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79화
아마칸 사막은 대륙에서도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한 곳이다.
일단 극북의 설원보단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이곳의 생태환경이 덜 척박하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 드넓은 사막엔 여러 국가와 민족이 존재하지만, 사실 지성체가 지배하고 있는 땅은 전체의 1할에 불과하다. 나머지 9할의 장소엔 몬스터가 득실거리거나, 도무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극악의 환경이 형성되어 있다.
척박한 환경과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단지 그게 전부라면 아마칸 사막이 이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시─ 그리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 검증된 길을 빼면 모든 장소가 미지였고, 정해진 루트에서 이탈하는 게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던 시절. 어느 상단이 모래폭풍에 휘말려서 길을 크게 벗어난 적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이들은 그들 전부가 죽었다고 예상했지만─.
약 한 달 후, 상단을 호위하던 소수의 용병들이 귀환했다. 등에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휘황찬란한 보물을 멘 채로.
그제야 사람들은 아마칸 사막이 단지 위협만이 도사리는 장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과거 찬란했던 문명을 세웠던 고대국가─ 그들이 남긴 유적이 아직 이 황폐한 땅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위험도는 관계가 없다. 용병과 모험가, 탐험가들이 몰릴 이유는 충분해진 것이다. 물론 앞엔 ‘실력에 자신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야겠지만.
모험가들은 나름대로 정보를 공유하며 지도를 보다 정교하게 그렸고, 반드시 피해야 될 몬스터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그렇게 효과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한 무리의 모험가가 사막에서 복귀할 때쯤엔, 항상 새로운 모습의 몬스터를 무더기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부분은 행방불명되고 말아서 보물은커녕 쓸 만한 정보를 갖고 귀환한 이들도 턱없이 적었다.
좀 더 세월이 흐르자, 명성과 재화에 눈이 먼 이들이라도 결코 출입해선 안 될 장소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총 세 곳이었다.
‘올라올 수 없는 구멍’, ‘끝나지 않는 사막’, 마지막으로 ‘미궁’이다.
올라올 수 없는 구멍은 사막의 서쪽 지역에 있는데, 지름 10km의 모래구멍을 일컫는 것이다.
깊이는 수십 미터 정도지만, 한번 빠지면 육체능력으로는 결코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모래가 끊임없이 밑으로 꺼지는 구조인 데다가, 모래 밑엔 해괴한 곤충과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없는 이상 한번 빠지면 죽는다고 보면 된다.
‘끝나지 않는 사막’은 중앙지대에 있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아마칸 사막의 중앙지대는 갈 이유가 없는 장소다.
이곳은 완전히 죽은 땅으로, 모래사막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을 확보할 수 있는 오아시스나 잠시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선인장은 물론, 심지어 몬스터까지 없다. 거기에 아지랑이가 만들어 내는 환상 때문에, 마찬가지로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가기 몹시 까다롭다.
마지막 장소는 ‘미궁’이다.
이곳은 아마칸 사막의 3대 금지 중에선 그나마 모험가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또 빈번히 출입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장소기도 했다.
북쪽 지역에 있는 초거대미궁인데, 미궁을 이루는 벽은 산처럼 높고 단단해서 전쟁 규모의 마법을 사용해도 흠집조차 일지 않는다.
입구는 한 곳, 출구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이런 거대한 미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목적은 무엇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몇몇 이들은 거대한 크기를 짐작해서, 과거 모습을 감춘 거인족의 놀이터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반은 맞았다.
이 미궁은 일종의 놀이터는 맞았으나, 거인족의 것은 아니었다.
미궁 중심부.
아직까지 그 어떤 인간도 발을 디디지 못한 장소엔 피라미드가 하나 있었다. 일반적인 피라미드와 차이점은 그 끝부분에 제사대, 그리고 4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의자엔 총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젊은 남녀와 노인 한 명.
셋 모두 사막의 무더운 바람을 느끼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먼저 입을 연 건 남자였다.
“매번 이곳을 집합장소로 설정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너무 황량하지 않은가?”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니겠어? 굳이 목격자를 일일이 없앨 필요도 없고.”
“거기에 이곳은 각자의 거처에서 비교적 중심이 되는 장소다. 모이기 가장 쉽다는 뜻이지.”
“흥……. 우리 셋 기준으론 중심이겠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살고 있을 녀석도 있잖아.”
여자가 심드렁한 얼굴로 덧붙였다.
“아직 그림자도 안 보이지만.”
“이상할 건 없다. 라미아는 체격이 크기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어.”
“어차피 모래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데 덩치가 무슨 상관? 그리고 여기선 녹스탄틴이라 불러.”
“그랬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픽 웃었다.
“올 때까지 대충 시간이라도 때울까? 지금 미궁에서 헤매고 있는 벌레들이 좀 있던데. 인간이 다섯 무리, 드워프가 둘, 짐승 냄새 나는 것들이랑… 몬스터도 있네? 하여간 탐욕스런 것들.”
“굳이 손을 쓸 필요는 없지. 그보다…….”
[녹스탄틴이 죽었다.]
셋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놀라기는 했지만, 이후에 경계나 적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고, 지금처럼 갑작스런 등장을 즐겨하는 존재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탈했나. 동족들이여.]
태양을 등지고 서있는 존재에게선 성스러운 백색의 기운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정욕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어떤 초월적인 기적을 목도한 것처럼 가슴이 설렜다.
지금 이곳에 신을 자처하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아닌 저 존재야말로 신에 한없이 가깝다는 걸 조우할 때마다 느끼곤 했다.
“로드? 이곳엔 무슨 일로…… 아니. 그것보다 방금 뭐라고─.”
“녹스탄틴이 죽었다고? 재밌는 농담이었어. 로드에겐 어울리지 않지만.”
[이런 걸로 농담을 하지는 않는다. 헬라.]
그러자 여자, 헬라의 표정이 굳었다.
“…진짜라고? 대체 어떤 놈이?”
[그것은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지.]
로드가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사르만’에서 한번 알아봐 줘야겠다.]
“그건 어렵지 않지만… 왜 로드가 직접 하지 않는 거야?”
책임을 미루는 게 아닌 단순한 의문이었다.
동족살해는 그들 종족 내에서도 가장 신중히 다뤄야 할 사안이었고,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최선두에서 해결했던 건 언제나 로드였다.
[지금의 나는 할 일이 있다. 최근 이 대륙에서 기이한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남은 도마뱀 놈들이 거슬리게 굴기라도 해?”
[아니. 그들은 더 이상 우리의 적수가 아니야.]
로드는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자세한 건 확정이 나면 다음 회의 때 말해 주도록 하겠다. 친애하는 동족이여. 부디 조심하도록. 상대는 만만찮은 존재가 아닐 것이다.]
“알겠어. 그러면… 회의는 어떡하지?”
[내가 대신 참가하도록 하지. 라미아의 자리를 대신해서.]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로드한테 좀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하라.]
헬라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이 우스운 연기는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야? 로드 명령이라서 따르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어. 필멸자가 의탁할 수 있는 신 행세를 하는 것에 득 될 게 있나?”
[물론 있다. 헬라. 혹 나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인가?]
“그, 그건 아니야.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
헬라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로드는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배려가 부족했던 걸지도 모르지. 그래… 설명이 불충분했다든가.]
약간의 간견을 두고 로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종교는 위험하다.]
“어째서?”
[아무런 접점도 없는 이들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헬라가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을 하자 그 옆에 있던 남자─ 라스는 내심 한숨이 나왔다.
헬라는 세비어교의 최고신을 행세하고 있는 존재였지만, 사실 이러한 연기에 어울리는 인재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감정기복이 심하고, 무언가에 오래 몰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분파에 변덕이 심하다고 할까.
로드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로드는 단 한 번도 동족에게 화를 낸 적이 없기 때문에, 헬라의 굼뜬 반응에도 온화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이제 대륙에 우리의 위협이 될 종족은 없다. 드래곤의 뒤처리만 끝나면, 이 넓은 땅은 이제 완전히 우리의 정원이 된다고 할 수 있겠지.]
마계에 있는 악마 중 몇몇은 충분히 데미갓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수준이지만, 어차피 그들은 이 땅에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예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다. 압도적으로 개체 수가 밀리기 때문이지.]
“아무리 많아도 죄다 벌레잖아. 얼마나 많든 무섭지 않아.”
[그래. 하지만 그 벌레가 수백만 마리라면 어느 정도는 경계를 하는 게 옳다.]
“…그런가?”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지쳐 있는 순간, 깊은 잠에 빠진 순간, 방심하고 있는 순간이 앞으로 한 번도 없을까. 하필 그러한 순간에 우리를 해하려는 발칙한 것들이 있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는 지금 죽은 라미아가 이미 증명한 사실…….]
“…….”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위험한 것이다.]
“어째서?”
[대륙을 보아라. 우리를 제외한 모든 지성체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싸운다. 종족, 인종, 문화, 자원, 영토, 신념, 그리고 종교로 인해서.]
“…가만히 놔둬도 자멸할 거란 뜻인가?”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겠지. 저러한 칼부림은 많은 것을 잃게 만들지만, 어떤 부분은 발전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완전한 평화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헬라. 내가 종교를 지배하려는 이유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전쟁을 벌이는 그들이 같은 신을 믿는다는 사실이 있다면 손쉽게 동질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동질감으로 인해서 데미갓을 제외한 모든 종족이 힘을 합칠지도 모른다……. 희박하지만, 로드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가능성이었다.
물론 헬라는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로드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향후 500년 이내에 이 대륙에서 종교를 완전히 없앨 생각이다. 우리의 정원엔 불필요한 요소니까.]
“음. 알겠어.”
헬라는 완전히 이해하지도 않았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르만’에는 셋 모두 가줬으면 한다. 혹시 모르니 가급적 존재감을 숨긴 채 움직이고. 중앙신전이 녹스탄틴의 거처였으니 그곳에 있는 인간에게만 격을 드러내 정보를 얻는 것이 좋겠군.]
“알겠다.”
[그럼 건투를 빌겠다. 동족들이여.]
로드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헬라가 감탄했다.
“볼 때마다 편해 보인다니까. 로드의 저 공간도약은.”
“우리도 격을 올리면 쓸 수 있을지도.”
“그럴까? 저건 로드 고유의 권능 아니야?”
“리키도 비슷한 걸 쓰잖아. 권능이랑 큰 관계가 없는데도 말이야.”
“아. 하긴.”
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일이 좀 귀찮게 됐네. 그냥 마을 채로 부수면 편할 것 같은데……. 로드의 말이니 어쩔 수 없지 뭐.”
그 눈동자에 검붉은 빛이 일렁였다.
“그럼 가서 알아볼까. 감히 어떤 건방진 벌레가 우리 동족을 죽였는지.”
* * *
사람을 대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낀 적은 없다.
거북함이나 불편함을 느낀 적은 종종 있지만, 그러한 자들에게도 어떻게 처세해야 되는지. 루카스는 항상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여자는 그에게 있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죠!”
밝고, 쾌활하고, 긍정적이다.
흔한 성격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루카스 주변엔 여태껏 이런 사람이 없었다.
기껏 내민 꼬지를 본 척도 안 하고 지나치고, 그 이후에 무슨 말을 하든 무시로 일관했는데도 그 태도엔 변함이 없다.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졸졸 쫓아왔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혼자 있고 싶으니 좀 내버려둬.”
“넵.”
대답은 꼬박꼬박 잘하는데 말을 잘 듣지는 않았다.
두 발자국 정도 간격을 더 벌린 것 이외엔 동일했다. 여전히 계속 따라올 생각인 듯하다. 어처구니가 없어져 바라보니 묘하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했죠? 그런 표정을 하며.
그 얼굴을 본 순간 지금 상황도 잊고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의 이름은 페일이라고 했는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어마어마하게 먹을 걸 밝히는 것 같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마른 체형이다. 게다가 식욕은 있는데 식탐은 적은지 먹을 걸 계속 루카스에게 건네고는 했다.
처음 꼬지를 사양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몇 개 받아 줬더니, 아예 이쪽을 돼지로 만들 기세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난 됐어. 이제 더 이상 안 들어가.”
“넵.”
실속 없는 대화를 가끔 나누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페일은 음식을 권할 때 이외엔 말을 걸지 않았다. 눈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루카스는 왠지 모르게 질척하던 마음이 조금은 씻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표정도 아까보단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요.”
딱히 그렇지도 않나 보다.
페일이 고개를 기우뚱하며 물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있었어.”
“얘기해 줄 수 있어요?”
“…….”
루카스는 잠깐 망설였지만, 어차피 한 번 보고 지나갈 인연이다. 때론 초대면인 상대에게만 말할 수 있는 비밀도 있다.
“친구가 죽었어.”
차마 죽였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루카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가서는 안 될 녀석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슬픈 거예요?”
“슬퍼? 아니. 난…….”
나는 지금 슬픈 건가? 그 부분이 아직도 애매했다.
루카스는 몇 번 입을 우물거리다 말했다.
“그 녀석을 죽게 만든 놈들이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는 상태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러자 잠자코 듣던 페일이 말했다.
“아주 못된 놈들이네. 제가 혼내 줄까요?”
“…말이라도 고마운데.”
“진짠데. 나 엄청 세요.”
페일이 그리 말하며 한 팔로 알통을 만들어 보여 줬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일단 용병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지. 그렇다고 해도 단련된 몸은 아니다. 제법 녹이 슨 칼집을 보니, 얕보이지 않기 위해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됐어.”
“생각이 변하면 언제든 말해요.”
“그래.”
“그럼 문제는 그것뿐이에요?”
“…그렇지도 않아.”
기분 탓인지 몸과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루카스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자신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요?”
“해야 될 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만이었나 보다. 요즘엔 너무 힘들어서 그냥 다 놔버리고 싶단 생각이 자주 드는군.”
“그럼 다 놔버리면 되잖아요.”
“그럴 수가 없어.”
“어째서죠?”
“그건…….”
루카스는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내 일을 대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
“그렇군요.”
잠깐 침묵한 후, 페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도망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