겠다는 작은 야망을 품고 있었다만, 하긴 그게 됐으면 내가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지.
"끝낼래요, 아니면 훈련 좀 더 할래요?"
"…조금 더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리틀 마스카르를 구현해주었다.
역시 초읽기가 끝나고, 리틀 마스카르와 앨버트가 부딪혔다.
인간과 별 다를 거 없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비록 화염은 두르지 않더라도 스태프를 둔기 삼아 휘두른다.
스태프를 피해 리틀 마스카르가 거리를 벌리면 그때 파이어 볼을 날린다.
근접전에서도, 원거리전에서도 우위를 가져갔다.
어째 슬라임보다 얘를 더 쉽게 잡는 것 같은데.
인간에 가까운 마물이라 그런가? 어디가 약한지 알고 있을 테니.
내가 훈수를 둬봤자 성장의 의미가 없겠다 싶어 지켜만보았다.
리틀 마스카르는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몸이 그을려지고 안면이 함몰된 상태에서 죽었다.
"음, 앨버트?"
"네?"
"운동도 착실히 하세요. 앨버트는 힘법사가 어울려보여요."
스태프를 휘두르며 싸우는 마법사. 광기 그 자체.
하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스태프 저거,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다.
끝에 수정이 박혀 있기에 무게도 어느 정도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아까 더스크와 싸울 때 한 명의 마법이 발동되지 않았던 것도 수정이 거미줄에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앨버트는 내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칭찬인가요?"
"익숙해지면 나쁠 거 없긴 할걸요?"
마법사의 약점은 근접전이다.
아무리 마나로 신체를 강화해 싸운다고 해도, 경험의 차이가 있어 밀리게 된다.
그걸 앨버트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스크랑도 한 번 더 싸워볼래요?"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95% 확률로 지겠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을걸요?"
"95%…."
승률이 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침울해진 듯했다.
"그게 정상이에요. 앨버트가 특출나게 약한 게 아니라, 원래 높은 서클의 마물은 상대하기 힘드니까요."
"교수님도 그랬나요?"
"당연하죠."
대표적인 게 화락조.
5서클 마법이 아니면 불도 못 끄는 게 화락조다.
내가 3서클 때 걔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아는가?
흙으로 하강돌격을 막아세우고, 압사시켰다.
한 마리도 힘들게 잡았지.
그나마 5원소마법을 전부 쓸 수 있는 나라서 잡기라도 했던 거다.
앨버트의 안색이 조금 편해졌다.
"싸워볼게요."
앨버트가 투지를 불태웠다.
마나를 살짝 빼 약하게 만든 더스크를 세워주고, 앨버트와 붙게 만들었다.
- 키이익!
그러고보니 쟤는 키이익거리네?
마스카르는 울음소리까지는 구현 못 했는데. 뭐가 뭔지.
"푸에고!"
앨버트가 쓸 줄 아는 마법은 내가 알기론 푸에고와 파이어 볼.
푸에고는 불을 '만들어내는' 마법이고, 파이어 볼은 만들어낸 불을 '여러 개의 구체로 나누는' 마법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얘도 템플릿이다.
푸에고는 보통 지근거리에서 쓴다.
나처럼 마나가 많으면 멀리까지 두를 수도 있겠다마는, 마나가 적으면 아무래도 빡센 감이 없지않게 있다.
앨버트가 터득한 싸움 방법은 이렇다.
어느 정도 가깝다 싶으면 푸에고로 지진다.
아예 지척에 다가왔다 싶으면 스태프로 대가리를 깬다.
멀어졌다 싶으면 파이어 볼을 날려 지진다.
그의 의도가 어떻든 의외로 그 방법은 잘 먹히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착실하게 싸우면, 마나가 먼저 동나지 않는 이상 이길 확률이 조금은 높을 것이다.
물론 내가 마나를 어느 정도 빼놓았기에 가능한 거지만.
원래대로라면 앨버트가 꽤 많은 마나를 쏟아부어서 만든 불길만 더스크의 거미줄을 태울 수 있다.
그렇게 해버리면 아예 의욕 자체가 사라질 수가 있기에 봐주는 거다.
봐주면 봐준다고 또 짜증나려나.
얘 성격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텐데.
…모르겠다.
"파이어 볼!"
앨버트가 쏘아낸 화구를 전부 피해낸 더스크가 빠르게 접근해 스태프의 윗부분을 다시 거미줄로 감쌌다.
막 마법을 발동시키려던 앨버트가 스태프를 버리고 거리를 벌렸다.
'호오?'
"파이어, 볼…!"
스태프가 없어도 마법을 꾸역꾸역 영창해낸다.
이번에는 마나를 꽤 쏟아부었는지 파이어 볼에 농축된 마나가 척 보기에도 많아보인다.
더스크 또한 그것을 감지하고 피해내지만, 앨버트가 쏘아낸 파이어 볼은 한 개가 아니었다.
세 개.
한 번의 영창으로 무려 세 개나 만들어냈다.
더스크가 피할 것이라고 예측한 지점에 파이어 볼을 날리고, 더스크는─
"크윽?!"
당연하지만 직격하지 않았다.
거미줄을 뱉어 화구를 막고 앨버트에게 빠르게 접근한다.
스태프가 없어 마법을 빨리 영창할 방법이 없던 앨버트는 설상가상으로 주먹을 휘두르려다가─내 조언을 깨달은 것인지 거리를 벌린다.
잠시 대치.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짝, 하는 박수소리가 장난스럽게 울렸다.
"자아, 여기까지."
"…."
더스크가 마나로 증발하고, 앨버트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엄청난 양의 땀이 앨버트의 이마를 괴롭히고 있다.
"세쉬, 푸에고."
앨버트의 땀을 날려주고 그의 옆으로 가 주저앉았다.
"잘했어요."
"…잘한 건가요?"
"스태프 버렸을 때 바로 당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잖아요? 그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에요."
내 말에 앨버트는 앓는 소리를 내며 아예 드러누워버렸다.
교수 앞에서 이 무슨 망발인가 싶어서 앨버트의 배로 드럼을 두드리듯이 연주했다.
"어으으으으."
"두둥탁!"
심벌을 울리듯이 살짝 강하게 내리치자 앨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
"네."
"배고파요."
"일어나세요. 밥이나 먹읍시다."
하지만 앨버트는 다시 드러누워버렸다.
이에 질세라 나도 앨버트의 배를 악기 삼아 연주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에레브 교수님?"
전 총장 비서.
그, 완장 차고 있던 여자.
안 짤린 거 보니까 총장이랑 한 편은 아니었던 건가?
"네?"
여자는 바로 용건을 밝히지 않고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개의치 않고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앨버트의 배로 연주했다.
의외로 몸이 단련되어 있는지 물렁살을 칠 때처럼 얕은 파도가 일지는 않았다.
"…잠시 드릴 말이 있는데."
여자가 앨버트를 흘겨보며 말했다.
"앨버트, 먼저 나가 있을래요?"
"어으, 알겠습니다. 식당 가 있을게요."
"나 도시락 샀는데요? 공원 밴치로 가서 있으세요."
"…."
앨버트가 침울한 표정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에요?"
용건을 물었는데 갑자기 여자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왜, 왜 이래요?"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감사 인사…?"
내가 이 여자한테 뭔가를 해준 적이 있던가?
"무슨 감사 인사요?"
"전 총장, 그러니까, 파비아를 내쫓아준 거에 말입니다."
이름이 파비아였구나.
근데 그게 왜?
내 의문스러운 시선은 거둬지지 않았다. 여자가 이어서 말했다.
"그 새─ …파비아는 횡령범이었습니다."
"허어…?"
횡령?
"재단에서 들여오는 후원금과 물품들을 자기 품속에 넣는 사람이었죠."
파도파도 괴담만 나온다.
"신고는 해봤어요?"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놈의 증거 타령.
이제는 질린다.
"증거가 없는데 그쪽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회계를 담당했으니까요."
"…그럼 그게 증거 아닌가요?"
"돈이 빈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하게 총장의 짓이라고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앞뒤가 맞지가 않는데.
"그럼 총장이 범인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요?"
"제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요. 메티브와 거래하는 것을요. 감히 신고하려고 해도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원로원을 공격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아론이 아케즈에 뻗친 마수는 생각보다 깊었다.
"재단이라는 건 뭔데요?"
"여러 가문들이 합심하여 만든 후원 단체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문들이 모여 학생들을 후원할 심산으로 돈을 모아 학교에 전달했는데, 그게 원로원을 통해 전달되는 거였고, 메티브가 중간에 삥땅을 치는 과정에서 총장한테도 돈이 들어갔다 그건가?
점점 아케즈에 정이 떨어져가는데.
"뭐 근데, 총장은 저도 몰랐어요. 메티브랑 에르, 노브 범죄행각 까발리다보니까 같이 얻어걸린 거지."
"그래도 감사드리는 건 맞습니다."
"…아카데미에 진심인가봐요?"
빈정거리는 게 아니다.
아카데미라는 건 결국 마법사 양성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아카데미의 임원이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당장 파비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는가.
"제가 아카데미 졸업생이라서요."
"후배들 챙겨준다는 느낌?"
"그런 셈이죠."
그러면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면서 여자의 손을 잡아 같이 일으켰다.
"몇 서클이에요?"
"4서클입니다."
4서클이라.
그럼 총장도 적어도 4서클이었다는 말이네.
자기보다 높은 서클을 비서로 둘 리는 없으니.
"제가 의도해서 한 게 아니긴 한데, 그래도 뭔가 썩은 뿌리를 뽑은 것 같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자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졸업생이면 나이가 꽤 될 텐데.
나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나이가 스물이고 말이다. 신기한 사람이다.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의도하지도 않은 걸로 허리를 숙이는 감사 인사를 받기는 제가 또 양심이 있어서."
"제가 도와드릴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음,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런데 제가 너무 잘나서요. 솔직히 스승님한테 말씀드리면 해결이 안 되는 게 없답니다."
어라.
비아냥거리려는 건 아니었는데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내가 말을 수정하려던 그때.
"제 이름은 엘리스입니다.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실질적으로 아카데미의 2인자는 저입니다."
"어… 네."
상점 주인이 총장이 된 것에도 짜증이 날 법하다만,
그런 건 없는 모양이다.
역시 신기한 사람이다.
나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거렸다.
감사 인사를 받는 게 익숙하지 않다.
솔직히 저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엘리스가 미소지었다.
"저도 이만 일하러 가야겠네요."
"아, 네. 필요한 일 있으면 부를게요."
"모쪼록."
엘리스는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고선 훈련실에서 나갔다.
솔직하게 좋아하는 게 맞겠지?
유사 시에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생긴 것이고 말이다.
아무리 델라즈가 원로원이라고 해도 아카데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말이지.
경사로세. 모든 것이 잘 풀려가는 중이구나.
'배고프다.'
앨버트는 날 기다리고 있겠지.
이미 다 식어버린 도시락을 집어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