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030
처음에는 학생들이 분기탱천하여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슬라임들이 의외로 똑똑했기 때문이다.
이건 나도 고려를 못했는데.
모든 속성이 속성 별로 카운터를 당하고 있다.
앨버트로 예를 들자면, 온몸이 액체로 뒤덮여 있다.
방어에 신경쓰지 말랬더니만 아예 몸을 내주면서 싸우고 있군.
"푸에고!"
하지만 슬라임은 자기 몸속의 내장을 뿜어내 싸운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한 것은 학생들.
결국 10분 정도가 지나지 슬라임 한 무리가 전멸했다.
학생들 중에서는 유독 지친 놈도 있고, 멀쩡한 놈도 있다.
마나량의 차이이거나 재능의 차이이리라.
"잠깐 쉬고, 마나수정 복용합시다."
학생들이 저마다 백을 열어 마나수정을 복용한다.
이제는 내가 지적할 차례.
"다 좋습니다. 좋은데, 굳이 1서클짜리 5원소 마법만 쓸 필요가 있었을까요?"
예를 들어서 2서클 마법 중 마데라.
바람속성 슬라임은 공기를 뿜어내며 빠른 이동속도를 보이는데, 이런 건 굳이 토구(土球)를 연사할 필요 없이 나무인 마데라로 붙잡고 흙으로 감싸서 압축시키고 죽이면 되는데, 얘네는 그런 걸 쓰지 않고 정공법으로 나가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1서클들은 쓰기에 무리가 오고, 2서클들은 경험이 부족하다.
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5원소 마법을 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고작 슬라임 열댓 마리에 이렇게 고전해서야.
심지어 얘네 아까 공략법도 배워서 대충은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른 걸 쓰기가 어려우면 마나를 두르고 신체를 강화해서 박투술로 싸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건 생각 못 했다는 듯 학생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는 앨버트를 한 번 흘낏거리고 다시 마나를 감추었다.
"또 옵니다."
"몇 마리 해치워야 하나요?"
"딱히 마릿수는 정해진 바 없습니다. 대신 얼마나 많이 죽였냐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죠."
"보수라 함은…?"
"레블. 돈으로 줍니다."
금전이 걸려 있다는 말에 학생들의 눈에 활기가 돈다.
경험만 얻을 뿐 아니라 돈까지 준다는데 없던 의욕도 솟을 만하지.
확실히 첫 번째와는 다르게 학생들이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마나를 효율적으로 쓰라는 내 가르침을 조금은 기억을 하는 건지, 마나를 일점에 모아 유효타격만 노리고, 마나를 낭비하는 걸 막기 위해 마나를 둘러서 주먹으로 친다.
"으야압!"
개중에는 스태프로 슬라임 뚝배기를 깨는 학생도 있다. 무서운 놈이다.
나도 저건 예상 못 했는데. 저게 바로 힘법사인가?
"레건!"
물속성으로 추측되는 학생이 레건을 영창했다.
2서클 마법으로서, 저것도 템플릿이다. 물을 세밀하게 나눠 비를 뿌린다.
순식간에 필드의 불속성 슬라임들이 약화된다.
"아쿠아!"
"테라!"
그걸 눈치챈 다른 학생들이 불속성 슬라임을 덮친다.
화마(火魔)를 뿜어내며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슬라임은 이윽고 껍질만 남아 죽었다.
나는 다가가 그걸 주워들었다.
"일레트로닉!"
물속성과 전기속성은 어찌 보면 서로 카운터를 친다고 볼 수 있겠다.
더욱 정확하게는 물속성이 불리하긴 한데, 물속성이 작정하고 동귀어진을 목표로 하면 전기속성도 피해를 본다.
저것처럼 말이지.
"아으악?!"
물속성 슬라임은 감전되면서도 몸을 학생에게로 날렸다.
학생은 그걸 스태프로 야구공 쳐내듯이 강타하여 멀리 날려보낸 다음, 다시금 일레트로닉으로 마무리를 날렸다.
역시 껍질만 남았고, 그것 또한 주워들었다.
"푸에고!"
앨버트는 속성을 카운터치라니까 카운터를 당하고만 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불속성만 사용하고 있다.
"파이어 볼!"
"오."
그새 저걸 익혔네. 2서클 마법, 파이어 볼이다.
이 또한 불을 뿜어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불을 쪼개내듯이 나뉘어 투척무기로 만들어버린다.
앨버트는 그걸 만들어다가 던지고, 또 던진다.
슬라임들은 그걸 직격당해 외벽이 녹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푸에고!"
앨버트는 그 틈을 녹이지 않고 푸에고의 출력을 땡겨 슬라임들을 구웠다.
외피가 노릇하게 구워지는 걸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것도 챙겼다.
아까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그래도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는 걸까, 가르치고 경험하니까 실력이 확확 느네.
얘네는 앨버트처럼 경험을 많이 하면 빨리 늘 거다.
음, 갑자기 걱정되네.
나는 길드 의뢰 해결을 장기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현장체험학습이라는 게, 매일 하는 게 아니잖는가?
잠깐 하고 대련으로 보충하려고 했는데, 만약 얘네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마물 때려잡겠답시고 길드 찾아오면 어떡하지.
- 내가 애들 잘 챙기라고 그랬지
문득 학생들이 다치고 델라즈가 이렇게 내게 화를 내는 광경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오, 제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길.
애들한테 신신당부해야겠군.
"교수님?"
"아."
상념에 빠져 있던 탓에 학생들이 슬라임을 전부 잡은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 잡았네요?"
"나름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긴장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모험가가 된 마법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잘 했다는 의미에서 나한테 말을 건 학생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슬라임 사체들을 챙겼다.
"교수님, 그건 왜…?"
"여러분 마물 사체 먹어본 적 없죠?"
"마물, 사체, 먹어요…?"
경악이 생생히 전해져온다.
"이거 좀 맛있…는 것 까진 아닌데 먹을 수 있어요."
다른 속성들은 전부 태우고 물속성 슬라임의 사체만 챙겼다.
다른 놈들도 먹을 수 있긴 한데 잘못하면 속 버린다.
나는 물속성 슬라임의 사체를 한 입 베어물었다.
안쪽의 끈덕한 점액질은 전부 빠져나갔기에 탱글한 감촉의 외피만이 내 입속에서 씹힌다.
학생들은 미친 년 보는 듯이 날 보고 있지만.
"진짠데."
거짓말이나 농담이 아니다.
비상식량 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요관 안에는 일반 슬라임이 아니라 자이언트 슬라임이나 가시 돋힌 슬라임, 점액질이 아니라 산성용액으로 채워진 슬라임 등 미친 놈들만 있어서 먹지 못했다마는, 그냥저냥 모험하면서 먹기에는 적합하다.
슬라임 사체는 점액질이 모두 빠져나가면 쉽게 녹는다.
부피가 커도 어차피 뱃속으로 들어가면 전부 녹아내리기 때문에 물이라고 취급하면 된다.
배가 부른 건 매한가지이긴 한데 조금 더 뱃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작은 슬라임 하나를 전부 먹어치우고 학생들에게 나머지를 건넸다.
다들 하나씩 받아들고서는 꺼려하고 있지만, 앨버트가 나서서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와…."
다른 학생들이 이를 보고 감탄한다.
아, 앨버트가 먹는 거 구워진 놈이네.
저건 또 색다른 맛이다.
앨버트는 반신반의하던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맛이, 없어?"
맛없다면서 미소짓는 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학생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감을 확인한 앨버트가 황급히 말을 고쳤다.
"맛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그냥, 물 같아."
굳이 현실의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녹는 물떡이라고 표현할 수 있음이라.
나머지 학생들도 조심스레 사체를 입에 가져다댔다.
"하움."
천천히 음미하며 씹는 놈도 있는가 하면 바로 목구멍으로 넘기는 놈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표정이 오묘하다는 것이다.
마물의 사체를 씹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고 물을 마시는 느낌이니 그럴 수밖에.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요. 물배 찹니다. 어차피 놔두면 녹아내려서 물 되니까 남은 건 땅바닥에 버리면 됩니다."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그래서 슬라임은 보통 많이 족치진 않는다.
이번에 슬라임 토벌 의뢰가 들어온 건 개체수 조절이겠지.
슬라임이 그만큼 많이 불어났다는 뜻.
'…얘네도 양식하나?'
마물이 많다는 걸 들을 때마다 양식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만 늘어난다.
하지만 슬라임 따위 양식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액질을 어떻게 활용하는 방법이 생겼나?
"다들 마나수정 복용하고, 이번에는 좀 색다른 놈을 잡아볼 겁니다."
"색다른 놈이요?"
"여러분 싸울 때 봤는데, 플룻래빗이 좀 있더라고요?"
동족이 아니면 뭐가 보이든 바로바로 도망치는 놈이다.
"얘네 잡으면서 명중률 좀 높여봅시다."
**
그렇다고 학생들한테 숲속을 달리면서 잡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조금 커다란 수영장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서 안쪽에다가 플룻래빗을 잡아다가 넣어놨다.
한 서른 마리?
"얘네가 회피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요? 이거 잡아볼 겁니다."
플룻래빗이라 함은, 뭐가 어찌 됐든 토끼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마나가 느껴지기에 마물(魔物)이라고 부를 뿐,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만 하기에 인간 입장에서는 일반 토끼가 맞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귀여워…."
얘네가 토끼를 보고 귀여워하면서 잡지를 않고 있다는 말이다.
"여러분? 우리 이것만 잡고 다시 슬라임 잡을 건데요?"
"하지만 교수님, 얘네 진짜 귀여운데요…."
"음,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얘네도 마물인데요?"
내 말을 부정하진 않겠지만 귀여워서 건드리지도 못하겠다는 건가.
어쩔 수 없지. 나는 초강수를 두었다.
"여러분이 스물다섯 마리를 잡으면, 나머지 다섯 마리는 아카데미에서 키울 수 있게 해주겠습니다."
내 말에 학생들이 눈을 번뜩였다.
"어떻게요?"
"축사라도 하나 만들면 되죠. 사람 보면 도망만 가는 놈들이니 잘못하면 스트레스로 죽긴 하겠지만, 관리 좀 잘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스트레스라는 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나는 아니까.
솔직히 말하면 플룻래빗들이 닷새는 버틸까 의문이긴 한데.
내가 그것까지 신경써줄 이유는 없지.
그제야 학생들이 스태프를 꼬나쥐고 마나를 방출했다.
과연, 인간이란 무서운 생물….
"후우…."
결국 플룻래빗은 네 마리만 남고 전멸했다.
동족의 죽음을 면전에서 목격했기 때문인지 남은 놈들은 도망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도 않고 오들오들 떨고 있다.
나는 인카르너로 바구니를 구현해 그것들을 몽땅 챙겼다.
음, 바뀐 총장이 허락해주면 좋겠는데.
아, 아니면 매직미러 같은 게 여기도 있으려나.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는데 안에서는 바깥이 안 보이는 그런 거.
마광등만 달아주면 그럭저럭 살 만할 거다. 알아봐야겠다.
"세 번째 페이즈 갑니다."
또다시 슬라임들이 몰려왔다.
학생들은 두 번째보다 더욱 진보된 실력으로 슬라임들을 때려잡았다.
마나부족으로 땀을 흘리던 아이들도 이제는 여유로운 듯했다.
마나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에 좀 익숙해졌나본데.
"하압!"
두세 명은 아예 힘법사가 되기로 작정했는지 마나를 주먹에 두르고 슬라임을 말 그대로 때려잡고 있다.
그놈 참 억세군.
세 번째 페이즈 또한 앨버트가 스태프로 홈런을 날리는 것으로 끝났다.
"잘 했습니다. 이제는 방어를 해보죠."
학생들의 몸에 둘러진 실드를 전부 해제했다.
"제가 여러분들 몸에 둘렀던 건 3서클, 실드입니다. 바깥쪽과 안쪽 둘다 균등하게 막을 두르는 마법이죠."
나는 앨버트에게 설명했던 것과 똑같이 설명했다.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실드가 오히려 좋지 않다는 말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위험하겠다 싶으면 제가 전부 때려잡아줄 테니, 이번에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연습해보죠."
이전이었으면 긴장에 떨었겠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학생들은 투지를 불태웠다.
마나수정을 복용하고, 네 번째 페이즈.
"흐읍!"
학생들은 슬라임의 공격이 마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공격만 가한다는 것을 깨우친 듯했다.
바깥쪽에만 막을 두르고 마나를 분배하여 싸우기 시작했다.
"…이거 굳이 오래 끌 필요 없겠는데."
이제 한 시간 반 좀 안 됐는데 적응이 이렇게 빨라?
좀 높은 애들을 잡아봐야 하나.
학생들은 스태프를 영창용 도구가 아닌 타격용 둔기로 활용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확실히, 음. 저것도 좋은 공격 수단이긴 한데. 너희 명색이 마법사 아니니.
나처럼 박투술을 주로 사용할 거면 저게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다 잡았어요!"
앨버트가 마지막 슬라임을 다시 홈런으로 날려보낸 후, 학생들은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어쩐지 칭찬을 바라는 듯한 모습에 한 명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에헤…."
어째 아이들이 이 학생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마는.
이거 괜히 성추행 추문이나 편애한다고 소문나는 거 아닌가 몰라.
나는 손을 바로 뗐다.
"여러분은 배움이 빠르네요."
학생들의 얼굴에 더욱 화색이 돌았다.
"음, 여러분은 이걸로 하는 게 서클 올리는 게 더 빠르긴 할 텐데."
말해? 말아?
앨버트에게 말했던 것처럼.
"여러분은 승단시험 성적이 목표에요, 아니면 서클 올리는 게 목표에요?"
학생들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 또한 예상한 바.
"아니 뭐,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 나는 앞으로도 마물 때려잡아보고 싶다 손?"
모두가 손을 들었다.
좋아해야 되는 건가.
"알겠습니다. 어차피 개교 때까지는 좀 남았으니까, 주기적으로 나오도록 하죠."
내가 정하는 거지만.
"게시판에다가 추가 모집글 써놓을 테니까, 여러분도 데려올 사람 있겠다 싶으면 데려오세요."
막 이삼십 명까지는 힘들겠지만, 음. 모험가증만 발급시켜주고 애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우라고만 해도 잘 할 거다.
"복귀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