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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367화 (588/857)

외전 367화

스스로 벌인 일의 뒤처리를 누군가에게 넘긴 적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루카스의 역할은 항상 그 반대였다.

그는 스스로가 벌이지 않은, 관계없는 일의 뒤치다꺼리까지 했다. 해야만 했다.

그런 배경에 어떤 영웅적인 희생심이 뒷받침되고 있었던 건 아니다. 단순히 루카스 이외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없었을 뿐이다.

못 본 체하면 하나의 도시가 악惡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든가, 나라의 명운이 흔들린다든가, 아예 세계가 멸망한다든가…….

─넌 왜 남이 싸지른 똥까지 처리해 주냐?

─뭐?

─따지고 보면 너랑 관계없잖아.

무관계한 건 아니다.

이미 알아 버린 이상 무관계가 될 수는 없었다.

외면하면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겠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보다 스스로 직접 처리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놓였다. 몸은 빌어먹을 만큼 고됐지만.

그러한 연유엔, 당시의 루카스가 의외로 타인을 믿지 못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악마왕과 마왕은 루카스가 감당했어야 될 업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루카스가 완벽히 책임져야 될 일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양인현보단 그가 훨씬 더 깊게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남은 건 양인현이었다.

그 사실에 루카스는 조금의 낯설음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

대기의 진동 혹은 공간의 비명.

필설로 완벽히 형용할 수 없는 기척이 등 뒤에서부터 느껴진다.

양인현과 마왕이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루카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쪽을 향해 주의가 가려는 걸 억누른다.

양인현이 마왕을 이길 확률?

냉정히 말하면 낮다. 천 번 싸워서 한 번 이길 정도. 아니, 이것도 최대한 희망적인 관점에서의 얘기다.

[아마도 양인현은 악마왕과 이미 목숨을 건 싸움을 치렀겠지.]

뇌존의 목소리가 들린다.

[결국, 놈이 이겼겠지만 이미 몸 상태는 엉망이었을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고 방심한 찰나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을 터. 악마왕의 몸을 빌어서.]

‘…….’

[루카스 트로우맨, 마왕의 행동을 비겁하다고 비난할 텐가?]

‘아니.’

루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는 행동, 쓸데없는 감정 소모일 뿐이다.

어차피 이 건으로 아무리 물고 늘어져도 마왕에게 죄책감이란 감정을 일깨우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애초에 군림자란 그런 존재다.

[재밌군.]

뇌존이 흥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점점 군림자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다.]

‘피차일반일 텐데.’

[뭐?]

‘너도 점점 인간에 대해 알게 되고 있지 않나?’

[…….]

그 순간 루카스는 뇌존에게서 약간의 당황을 느꼈다.

지금 이 상태, 루카스와 뇌존은 단순히 감각만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선에서 감정의 동화同化까지 겪고 있었다.

[너는…….]

뇌존이 어떤 말을 내뱉으려다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루카스 또한 뇌존의 뒷말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펼쳐진 풍경, 그의 상상을 제법 벗어난 풍경이 말문을 잊게 만들었다.

“…이건.”

어느 순간부터.

루카스는 격전지에서 더 이상 큰 소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동에 박차를 가했고, 양인현의 도움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설마, 이미 전투는 끝난 것인가?

한쪽의 죽음 혹은 전멸로.

그리고 현장의 풍경을 눈에 담은 순간, 루카스는 이유를 깨달았다.

주변엔 시체가 잔뜩 있었다.

도시에 있었던 일반인들의 시체가 아니다. 주변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시체는 한 명 한 명이 최소 독고연을 능가하는 강자였다. 아마도 디아블로가 통합된 우주에서 직접 모은 동료들이겠지.

익숙한 기척을 풍기는 자들도 몇 있었다. 지인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고향 우주에서 스쳐 지나갔던 서클의 일원들. 루카스와 같은 우주의 존재들.

그리고 시체들 사이엔.

디아블로도 섞여 있었다.

“…….”

디아블로는 하반신이 완전히 박살 난 채로 지면을 나뒹굴고 있었다. 놈 특유의 음산하고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뜻 보면 단순한 백골로 보일 지경이다.

루카스는 디아블로의 앞에 간 다음 한쪽 무릎을 꿇고, 시커먼 눈구멍과 초점을 맞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

“디아블로, 나를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자 캄캄했던 구멍에 흐릿한 귀화가 일렁였다.

방금 전만 해도 겁화처럼 타올랐던 귀화는, 이제는 꺼지기 직전의 촛불보다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건 마치 디아블로의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듯했다.

[…그랬었지.]

목소리도 금방이라도 끊길 것처럼 희미하다.

…디아블로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

루카스는 그 사실에 허무함을 느꼈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지?”

루카스는 잠시 간격을 둔 다음 물었다.

“페일인가?”

[청기사가 아니다. 좀 더 감각을 끌어 올려서, 주변 풍경에 집중해라… 당신은, 이 현장을 만든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디아블로는.

이 일을 벌인 자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자의 이름을 말해 주는 대신, 직접 생각할 것을 건의하고 있었다.

놀리거나 비아냥대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루카스는 순순히 그 말대로 했다.

“…….”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며 두뇌를 가속했다.

그러자 루카스를 바라보던 디아블로의 안광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 찰나 동안 변했군. 나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또 무엇이 당신을 성장시킨 거지?]

“글쎄.”

루카스는 대충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을 마친 것이다.

“마법사인가.”

[그렇다. …그것도 당신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마법사였다. 또한 당신의 이름을 모방한 존재였지.]

“나의 이름을 모방한 자라면…….”

루카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 세계에서 활동하던 ‘루카스 트로우맨’을 말하는 거냐?”

디아블로의 고개가 힘없이 끄덕여졌다.

[…위험한 존재다. 그자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법은 더욱 그랬고. 나의 몸이 이렇게 되는 순간까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나의 흑기사, 루시드마저도.]

“……!”

[그 ‘루카스’는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방으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나의 동료들의 절반 이상이 죽어 있었지.]

“놈의 목적은 뭐였지?”

[모르겠다. ‘루카스’는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 떠났다.]

“어디로.”

디아블로의 시선이 천천히 하늘로 향했다.

올라갔던 시선이 천천히 떨궈졌다.

[…당신에게선 더 이상 혼란이 보이지 않는군. 루카스 트로우맨. 한 가지는 알겠어. 당신은 나의 교섭에 응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글쎄.”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딱히 멸망에 대응할 방법은 없어. 그래도 난 너의 제안에도, 마왕의 제안에도 수긍할 수가 없더군.”

그리 말하고 나니 스스로가 조금 한심해져서 덧붙였다.

“어쩌겠나. 그렇게 생겨 먹은 성격인데.”

[큭큭. 담담한 태도가 마음에 드는군. 난 알고 있다. 모든 걸 안 이후에 그렇게 되는 건 쉽지 않지… 적어도 난 불가능했다.]

디아블로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졌다.

[…아쉽군. 당신의 선택이 무엇일지 보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나도…….]

“…….”

[…당신은, 나의 죽음을 기억할 텐가.]

루카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디아블로의 두개골은 잿더미처럼 흩날렸다.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반쯤 뻗었던 손을 다시 움츠렸다.

그리고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디아블로의 시선이 잠시간 향했던 곳.

[넥스트 스테이지]

창공에 부유하고 있는 인공섬에서 싸움은 이어지고 있었다.

* * *

때때로 생각한다.

내게 있어 유년기란 정말로 존재했을까?

최초의 기억은 굶주림이었다. 위장에서 느껴지는 격통이 그런 이름을 가진 것도 몰랐기 때문에, 처음엔 고통이라고만 이해했다.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굶주림이 언제나 나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할 수만 있다면 배를 잡아 찢어서 고통의 근원지를 끄집어내고 싶을 정도였다.

─뭐든 먹으면 나아져.

머릿속에선 때때로 그런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떨 때는 위장에서의 고통보다 그 목소리가 더 거슬렸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이었다.

무언가를 씹을 때, 그리고 삼키는 순간만큼은 일순이라도 굶주림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 순간은 지극히 찰나였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난 더욱 먹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뿐인 삶에 있어서 그 찰나가 가지는 유혹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도 있었다.

아마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생에 걸쳐서 죽음 이후에도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어째서 나인 거지?’

세상을 저주했고 운명을 저주했다.

목이 쉬어 버리고 핏물이 나올 만큼 비명을 질렀다. 그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아지는 건 없을 거라고.

“괜찮니?”

“먹을 걸 가져왔단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은 내게 항상 온화했다.

집에 있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그게 나 때문인 건 알고 있었다. 나의 비정상적인 식탐 때문에, 두 분은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을 했어야 됐다. 그러면서도 내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괜찮다.

사랑한다.

두 분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굶주림을 참고,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일을 했다.

“이 미친년이!”

“그걸 네가 먹어서 어쩌겠다는 거야?”

상황은 악화됐다.

먹을 걸 앞에 두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인내심의 문제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게다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그 부작용으로 미친 듯이 배가 고파 왔다.

나는, 난…….

그걸 버틸 수가 없었다.

쓰러졌고, 울었고, 그럼에도 무언가 먹고 싶었다. 하루는 배에 피멍이 들 만큼 직접 때렸다. 그래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더 이상 이러기가 싫어서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나의 육체는 죽지 않았다. 그저 고통만이 점점 가중될 뿐이었다.

내가 명백히 이상한 존재라는 건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괴물이란 단어도 나를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겠지.

하지만.

“괜찮아.”

어머니는 말했다.

“괜찮단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 탓이 아니야.”

“넌 아무런 잘못도 없어.”

이제는 늙어서, 더 이상 일할 기력이 없어진 두 분이 말했다.

“이리 오렴.”

“아직 먹을 게 있단다.”

병상에 누운 채 힘없는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아니야. 아냐.

지금 집엔, 더 이상 ‘먹을 건’ 없어.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뭐든 먹으면 나아져.

그럼에도 목소리는 들렸다.

무시하고 싶었다. 그러기 싫었다.

여태껏 내가 원망한 건 굶주림이었으나, 지금은 먹는 것 자체에 혐오감이 들었다. 여기서 저지르면, 나는…….

“미안해. 딸.”

“정말로 미안해.”

“맛있는 걸 먹게 해 주고 싶었는데.”

“원 없을 만큼, 실컷…….”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붉은 피부의 소녀.

나비는 나였다.

그 아이도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결코 먹어선 안 될 걸 먹고 말았다. 나와 같은 원죄를,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저질렀다.

나는 그 광경을 보았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가련하고, 애처롭고, 외면할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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