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008
"안 먹어요?"
나는 열심히 퍼먹고 있는데 막상 내가 데려온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면서 안 먹으니 조금 불편했다.
사람 먹는 거 그렇게 보니까 부담스럽다.
"…잘먹겠습니다."
내가 사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인사를 한담.
쟤가 인사를 하거나 말거나 나는 묵묵히 퍼먹었다.
먹으면서 천천히 둘러본 바로는, 확실히 사람이 건물 내에 차기 시작했다.
점심 때만 해도 휑하던 건물이 지금은 붐빈다.
앞으로 내가 맞이할 학생들이라 생각해 얼굴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앨버트."
"네?"
나는 저 두 명을 가리켰다.
"쟤네 누군지 알아요?"
"…에르와 노브네요."
옳거니.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아카데미를 다니는 게 맞았구나.
너희를 합법적으로 조질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이다 얘들아.
저 두 년의 웃는 얼굴을 어떻게 뭉개줄까 고민하며 얼굴을 뜯고 있는데 거슬리는 부분이 잡혔다.
"앨버트, 보통 용돈 얼마 받아요?"
"네? 음… 저는 여자도 아니고, 명문 태생도 아니라서요. 용돈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한 달에 기껏해야 50레블입니다."
"잘 사는 애들도 보통 천 단위로 뛰진 않겠죠?"
"…아예 없다고는 못 하겠네요."
가로되 있긴 있음이라.
"에잉."
괜히 골려줄 생각에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으니 마나수정이 떠올라 기분이 잡쳤다.
10레블밖에 안 하던 걸 쟤네는 나한테 두세 배로 팔아먹었지.
나쁜 년들. 어차피 지금은 못 조진다. 신경 끄자.
"먼저 갈게요."
밥을 다 먹고 같이 가겠다는 앨버트를 만류하고 먼저 일어나서 훈련실로 향했다. 아까 그걸 다시 해보기 위하여.
수련실에서 할까 했지만 사람이 없는 만큼 공간이 더 넓은 훈련실이 낫지 않을까 싶다.
'술식은 외웠으니까… 무영창으로도 되나.'
마음속으로 외웠다. 노바, 와즈.
몸이 옅게 발광하며 마찬가지로 날개가 돋아났다.
크기는 좀 작아졌지만.
'…크기는 어쩔 수 없나.'
영창으로 하면 더 커지겠지 뭐.
개의치 않았다.
리젤까지 영창하고 날개짓했다.
몸이 순식간에 붕 떴다.
'이거 중독되겠는데.'
전이마법이 금지된 만큼 날 수 있는 건 상당한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달리는 것도 신체강화하면 빨리 달릴 수 있긴 한데, 도심 한복판에서 그럴 수는 없으니까.
이세계는 영공의 개념도 없으니 날아도 문제는 없을 거다.
돌고 꺾고 솟아오르며 나는 방법을 체득 중인 때였다.
"와, 마녀 같다."
"…?"
입구에 익숙한 두 명이 보였다.
에르와 노브. 갑자기?
그보다 마녀라니. 거의 욕인데 저건.
하지만 화내서 득볼 거 없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대꾸해줄까 싶었지만 무시하고 나는 데 집중했다.
"모자만 썼으면 마녀네."
참고로 에르만 말하고 있다.
노브는 그리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평소엔 조용하다가 싸울 때만 되면 쌍욕의 화신이 되는 힘숨찐이다.
나는 땅에 착지했다. 두 번째의 에르의 말에 감정이 실렸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자존심 하나는 굳세서 한 번 무시하니까 억하심정 섞는 거 봐라.
"세쉬."
몽글몽글 맺혀 있던 땀을 날려주고 둘의 앞에 가서 섰다.
"와, 방금 마법 뭔가요?"
"마나로 땀 닦은 거에요."
정확하게는 불순물 째로 허공에다 증발시켜서 뿌린 거다. 꽤 유용하지.
"노바라고 하던데, 아니에요?"
"맞아요."
"근데 노바 영창 안 해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말하기로 했다.
"7위계 마법 아래면 굳이 노바 붙일 필요는 없어요."
극한의 효율을 추구할 때나 붙이는 게 노바의 명예다.
땀 한 번 닦자고 쓸 이유는 없다.
"그렇구나, 이번에 새로 들어오신 교수님이죠? 저희 친하게 지내요."
에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라도 하자는 건가 싶어 맞잡았다.
"근데요, 교수님."
"네?"
"아무래도 좀… 그런 애들이랑은 어울리지 마요."
그런 애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요?"
"아까 밥 같이 드신 애요."
"앨버트?"
왜지.
"불쌍해서 알려드리는 거에요. 교수까지 달 사람이면 천한 놈들이랑은 어울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천한 놈들이요?"
"걔 노비 태생이거든요. 썩은 핏줄이죠."
에르가 꺄르르 웃었다.
"우리 같은 상류층이랑은 격이 다른 애들이잖아요? 괜히 어울렸다가 이상한 사건에라도 휘말려봐요. 그것 만큼 끔찍한 일도 없다니까요?"
맞잡은 손에 점점 악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 친하게 지내요. 네?"
요 깜찍한 년 보게.
에르 얘가 얼마나 높은 애인지는 몰라도 4서클이면 상류층 중에서도 상류층에 속할 텐데.
이런 애가 격을 운운하면서 앨버트를 배척시키려고 하는 거 보면 앨버트가 격이 딸리는 놈은 맞는 것 같다.
심지어 지금 견제까지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마나가 둘러진 손에 의한 압박이었다.
마나로 신체를 강화한 힘으로 내 손을 쥐어짜고 있다는 뜻인데, 그게 통할 리가.
내 낯빛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않자 에르의 웃음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손을 뺄려고 하길래 이쪽에서 꽉 잡아주었다.
"하?"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는 에르.
나는 느긋하게 에르의 얼굴을 구경하며 악력을 더해갔다.
처음에는 손을 잡아당기기만 하던 에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짜증으로 시작해서, 고통에 물드는 방향으로.
"캔슬…!"
악으로 버티다가 슬슬 안 되겠는지 캔슬을 외쳤다.
당연하지만 내 힘은 풀리지 않았다. 술식을 사용한 게 아니라 단순히 마나만 둘렀기 때문에.
애초에 술식이더라도 풀릴 일이 없겠다만.
에르의 표정에 당혹감이 물들었고 손을 빼내려는 시도는 곧 발버둥으로 바뀌었다.
"노브!"
"익스플로─"
에르의 외침에 대답하듯이 노브가 영창했다.
나는 에르를 밀어냄과 동시에 손을 놓아주고 캔슬을 무영창했다.
"에?"
분명히 발동되어야 할 마법이 사라지자 당황한 노브.
광범위 마법을 저리 막 질러대면 어쩌자는 거야? 아카데미 터뜨릴 일 있나.
…아니, 그래도 아카데미인데 이 정도로는 안 터질려나?
얘네도 생각이 있는 이상 건물 터질 짓은 안 하겠지. 괜히 말렸군.
"내가 누군 줄 알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에르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나는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요. 친구분이 좀 위험한 걸 쓰려고 하길래 다칠까봐 밀었어요."
"하."
에르가 내 손을 쳐내고 홀로 일어났다.
"손 어쩔 거에요?"
"뭐가요?"
"꽉 잡아서 아프잖아요!"
마음속으로 영창했다. 힐.
"안 아프죠?"
"아니, 사과를 하라니까요?"
"그쪽이 먼저 했는데요?"
"난 그렇게 세게 안 잡았다고요!"
얼씨구.
왜 마녀가 해충 취급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난 성숙한 반오십 어른, 성인도 안 된 민짜한테 말로 이겨서 정신승리할 생각은 없다.
"미안해요."
"미안하면 뭐 어쩔 건데요?"
바라는 것도 참 많다.
"원하는 거 있으세요?"
"한 번만 봐줄게요. 천한 놈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기회를 줄 테니 제 아래로 들어오세요."
꼴이 적잖이 우습다.
학생이 교수를 보고 자기 아래로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말하다니.
하도 우스워서 진짜로 웃어버렸다.
"뭐가 웃긴데요?"
"아니, 안 웃겨요? 내가 교수고 너희가 학생인데, 나보고 밑에 들어오라?"
"아론 밑에 들어오라는 게 우습다고요? 기껏해봤자 5서클이면서. 말만 교수지 우리랑 다를 게 뭔데?"
이젠 존댓말조차 아니게 되었다.
애초에 너희 내가 노바인 거 안 믿고 있었구나.
아까는 노바냐고 물어봤으면서 갑자기 5서클이라네.
그래도 굳이 서클을 보여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
여기는 꼴랑 우리 셋밖에 없다.
얘네를 요리하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
얘네한테 가진 내 원한은 그렇게 얕지 않다.
엿을 멕여도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멕여야 얘네가 쪽을 더 팔 거 아니냐.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조심하세요? 델라즈 교수님 대타랍시고 들어온 것도 짜증나는데."
억양 하나하나가 가관이다 아주.
사람을 열받게 하는 재주라도 있는 걸까.
나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조심할게요."
"…가봐요."
에르는 그렇게 말하더니 큰 로브를 펄럭이며 노브를 대동하고 나가버렸다.
나보고 가라더니 지들이 알아서 나가는군.
알다가도 모를 년들이다.
그나저나, 정보를 하나 얻었다.
앨버트가 노비, 즉 노예 태생? 나한테 들러붙는 이유가 거기 있었구만.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직 아론─에르와 노브의 가문 아닐까─에 물들지 않았을 거다. 물들기 전에 좋게 보여서 내 편을 하나라도 확보하자. 그를 위해서 친분을 만들자.
대충 이런 게 앨버트의 노림수 아니었을까.
어째 나에 대한 정보가 다 다르게 퍼져 있는 것 같은데.
앨버트는 내가 교수의 제자인 줄로 알고 있고, 에르와 노브는 내가 교수인 걸 알고 있다.
정보력의 차이인가?
또 그렇다면 내가 델라즈의 제자라는 건 왜 모르는 거지. 알고 있다면 이렇게 굴진 않을 것 같은데.
게다가 쟤네는 내 서클도 모른다.
'정보력이 있긴 있는데 얕고 생각이 없고 개싸가지라.'
총체적 난국도 이런 게 다 있나. 등교날이 기대된다.
현실 살면서 한 번도 기다려진 적 없는 게 등교날이건만, 이세계에 와서, 그것도 교수직으로 서서 기다리게 될 줄이야.
내가 델라즈의 제자이자 그를 대신할 교수라는 말을 듣고 쟤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와즈."
나는 잠시 접어두었던 날개를 펴고 창밖으로 날아올랐다.
기숙사까지 거리가 얼마 되진 않으니까 굳이 노바를 붙일 필요는 없겠지.
예상대로 문제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하, 기대되네.'
이제 한 이틀인가 남았나?
이틀만 지나면 벙쪄진 걔네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거지.
굉장히 기대된다.
"세쉬."
창에 몸을 걸치고 입을 벌려 세쉬를 영창했다.
입 안의 불순물이 증발하며 허공에 뿌려진다.
"푸에고."
떠오른 불순물들이 순식간에 불타 없어진다.
3서클을 달고 나서 사용하게 된 마법인데, 양치질 대용으로 쓰고 있다.
이것 만큼 편한 게 또 없다. 씻는 것도 귀찮아서 이걸로 대신한다.
와즈를 해제하고 침대에 엎어졌다.
묘한 흥분감이 몸을 감싸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거 참….
'기분 좋네….'
에르와 노브가 나한테 지랄을 하기 시작한 건 내가 3서클을 달았을 때, 그러니까 3년 반 정도 전부터였다.
요관 공략을 위한 보급용 마나수정을 구하지 못해 마약상까지 찾아갔는데 그런 내게 착한 웃음을 지으며 갖고 있는 거라도 팔아주겠다며 딜을 걸었지.
나는 수락했고.
처음에는 20레블, 그리고 다음부터는 가격을 잘못 알고 있었다며 30레블을 주문했다. 나야 가격을 모르니까 주는 대로 줬고.
애초에 그런 빈민가에는 유통조차 되지 않았기에 되팔기에 되팔기가 반복되어서 구매하는 방식이었는데, 다들 10레블에서 15레블에 팔아도 중간에 인건비가 더 소모되는 건가 싶어 그냥 내주었다.
15레블이면 빵 네 덩이는 더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아무리 돌빵이라지만 빵은 빵이다.
요관에서 하루 더 살아남을 수 있는 걸 저 년들이 몇 번이나 등쳐먹은 거다.
내가 쟤네를 곱게 볼 이유가 없지.
아론이라고 했나? 쟤네 말하는 뽄새를 보면 이미 대부분의 교사가 쟤네 아래에 놓여 있는 것 같은데.
델라즈도 그에 포함되나?
베르노바인 만큼 그건 아닐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내일 확인을 해봐야겠다.
최고조에 달한 이 기분으로 잠을 자고 싶었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니었지만 당장 큰 문제들도 사라졌겠다, 잠을 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