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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532화 (759/857)

외전 532화

듣고 싶은 얘기가 더 있긴 하지만, 이제 3시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차분히 보고나 들을 여유는 없었다.

갑자기 일어선 레시듀를 보며 퓨처릭스가 물었다.

“디먼시오가 어딘지 알고 있나?”

“가본 적 있긴 하지.”

레시듀가 아닌 루카스가.

“통합세계 이전에 간 것이라면, 지금은 소용없는 정보일 것이다. 디먼시오는 허의 세계의 영토 중에서도 특히 그 구역이 넓었지. 통합세계 이후 ‘폐기장’을 잃어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한 시귀와 달리, 그 땅덩이 대부분을 온존했고.”

“시귀가 폐기장을 잃었나?”

“그렇다.”

“왜? 통합세계의 여파로?”

퓨처릭스가 난감한 표정을 했다.

“글쎄… 나도 여러 방면으로 분석했지만 확실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단순히 통합의 여파로 치부하기엔 의아한 점이 많다. 폐기장은 일부만이 상실된 게 아니라 대부분이 증발하듯 사라졌으니까.”

“…….”

“폐기장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곳이 얼마나 넓은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토록 넓은 공간이,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부분만 누락한 것처럼 사라졌다. 적어도 폐기장의 입장에선 무작위한 재앙이 아니었던 셈이지.”

“그럼 지금 시귀는 땅이 없겠군. 허주란 이름이 무색하게 돼버렸어.”

“땅이 좁다고 허주의 자격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겠지.

당장 추방자만 해도 딱히 다스리는 영토가 없었으니까.

퓨처릭스가 말을 이었다.

“…나 또한 운이 없는 편이었지만, 시귀 정도는 아니었지.”

“음?”

“나의 영토도 통합세계의 여파로 8할 이상이 사라졌다. 내가 알기로 시귀 다음으로 가장 많은 영토를 잃은 영주가 나다.”

“…아. 그거 참 유감이군.”

레시듀는 더 나은 말을 찾을 수 없어서 그리 말했다.

그리고 생각의 흐름은 금방 폐기장으로 옮겨갔다. 폐기장이 사라진 이유는… 아마도 삼천세계와 결합했기 때문이 아닐까? 애초에 버림받은 자들이 떠밀려오는 허의 세계에서도, 폐기장은 더욱 버림받은 자들의 안치소였다.

모든 평행세계의 가능성.

그 경우의 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니, 기존 삼천세계와 합쳐져 폐기장에 있는 시체들이 죄다 구현화됐다면… 정말 세상엔 시체 썩은내밖에 풍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건 단지 레시듀의 추측이고, 실상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잠깐 생각이 샜는데, 지금 레시듀가 주목할 건 폐기장이 사라진 원인 같은 게 아니었다.

디먼시오.

0번째 악마의 영토는 확실히 아주 넓은 장소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지하에 층층이 자리 잡은 땅덩이. 그 하나하나를 도시로 봐도 손색이 없을 크기였다. 더럽게 크고 복잡하며, 정교한 개미집이랄까.

레시듀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는 디먼시오의 위치에 대해 파악하고 있겠지?”

“그렇다.”

“정확한 좌표를 미카엘에게 가르쳐 주도록. 미카엘. 좌표만 안다면 이 몸을 그곳까지 옮겨다 줄 수 있겠지?”

“가보지 않은 곳이라 조정할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나.”

“아마도… 10분 정도.”

“5분 내로 끝내도록.”

레시듀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시선을 돌렸다. 미카엘의 한숨 소리가 들렸으나 무시하고.

이번엔 페루스를 보며 말했다.

“청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 봐라. 루카가 뭐 어쨌다고?”

“…폐하가 떠나고 얼마 안 가 청기사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적기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기색이었죠. 대화가 통하지 않고, 꼭대기 우주를 죄다 부술 것처럼 걸어왔는데… 그때 공간이 갈라지며 그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둘이 대면한 순간 청기사의 기색이 바뀌더군요. 이후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 대화를 나누더니, 그대로 떠나 버렸습니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나?”

레시듀가 눈가를 좁혔다. 루카에겐 그럴 능력이 없을 텐데. 누가 판단한지는 둘째 치고, 루카가 그렇게 굴도록 미카엘이 허가해 줬다는 것이 아닌가.

“루카라고 했던가요. 그 아이의 주장이었어요.”

베니앙이 대변하듯 입을 열었다.

“원래 우리는 미카엘의 힘으로 그 자리를 완전히 벗어났었는데, 뒤이어 청기사가 나타난 걸 알게 됐죠. 그대로 두면 꼭대기 우주가 사라질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을 데려다주면 청기사를 설득할 수 있다고.”

“이 몸에게 뭔가 남긴 말은 없나?”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레시듀가 침묵했고, 베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아이는 정체가 뭔가요? 이름도 그렇고, 묘하게 스승님이 떠오르던데요.”

“루카스의 숨겨진 딸.”

“농담이시죠?”

레시듀는 대충 어깨를 으쓱였다.

루카가 저렇게까지 말했다면, 아예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실제로 설득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저지른 일이겠지.

그렇다면 레시듀도 이에 관해선 할 말이 없다. 루카가 위험하면 도와줄 것이고, 웬만해선 지켜 주고 싶은 녀석이었으나 이러한 선택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청기사의 옆에 있는 건 장기적으로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루카.

─네!

─이 싸움이 끝나면 넌 이 몸과 떨어지는 게 좋겠다.

교전 중에 건넸던 말은 진심이었다.

어쩌면 이 말이 루카로 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하게 몰아넣은 걸지도 모르지.

그러나 레시듀는 루카와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며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면 같이 있으면 심심하진 않을 녀석이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독히도 레시듀의 삶과는 맞물리지 않는 녀석이란 것이다.

레시듀가 걸어갈 길은 루카에게 고문일 것이다.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스스로를 파괴해야만 했고, 그러한 과정이 끝났을 때 소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변화. 레시듀는 레시듀는 그 어리숙한 꼬맹이가 바뀐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웬만해선 그 한심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꼴로 남아 줬으면 싶다.

청기사가 해코지만 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설마 죽이거나 먹어치우지는 않았겠지?

레시듀는 잠깐 그런 생각을 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죽일 거라면 그 자리에서 같이 사라지지 않고 곧바로 죽였을 것이다. 청기사는 그런 여자였다.

생각이 마칠 때쯤 미카엘이 다가왔다.

“조정이 끝났다. 바로 출발하겠나?”

“그래. 그 전에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아골렛.”

“예, 폐하.”

“좀 돕도록 해라.”

“무엇을 말입니까?”

“흠. 우선은…….”

* * *

옥좌玉座는 왕에게만 허락된 자리라고들 말한다. 그럼 이 자리에 앉는 자는 모두 임금일까.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래야 하나?

“…엿이나 먹어.”

세디 트로우맨은 불경한 자세로 옥좌에 앉은 채, 가래침을 뱉듯 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디먼시오의 빌어먹을 옥좌, 세디의 입장에선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덕지덕지 달린 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에 앉은 채.

세디는 꿈을 꾸듯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현실이 지랄 맞으니 부쩍 옛적을 회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뒈지기 직전의 늙은이도 아니고, 이런 한심한 꼴엔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가 가장 큰 소리로 비웃어야 한다. 그것이 세디였으나, 지금은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그리고 고리타분한 회상은 한층 더 한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생을 되돌아보니 불행했던 때보단 행복했던 때를 우선적으로 찾게 됐다. 회상이 길어지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언제일까.

비슷한 의문을 예전에도 한번 떠올렸던 듯하다. 언제였더라. 그때도 이렇게, 반쯤 자포자기한 꼴로 스스로의 기억이나 되새겼던 듯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무슨 결론이 나왔는지도.

이러한 이유로 회상은 그 시작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첫 기억, 가장 처음 눈에 담았던 광경.

고향 행성의 풍경─.

그곳은 밤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이었다, 작열하는 태양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사막, 평생을 투쟁 속에 몸을 내던지며 지냈던 자들.

─그 속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난 나.

구릿빛 피부 사이의 흰 피부, 잿빛 머리카락 사이의 까만 머리카락을 가졌던 나.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나.

그 사실에 분노와 증오를 품었던 나.

그것을 원동력 삼아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서─ 결국 행성의 왕을 죽이고 그 심장을 씹어 먹었던 여자. 죽어야만 했던 아이, 그림자를 부르는 자, 저물지 않는 태양을 가진 행성에 밤을 가져다줄 자, 사신.

그러한 멸칭으로 나를 부르던 놈들을 모조리 죽였을 때. 그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릴 때.

나는 기뻐했었나?

─신을 만났던 나.

절대자에 관해서 듣고, 보다 넓고 다양한 우주에 대해서 알게 된 나.

나는 최강자가 아니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해야 될 일이 많다고, 신은 그리 말했다. 선택권도 줬다.

이 고향 행성에서 왕으로 군림할지,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지.

그러한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기뻐했었나?

─마왕을 만났던 나.

군림자. 신보다 위대하다고 여겼던 존재. 처음으로 싸우는 걸 포기하고 자처해서 경배하길 택했던 위대한 존재.

마왕에게 나를 맡기고,

소울 웨폰을 하사받고,

몇 마디 칭찬의 말을 들었을 때.

…그때 나는 기뻐했었나?

“아니야.”

전부 아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세디가 행복을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 나는 왜 계속 살아갔나? 이것은 차라리 연명이라 표현해야 옳을지도 몰랐다. 이 또한 간단하다. 죽는 것도 싫었다.

따분했던 삶, 인생, 신의 심부름꾼을 자처하고, 죽지 못해서 살아갔다. 절대자의 역할, 위기에 처한 우주를 구원하는 것. 그러한 임무를 달성했을 때도 성취감은 들지 않았다. 마왕에게 칭찬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러니까, 세디란 존재는.

트로우맨이라는 이름을 받았을 때 비로소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비중.

존재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값어치에 순서를 매길 수밖에 없다. 세디는 아주 오랫동안 그러지 않았다. 그러는 방법을 몰라서, 가치판단의 기준이랄 게 없었다. 다른 놈들보단 내가 우선이었지만, 그것은 이성적으로 내린 판단보단 본능이 남긴 이기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디의 내면은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연약했다.

간신히 싹튼 첫 번째 인연, 멋대로 아버지라 불렀고, 그걸 깊게 따지지 않고 수긍했던 사내. 급조된 인연이 어느새 진짜 인연이 됐고─ 그 비중이 점점 커지다, 이윽고 세디의 전부가 됐다.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떻게 할까.”

내뱉은 목소리가 수증기처럼 흩어진 순간, 옥좌에 앉은 세디를 향해 누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붉은 피부와 뿔을 가진 악마였다. 사도使徒라고 했나. 0번째 악마를 보좌하는 자들. 디먼시오의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자들 중 하나였으나, 세디는 이미 이 악마의 이름조차 잊었다.

“왕이시여.”

붉은 뿔의 악마가 듣기 싫은 호칭으로 불렀다.

세디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말하기도 전에 무슨 말을 꺼낼지 짐작이 갔다.

“정말로 회담엔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난 대체 했던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되는 거지?”

“하지만…….”

회담, 회담, 회담.

이 빌어먹을 것들은 얼마 전부터 줄곧 회담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었다.

까득,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가 갈렸다. 세디는 그 회담을 주최한 인물이 누군지 알고 있다.

2대 비기닝 위저드, 전직 군림자, 꼭대기 우주의 주인. 최근 들어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남자였으나, 세디에게 있어서 그자는 아버지의 몸을 뺏은 증오스런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베니앙 아르젠토가 마련해 둔 비행용 드래곤, 그 등 위에 지어진 저택에 감금됐던 남자가 탈출에 성공했을 때. 세디는 이상하게도 더 이상 그를 추적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주치는 것조차 싫었기 때문에?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나?

머리가 아파왔다.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빨간 피부를 가진 악마가 뭐라 떠들어 대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만 말하고 꺼져라. 아가리를 찢기 전에.”

세디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움찔한 악마가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떠났다. 새로운 영주는 실제로 그 성정이 무척이나 잔혹해서, 반기를 들었던 악마들을 잔인하게 처형시킨 전적이 있었던 것이다.

붉은 뿔의 악마가 물러나자 세디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지독하게도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 그럴 힘도 없는 듯했다.

그래. 이렇게 반쯤 죽은 것처럼 살다가 멸망에게 죽는 것도 그리 나쁜 결말은 아닐지도 모른─.

콰앙!

그 순간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벌어진 일이라 세디도 깜짝 놀란 얼굴이 됐다.

뒤이어 후두둑 흙더미가 쏟아졌고, 그 잔해물 속에 섞여 누군가 같이 떨어졌다.

“쿨럭……!”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보는 순간, 세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도저히 착각하거나, 잘못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세, 세디…….”

“…아버지?”

끊기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세디는 반사적으로 그리 말했다.

남자는 핼쑥한 얼굴로 말했다.

“도, 도와다오. 미친놈이 이 몸… 이 아니라, 나를 쫓고 있어.”

“뭐?”

뒤이어 남자가 떨어진 천장 속에서 누군가 한 명 더 모습을 드러냈다.

백색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기사였는데 앞서 떨어진 남자와 달리 부드럽게 낙하한 뒤, 우아함마저 느껴지는 동작으로 착지를 마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세디와 시선이 마주한 순간, 도무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미친놈 등장.”

“…….”

세디가 입을 벌린 채로 굳었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저놈이야! 저 미친놈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

“아주 음험하고 사악한 개새끼라서 겨우 여기까지 도망쳐 왔지. 그러니까 우리가 힘을 합쳐서…….”

말을 마치지 못했다.

세디가 손을 뻗었고, 그 손에서 무수한 검은 가시가 쏟아졌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있는 힘껏 살기를 실은 공격이어서 남자, 레시듀도 전력을 다해 피했다.

가시는 끈질기게 레시듀를 추적해 왔고, 무슨 권능인지 연쇄적으로 폭발까지 일으켰다. 가시는 피했으나 폭발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해서, 레시듀는 어쩔 수 없이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수십 번 정도 데굴데굴 굴러서 피한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턱까지 괸 채, 안방에서 책이라도 보는 듯한 모양새로.

갑작스레 무방비가 된 레시듀를 수십 개의 가시가 덮쳐왔는데, 그 직전 끼어든 아골렛이 방패로 가시를 막았다.

“음.”

레시듀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얼렁뚱땅 루카스인 척 넘어가기 작전’이 실패하다니.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봅니다. 폐하.”

“이 몸의 연기가 그렇게 형편없었나? 리얼리티를 위해 자해까지 했는데 결과가 이러니 너무 마음이 아픈데…….”

“다음엔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그보다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플랜 A가 실패했으니 플랜 B로 가야지.”

아골렛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계획에 플랜 B도 있었습니까?”

“없어서 방금 떠올렸다.”

“역시 폐하십니다.”

레시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세디 트로우맨! 루카스가 남긴 전언이 있다!”

그러자 공격만 쏟아대던 세디가 처음으로 멈칫했다. 금방이라도 덮치려들던 가시도 시간이 멈춘 듯 모두 정지했다.

새빨간 눈동자가 레시듀를 바라보더니, 뒤이어 그녀가 말했다.

“무슨 전언.”

“…그건 말이지.”

레시듀가 잠시 침묵했다.

루카스의 전언이 무엇인지, 이제부터 지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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