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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358화 (579/857)

외전 358화

“큭……!”

치명상은 아니다.

독고연은 크게 휘청거렸으나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위험했다. 방금 몸뚱이를 가누지 못했으면 정말 끝장났다.

‘무슨 공격이지?’

방금 전 독고연은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다.

설령 대전차미사일에 직격당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버티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투사체는 독고연 최후이자 최고의 방어수단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호텔 쪽입니다……!”

“알아! 지혈부터 해!”

“큭. 예!”

독고연이 관통당한 상처 부위를 꾹 눌렀다.

그사이 루카스의 시선이 호텔을 빠르게 훑었다. 투사체가 날아온 장소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옥상에서 다시금 녹색의 빛이 번뜩였다.

‘또 온다.’

이번엔 한 발이 아니라 연사다.

번뜩인 빛은 총 다섯 줄기, 그중 세 줄기가 독고연을 노리고 있다.

비열하지만 정확한 판단이다. 루카스가 어금니를 콱 물었다. 배리어도 통하지 않았다면 웬만한 마법으로는 저 투사체를 막기가 힘들다.

루카스는 독고연의 목덜미를 잡은 다음 공간도약을 시전했다. 독고연은 몸뚱이가 바지랑대에 걸린 옷감처럼 펄럭이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지혈을 수행했다.

피잇-

그러나 빗나간 투사체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얼마 안 가 방향을 꺾더니 다시금 루카스를 향해 쇄도했다.

해당 움직임엔 일절의 군더더기도 없어서, 루카스는 이 투사체가 탄환이 아니라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느껴질 정도다.

물론 속 편하게 분석을 이어갈 여유는 없었다.

루카스가 손을 휘저어 공기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주변 대기가 거칠게 요동치며, 사방을 향해 휘몰아쳤다.

파파팡!

다섯 발의 탄환 중 세 발이 터졌다.

루카스는 자신이 퍼뜨린 대기의 흐름에서, 탄환의 내부 구조를 읽었다.

생명체가 아니다.

탄환은 아주 작지만 놀라울 정도의 기술력이 응축된 기계였다. 손톱보다 작은 탄환 하나가 웬만한 전투기보다 복잡하고 정밀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니 생명체로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탄환 하나에 담긴 기술의 정수는 이미 마법에 가까운 수준이다.

‘탄환을 쏘아낸 자의 기량도 놀라워.’

그자는 분명 아무런 장비 없이, 돌멩이 하나만으로 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의 사수射手다.

“전 괜찮습니다……!”

독고연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첫 번째 공격을 허용한 건 스스로가 무력해서였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존재는 루카스에게 짐짝밖에 되지 않고 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적을 요격해 주십시오! 상대에게 이 이상 휩쓸리면 안 됩니다…….”

그리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상대는 저격수다.

일반적인 저격수와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위치를 전혀 숨길 생각이 없다는 점이겠지.

‘당연한가.’

녀석이 있는 장소, 레이크 호텔은 철옹성이다.

저곳에 몇 명의 절대자가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이 시점에서, 함부로 놈을 향해 공격을 저지르면 지금보다 상황이 수십 배는 악화된다.

즉 현 상황에서 최고의 비책은 도주인데, 이미 부상당한 독고연을 데리고 긴 거리를 도약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독고연의 몸뚱이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거다.

피피핏─

그때 또다시 빛이 번뜩였다. 이번엔 수십 줄기,

루카스는 결심을 굳혔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보이드를 아낄 때가─

“대화를 원한다.”

루카스와 독고연이 서로를 바라봤다. 물론 둘 중 한 명이 낸 목소리는 아니었다.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또렷했지만,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음울함을 띠고 있었다.

루카스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단숨에 깨달았다.

호텔 옥상에서 이쪽을 겨냥하고 있는 저격수, 놈의 목소리다.

“그럼 첫인사를 좀 더 신사적으로 했었어야지.”

루카스가 비아냥댔으나 돌아오는 목소린 여전히 무뚝뚝했다.

“네게 위해는 입히지 않았다. 네 종자도 치명상은 아니고.”

“…그걸 말이라고.”

“내가 그럴 마음만 먹었다면 그자는 첫 일격 때 육편肉片이 되었을 거다. 이 사실을 부정할 텐가?”

“…….”

허언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서, 독고연은 굴욕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루카스는 되도록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그래.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저격수는, 아예 틀린 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 확실히 루카스나 독고연의 사살이 목적이었다면 좀 더 확실한 수단을 썼을 것이다.

호텔에 있는 다른 누군가와 협공을 한다든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음. 대화 상대는 내가 아니다.”

“그럼 누군데.”

“디아블로.”

자신도 모르게 입 끝이 올라갔다.

“녀석과는 얼마 전에 봤다. 더 할 얘기는 없어.”

“난 너희 둘의 속사정까지는 모른다. 관심도 없고. 내가 그에게 들은 건 시급히 너와 얘기를 나눠야 한다는 것뿐.”

“넌 디아블로와 무슨 관계인 거지?”

“협력자.”

이자도 디아블로의 사상에 동조하는 입장이란 말인가? 루카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격수가 가진 힘은 대단한 수준이다. 최소한으로 봐도 절대자였고, 이토록 떨어진 상태에선 루카스조차 그가 가진 진력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즉 디아블로보다 훨씬 강한 존재인 것이다.

공포로 인해 사고가 둔해질 리도 없는데, 디아블로의 허황한 사상에 동의하는 입장이라니.

“여유가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

“호텔에 있는 다른 녀석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가 보군.”

“그 이유도 있지만 곧 동이 트지 않나.”

“……?”

그 말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대부분을 가린 인공섬 때문에 깨닫는 게 늦었지만, 부옇게 물든 창공에 서서히 주홍빛 광선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격수의 말대로 곧 동이 튼다.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디아블로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짧게 설명하자면, 해가 뜬 직후 퍼스트 웨이브가 들이닥친다.]

“퍼스트 웨이브?”

[첫 번째 선별 작업이지. 이 정보를 아는 건 VIP 내에서도 극소수다.]

“…….”

[당신도 이제 결정을 내렸을 터. 지난 1주일, 고민을 끝내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대답을 들려줬으면 좋겠군.]

“무슨 대답을 말하는 거냐.”

[그야…….]

디아블로의 목소리가 잠시 뚝 끊겼다.

이윽고 그가 당황한 듯 말했다.

[…설마 이리스 피스파인더에게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한 건가?]

“뭐?”

[그 여자, 무슨 속셈으로…….]

잠시 중얼대던 디아블로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아카식 레코드에서, 당신은 그녀와 무슨 얘기를 나눈 거지?]

“별다른 얘기는…….”

그때였다.

불현듯 느껴지는 기묘한 위화감에 루카스와 독고연이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계획이 조금 앞당겨졌나. 한발 늦었군.]

디아블로의 탄식성이 들려온다.

[선별이 시작된다. 얘기는 이후에 재개하도록 하지. 당신이라면 퍼스트 웨이브쯤은 쉽게 버틸 수 있을 터…….]

디아블로의 목소리가 흐릿해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옥상에 있는 저격수도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감췄다.

그러나 루카스는 그 사실에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인공섬의 바닥에 있는, 매끈한 금속 표면이 뒤집히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독고연이 조용히 경악했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의 함포에 플라즈마Plasma가 점진적으로 응축되는 게 보였다.

독고연은 대은하연합이 가진 과학력을 알고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넥스트 스테이지’의 진실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인공섬 같은 게 아니었다.’

넥스트 스테이지는 섬으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초대형 전함이었다.

번쩍─

독고연의 눈동자에 멸망의 광경이 비춰졌다.

하늘에서 플라즈마와 폭탄, 미사일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전대미문의 폭격이 시작됐다.

* * *

“내가 준비한 웨이브는 많지 않아.”

기괴한 모습을 가진 존재였다.

기본적으로 기계로 구성된 신체였으나, 얼굴만큼은 생명체의 것이다. 눈과 귀는 없다. 대신 쭉 찢어진 입과 유난히 큰 콧구멍이 돋보인다.

이마를 중심으로, 후두부까지는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너머로 누런 두뇌의 모습이 확연히 비쳤다.

그런 생김새를 가진 주제에, 걸친 의복은 사제의 그것과 흡사하다.

괴물, 기계, 그리고 성직자를 멋대로 섞으면 이런 생김새를 갖게 될까.

“고작해야 일곱 개지.”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고, 아주 차분해서 의복과 잘 어울렸다.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마력 같은 게 느껴졌다.

홀로인 공간에서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위대한 게임]은 나도 몇 번인가 보았지. 인상적이긴 한데, 너무 온화한 방식이더군. 내 견해로는 그걸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 같았어. [가능성 있는 자]의 성장을 기다리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

“역대 군림자들은 모두 운명 속에서 탄생했다. 난 그걸 좀 더 구체적인 시련으로 바꿀 생각이지.”

손을 뻗었다.

금속을 몇 번이나 덧댄 것처럼, 볼품없는 팔이 옅게 떨렸다.

“내겐 미래가 보인다. 또한 모든 상황을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선언하지. 다섯 번째 군림자는 일 년 안에 탄생한다.”

대은하연합의 원수이자 VIP의 창립자, 키옐 말로굴이 말을 이었다.

“갑자기 말이 없군. ‘태양거인’, 난 혼자 떠드는 취미는 없는데.”

그때 웅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예측하지 못한 변수는 벌써 발생했다.]

“무슨 의미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키옐의 고개가 밑으로 향했다.

폭격이 끝났으나 도시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또한 의도된 것이다.

‘넥스트 스테이지’엔 이깟 소도시쯤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시킬 병기들이 내장되어 있으나, 이번 폭격의 목적은 파괴가 아닌 몰살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

예측할 수 없는 변수.

키옐은 자신의 계산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들을 떠올렸다.

* * *

끼익─

까맣게 그슬린 문이 열리고 페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들고 온 보따리를 내려 뒀다. 투둑, 툭. 구멍이 난 보따리에서 음식이 새어 나오며 캔 음료와 과일 따위가 바닥을 구른다.

페일은 드물게도 그것들에 시선을 주지 않고 보따리를 뒤적거렸다. 얼마 안 가 그녀는 보따리 안에서 피자 판을 꺼냈다.

“…조금 식었네.”

식으면 별로 맛없던데.

페일은 그리 생각하며 침대 위를 바라봤다.

그 위엔,

나비가 자고 있다.

많이 피곤한 건지 옴짝달싹도 하지 않은 채 죽은 듯이 자고 있다.

“…….”

오래 볼 수 없어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피자 판을 열고 한 조각을 뗀 다음 먼저 한입 베어 물었다. 예상대로 식어서 빵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페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움직였다.

먹기 힘들다. 이상한 일이다.

이보다 더 차갑고 딱딱한 걸 수도 없이 먹었는데.

그땐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 지금 느껴진다.

억지로 음식을 씹고, 삼킨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억지로’?

지금 난 억지로 음식을 먹고 있는 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웁.”

구역질이 밀려왔다.

“우웁, 욱, 우웩.”

참지 못하고 구토를 시작했다.

방금 먹은 피자 조각과 위액이 한데 섞여, 추잡한 토사물이 되어 후두둑 떨어졌다. 토악질은 오래 이어졌다. 속에 걸 모두 게워낸 다음엔, 그보다 좀 더 긴 헛구역질이 이어졌다.

“큭.”

그러다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킥, 킥킥……, 크하, 하하학, 하하핫!”

숨죽여 웃던 웃음소리는 서서히 커져 갔고 미쳐갔다.

페일은 얼굴을 부여잡으며 눈물까지 뺄 기세로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매캐한 연기, 피 냄새, 흩어진 살 조각으로 범벅이 된 호텔 방을 페일의 광소가 잠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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