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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345화 (566/857)

외전 345화

좀 더 지하로 내려간다.

우선 얼마 없는 전등이 점점 더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에 따라 주변도 점차 어둠으로 깊게 물들어갔다. 분명 바깥엔 아직 태양이 오연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을 테지만, 흑무에 둘러싸인 광산 내부는 비유가 아닌 정말 외부적인 빛이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다.

때문에 루카스는 이곳이 마치 심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빛이 점차적으로 희미해진다는 점이 그러했고.

…카앙- …카앙-

무기력한 모습으로 광물을 캐고 있는 생명들의 모습 또한, 새까만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루카스는 우선 이들을 인간으로 규정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변이變異인가.’

인간과 괴물이 반쯤 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지 중 하나는 반드시 거대한 종양이라도 붙은 것처럼 부풀어져 있었고, 그러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막대한 이상을 안고 있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걸음걸이로 움직여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이제 인간보단 점점 괴물 쪽에 추가 기울어지는 것 같다. 어느 시점부터 노동자들 중에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형상을 가진 존재는 더 볼 수 없었다.

그 또한 처음의 생각, 이곳이 심해 같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꼭 깊어질수록 더욱 기괴한 생김새를 가지게 되는 심해어들 같다.

“되게 맛없게 생겼네요.”

페일이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철근까지는 무리 없이 으적으적 씹을 수 있을 게 분명한 그녀에게서 이만한 감상을 이끌어낸 것, 변이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까.

루카스는 그 말에 대답하거나 변이화된 인간들을 둘러보는 대신, 중간에 선 채로 감독관 행세를 하고 있는 괴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녀석은 위에서 봤던 ‘불스아이’란 놈처럼 기괴한 생김새를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갖고 있다.

팔은 두 개, 다리도 두 개, 얼굴은 하나고 체형은 2미터 미만이다.

다시 보니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괴물의 모습을, 괴물은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그러나 위층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역할을 서로가 안은 채 작업장이 굴러가고 있다.

루카스는 작은 괴물에게 다시금 시선을 줬다.

강하다.

어느 정도냐면, 최소 독고연과 비등할 정도.

즉 일개 감독역에 불과한 저 괴물이, 인간이 이를 수 있는 경지의 거의 끝자락에 다다른 가공할 존재란 뜻이다.

‘…확실히.’

이 정도 괴물이 최소 몇 명, 이 작업장에서 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웬만한 인간들은 탈출을 꿈에서조차 꾸지 못할 게 분명하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

“네.”

“…….”

루카스는 묘하게 순종적으로 대답하는 페일을 잠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을 뿐이다. 왜요? 표정으로 그리 말하는 듯하다. 루카스는 고개를 젓는 걸로 대신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기분 탓이겠지.

그리고 다음 순간, 루카스의 육신은 괴물 앞에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엇?”

괴물이 멍청한 목소리를 내며 움찔했으나, 찰나간 대략적인 상황 파악을 끝냈다. 샛노란 눈동자가 일순 날카롭게 휜다. 루카스를 적으로, 죽여야 될 대상으로 판단한 것이다.

콰각, 양손가락이 마치 갈고리 같은 흉악한 형상으로 변했다. 손가락 끝에선 독액 비슷한 게 뚝뚝 맺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루카스의 입장에선, 느리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이미 이 시점에서 루카스는 보이드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서, 이 괴물의 목숨을 스무 번은 뺏을 수 있었다.

꽈앙!

괴물이 몸이 무언가에 치인 것처럼 뒤로 날아가더니 그대로 벽면에 처박혔다. 이윽고 벽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물대더니 놈의 전신을 단단히 속박했다.

“커억……!”

뒤이어 괴물이 핏물을 토해냈다. 놈이 자신의 몸을 속박하려는 지면의 움직임을 알아챘는지, 전신을 비틀며 발버둥 쳤으나 헛된 저항이다.

루카스는 놈에게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봤다.

변이화된 인간들은 일련의 소동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기계처럼 광물을 캐는 것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이름은?”

“네, 네놈은 누구냐?”

루카스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그었다. 괴물이 볼 수 있도록 되도록 천천히 그었다.

스걱. 서늘한 소리와 함께 괴물의 오른팔이 땅에 툭 떨어졌다.

“어…….”

잠시 멍한 목소리를 내던 놈이 곧 찢어지는 비명을 내뱉었다. 잘린 단면으로부터 암청색 선혈이 촛농처럼 흘러내렸다.

충분히 고통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루카스는 괴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크, 아아……. 무슨 짓을, 하려고…….”

괴물은 고통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루카스를 올려다봤다. 표정엔 아직까지 분노와 증오, 살기가 뒤섞여 있다.

“이제부터 마나를 네 머릿속에 직접 흘려 넣을 거다. 전류처럼. 물론 전기고문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고통을 느끼게 되겠지. 걱정하지 마라. 네 정신적 강인함이 어떤 수준인지 대략 짐작이 가니까.”

“무슨 말을…….”

“무슨 말이긴. 알아서 잘 조절할 수 있단 거지.”

괴물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뒤이어 그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의 파도에 침수되고 말았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목젖이 떨어져 나갈 만큼 처절한 비명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루카스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나를 주입하는 걸 잠시 멈췄다.

“어떤가. 혹시 인생에서 가장 긴 5초가 되었나?”

“허억……! 허억……! 이, 개자식……! 네놈이 이러고도…….”

괴물의 눈엔 아직까지 독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루카스는 다시 괴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나머지 손으로는 검지를 폈다.

“1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초씩만 지속시간을 늘려 가겠다. 딱히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난 급하게 가지 않을 거야. 당연히 널 재촉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대답할 마음이 생긴다면, 언제라도 말하도록. 기다릴 테니까.”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루카스는 다시 한번, 놈의 머리에 우악스럽게 마나를 집어넣었다.

다시 한번 비명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 *

괴물의 이름은 ‘투핸드’라는 듯했다.

지속 시간을 늘려가던 고문이, 정확히 11초에 다다른 시점에서 비명을 지르듯 내뱉은 이름이었다.

이후로는 순조로웠다.

“이 광장을 만든 이유가 뭐지? 광물을 캐기 위함은 아닌 듯한데.”

“으, 어어… 가, 감정…….”

투핸드의 정신은 거의 망가져 있었다. 그는 풀린 눈동자와 침을 질질 흘리는 몰골로 불명확한 낱말들을 토해냈다.

“감정?”

“부, 부정적인 감정이… 필요합니다…….”

“어디에 쓰려고?”

“그건 저도 잘…….”

“…….”

부의 감정이라.

확실히 그게 목적이라면, 의미 없는 곡괭이질을 시킨 경위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황당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걸 모으는 게 ‘광산의 악마’의 목적이었나.”

“예…….”

시시한 정체가 아닐 수 없다.

루카스는 그만 김이 새버렸고, 그 자리를 대신 분노가 채웠다.

그러니까.

인간들을 납치해서 광산을 세우고, 의미도 없는 노동을 시킨 이유가 단순히 부의 감정을 모으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하찮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역겹고 잔인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란, 상대로 하여금 원치 않는 감정을 억지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설은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고문장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파각.

투핸드의 머리가 터졌다.

사방에 뇌수가 흩뿌려졌다. 핏물의 색은 암청색이었으나, 뇌수의 색은 인간의 그것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괴물이 죽었는데도 이곳의 인간들은 해방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여전히 어기적거리는 움직임으로 광물을 캘 뿐이다.

이 지경까지 오면 이미 끝장이다.

저들의 정신구조는 이미 곤충과 다를 바가 없을 만큼 퇴화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광산의 악마를 죽이면 더 이상 피해자는 안 나오겠지.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순 없을 테지만.”

루카스는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아무리 루카스라도 이미 골자부터 바뀐 생명체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전신이 변이한 인간들은 이미 전혀 다른 생물체가 되었다.

…광산의 악마.

놈의 목적이 분명해진 지금,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루카스는 잠시 지면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광산 전체의 모습이 설계도처럼 펼쳐졌다.

지금 위치는, 대략적으로 광산의 중간 정도다.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아직 중간이라니. 새삼스럽게 깨달은 거지만 이 지하광산은 무척이나 불안정하다.

점차적으로 구역을 확대하며 세심히 지하시설을 건설한 게 아니라 단순히 커다란 구멍을 뚫은 것에 지나지 않다.

냉정히 말해서, 광산은 내부나 외부의 충격에 버틸 만큼 견고하지 않다. 충격에 언제 무너져 흙더미가 내려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꼴이다.

이곳에 있는 괴물들, 그리고 ‘광산의 악마’ 또한 이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광산이 무너진다고 해서 죽지 않겠지. 탈출할 수단 또한 진작 확보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즉, 놈들에겐 이곳에 일하는 인간의 생사 따위 정말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파악했다.’

좌표값의 해석.

장거리는 여전히 무리지만 현재 장소에서 가장 최하층까지 이동하는 건 가능하다. 이 말도 안 되게 꼬인 우주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체 없이, 루카스와 페일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가장 깊은 지하.

광산의 악마가 거주지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여태껏 보았던 광산의 어느 지점보다도 밝았다.

비록 주변을 밝히고 있는 건 은은한 전등이었으나, 위태로운 느낌은 전혀 없이 확연한 기세로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엔 기척이 희미했고, 어딜 가도 따라왔던 곡괭이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낯설 만치 고요하다.

물론 루카스의 표정이 굳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은.”

악마가 머물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채우고 있는 건 각종 시약과 연구도구, 그리고 알 수 없는 생물의 생체부위나 피부조직, 혹은 세포조각의 일부였다. 그중엔 시체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배양액 함께 유리관에 보관되어 있기도 했다.

루카스는 유리관에 있는 생명체의 모습이, 변이된 인간이나 감독역을 수행하던 인간들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벽면의 다른 한쪽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서적이 채워져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간 다음 책 한 권을 꺼내 펼쳐 보았다.

[…따라서, 마도학의 근간은 정신에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고작 마나를 육체에 받아들이고, 때때로 그것을 방출하는 부류는 많다. 하나 그걸 재해석하여 뜻대로 다루는 건 오직 우리만이 유일하다…….]

“…….”

서적을 끝까지 읽지 않고 덮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은 악마의 소굴보다는, 마법사의 공방 같은 장소라고.

“─이토록 쉽게 모습을 드러낼 줄은.”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 사실엔 놀라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음영 속에 숨은 어떤 존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단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광산의 악마’가 분명한 존재의 얼굴을 육안으로 확인하게 됐을 때 루카스의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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