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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363화 (584/857)

외전 363화

[드넓은 창공에도 끝은 있었고, 깊은 바닥에도 밑바닥이란 존재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게 이치, 누구나가 알고 있는 섭리였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다. 혹은 외면했다. 우주에도 수명이 있다는 것을. …이제 곧 완전한 소멸이 들이닥칠 것이다.]

“이 우주가 사라진다는 거냐.”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나?]

디아블로의 목소리에 업화와 같은 열기가 묻어났다.

[고작해야 한둘의 우주가 망가지는 게 아니다. 당신의 인지 범위 안에 있는 것들, 그리고 바깥에 있는 것들까지……! 깨달을 수조차 없이, 일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상이나 할 수 있나?]

디아블로가 하얀 손가락을 꽉 쥐었다.

[멸망의 전조를 예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단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갑작스럽게 ‘모든 게 끝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조차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한순간에, 정말 한순간에 무량대수無量大數에 걸쳐 존재들이 쌓아올린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디아블로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난… 난 그게 두렵다.]

“…….”

루카스는 백골의 육체를 가진, 표정조차 존재하지 않는 언데드에게서 극심한 공포를 감지했다.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때 뇌존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평소와 달리 진중한 목소리였으나,

[나만큼은 ‘남을 것’이다. 나의 유일한 도전은 성공한다…….]

그럼에도 목소리엔 희미한 광기가 묻어 있었다.

루카스는 디아블로만큼이나 뇌존에 대해서도 신경 쓰였으나, 당장은 그에게 말을 걸거나 할 수 없었다.

“그럼 네가 퍼뜨리는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어느덧 루카스의 목소리도 차분해져 있었다.

“네 말대로라면 누군가를 죽여도 그건 ‘빼기’가 되지 않는다. 절대자를 죽여도 마찬가지다. 창세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가 ‘소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 네놈이 누군가, 얼마나 죽여대도 시간벌이조차 안 될 텐데?”

[시간을 벌이기 위해 죽이는 게 아니다. 내가 하는 건 사전준비다.]

“사전준비?”

[…곧 다가올 멸망의 기운을 ‘반드시’ 버틸 수 있는 존재가 딱 하나 있다.]

디아블로가 중얼거렸다.

[소멸 이후의 세계라고 불렸던 장소의 주인, 버림받은 가능성을 모두 지켜봤던 자, 모두가 유일무이하다고 여겼던 신神의 형제, 혹은 이면裏面.]

“…설마.”

루카스는 황량한 사막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낡은 성을 떠올렸다.

[멸망이 휩쓸고 간 이후엔 오직 허왕虛王만이 남을 것이다.]

“……!”

[그리고 난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내가 죽였던 자들을 되살릴 것이다. 그것이 내가 허왕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과거에 한번 버렸던 사령술에 다시금 손을 뻗은 이유기도 하고.]

“…되살린다고 해도 그건 온전한 의미에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없을 텐데? 단순히 네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전혀 별개의 존재지 않나.”

[그게 무슨 문제란 거냐? 나의 사명은 모두를 살리는 영웅적인 결심과는 결이 다르다. 난 그저… 남기고 싶은 것뿐이다.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용납할 수 없을 뿐이다.]

“…….”

[때문에 난 내가 죽인 이들을 잊지 않는다. 모두 기억하고 있지. 그러기 위해 언제나 집중력의 9할 이상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잠깐만.”

루카스는 찰나 당황을 숨길 수 없었다.

디아블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존재를 죽였나? 모른다. 하지만 분명 천문학적인 수치일 게 분명하다.

“그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이름이나 외형만이 아니다. 그들이 가졌던 성격, 사소한 습관까지. 내가 기억한 건 그들의 자아自我이자 영혼이다. 어설프게 외울 수는 없지. 아주 작은 특징 하나가 사라지는 것만으로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도 하니까. …물론 당신 말대로, 세포 하나까지 동일하게 구현했다고 같은 존재라 볼 수는 없겠지만.]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니다. 디아블로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래서 루카스는, 더욱이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폐기장에서 수많은 ‘루카스’를 먹으며 알게 됐다. 한 명의 인간이 가진 용량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그들 전부를 머릿속에 박아 넣겠다는 결심은… 허투루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루카스 트로우맨’이란 존재가 품은 가능성은 일반인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거대했으나, 그 차이가 무색할 만큼의 숫자를 디아블로는 죽였다.

‘…집중력의 9할.’

저 말까지 진실이라면 디아블로가 평소 전투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전력全力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 된다.

여태껏 회귀를 반복하며 몇 번인가, 디아블로를 죽음의 위기까지 몰아갔었다. 그때도 디아블로는 자신의 진짜 힘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즉 놈은 언제나 목숨보다 사명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리스가 했던 말들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이들이 왜 디아블로의 말에 동조하게 됐는지도.

하지만…….

“되살릴 수 있다는 보장은 있나?”

[…….]

“멸망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알고?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법칙이 사라진 세계라면? 누군가를 살리는 것 따윈 불가능하며,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전혀 다른 존재라면? 애초에 그 세계에서 건재한 건 너의 ‘의식’뿐이고, 생각 이외엔 아무런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떡할 거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간에서,

쭉 홀로 생각만 이어가야 되는 것.

그건 마치…….

[과거 당신이 갇혔던 무저갱 같지 않은가…….]

“…….”

디아블로가 웃음을 흘렸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야 할 일은 아니군. 무엇보다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

[자. 나의 어설픈 목적에 대해선 모두 밝혔다. 그럼 이제 당신의 의견이 듣고 싶군.]

“…내 의견?”

[당신이 다시금 인간으로서의 의식을 갖게 됐을 때, 나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절대자’가 아닌 ‘인간 루카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됐으니까.]

디아블로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아른거렸다.

[내가 생각한 방안이 억지투성이라는 것쯤은,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은 것이다. 과거 우리 우주를 구했던 대마도사의 생각은 어떠한지.]

“…….”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나를 죽여도 좋다. 순순히 받아들이겠다. 다시 말하겠다. ‘당신은 나의 죽음이 될 자격이 있다’.]

루카스는 그 말에 담긴 무게에 침음을 흘릴 뻔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인간을 구했는지 알고 있다. 불가능이라고 말해졌던 시련을 수도 없이 넘어선 것도, 누구보다 강인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것도 알고 있다. 만약 당신 이외의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든다면, 나는 처절하게 발버둥 칠 것이다. 내가 가진 역할의 중대함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예외다. 나를 죽인다는 건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을 떠안겠다고 선언하는 것. 영혼마저 짓누르는 책무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다는 것. ─어찌 기쁘지 않으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

루카스 트로우맨은,

살면서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은 적은 없다. 하지만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단 한 명의 언데드가 그에게 보내는 기대가 너무 무거웠다.

듣는 것만으로 무릎이 꿇려질 만큼 무거웠다.

…영혼마저 짓누르는 책무. 디아블로가 꺼낸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자. 루카스 트로우맨……!]

디아블로가 양손을 펼쳤다.

아무런 공격 의사가 없음을 내보였다.

상대의 칼날에 목을 들이미는 것과 동일한 행위.

루카스는 떠밀리듯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금 디아블로의 목을 겨냥했다.

…처음 만났을 때.

루카스는 디아블로를 죽일 의지가 있었다. 곧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녀석의 담담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았다.

여기서 그를 죽이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았다.

“……”

뻗었던 손가락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런가.]

디아블로가 식은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렇겠지.]

“…….”

[실망한 건 아니다. 나는 이 건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고민했고, 몇몇 초월적인 인물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으나 그들 또한 뚜렷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니 실망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

잠시 단어를 찾던 디아블로가 이윽고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조금, 아쉽군.]

“…나는.”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다. 이건 오기를 부릴 문제가 아니니까.]

“…….”

[나는 이 길로 ‘청기사’에게 갈 거다. 허왕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니까. 나와 흑기사, 그리고 나의 뜻에 동조하는 이들이 힘을 합하면 그녀를 제압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녀를 굴복시켜 충성을 얻겠다는 거냐.”

[자발적으로 얻는 편이 가장 확실하겠지만, 4기사란 존재는 까다롭기 그지없지. 한 명의 존재가 그들 모두의 충성을 받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진정한 의미로 나와 뜻을 함께하는 기사는 루시드뿐이다. 그러니 나머지는 굴복시킬 수밖에.]

“…….”

[당신이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그럼 보다 쉽게 청기사를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

디아블로는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기다리겠다.]

* * *

지독한 굶주림보다 끔찍한 건 없었다. 페일은 경험에 의거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참격을 휘둘렀다.

아무런 기교도 없는 단순한 휘두르기, 그러나 창백한 칼날에서 뻗어나간 참격은 대은하연합의 과학력이 응축된 배리어 시스템을 뚫고, 초합금으로 이루어진 인공섬의 벽면을 산산이 부쉈다.

“…고통에는.”

문득 페일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버틸 수 있는 것과 버틸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굶주림은 그중 명백한 후자였는데, 지독한 점은 시간이 지나도 적응할 수가 없다는 거였죠.”

푸른 건틀릿에 둘러싸인 손이 복부를 더듬는다.

“…‘이 이상 고통스러울 수나 있을까?’, ‘이게 고통의 끝이 아닐까?’, 그런 알량한 예상, 실낱같은 희망은 언제나 다음 순간 사라졌어요.”

페일이 픽 하고 웃었다.

“나는요. 내가 겪은 고통을 자세히 설명한 적이 없어요. 말이나 언어 같은 불완전한 수단으로는 조금도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으니까.”

[…….]

“우리들은 모두 선천적인 결함을 안고 있죠. 그리고 그 결함을 채울 수 있는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어떤 녀석은 ‘아무런 야욕도 없는 자’를, 어떤 녀석은 ‘영원히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는 자’를 찾았죠.”

몸을 돌렸다.

페일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존재를 바라보며 입가의 미소를 짙게 만들었다.

“우스운 일이죠? 생전生前, 이라고 말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옛날엔 누구보다 정복과 전쟁에 미쳐 있던 자들이, 지금은 그때의 자신과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왕을 찾고 있다니.”

[…….]

“당신은 어떤가요? 죽음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왕이 됐으면 하나요?”

루시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대화가 아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페일의 가는 몸이 흐느적거리듯 비틀거렸다. 그에 따라 푸른색 검은 잔영처럼 춤을 췄다.

“…지배욕, 전쟁욕, 생존욕. 하하하. 웃기지 마.”

낮게 깔린 목소리가 주변을 음산하게 잠식한다.

“가장 춥고, 힘들고, 괴로운 건 언제나 나였다. 같은 취급하지 마라. 굶주림조차 모르는 개새끼들아.”

[…당신은 무엇을 바라는 것이오?]

루시드가 물었다.

그리고 페일은 다시 웃었다.

“배가 고파. 언제나 그랬지. 그래도 난 이 굶주림이 사라지는 걸 바란 적은 없어. 달에 가고 싶다고 호수에 뛰어들어도 바뀌는 건 없잖아. 무의미한 짓은 하지 않는 게 효율적이야.”

[…이제 알겠소.]

루시드가 중얼거렸다.

“무엇을?”

[왜 나보다 먼저 기사가 된 당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지. 당신의 존재는, 너무 위험하오.]

스릉.

루시드가 검을 뽑으며 말을 마쳤다.

[가급적 빨리 제압해야겠군.]

“제압해? 나를? 하핫.”

페일이 검을 휘둘렀다.

루시드도 즉시 마주 휘두르며 그것에 대응했다. 까앙! 첫 참격은 쳐냈다. 하지만 페일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공격이 연거푸 날아왔다. 그에 맞춰 루시드의 휘두름에 점점 다급함이 묻기 시작했다.

“설마 흑기사가 된 것만으로 나랑 같은 선상에 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철컹.

[─모르진 않을 터.]

말투가 바뀌었다. 그뿐이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루시드는 참격의 위력이 열 배는 세진 사실에 더욱 주목했다. 다음 일격을 쳐냈을 때, 자신의 몸이 뒤로 죽 밀려난 것과 손목뼈가 완전히 분질러졌단 사실도 깨달았다.

[…흠.]

피육으로 이루어진 육체가 아니란 사실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루시드의 손목은 부러졌을 때보다 더 빨리 재생했다.

물론 이 모든 사실은 페일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한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넌 너무나도 안정되어 있다.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네게선 지극히 절제된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널 움직이는 건 사명이란 거겠지. 그런 따분한 감정으로는 나와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

페일이 중얼거렸다.

[그걸 모르는 건가?]

[알고 있소.]

루시드가 피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애초에 혼자 싸울 생각은 없었지.]

키잉! 하늘이 갈라지며 갑자기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시드는 그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죽으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이리스 피스파인더가 빙긋 웃었다.

“아예 수다쟁이가 되었네요, 루시드?”

[…….]

페일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딱 한 번 봤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줬던 여자.

여태 만났던 누구보다도 거슬렸던.

“여어, 루시드. 안 본 사이 피부가 좀 푸석해졌네.”

은발에 청록색 눈동자를 가진 미소녀가 건들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페일은 남자 같은 말투를 쓰는 소녀가, 실은 아주 정밀한 육체를 가진 인형이란 사실을 느꼈다.

[슈하이저.]

“지금은 아나스타샤.”

[…음. 새로운 취미를 발견한 것에 축하라도 해줘야 하나?]

“아 좀. 그러지 마.”

아나스타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인 다음 말했다.

“예상치도 못한 동창회가 열렸군. 카사진 녀석은…….”

“근처에 있어요. ‘그걸’ 카사진이라고 봐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습 좀 바뀐 건 넘어가자고. 나랑 루시드를 봐서.”

[난 그리 바뀌지 않았소만.]

페일은 검을 늘어뜨리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죽음의 흑기사.

그녀와 같은 4기사가,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광경을 보았다.

[…킥킥.]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그런가.

상황을 모두 이해한 건 아니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수십 명을 곁에 두고 있는 루시드.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나.

같은 기사여도 이렇게나 다르다.

그래서 페일은 더없이 환하게 웃으며 검을 들었다.

[아아. 역시─]

─진짜로, 빌어먹을 세상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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