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01
"하아, 후우."
어두운 동굴 속. 오로지 천장에 솟은 돌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마광석의 빛에 의지해서 걷기를 수 시간.
나는 이미 지쳤다.
동굴에 들어와서 본 것이라고는 딱 두 가지밖에 없었다. 마물과 함정.
그나마 마물이 상대하기 편했다.
나는 놈들은 떨어뜨려서 꿰뚫고.
걸어다니는 애들은 머리를 부수고.
수영하는 애들은 물 째로 얼리고.
땅 속을 오가는 애들은 구멍 속을 화마로 채워 태워죽였다.
문제는 함정.
이 요관(妖館)──가로되 던전의 설계자가 어느 정도의 인격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바닥이 꺼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구시대적인 함정은 물론이요, 마나를 태우고 시신경을 마비시키는 독가스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제치고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야만 했다.
아무리 내가 이 세계에서 쌓아온 것이 많다고 해도, 현실에 두고 온 돈의 높이보다 높을 리 만무했다.
코인.
22살, 내 인생에 답이 없음이 명백해진 때가 있었다.
바로 내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양쪽 모두 내 부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입양 같은 건전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내 친모는 성폭행 피해자였다.
22살, 꽃다운 나이에 서울역 노숙자에게 강간당해 잉태한 아이가 나였다.
내 친모는 임신한 사실도 모른 채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2달을 살았다.
2달.
2달이나 지나서야 나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강간범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우려고 했으나 부친이 반대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자신의 딸에게 딸을 강간한 강간범의 아이를 낳게 하느냐 물었지만 그 부친이 불살주의자다, 라는 정신나간 답변이 돌아올 따름이었다.
모친은 그렇게 날 낳았다.
낳긴 낳았는데, 나를 낳은 곳은 병원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서울역, 화장실 좌변기 칸에서다.
홀로 날 낳고 그대로 도망갔으며 나는 또 다른 화장실의 방문자에 의해 구조됐다.
구조되고 향한 곳이 병원, 인큐베이터 안.
하필이면 또 간호사의 실수로 나는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
그 바뀐 아이의 부모가 내가 부모로 삼고 살았던 사람들.
날 키운 자들이 그걸 알고 가만 있었겠는가?
바로 날 쫓아내고 친자식을 찾았다.
그래도 나를 죽이기는 미안했는지 돈 몇 푼 쥐어주고 내쫓았다.
나는 그 돈을 코인에 때려박았다.
아직 등장한지 얼마 안 된 코인이었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성공했다.
120억.
내가 코인으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성공했다.
성공했다, 라고 생각했다.
"쓰으읍, 하아."
내 계좌에 120억이 찍히는 것.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현실에서의 최후였다.
120억이라는 숫자를 보고 환희하는 동시에 시선이 암전됐고, 나는 한 동굴에서 눈을 떴다.
그 동굴이 바로 여기.
"개, 시팔, 왜 리모델링이, 이따구로 됐어!"
나는 신경질적으로 비어버린 백을 집어던졌다.
불과 수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영창용 마지(魔紙)와 보급용 마나수정으로 꽉 차 있던 백이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무게만 나가는 짐덩어리.
미련은 없다.
동굴에서 눈을 뜬 나는 필사적으로 살아남았다.
강에서 고기를 잡고, 날아다니는 새들을 잡아서 먹었다. 그렇다. 고기였다.
내가 잡았던 놈들은 고기, 즉 동물이었다. 지금만 해도 해괴한 소리를 내며 날고 걷는 마물이 아니었다.
"5년밖에, 안 흘렀는데 시바알!"
그 짧았던 사이에 동굴은 요관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현실로 돌아가서 120억이라는 거금에 몸을 파묻기 위해서는 내가 이 세계로 떨어진 구멍을 다시 찾아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맨 처음 이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곧장 동굴로 향했다.
이 세계에 떨어진지 한 달이 흘렀을 때였다.
그 한 달 사이에 안전하던 미로는 끔찍한 요관이 되어 있었다.
결국 난 발을 딛지도 못하고 도망쳐야만 했다.
5년.
5년 동안 수없이 도전했다.
생사를 넘나들며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쳤으며, 그것이 지금. 곧. 결실을 보이려 한다.
"아떤 새끼인지, 알기만 하면 모가지부터 비틀어버릴 거야."
내가 척살해야만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날 이 세계에 메다꽂은 누군가요, 나머지 하나는 멀쩡하던 미로를 요관으로 바꿔버린 누군가.
나는 날 내쫓은 한 부부보다 이 두 명이 더 원망스럽다.
"아…!"
하지만, 이제는 놓아주기로 했다.
쌍놈들이고 나발이고 현실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두 용서해줄 수 있다.
지금, 저 앞에 내가 굴러떨어진 구멍이 보인다!
"시발… 씨발…!"
감격스러움에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껴두었던 마력을 체력으로 전부 돌려버리고 구멍을 향해 뛰었다.
마나의 근원지인 심장이 미친 짓 좀 하지 말라며 고동치지만 상관없었다.
저기 들어가기만 하면 어차피 마나 따위 다 사라진다!
"내가 진짜, 흑!"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다 흘러나온다.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5년 동안 참아왔던 눈물과 설움이 폭발하면서 내 얼굴을 적신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세계에서 탈출이다!
굿바이 에르, 사요나라 노브!
이제는 안녕이다. 다신 볼 일 없을 거다.
"집으로…!"
구멍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
….
그와 동시에 구멍이 사라졌다.
"어, 어?"
아무리 손을 휘저어봐도, 마나를 흘려 공기를 읽어도 잡히는 건 없었다.
"아, 아 진짜, 진짜…."
구멍이 사라졌다.
그걸 깨닫자마자 무릎이 꺾였다.
행복회로로 그나마 돌아가던 마나들이 일제히 멈췄고, 그와 동시에 내 신체능력에도 부하가 걸렸다.
"진짜…."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깨달으니 난 이미 엎어져 있었다.
정신도, 육신도, 도저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120억이라는 거금 속에 파묻히는 생각을 하며 기뻐했는데 갑작스럽게 그 모든 것이 차단당했다.
"왜…!"
짧은 외마디 비명만 흘러나왔다.
"왜, 왜!"
마나가 돌지 않아 움직이지 않는 손을 애써 움직이며 간신히 땅을 짚고 일어나려다 엎어졌다.
동시에, 현 상황에 대한 반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아."
더이상은 움직이지 못한다.
아무리 내가 노바(Nova)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마나가 무한대로 흘러나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나량만 따지면 나는 B급보다도 훨씬 못했다.
그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돌아가지 못한다.
현실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내가 발을 딛었던 이 요관의 입구로도 돌아가지 못한다.
마나가 다 떨어진 나는 보통 인간만도 못하는 놈이었다.
"엄므아…."
서럽다.
너무 서럽다.
눈물만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눈물을 닦지도 못해 눈앞이 뿌얘진다.
이렇게, 5년을 개고생만 하다가 죽는구나.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내 주위로 몰려드는 마물들의 기척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델라즈는 다짐했다.
장년 33세, 그는 현재 여섯 번째 요관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자의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원로원의 가장 말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수도 레블에서부터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요관에 와야만 했다.
그가 다짐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루라도 더 빨리 말단의 자리에서 벗어나겠다는 다짐이었다.
원로원은 겉으로만 봤을 때는 노바(Nova)와 베르노바(BerNova)에 일석을 두고 있는, 나라를 위해 힘쓰는 대마법사들의 단체.
모든 마법사들이 입단하길 희망하는 멋들어진 단체였다.
물론 델라즈도 베르노바에 크나큰 꿈과 희망을 안고 겨우겨우 입단했다.
합격 소식을 전해받아 나이도 잊고 하늘에 계신 세 여신들께 감사하다며 절하던 것이 불과 2년 전이었거늘, 델라즈는 하루라도 빨리 원로원에서 나가버리고 싶었다.
그렇다, 나가버리고 싶다.
이번에도 후배를 구하지 못하면 확 무단으로 나가버려야겠다, 하고 델라즈는 매일 생각했다.
오늘에 이르러 그것도 끝이 보였다. 요관에, 그것도 여섯 번째 요관에서 일어난 미지의 일을 홀로 해결하라고 보내졌기 때문이었다.
"베르노바고 나발이고…."
그가 깊게 탄식했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일석 베르노바는 어디까지나 명예의 자리. 많은 마법사들이 꿈꾸는 자리라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저 꿈을 꾸기만 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명예는 밥을 먹여주지 않았다. 금화도 내놓지 않았다.
그저 나라를 위해 봉사하라는 명목으로 부려먹어지는 악당들의 잔재들로 이루어진 단체에 불과했다.
슬프게도, 원로원의 입단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루어지고, 퇴단 또한 그 과정이 적이 복잡했다.
우선 필수적인 요소가 인수인계였다.
본디 가장 말단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이 관습이기에 말단이 나가면 그 바로 위의 선배가 짬처리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선배라고 해서 그걸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들은 후배가 그만두고, 그 선배가 그만두고, 그 선배가 그만두고,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입단 계약서에 이러한 내용을 적어두었다.
- 퇴단을 위해서는 인수인계가 필수적이다.
악랄하고도 간사한 조건이 아니고 뭔가.
델라즈는 이대로 후배가 들어올 때까지 버텨야만 했다.
후배가 들어온다고 해서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본인이 나가길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후배만 들어온다면 짬처리를 시키고 본인은 고상하게 연구만 하며 지낼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모든 마법사들의 꿈이었다.
연구, 또 연구, 방해없이 오로지 연구만을 반복하는 것.
그래, 무엇을 숨기겠는가.
마법사라는 인종은 마법 연구에 미친 종자들이었다.
델라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시 연구를 위해 베르노바에 입단했고, 온갖 짬처리를 당하는 신세에 한탄하고 있었다.
그가 요관의 중심부에 도달했을 때였다.
과연 여섯 번째로 흉악하기로 소문난 요관답게 온갖 이름난 마물들이 즐비했다.
아무리 델라즈라 하더라도 이에는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마나량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델라즈였기에 별 어려움 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
그가 중심부에 도달했을 때였다.
"음?"
요관의 중심부에 있어야 할 홀(Hole)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근처에 마물들이 무리지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설마, 델라즈가 무리에게로 황급히 뛰어갔다.
마물들이 홀의 정체를 간파하고 들어가기라도 했으면 큰일이었다.
하지만 델라즈가 목격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마물들은 웬 소녀를 중심으로 해서 원을 그리듯이 뭉쳐 있었다.
그는 첫 번째로 소녀가 쓰러져 마나고갈로 죽기 일보직전이라는 사실에 경악했고, 실드조차 두르지 못한 소녀를 마물들이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째로 경악했다.
"베, 베르노바! 실드!"
델라즈는 자신의 몸에 실드를 두르고 마물들 사이를 헤쳐나갔다.
다행히 소녀의 숨은 아직 이어져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마나수정을 꺼내 소녀에게 복용시키고, 마찬가지로 실드를 두른 다음 요관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원로원에 제출할 델라즈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졌다.
- 여섯 번째 요관, 중심부에 홀이 발견되지 않음.
- 홀이 있어야 할 석단 근처에 한 소녀가 마나고갈 상태로 쓰러져 있었음.
- 화락조(火落鳥), 지하충(地下蟲) 등의 마물들이 소녀를 중심으로 해서 진을 이루고 있었음.
- 소녀의 안전을 확보, 여섯 번째 요관에서 빠져나와 소녀를 간호하는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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