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033
바로 방으로 돌아가서 쉬기는 좀 심심해서 아카데미로 향했다.
조금 궁금했거든. 학생들에게 포획했던 네 마리의 플룻래빗을 건네줬는데, 어떻게 됐을까?
먹었으려나, 가뒀으려나. 먹진 않았겠지.
미친 생각을 했구나, 유민아.
아카데미 구석구석을 뒤져도 도통 보이질 않아 포기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하도 도시락으로만 때웠더니 뷔페 음식이 또 고팠다.
혼자 조용히 먹으려고 했는데, 음식을 가지고 와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내게 몰렸다.
마법을 써서 느낀 게 아니다. 그냥 직감이다.
느껴져서 둘러봤더니 모든 사람이랑 시선이 맞닿았다, 그거다.
"…."
뭔진 몰라도 일단 미안합니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게 해주세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에휴.'
귀찮아.
눈을 질끔 감고 밥을 퍼먹었다.
어느 정도 다 먹고 슬슬 일어날까, 싶을 때였다.
"교수님?"
고개를 돌려 보인 건 앨버트였다.
"밥 먹어요?"
"네. 술식지 풀다가 머리 아파서."
"막히는 거 있으면 가져와요."
거기까지 말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어째 주위의 시선이 한 층 더 묘해졌다.
"앨버트."
"네?"
"왜 사람들이 나 이렇게 보는 건지 알아요?"
"어, 음…."
앨버트가 우물쭈물거린다.
얘가 이럴 때마다 난 조금 불안하다.
"교수님이 천사─"
"닥치고 밥이나 먹어요."
차라리 악마라고 불러주길 원한다.
천사는 별로야.
"아, 앨버트. 플룻래빗은 어떻게 됐어요?"
"남학생 여학생 기숙사 사이에 뒀습니다."
"알겠어요."
자리를 정리하고 '같이 가요!' 하고 말하는 앨버트를 무시하고 식당을 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남학생 기숙사와 여학생 기숙사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그 건물 사이에 철망이 둘러진 울타리 안에 플룻래빗이 갇혀 있다.
벌써 저런 걸 만들었네.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귀엽긴 한데."
물론 토끼처럼 생겼으니 귀엽긴 귀엽다만 사람 보자마자 그렇게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면서 올려다보니 없던 죄책감도 생길 것 같다.
"…응?"
근데 왜 세 마리야.
네 마리 잡아온 거 아니었나.
"놓쳤나?"
그냥 일반 토끼나 다름없어서 상관은 없는데, 관리 좀 잘 하지.
그와중에 밥은 준 건지 입가에 뭐가 묻어 있다.
당근이라도 갈아서 준 건가.
쟤네 육식일 텐데.
한 마리만 있더라도 학생들은 만족했을 거다.
귀여움을 늘리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게 목표였으니까 뭐.
바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학생들이 알아서 할 거다.
나는 로판부르크로 다시금 날았다.
모든 시장이 활성화가 되어 있다.
이제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좀 몰려 있었는데, 길거리에 전시된 음식은 죄다 하나같이 화락조다.
밥을 먹고 왔는데도 배가 고파지게 만드는 이 냄새, 틀림없이 화락조의 다리겠지.
그러고보니 앨버트와 마타샤가 싸울 때 먹었던 꼬치구이도 화락조로군.
수많은 사람들이 로판부르크를 거닐며 건물을 드나드는 모습을 한동안 위에서 구경했다.
화락조가 양식되고, 15레블에 납품되고, 30레블에 또 다시 시장으로 유통되며, 그것을 요리해서 40레블에 가게에서 내놓는다.
비싸도 더럽게 비싸군.
난 늘 신분증을 내밀고 받기만 해서 가격은 몰랐다.
앞으로 이 거리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회 총독을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된 건 맞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해를 입힌 게 아니라 그들이 벌을 받은 거다.
애초에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말았어야지.
그들이 벌을 받는 건 좋다.
좋은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럼 화락조의 유통이 완전히 끊기냐는 거다.
잘못된 방식으로 양식이 되고 있다고 했으니 그 방법 자체가 금지되어 끊길 가능성이 있다.
이를 국가 차원에서 고려해 보다 낮은 가격으로 양식해 유통하면 되긴 할 텐데, 아케즈가 그렇게 해줄 거라는 생각은 딱히 안 든다.
화락조가 그래도 잘 팔리는 것 같은데, 화락조가 사라지더라도 상권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미 증거까지 제출해놓은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가 차원에서 금지하지 말고 방식을 알아내 안전하게 양식하고 유통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화락조가 하루에 얼마나 팔리는지는 몰라도, 지금 안 먹어두면 뭔가 다신 못 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땅으로 천천히 하강해 내려왔다.
"천사…!"
"…."
앨버트, 씹어죽일 놈.
선물이고 나발이고 로브도 검붉은 색으로 바꾸고 날개 색깔도 어떻게 못 바꾸나 알아봐야지.
마타샤의 가게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에레브 양."
한창 바쁠 때임에도 불구하고 마타샤가 직접 나와 나를 맞이했다.
"나오셔도 돼요?"
"주신 칼, 못 자르는 게 없더라고요. 작업도 한결 편해져서 잠깐 짬은 낼 수 있답니다."
"아하, 오늘 화락조 들어왔죠?"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저기 저 손님들이 먹고 있는 화락조가 어떻게 유통된 건지 다 봤거든요.
"아까 잠깐 봤어요."
"드시고 가실래요?"
"네. 어… 두 마리요. 포장 되나요?"
"되지요."
마타샤는 기다려줄 것을 요청하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화락조 두 마리.
이러다가 살이 갑자기 확 찌는 게 아닐까 싶긴 한데, 지금까지 굶었던 거 생각하면 이 정도로는 안 찔 거라고 생각한다.
개소리 맞다.
넘겨라 그냥.
포장된 화락조들을 받아들고 델라즈의 저택으로 날았다.
뭔가, 아까 내가 고생을 시킨 것 같아서 음식 나눔이라도 좀 하려고.
아까 한 번 의도치 않게 엿을 멕여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신분증으로 문 따고 들어가면 되는데, 이번엔 정문에서 문을 노크했다.
똑똑, 하는 소리가 세 번 울리니 그제야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문이 열려서 보인 델라즈의 눈은 '얜 또 왜 왔어' 하는 눈이었다.
"아재, 밥 안 먹었죠?"
"그건 뭐냐?"
"화락조 튀김. 두 마리 사왔는데 같이 먹을래요?"
화락조 튀김이 담겨 있는 봉투를 내밀어보였다.
델라즈는 그로부터 느껴지는 정신나간 냄새에 벙찌더니 나를 저택 안으로 들였다.
"뭐 하고 있었어요?"
"편지 쓰고 있었다."
"원로원으로? 아직도 쓰고 있어요?"
"그래. 대체 뭐라고 보고하면 될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지금 좀 많이 꼬였어."
식탁에 화락조를 올렸다.
"꼬여요? 뭐가요?"
"넌 대외적으로는 내 제자잖냐. 진실을 아는 사람은 너, 나, 그리고 아타나시아 뿐이지."
"그렇죠."
"그럼 네가 노바를 이어받았으면 누구한테 이어받았겠냐.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어, 음… 아저씨?"
"그래. 나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근데 얼마 전에 그게 꼬여버렸다."
"어떻게요?"
"네가 메티브보다 노바의 격이 높다는 게 증명됐잖냐. 내가 메티브 밑인데, 내 밑인 네가 어떻게 메티브보다 높냐 이거지."
"뭐야, 아저씨 메티브보다 낮아요?"
"8서클은 당연히 내가 높다. 하지만 7서클은 낮아. 격이라는 게 서클의 벽을 넘지 못한다."
요컨대 모순이 발생했다는 소리지?
확실히 말이 안 되긴 안 되네.
"근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뭐가 또 있어요?"
델라즈의 낯빛은 결코 좋지 못했다.
"내가 실수를 했어."
"실수?"
"원로원에 편지를 돌린 거 말이다. 다른 놈들은 당연히 내가 명예를 준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너에게 명예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아냐는 편지를 돌려버린 거다."
"아니. 뽀록났네?"
"그거에 더해서 메티브의 그 격에 대한 발언까지."
"…비단 아저씨의 잘못만 있는 건 아니네."
"이해해줘서 고맙구나."
"아저씨는 그냥 확인사살만 한 거네요. 잘 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는데."
그럼, 내가 델라즈의 제자가 아니라는 게 뽀록날 위험이라는 거지?
근데 제자 컨셉 그거, 내가 요관을 먹어치운 당사자가 아님을….
어라, 잠깐.
"아저씨, 그럼 나 주웠을 때도 보고했어요?"
"그렇지."
"뭐라고 보고했어요?"
"요관에서 한 소녀를 주웠다고."
아.
"아, 이, 멍청한 아저씨야. 날 주웠다고 보고했으면서, 비밀리에 키우던 제자라고 해버리면 어떡해?"
델라즈가 표정을 굳히더니 고개를 숙였다.
"시발…."
"이 아저씨 욕도 하네."
"그럼 나도 사람인데 하지. 이걸 어떡하냐."
"뭘 어떡하긴. 다 꼬였네. 생각해보니 메티브가 노바 누구한테 이어받았냐고 했던 것도 전부 다 알고 있었다는 소리네요."
처음부터 따져보자.
나는 요관에 쓰러져 있었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홀을 먹어치웠다.
쓰러져 있는 날 보고 델라즈가 구출해왔다.
델라즈는 그런 나를 '요관에서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라며 보고했다.
요관의 홀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내가 흡수했다는 것을 숨기고 불문에 부쳤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냥, 홀은 우연히 사라졌고, 요관에서 사람 하나를 구했다, 로 이야기가 끝날 수 있었는데.
이 멍청한 아저씨가 날 주웠다고 보고를 한 걸 잊어먹고 나를 제자라고 주장을 했다는 거다.
"적어도 내가 아저씨 제자 아닌 건 원로원의 모두가 알겠네요."
"그것만 알겠지?"
"아타나시아 입이 무거운 이상 물증은 없으니까, 근데, 그래도 의심은 할걸요?"
"다들 알면서 아무 말도 안 한 거였어…."
"생각해보니 무리네 아예. 주웠는데, 비밀리에 키우던 제자다! 다른 원로원들 입장에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어요."
"닥쳐라."
"왜 나한테 지랄이람. 아타나시아가 존나게 착한 거네요."
하하, 존나 꼬였다.
"어떡해요 그럼?"
"어떡하길 바라냐."
"어차피 제자라고 속이긴 글른 것 같고, 홀 먹은 것만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말처럼 쉽냐."
"제자 아닌 거 커밍아웃 해버리고 사실대로 말해요 그냥. 어차피 요관 안에 쓰러져 있던 걸 구했다는 걸 보고한 시점에서 끝났어요."
델라즈가 머리를 감싸쥐었다.
"나야 상관없긴 한데, 넌 괜찮겠냐."
"내가 홀을 없앴다는, 먹어치웠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내가 원래 남자였던 걸 입증할 방법이라도 있나? 그리고 이미 다 끝났다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어떻게 7서클이 되었냐는 말에는 뭐라고 대답할 거냐."
"요관 계속 뚫었습니다."
"…네가 발견되기 이전에 네가 뭘 하고 살았는지, 그런 기록은 하나도 써먹을 수 없다. 그래도 괜찮냐?"
"나 조질 생각이면 진작에 조졌을걸요?"
허세나 억측이 아니다.
원로원은 내가 델라즈의 제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내가 요관에 쓰러져 있던 사람임을 알며, 요관의 홀 또한 '우연히' 그 시기에 맞물려 사라졌다는 걸 안다.
누가봐도 내가 범인이다.
그럼에도 뭔가를 해오지 않는다는 건, 별다른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거 아닌가.
"노바 이어받은 것도 못 숨기죠? 그럼 그냥 노바한테 이어받았다고 전부 다 까요."
"언제, 어디서 이어받았냐고 물으면 어떻게 할 거냐."
"그건 나도 모르는데 뭘. 사실대로 말해야지."
"노바를 찾는 데 네가 일조해야 할지도 모른다."
"원로원 들어가는 데 가산점 주면 할게요."
어깨를 으쓱였다.
저게 내 진심이다.
"그럼, 정리해봅시다."
에레브는 델라즈의 제자가 아니다.
요관에서 구출한 소녀이다.
에레브가 쓰러져 있던 곳은 여섯 번째 요관의 홀이 놓여 있을 곳 바로 앞이다.
그 시기에 맞물려 델라즈가 나에 대한 것과 홀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고했다.
어차피 원로원은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추측해내고 있을 것이다.
메티브의 '누구한테 노바를 이어받은 거냐' 라는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제자 아닌 거 커밍아웃하고, 요관을 내가 건드렸다는 건 그대로 숨기고, 노바의 명예를 노바한테 직접 이어받은 것 같다는 추측을 전달한다.
"맞죠?"
"그런 것 같다."
델라즈가 수첩에 글을 적어내려갔다.
"아마도 나중에, 너의 격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있을 거다."
"어떻게요?"
"원로원에도 노바로부터 직접 이어받은 놈이 있어. 그놈이랑 리사이클이라도 시켜보겠지."
"내가 진짜 노바한테 이어받은 거면 입단 가산점이라도 주나요?"
"모른다."
딱히 그것 말고는 중요성을 못 느끼겠는데.
"아저씨, 내가 노바를 누구한테 이어받았는지는 왜 계속 확인한 거에요?"
"암만 생각해도 노바 본인한테서 이어받은 게 아니면 말이 안 돼서 말이다."
"내가 확인사살을 시켜준 거네."
"그런 셈이지."
그럼 결국, 내가 노바한테 직접 명예를 수여받은 건 거의 기정사실인가?
정작 나는 기억을 못 한다는 게 넌센스지만.
"정리 다 됐네요. 화락조나 처먹어요. 나도 다 먹고 갈라니까."
"말이 왜 이리 과격해졌냐."
"응?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게 생겼나?"
빙그레 웃어보였다.
"서약에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지 죄다 꼬일 뻔했잖아요."
"어차피 우리 조건도 안 읊지 않았냐."
"지금 읊을까요?"
"미안하다. 최대한 잘 처리해보마."
그럼 그래야지.
나는 만족스럽게 화락조 다리를 뜯었다.
"저녁 먹으러 와서 이게 웬 날벼락이야."
"맛은 있구나."
"이거, 앞으로도 먹을 수 있으려나요? 유통 아예 끊기는 거 아닌가."
"뭐가 문제냐. 네가 직접 잡아다줘."
"귀찮은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도 그런가.
나는 돈을 받아봤자 쓸 데도 없고, 그냥 지금처럼 가끔 락토 가서 잡아다주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무엇보다 놓칠 수 없다.
이 맛을.
현실의 치킨과는 비교가 안 된다, 비교가.
한 마리를 다 위장에 욱여넣고 일어났다.
"나 갑니다."
"원로원 가야 할 때 부르마."
"그, 격 대조?"
"그래."
"알겠어요."
빡치라는 의미에서 창문을 깨고 날아오를까 생각도 했지만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어느새 어둑해진 레블의 밤거리를 날아올랐다.
'내일은… 길드 의뢰 좀 해결해야지.'
혼자서.
애들 가르치기 위해서 낮은 서클 마물들도 좀 자세히 알아놔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