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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504화 (731/857)

외전 504화

[너는 어째서 나에게 칼을 겨누는 것인가.]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시듀는 적기사를 보았다. 불분명한 안광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매상검 양인현. 네가 폐하의 뜻에 동의하지 않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나와 칼을 맞댈 이유가 되는가.]

“그것만으론 이유가 되지 않지요.”

양인현이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검풍이 미칠 듯이 빗발치며 사방의 소리를 묻는 가운데,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에게 분명히 닿고 있었다.

“그저 언젠가 4기사와는 우열을 가리고 싶었던 것뿐.”

[어리석군.]

적기사가 다시 말했다.

[아직 일천하기 짝이 없다. 너의 수준은.]

양인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당장은 적기사의 말에 수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현재의 얘기지.

적기사는 알고 있을까? 한번 칼날을 맞댈 때마다 양인현은 성장하고 있었다. 폭발적인 기세로 그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경험치가 머릿속에 폭우처럼 쏟아져서, 그것들 대부분을 해석하고 흡수하는 데만 머리가 과열될 정도였다.

목숨을 건 강자와의 대결은 이렇듯 무인에게 천혜와 다름없는 기회가 되어 준다.

‘그때와는 다르다.’

양인현은 또 다른 기사와의 일전, 청기사와의 전투를 떠올렸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처참한 과거고, 씻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청기사가 검법에 무지하단 건 첫 합이 교환됐을 때 깨달았다. 그런데도 이길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반격조차 날리지 못했다.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사막에 얼굴을 처박았다.

양인현은 그때의 패배와 굴욕 또한 잊지 않고 있었으나─ 그의 일생 사상 최대의 치욕은 아직 남아 있었다.

반왕과는 싸우지도 못했다.

그자는 양인현을 싸울 상대로도 여기지 않았다. 심장이 뜯겨 나가는 듯한 굴욕이었으나, 어떻게든 납득할 수는 있었다.

약자를 어떻게 대할지 결정하는 것도 강자의 권리다.

양인현이 진정으로 충격받은 건 그 이후 자신의 태도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왕이, 이 매상검을 적으로도 취급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마음 한구석에서 안심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빠득.

양인현은 그때 벽을 느꼈다. 여태껏 경험한 적 없는 커다랗고, 너무 두꺼워서. 도무지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 벽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벽을 마주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4기사란 벽이 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이러한 싸움에선 심리적인 요인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카앙!

다시 한번 칼날이 맞부딪쳤다.

적기사의 전투 최대 강점은 자유로움에 있었다.

양인현은 저 특이한 형태의 칼이 날붙이의 역할은 물론, 원거리 공격 또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단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양인현의 집요한 추격과 미카엘의 보조, 근처에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싸움 때문에 본래 기량의 절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결전에서, 결국 난 패배할 것이다.’

양인현은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 실린 힘은 전혀 죽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그다음, 혹은 그다음 싸움에선 반드시.’

4기사를 상대로 승리해 보이겠다.

물론 이 결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때의 얘기지만─

거기까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양인현이 고려할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 * *

레시듀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잠깐 침묵하던 페루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뭐냐.”

“우선 꼭대기 우주에 있는 절대자의 힘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저 태양을 없앨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네놈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럴 땐 도구를 써야지.”

“도구요?”

“밖에 있는 거신병에 네놈들의 힘을 실어라. 석상은 망가질지 몰라도, 그럭저럭 태양을 없앨 정도의 출력은 나올 거다.”

“…….”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발상에 페루스의 입이 툭 벌어졌다.

“…꼭대기 우주를 수호하는 여섯 석상으로, 이곳을 박살 내란 말입니까?”

“그렇다.”

“…….”

페루스는 다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렇게 보니 정말 잡생각이 많은 남자다.

즉 레시듀와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페루스.”

“예?”

“시간 없으니까 할 말이 있다면 빨리 말해라. 고민이 필요한 생각이라면 말하면서 고민하고. 한가하게 머리나 굴릴 만큼 지금 상황이 여유로워 보이나?”

“음… 예.”

페루스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 정도 파괴력을 가진 일격이라면, 태양을 부수지 않고 4기사를 공격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분명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겁니다.”

“명중시킬 수 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런 굼뜬 공격으론 저놈들 머리카락도 스치지 못한다.”

“지금 4기사와 맞서고 있는 두 명의 인물이 최대한 행동 반경을 제한해 준다면…….”

“확률이 몇 퍼센트는 올라가겠군. 그래도 기각이다. 운이 좋아도 명중시킬 수 있는 건 기사 중 단 한 명. 한 명은 끽해야 경상이거나, 상처 하나 없을 가능성이 높다.”

“…….”

“무슨 말을 하려나 싶더니 그딴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굴리고 있었던 거냐? 어처구니가 없군. 웬만한 가능성은 모두 이 몸이 떠올렸으니까, 네놈은 그냥 따르기나 해라. 이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문자 그대로 ‘가장 올바른 건 나다’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태도에도, 페루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지금 레시듀가 내보이고 있는 건 과거 페루스가 가장 두려워하고, 반발심을 가졌던 군림자의 위압감이었으나 신기하게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공공의 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서?

‘아니.’

눈앞에 있는 존재는… 군림자와 다르다.

군림자였다면, 한때 이빨을 드러낸 자신들을 결코 살려 두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몰살했겠지.

…자신에게 득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그딴 손익계산 후, 도움이 될 것 같단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처벌에 차별을 두진 않았을 것이다.

머리가 살짝 식은 지금에서야 그런 차이점이 보였다.

페루스는 그리 생각하며 절대자들에게 명령했다.

각기 다른 여섯 세력으로 나눠서 석상으로 향할 것을. 다행히 반발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 모두가 석상으로 향한 걸 확인한 뒤, 페루스는 레시듀를 보고 말했다.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됩니까?”

“말이 참 많구나. 뭔데. 또.”

“태양을 떨어뜨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죽은 군림자를 진혼하면 현 상황이 나아지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

레시듀가 슬쩍 웃었다.

그래도 여태까지의 얼빠진 질문들보단 마음에 들었다.

주변 절대자들을 물린 다음에 말한 것도 좋았고.

“‘태양을 향해 쏴라’는 아무 생각 없이 설계한 작전이 아니다.”

“…네?”

“작전명이다. 때때로 지어야 할 순간이 있지.”

지금이 그때고.

레시듀는 덤덤하게 덧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 작전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네놈들 절대자가 협력하여 태양을 부수는 것. 너희들은 꼭대기 우주를 낙원으로 변모시켰고, 저 태양은 낙원의 가장 상징성 있는 존재로 하늘에 자리 잡았지. 존재 자체가 네놈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네놈들의 손으로 직접 파괴하는 것. 그 행동 자체에 의미가 있다. 잘못된 결심도 같이 부수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

페루스는 알 수 없는 얼굴이 되어 침묵했다.

“물론 단순히 이것만은 아니지. 가령, 지금 이 몸의 힘이라면 저 태양을 홀로 떨어뜨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다른 곳에 할당할 힘이 없다. 난 지금부터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하니까.”

페루스는 힘을 아껴야 하는 이유까지는 묻지 않았다.

“다른 의미는 뭡니까?”

“그건 네놈들의 화살이 태양을 떨어뜨리면 알게 될 것이다. 아까의 의문과 이어지는 것인데, 일이 잘 풀리면 4기사 두 명을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겠지.”

결코 죽이진 않는다.

지금의 세상엔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부족하다.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래서 레시듀는, 불살을 맹세한 것까지는 아니나 멸망 이외의 존재를 죽이는 상황은 웬만해선 피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모두 가능성을 품고 있고, 그들의 재능이 어떤 식으로 개화할지는 레시듀도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멸망이라는 시련은 어떤 의미로 평등하다. 선악에 구애되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든 없애려고 들 테니까.

4기사는 레시듀의 적이나, 동시에 멸망의 적이기도 하다.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죽이고 자시고를 운운할 만큼 만만한 놈들은 아니지만.

페루스가 떠나고.

홀로 남은 레시듀는 전황을 눈에 담으며 때를 기다렸다.

쩌저적!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 균열이 가더니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단순히 성채도시 외부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이 해제되고 있는 과정이다.

바깥에 있는 거신병으로 내부에 있는 목표물을 겨냥해야 하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보호막부터 철거해야 한다.

파랗게 맑던 하늘, 느긋하게 떠다니고 있던 하얀색 구름이 구분 없이 새까맣게 물들어 갔다.

이윽고 청명했던 하늘은 달도 없고, 별도 거의 없는 칠흑의 공간이 되었다.

평소의 하늘과 다른 점은, 비록 작지만 강렬하게 타오르는 태양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캄캄한 성채도시, 바다와 뒤섞인 호수, 그 너머의 초원까지. 사방이 확 밝아졌다.

대낮이 왔다고 표현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나쁘지 않은 광경이었다.

휘오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레시듀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낫군.”

쿠웅!

그때쯤 거신병들은 각자의 무기를 움켜쥔 채 자세를 취했다. 여섯의 절대자 무리가 외력을 한계까지 짜내고 있는 게 보였다. 외력은 거신병의 무기 끝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

그러한 힘의 집중을 4기사도 느꼈는지,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이쪽의 작전을 읽은 건 아니지만 무언가 저지르려 한다는 의도만큼은 이해했을 것이다.

양인현과 크란도 최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들의 몸뚱이는 진작 한계를 초월한 상태다. 언제 전투불능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미카엘은 거의 죽기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놓고 드러나진 않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고통스러운 건 저 녀석이다.

“죽지 마라, 미카엘.”

네놈은 아직 죽으면 안 돼.

미카엘은 부려먹기에 최적의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잃을 수는 없는 카드다.

우우웅…….

그때 수면이 떨리기 시작했다.

레시듀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준비가 끝났다!

그그극!

무기 끝에 응축된 외력은 공간을 일그러뜨릴 만큼 강했다. 꼭대기 우주에 있는 절대자의 외력 전부를 끌어모은 것이니 당연하다. 모아진 힘은, 솔직히 말해서 레시듀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한 공격이 여섯 개.’

충분하다.

카앙!

그 순간이다.

청기사의 검이 크란의 무기를 부쉈다. 뒤이어 그녀에게서 뻗어나온 쇠사슬이 상대의 몸을 칭칭 감았다.

크란은 떨쳐내려고 몸을 비틀었으나, 레시듀는 효과가 없을 거라 예상했다. 저 쇠사슬은 그 또한 경험한 적 있는 물건으로, 물리력으로 끊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청기사는 움직이지 못하는 크란의 몸에 검을 두 번 정도 쑤셔 박은 뒤 발로 걷어찼다. 그런 다음 레시듀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철컹!

어디선가 나타난 푸른색 갑주가 전신을 빈틈없이 감쌌다. 4기사로서의 힘을 완전히 해방시킬 속셈이다.

레시듀는 혀를 찼다.

역시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나?

애초에 크란의 존재는 계산 밖이었고, 원래 저 자리에서 청기사와 싸우고 있는 건 레시듀여야만 했다.

그래도 마왕의 힘을 빌리고 있는 것 같아서 생각보다 오래는 버텼지만…….

청기사가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대며 이쪽을 향해 돌진해 왔다.

“──.”

시계 초침 소리가 고무처럼 쭈욱 늘어나는 것 같다. 돌연 그들의 시간은 한없이 늘어갔다.

극소시간대에 진입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레시듀도 마주 진입하여 맞설 수밖에 없었다.

“──.”

[──.]

압축된 시간에서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레시듀는 여전히 페일의 의도를 완전히 읽을 수 없었다.

루카스는 다를까? 저 여자가 느끼고 있을 감정이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읽을 수 있는 것도 있지.’

청기사의 안광에서 폭사되는 살기가 전신을 바늘처럼 찔러댔다.

레시듀는 양손을 펼치며 히죽 웃었다. 도발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청기사가 대지를 박차며 이쪽을 향해 치달았다. 한 발자국 내려찍을 때마다 신시티의 거리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칼날엔 푸른색 기류가 휘감긴 상태였다.

‘일격으로 이 몸을 죽일 셈이잖아?’

오싹함에 등골이 저릿했으나 나쁘지 않다.

“와라, 청기사.”

레시듀는 투우사처럼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거리를 벌렸다. 뒷걸음질을 치는 형국이라서 페일이 접근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하지만 둘 사이의 간격이 스무 발자국쯤 되었을 때부터, 청기사는 더 이상 레시듀와 가까워질 수 없었다.

[…….]

그 상황이 탐탁잖은지, 다리에 더욱 힘을 싣는 듯했으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레시듀는 자신을 찢어 죽일 기세로 돌격하는 청기사를 보며 생각했다.

노골적인 유인에 이토록 쉽게 넘어가 주는 이유가 뭘까?

레시듀를 얕보는 것인가, 가진 힘에 대한 자신감인가. 그것도 아니면 들끓는 증오심 때문에 판단력이 사라진 건가.

뭐든 상관없었다.

레시듀는 드넓은 신시티를 무대 삼아, 한동안 청기사와 술래잡기를 했다. [루카스의 얼굴]로 “나 잡아 봐라~”따위를 말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이만한 자극은 계산치 못한 변수를 낳을 수도 있었다.

청기사는 레시듀를 따라잡지 못했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여기서 레시듀는 우선 만족했다.

이제부터는 군림자든, 4기사든.

자신이 마음먹고 도망친다면 누구도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계속 도망칠 것이냐.]

청기사가 빠득 이를 갈며, 결국 입을 열었다.

어느새 그들은 극소시간대에서 벗어나 있었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었다.

레시듀는 여전히 스무 발자국의 간격을 유지하며 빙긋 웃었다.

“이제 대충 준비가 끝난 듯하군. 그럼…….”

그리고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며, 청기사를 그 안에 담았다. 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각도 좋고.”

[무슨 속셈이냐.]

“별의 죽음을 본 적은 없겠지.”

콰앙──!

그때 거대한 폭발음이 났다.

여섯 석상에 맺힌 외력이 드디어 발사된 것이다. 각기 다른 색을 띤 투사체가 태양을 향했다.

“거인의 심장… 웬만한 항성恒星보다 훨씬 밝고, 격렬히 타오르긴 하지만 질량만큼은 그렇게 크지 않지. 일반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우주적 재앙을 구현하기엔 좀 부족하다.”

[…….]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우주적 재앙이란, ‘우주적 규모의 재앙’이 아니라 ‘드넓은 우주 어딘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재앙’을 의미한다. …뭐 이런 표현도 필멸자적인 관점이긴 해도.”

청기사는 레시듀가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뇌류라는 건 응용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기예가 가능해지지.”

레시듀의 손가락에서 뇌류가 뻗어 나갔다. 그것은 태양을 향하는 여섯 외력에 그대로 섞여 들었고─

외력이 태양을 관통했다.

───!

관통당한 태양이 떨렸다. 박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태양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떠올린다면 의미심장한 대목이었다.

뒤이어 눈먼 자들조차 목격할 수 있을 만큼의 광채가 신시티 전역을 뒤덮었다. 빛은 세상 끝까지 뻗어 나갈 것처럼 전파되다가─ 마치 시간을 되감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폭발의 시작점을 향해 빨려들어 갔다.

“……!”

[……!]

그리고 태양 아래 있던 모든 존재가 행동을 멈췄다.

계산대로, 레시듀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이건…….’

페일의 표정이 굳었다.

경험한 적 없는 압박감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몸뚱이가 갈가리 찢길 것만 같았다.

“번개를 본 적 있는가, 청기사?”

[…….]

“만약 목격한 적 없다면 가르쳐 주겠다.”

파츳.

레시듀에게서 스파크가 튀며, 육체가 점차적으로 창백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내가 번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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