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007
"…마나란 달리 말하면 마법사의 몸 속에 흐르는 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기는 심장을 근원으로 해서 몸 전체에 퍼져나가며 사용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운용이 가능하게 한다. 마나가 가장 마지막에 닿는 곳은 손, 당연하지만 마나의 흐름 또한 다른 부위에 비해 적게 미칠 수밖에 없다."
사라락.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마나를 몸에 균등하게 퍼지게 만드는 기본적인 운용은 물론이요, 타격부위를 바로바로 보호하기 위해 빠른 반응속도로 마나의 집합체를 신체 이곳저곳에 옮길 수 있도록 연습해야만 한다. 또한, 체술의 경우에도 무영창으로 신체를 강화함과 동시에 마나 자체를 이동시켜 효율을 더해야 하며 유사 시, 극단적인 예로 신체 절단 등에 대비하기 위해 마나의 집합체로 신체의 혈을 틀어막는 식의 운용도 대륙력 1805년을 기점으로 필수요소로 채택되고 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상위계 술식 해독을 전제상황으로 삼을 때 이런 마나의 운용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라락.
"마나는 마법사의 몸에만 흐르는 게 아니다. 마법에 소질이 없는 자의 몸에도 마나는 흐른다. 박투술을 전투 방식으로 채택한 자의 몸에도 마나는 흐르며, 그 마나의 주인은 마나를 체술의 한 종류로 운용하는 방법을 깨우쳤을 따름이다. 따라서 마법사는 기본적인 운용을 뛰어넘어 그에 대한 응용, 활용까지 많은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술식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라락.
"서클의 운용의 경우에는 보다 복잡하다. 서클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프리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보다 많은 개수의 서클로 둘러쌓여 있는 심장에서 나오는 마나가 더 높은 질을 보인다. 따라서 마나량은 서클의 개수와 상관없이 순전히 본인의 재능에 달린 것으로, 이 또한 마나의 운용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사라락.
"원로원의 일좌를 맡고 있는 이 책의 저자, 델라즈가 현재로써는 아케즈에서 가장 많은 마나량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마나량이 적은 학생들을 위한 운용 초식도 설명해놓았으니 차근차근 따라오면 된다."
사라락.
"다음은 1806년 5위계 승단시험 술식 기출문제다. 차례차례 풀면서 보다 높은 지식과 경험을 체득하기 바람…."
흠.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몰랐던 정보가 혼합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마나의 집합체를 신체 이곳저곳으로 옮겨 타격부위의 피해를 최소화시킨다는 것.
이는 내가 몸으로 부딪히면서 터득한 기술이다.
정확하게 어떤 원리인지도 모르고 그저 아, 안 아프네? 괜찮네? 정도로 느끼고 있었더니만 이런 원리일 줄이야.
또 예를 들자면 서클이 마나의 질을 높여준다는 것.
서클이 심장을 둘러싸 프리즘 역할을 해서 보다 높은 질의 마나를 신체에 돌게 한다, 이것은 미리 알고 있던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서클을 풀어서 나오는 낮은 단계의 마나로 서클의 개수를 적게 속일 수 있었지.
'생각보다 쉽네?'
결국 최종 목표는 전투와 술식의 해독이다.
전투야 자신있는 분야고, 술식의 경우에는 요관의 함정을 돌파하며 많은 것들을 보고, 해독해왔다.
5위계 승단시험 기출문제라는 걸 확인해봐도 역시 요관의 술식보다는 쉬운 것들이다.
기본적인 중량 조절부터 마나의 구현화를 통한 창조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술식지가 준비되어 있다.
'중량 조절이야 책 들려고 했던 거고… 마나의 구현화를 통한 창조? 얜 뭐지.'
차근차근 풀어보았다.
술식의 뼈대가 되는 최외부의 도형의 모양과 필요 마나량을 표현하고 있는 주입해야 되는 마나의 농도를 관장하는 농도문양.
술식의 살과 근육에 해당되는 음독문자.
무영창에도 반응하기 위한 감응문형.
시전자의 서클의 개수를 읽는 감지정(程)과 서클 개수에 맞춰 자동으로 조절되는 사출력을 관장하는 출력문양.
그리고 이 모든것을 하나로 묶는 외골격에 해당되는 마선들까지.
하나하나 풀어보자 술식의 감응문형이 반응하며 마나가 빠져나가 허공에 구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동그란 구체만 이루고 있어서 뭔가, 싶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이거 그거네.'
마법사라는 인종이 보다 대우받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나 너클, 창 등을 보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를 만들어 보급하거나 팔 수 있는 것들이다.
마나로 이루어진 무기들은 내구성이 필요없다.
틀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그 틀을 토대로 마나만 주입하면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나는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도끼를 구현해보았다.
적색 마나가 일렁이더니 이내 노바를 상징하는 청색을 띄는 불투명한 도끼로 바뀌었다.
내친김에 모래로 이루어진 느낌의 벽을 하나 더 만들고 도끼로 찍어보았다.
푸스스, 하고 마나가 이리저리 튀며 방 안이 엉망이 됐다.
나는 썩은 표정으로 마나를 쓸어모았다.
'먼지 쓰는 느낌인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자주 사용하진 말아야겠다.
나는 마나 자체를 쏘아서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굳이 이런 걸 만들어가며 싸울 필요는 없겠지.
'하아….'
술식을 내팽개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학생들보다 지식이 딸리면 어떡하나 걱정해서 들여다본 책이건만,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굳이 진지하게 볼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5위계는 쉽고, 8위계는 어떻지.'
델라즈가 건넸던 종이뭉치의 최상단에 있는 종이를 가져와 풀어보았다.
'으응…?'
감응문형과 출력문양이 존재하지 않았다.
잘 보니 마선들마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실선으로 이어져 있다.
심지어 음독문자는 작고, 글자수도 엄청나게 많다.
농도문양이 요구하는 마나량도 장난이 아니다.
감지정은 8개의 서클을 필요로 한다.
'…이거, 가지고 있는 서클의 개수보다 그 이상을 요구로 하면 해독하기 좀 빡센 것 같은데.'
요관을 돌파할 때는 들쑥날쑥했기에 체감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좀 알 것 같다.
이게 뭐야.
마나를 술식의 필요량을 넉넉히 확보하고 나머지를 모두 뇌로 돌려 집중했다.
순식간에 지혜열이 오르며 땀이 흐른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술식을 풀어냈다.
"노바, 와즈…?"
술식이 푸르게 물들더니 내 몸에서까지 빛이 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몸 전체에서 나는 빛에 당황했지만 이내 빛은 곧 꺼졌다.
"뭐지…?"
몸에 무언가 바뀐 게 있는 건가 싶어서 몸을 둘러보니, 한가지를 깨달았다.
'날개?'
등 뒤에 날개가 달렸다.
'이게 뭐야.'
날개를 다는 마법? 별 게 다 있군.
하지만 아무리 날개를 움직이려고 몸에 힘을 줘도 날개는 요지부동했다.
뭔가 싶어서 마나를 흘려보니 그제야 내가 원하는 대로 날개가 움직여졌다.
근데 날 수는 없었다.
"…응?"
날개를 아무리 펄럭여도 그냥 펄럭여질 뿐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고, 하고 고민하다가 하나 깨달았다.
"노바, 리젤."
내가 발동한 것은 중량마법.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날개를 펄럭여보니 공중에 떴다.
"와?!"
와, 이걸 나네. 날 수가 있네? 8위계는 날개를 달아서 날 수도 있는 거야?
아니, 그럼 9위계나 10위계는 대체 뭔데? 만물창조라도 하는 건가. 미쳤군.
적어도 현실의 인간 중에선 최초로 맨몸으로 나는 데 성공한 나는 너무 신기해서 밖에서 날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나 문제가 생겨도 내 밑에 쿠션 같은 걸 마나로 깔면 되니 크게 다칠 위험은 없다.
높이 안 날면 되는 문제고.
내 방은 3층이다. 나는 창문을 열고, 조심스레 날개를 퍼덕였다.
"오, 오오."
몸이 창문에 걸친 상태에서 붕 떴다.
나는 로브를 걸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와…."
절경이다.
아카데미 건물은 6층 정도의 높이.
나는 그보다 높이 올라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
금색과 청백색이 한데 어우러져 뿜어져나오는 마광석의 빛에 옅게 발광하는 건물이 내 시야를 꽉 채웠다.
"예쁘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몰랐는데, 내려다보니까 확실히 감흥이 새롭다.
나는 은신마법을 걸고 아카데미의 공중을 날았다.
기분 좋은 스산함이 바람을 통해 얼굴에 맞으면서 기분이 업된다.
에어쇼를 벌이듯 날면서 빙글 돌아보기도 하고, 제동을 걸듯 방향을 틀어보기도 하면서 나는 법을 익혔다.
'재미있다.'
이런 게 운용인가.
와즈 하나로는 불가능한 게 중량마법이랑 같이 응용하니까 사용 가능한 마법이 되었다.
다른 8위계 마법들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아, 이거 날개에 집중하면 어떻지?'
요구치의 최소만 신체에 남기고 남은 마나를 날개에 둘러보았다.
날개의 크기가 커지고 옅은 적색으로 발광하는 게 느껴졌다.
땅을 향해 내리꽂는 것처럼 날다가, 다시 제동을 걸어 아슬아슬하게 땅에 착지했다.
"후우."
와즈와 리젤을 해제해 잔디밭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 하하."
이게 나는 거구나.
마나량을 확인해보니 별로 많이 닳은 것 같지도 않았다.
8위계 마법의 마나 요구량이 적을 리 없으니 내 마나량이 오른 게 맞는 것 같다.
은신까지 해제하고 터덜터덜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다리가 풀렸기 때문이다.
난 고소공포증이 있다.
한순간의 재미와 기쁨으로 공포를 억눌렀다지만, 조금 진정하고 보니까 무서운 건 매한가지.
적응하기 위해선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나중가면 탈것을 구현해서 마나로 엔진을 구동시키는 식의 자동차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의 얄팍한 지식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거잖아?'
묘한 흥분감이 몸을 휩싸았다.
그냥 지루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8위계 술식지를 푸는 것만으로도 몇 년을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거라면 가르칠 수 있지.'
뭐가 '운용' 이고, 뭐가 '응용' 인지 나는 깨우쳤다.
가르치는 데 소질은 없지만 느낌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음, 너는?"
벤치에 앉아 여운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런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남의 말은 안 들어쳐먹는 앨버트다.
대답하기 싫어서 그냥 무시했다.
하지만, 앨버트는 내 무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옆에 와 앉았다.
벤치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는데, 얘가 앉길래 나도 반대편 끝쪽으로 몸을 옮겼다.
다행히 옆으로 다가오지는 않는군.
"뭐하고 있어?"
"…쉬고 있어요. 그리고 반말하지 마요."
지적하고 싶던 거였지만 페이스에 말려 말을 못 꺼내고 있던 말이다.
앨버트는 멈칫하더니 말을 고쳤다.
"미안해요. 이제 곧 저녁인데 같이 먹을래요?"
하늘에 살짝 먹색이 드리워져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혼자 먹을게요."
"혹시 제가 불편한가요?"
그걸 이제 알았냐.
나는 고민되었지만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해요.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그랬네요."
"…왜 나랑 친하게 지내려고 해요?"
아 이거 반존대잖아.
말을 바꾸려고 했지만 앨버트는 쓰게 웃었다.
별 상관 안 하는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할까요?"
"네."
"어느 교수님 자제 분인지는 모르지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솔직한 놈이군.
그렇다고 좋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슬슬 귀찮아지려고 한다.
나는 놈을 떼어놓기 위해 신분증을 꺼냈다.
"델라즈 교수님 제자에요."
"어, 네, 네?"
"내 스승, 델라즈 교수님이라고요."
앨버트가 어벙하게 신분증을 받아들더니, 표정이 굳었다.
"7서클…?"
"네."
"말도 안 돼. 어떻게 노바가 학생으로…."
"저 학생 아닌데요?"
앨버트가 나를 바라보았다.
"델라즈 교수님 대타로 들어온 교수인데요?"
앨버트의 표정이 한 층 더 멍청해졌다.
멍하니 있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아, 하긴. 교수한테 무례하게 군 거니 그럴 만도 하지.
게다가 베르노바의 제자인데.
"아뇨 뭐, 신경 안 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나는 앨버트에게 손을 내밀었고, 앨버트는 얼떨떨하게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안색이 창백해진 것에 끝나지 않고 몸까지 덜덜 떨고 있다.
뭐지. 델라즈 아저씨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나.
"…밥 같이 먹어요."
하도 떠는 게 불쌍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제야 앨버트가 정신을 차렸다.
"모, 모시겠습니다."
"아뇨 그건 됐고. 그냥 배고파서 같이 먹자는 거에요."
화염으로 공중에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접시를 그렸다.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접시를 몇 번 찌르는 묘기를 보여주니 그제야 앨버트의 표정이 풀렸다.
"…신기하네요."
"서클 몇 개에요?"
"두 개입니다."
두 개면 이런 건 무리겠군. 신기해할 법하다.
나는 먼저 일어나 발걸음을 뗐다.
그 뒤를 앨버트가 따라온다.
"3서클 되면 할 수 있을걸요."
내가 처음에 했던 것도 그쯤 됐던 것 같은데.
"노력해야겠네요."
"열심히 해요. 가뜩이나 남자라 힘들 텐데."
하지만 나는 극복해냈지.
내가 극복한 건지 날 이세계에 메다꽂은 누군가가 내게 적성과 재능을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 입 무거워요."
나도 남정네가 나 수발들어줬다는 거 어디가서 떠벌리기 싫다.
좋게 받아들이고 있지도 않고.
앨버트는 안심한 듯이 한숨을 흘렸다.
식당에 들어가니 사람이 붐빈다.
점심보단 저녁이 더 붐비는 듯하다. 학생들도 꽤 있다.
휴교령이라는 게, 아카데미만 해당돼서 기숙사 다니는 애들은 식당에 밥 먹으러 나오는 건가?
나는 접시를 하나 집고 음식을 담았다.
"먹을 거 담아와요. 저기로 와요."
식당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앨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담으러 떠났다.
"그럼, 어디보자…."
이번엔 뭘 먹어볼까.
음식을 먹을수록 행복수치가 올라간다.
이게 인생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