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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519화 (746/857)

외전 519화

내가, 루카스 트로우맨?

레시듀의 몸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헛소리로 치부하고 싶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곤 할 수 없었다.

[호, 호, 호. 충격을 받았습니까? 그렇겠지요오. 하지만 나를 원망하진 마시길. 언제나… 알겠습니까아? 언제나, ‘내게 악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언젠가 알게 될 진실을 미리 일러 주는─]

협상가의 나불거림은 대충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딱히 집중해서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영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 아니라 생각하게 됐지만, 협상가의 말이 모두 사실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바깥’이란 가혹한 환경을 레시듀, 즉 잔념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느냐다.

레시듀는 단 한 번도 ‘바깥’에 나가 본 적이 없다. 그에 관해선 루카스나 추방자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절반만 사실이어도, 레시듀는커녕 뇌존 그 자체가 나가더라도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루카스가 바깥에 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녀석이 언젠가 ‘다섯 번째 멸망’, ‘최후의 멸망’이 될 운명이어서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레시듀’란 존재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고집이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에겐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잘할 수 있는 것, 잘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재능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영역이다.

멸망에 대한 것이 그랬다.

루카스의 부동의 정신력은 분명 존경과 경의를 받을 만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바깥’이란 환경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단 건 ‘바깥’에서 버티는 것이야말로 루카스의 역할, 놈에게 할당된 역할이다.

바꿔 말하면.

‘이 몸도 바깥을 감당할 수 있다.’

자존심을 떼놓고도 그런 결론이 나왔으나,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더 있다.

떠난 것이 ‘뇌존의 잔념’이고,

남은 것이 ‘스스로 잔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루카스 트로우맨’이라면…….

…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던 거지? 그렇게 상황을 꼬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너는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낙담할 필요가 없죠오. 이제 내가 협상가라 불리는 이유를 말하겠습니다아.]

“…….”

[힘들었지요? 버틸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겠죠.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스스로도,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협상가의 말투는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어휘가 어눌했던 사람이 연이어 말하며 점차 감을 잡아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레시듀는 그 못생긴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눈동자가 없는 대신 말할 때마다 뒤집어진 콧구멍이 특히 벌름거렸다.

[그러니 첫 번째 멸망……. 너희들이 하이드라 불리는 존재는 그토록 두려움을 샀던 것이죠오.]

“…….”

[이 질문은 꼭 드리고 싶군요오.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오?“

“상관없다.”

칼 같은 대꾸에 멸망의 움직임이 멈췄다.

[…예에?]

불시에 뺨이라도 얻어맞은 것 같은 반응이다.

딱히 그 태도가 재밌지도 않아서, 레시듀는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네놈이 말하는 건 하나같이 다 시시하군.”

[…오호라. 태연한 척을 하고 있군요오? 나는 그것이 허세라고 불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아.]

“이 몸은 허세를 부리지 않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부릴 이유가 없지. 강함을 위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하니까.

레시듀는 그 말까지는 삼켰다.

[그럼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한 건가요오?]

“완벽히 이해했다. 이 몸의 정체성에 관해 제법 예리한 지적을 했지. 그런데 그게 뭐. 이 몸이 루카스 트로우맨이든, 레시듀든, 혹은 그 밖의 어떤 존재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설명해도 레시듀의 말을 이해하는 태도가 아니어서, 레시듀는 이마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가령 네놈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내가 나라는 사실이 변하나? 생각의 주체가 바뀌나? 갑자기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라도 하는가. 딱히 그렇지도 않지.”

[그게… 무슨…….]

“철 지난 고민거리란 뜻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레시듀는 협상가를 처음으로 한심하게 쳐다봤다.

“네놈은 스스로를 협상가라 부르는데, 그럴 자격이 없어 보이는군. 혹할 만한 거래거리를 무엇 하나 가져오지 못했지 않나. 한심한 놈.”

[…….]

협상가가 가만히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기우뚱 돌리기 시작했다.

기괴할 정도로 크게, 목뼈가 어긋날 만큼, 부엉이를 연상케 할 만큼.

[…과아여언.]

그리고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것이 당신이군요오. 이해했습니다아. 좀 더 혹할 만한 거래로 돌아오도록 하죠. 다음엔.]

푸쉬이익…….

그리고 협상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레시듀는 한동안 놈이 머물렀던 허공을 미심쩍게 쳐다보다가, 괜히 어깨를 툭툭 털었다.

“완전히 죽은 건 아니겠지?”

“…송구하옵니다. 폐하. 저의 기감으로도 감지가 되지 않습니다.”

아골렛을 탓할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이 둘에게서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래도 전투능력은 전무한 녀석인 것 같더군. 이상하단 말이지. 이놈과 비슷하게 생긴 놈이 ‘첫 번째 멸망’을 농락하는 걸 봤었는데… 다른 개체였나?”

“…….”

“아마도 놈이 말한 ‘죽일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일 것 같군. 우리 우주의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해치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레시듀가 아골렛의 검을 보며 말했다.

“적기사의 검이라면 어떨까? 그건 세디 트로우맨, ‘0번째 악마’의 육체와 정신에 기생해 있던 마왕을 완전히 소멸시켰지. 아마도 칼날에 담긴 특수한 힘 덕분인 것 같은데, 너의 검에도 비슷한 능력이 있다면 시도해 봄 직하지 않을까?”

“거듭 송구하옵니다만, 소신의 검엔 그런 거창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특별한 힘이 있는 쪽은… 오히려 방패가 아닌가?”

“…….”

아골렛의 눈가가 슬며시 가늘어지더니, 입가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그래도 며칠 같이 지내니 점점 이 남자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이놈은 정곡을 찔렸을 때 스스로의 본성을 조금 드러내는 습성이 있었다.

레시듀가 픽 웃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협상가의 말이 아주 헛소리가 아닐 수도 있어.”

“예?”

“이 몸의 변화는 제법 급진적이었다. 인격의 주도권은 굳이 말하면 뇌존 쪽에 추가 기울어져 있지만… 때때로 루카스나 할 법한 생각 따위를 떠올리기도 했지.”

아골렛은 레시듀가 하고픈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멀뚱멀뚱 쳐다봤다.

“둘 모두 루카스고, 둘 모두 레시듀일 수도 있단 거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가령 두 개의 수통에 설탕물과 소금물이 들었다고 치자. 그것들을 보다 큰 수통에 옮겨 담은 뒤 몇 번 흔들고, 다시 반씩 컵에 따른다면. 그것은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

“아니지. 이미 합쳐진 ‘설탕소금물’이 두 개로 나뉜 것뿐이다.”

“정신이란 개념은 아주 어렵고 복잡합니다. 설탕에 탄 물, 소금에 탄 물에 비유하는 것은 조금 부적절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서 나와 루카스는 제법 오랫동안 함께하면서도 완전히 섞이진 않았다. 하나 정신적으로 분명 깊은 교감을 나누고 말았지. 서로의 기억을 엿볼 수 있을 만큼. 그런 이후에 나뉘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섞여 들었단 건 부정할 수 없지 않겠나?”

아골렛이 침묵했다.

그저 할 말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딱히 이 화제에 흥미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레시듀도 이 남자에게 새삼스레 조언이나 받으려고 꺼냈던 말은 아니었다. 그냥 혼자 지껄이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던 참이었다.

“딱히 변하는 건 없다. 이 몸이 해야 될 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 다만, 이 몸에게도 약간이나마 ‘루카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면…….”

레시듀가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무엇이 즐거우신 겁니까?”

“아. 이 몸이 루카스가 아니라고 확신했던 녀석들의 얼굴이 쭉 스쳐 지나가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낯짝을 할지 자못 궁금하군 그래.”

“…….”

“아무튼, 지금 이 몸의 상태를 설명하자면…….”

레시듀는 비장의 조크를 꺼냈다.

“레시듀, 루카스 함량 10%… 라고 할 수 있겠지.”

“…….”

“레카스와 루시듀 중 뭐가 어감이 더 괜찮지?”

“알아서 하시옵소서, 폐하.”

물론 이 재미없는 사내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레시듀는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레티프가 그리운 밤이었다.

* * *

이후엔 당분간 평온한 여행이 이어졌다.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를 여행이라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더 이상의 사건사고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레시듀는 주로 따뜻한 창고에서 박스를 베개 삼아 졸았고, 아골렛은 특유의 모호한 표정으로 바깥의 풍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두 사람은 일행이었으나 품은 바 목적은 전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일행보단 동행자라고 밝히는 게 더 적절했다.

물론 가장 정확한 표현은 거래 관계일 것이다. 처음에 언급했듯 둘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레시듀는 틈틈이 수면을 취하면서 간혹 선내에 있는 패드를 조작해서 바깥 상황을 엿봤다.

“이것 봐라, 아골렛. 대은하연합의 공용 네트워크인데, 제법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군.”

쓰레기 같은 글도 그에 못지않게 많지만. 레시듀는 살짝 덧붙이며 인트라넷을 열었다.

“구색이 제법 그럴듯하지 않나? 어디 보자……. 실시간 검색어 순위 같은 것도 있군.”

현재 검색어 1위는 ‘사상최대회담’이었다.

“몇 번 저렇게 부르긴 했는데 이 명칭으로 굳어 버릴 줄이야. 좀 더 멋지게 지을 걸 그랬나? 아골렛. 우주정상회담은 어때?”

“네트워크의 이용자 대부분은 별 도움도 안 되는 조무래기들입니다.”

아골렛은 레시듀의 헛소리에 대꾸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런 피라미들마저 이 회담에 대해 모두 알게 됐습니다. 진실을 받아들일 만큼 강하지 못한 자들. 아직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언제가 되었든 실감하게 될 테지요. 이후엔 공포가 전염될 테고 혼돈이 몰아칠 겁니다. 이것도 폐하가 조성하려던 상황입니까?”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지만 비슷하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태풍이 올 것을 안 지렁이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세상엔 모르는 게 나은 경우가 종종 있고, 이번이 그렇습니다.”

아골렛과 얘기를 나눌 때면 근본적인 부분에서 엇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딱히 둘의 성격적인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문제점은 오롯이 아골렛에게 있었다.

아마 이 남자는 누구와 있든,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그 속을 긁어놓을 것이다. 감춰 놨던 음흉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병이라도 걸리는 것처럼.

“지렁이는 땅을 팔 수도 있겠지.”

“예?”

“그 모습을 어린아이가 목격할 수 있을 테고.”

“그걸로 무엇이 바뀝니까.”

“어린아이는 집으로 돌아간 다음 부모에게 자신이 본 걸 말할 수 있다. 오늘 진흙탕을 뒹굴던 지렁이의 움직임이 유난히 활발했다고.”

“…….”

“얘기를 들은 부모가 만약 의심이 깊다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 벌레와 같은 미물들은 약하기 때문에 결코 행동을 낭비하지 않거든.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였을 땐 반드시 이유가 있지.”

아골렛은 아직까지 레시듀가 하는 말을 이해 못 하는 듯했다.

“부모는 그날 밤,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다시금 꺼낼지도 모른다. 집 주변의 지렁이가 유난히 활개를 치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 자리에 우연히, 기상에 해박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

“그 찝찝함을 넘기지 않고 기후를 깊게 분석하여 태풍의 진로를 알게 된다면. 무엇이, 얼마나 바뀔 것 같은가. 지렁이가 땅을 판 걸로 시작된 일이 결국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것 같나.”

“…….”

“아골렛, 이것이 가능성이다.”

지금 꺼내고 있는 말은, 레시듀가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궁극적인 이유기도 했다.

“이 모든 걸 계산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없겠지. 모르는 게 나은 경우가 있다고 했나? 이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진실을 알게 된다면 힘들겠지. 고통스러울 거다. 하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것들에겐 무無와 유有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니 나는 믿는다. 이러한 차이가 극적인 순간에… 내가 계산하지 못할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

몇 번이고 말했듯이.

레시듀는 혼자 알고, 혼자 책임질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인간이란 족속이 나약하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요람 속에 품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

루카스는 지켜야 할 대상에 관해선 과보호가 심했다. 믿지 못할 말일 수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믿음도 부족했다.

불신이란 단어를 포장하면 걱정이 된다.

결국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이유는, 자신 이외의 존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레시듀는 다르다.

이미 몇 개의 재앙이 지나갔다. 아직까지도 살아남은 것들은 제아무리 아둔하고, 하등한 것들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삶을 연명하는 노하우 따위를 습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포를 혼자서만 알고 있을 생각은 없다.

공유하다 보면, 널리 퍼뜨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지.

“…레시듀.”

그때 아골렛이 말했다.

“경고하는데 나를 가르치려 들지 마십시오.”

싸늘한 목소리는 목덜미에 꽂힌 비수처럼 서늘했다.

물론 그렇다고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레시듀는 오히려 이죽대며 말했다.

“가르침을 받기 싫다면 더 똑똑해져라. 이 얼간이 놈.”

“…….”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은 순간 분위기가 차갑게 냉각됐다.

고개를 계속 돌리지 않는다면,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여기서 아골렛과 목숨을 건 사투를 펼쳐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걸 아는데도 눈동자를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엔 순순히 인정하겠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물론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더 있었다.

레시듀는 행동하고, 지껄이는 데 있어 누군가의 눈치를 볼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 누군가가 당분간 옆에 달고 다닐 놈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번 눈치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매사에 있어 아골렛의 입장부터 생각하게 되고, 그건 곧 주체성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레시듀가 아골렛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아골렛이 레시듀를 이용하는 꼴이 되겠지.

때문에 유치하긴 해도 이 기싸움, 물러설 수 없었다.

그극, 극…….

선체가 격렬히 떨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두 남자가 내뿜는 기세가 주변에 실질적인 영향까지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공격할까?’

아직 놈은 ‘백기사’가 되지 않았으니까.

레시듀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직후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우주선이 급속도로 낙하하는 게 느껴졌다.

목표 장소에 도착했나? 그런 느낌은 아니다. 조명이 망가진 것처럼 깜박거리고, 떨어지는 도중에도 선체가 미친 듯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즉 이번엔 정말 낙하가 아니라 추락이었다.

그럼 두 사람이 내뿜은 기백이 결국 우주선을 부순 것인가? 그것과도 다르다.

방금 전 우주선에 묵직한 무언가가 적중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콰앙!

거친 소리를 내며 지면과 충돌했다.

충격이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어때? 이 몸의 사격 솜씨가!”

“이, 이거 완전 대박인데!?”

“대은하연합의 우주선이잖아!”

“…….”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린 순간, 우주선의 출입구가 억지로 뜯겨 나가며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수염을 기른 남자가 호기롭게 외쳤다.

“크하하핫! 우리는 ‘그린센터’ 일대를 주름잡는 산적님들이시다! 가진 걸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

수염 남자가 우주선 내부를 살펴봤고, 레시듀와 아골렛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직후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마쳤다.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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