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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343화 (564/857)

외전 343화

지상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양인현은 그렇게 말했으나 루카스는 비명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어떤 지역에 불온한 공기가 맴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악마나 몬스터, 혹은 그밖의 괴물에게 습격당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나 다르다.

루카스가 포착한 풍경은 습격이나 살육의 현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광산이었다. 그것도 좀처럼 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광산.

현재 시간 4시 37분. 해가 지기엔 이른 시간이었으나, 광산은 그 입구부터 유난히 음습하고 어두웠다. 광산 일대에 내려앉은 흑무黑霧 때문이다. 흑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정확히 일대를 둘러싸고 있으며, 내리쬐는 햇볕을 차단하고 있었다.

이로써 루카스가 느낀 어두운 분위기가 단순히 눈의 착각이나 느낌 때문이 아니란 게 증명됐다.

흑무가 가진 역할은 단순히 햇볕을 차단하는 것만이 아니다. 광산 전체의 기척을 극단적인 수준까지 숨기고 있었다. 광산의 전체 면적은 웬만한 작은 도시에 비견될 정도로 넓었는데, 감각이 예리한 사람이라도 흑무 너머에 있는 생명체의 기척을 읽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상공 수천 미터 위에서 이 위화감을 깨달을 수 있는 건 양인현 정도겠지.

“만만치 않은 존재야.”

양인현은 기내 벽면에 등을 기댄 채 그리 말했다.

“알아.”

다른 자는 몰라도 흑무를 퍼뜨린 존재는 쉽게 볼 자가 아니었다. 루카스와 양인현이 아직까지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어쩌면 그 [VIP]라는 단체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

“…….”

이건 약간 억측이라고 생각했다. 이 우주엔 VIP라는 놈들 이외에도 충분히 강한 존재들이 많을 테니까.

양인현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루카스는 페일과 함께 공간 이동을 시행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광산의 입구까지 도착했다. 입구엔 경비 하나 없었다. 애초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공간 이동한 거지만.

스으으…….

주변의 흑무가 꿈틀대듯 움직이며 전신을 휘감으려는 게 느껴졌다. 루카스는 그 기분 나쁜 접촉을 거절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으겍.”

반면 페일은 찝찝한 표정으로 침을 퉤퉤 뱉기 시작했다.

“여기 뭔가 기분 나빠요.”

동감이긴 하지만.

“참아.”

우선은 그렇게 말해 두고 맞닿은 안개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당연하지만 자연 현상은 아니다. 마법도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사술邪術의 일종인데, 그 경지가 권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대단히 고등하다.

하지만.

“…….”

루카스의 눈동자가 일순 검은색으로 물든 순간이다. 몸을 감싼 흑무의 꾸물거리는 움직임이 일순 멈칫했다.

그리고 루카스와 페일을 지나서 그대로 흘러갔다. 이후로는 흑무가 더 이상 전신을 옭아매는 일은 없었다.

페일이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말했다.

“뭘 한 거예요?”

“분석한 다음 우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속였어.”

“다재다능!”

“…이제부턴 목소리를 좀 낮춰.”

“넵.”

“…….”

루카스의 얼굴에도 미약한 긴장감이 흘렀다.

흑무를 분석할 때 그 속에서 어느 정도 익숙한 힘의 편린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크크큭…….]

아마 뇌존도 깨달았는지 특유의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광산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는 생각보다 더 귀찮은 녀석일지도 모른다.

* * *

광산 내부는 어두웠다. 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희미해서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기가 너무 탁하다. 물론 광산인 걸 고려하면 공기가 청정할 수가 없겠지만 조금 다르다.

루카스는 아무런 질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1년을 버티긴 힘들 거란 생각을 했다.

육체가 확연하게 존재한다는 건 이런 순간에도 불편하다. 루카스는 로브자락으로 대충 기관지를 막았다.

그리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

까앙… 까앙…….

멀찍이서 울려 퍼지는 금속음과 함께 흙냄새가 심해졌다.

‘곡괭이 소리?’

루카스의 걸음도 차츰 느려졌다. 이윽고 통로가 끝나고 펼쳐진 건 아주 넓게 개방된 작업장의 모습이었다.

“…….”

그 순간 루카스는 양인현이 들었다는 ‘비명’이 어떤 건지 이해했다.

대충 봐도 수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열심히 광물을 캐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의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짐승보다 못한 몰골이었다.

비쩍 마른 몸뚱이에 누더기보다 조금 나은, 도무지 의복이라고 부르지 못할 천 쪼가리를 걸치고 있다. 흙 때문에 더러워진 머리카락과 얼굴은 멀리서 봐도 악취가 날 만큼 지저분했다.

무기력… 하지는 않다.

오히려 표정에선 필사적임과 간절함이 보였다. 그 이유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작업장엔 인간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중간에 팔이 열두 개나 달린 괴물이 동상처럼 서 있었다. 거대하다. 머리가 이 넓고 높은 작업장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였다. 거기에 민둥민둥한 얼굴에는 수십 개의 눈알이 아무렇게나 박혀 있었는데, 루카스는 그 눈동자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노동자들을 섬세하게 주시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강압적인 노동.’

인간들을 잡아 와서 억지로 노동을 시키는 건가.

무슨 이유에서? 그리고 왜?

우선은 상황을 계속 분석했다.

사람들은 열심히 곡괭이를 휘두르고, 삽으로 바닥을 푸고, 채광 차를 밀고 있었다.

‘무엇을 캐는 거지.’

루카스가 보기에 이 광산에서 쓸 만한 광물은 없어 보였다. 즉, 이 노동은 완전히 무의미하다.

아니면 루카스의 분석으로도 판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기라도 한 건가.

그때였다.

짜악!

괴물이 두 손뼉을 힘차게 쳤다. 일순 흙먼지가 날릴 정도로 거대한 풍압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단순히 박수를 친 것뿐인데 가공할 정도의 괴력이다.

[배 식 시 간 이 다.]

괴물이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정신없이 일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살았다’라는 감정이 번져 나갔다.

“킬킬킬.”

“끽끽…….”

다른 통로에서 작고 뚱뚱한 괴물들이 뒤뚱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살찐 손가락엔 지저분한 가죽주머니가 쥐여져 있다.

사람들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작은 괴물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을 그릇처럼 모아 내밀었다.

“킬킬킬.”

괴물들이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리며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이윽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사람들에게 주었다.

삶은 콩이다.

‘배식 시간.’

그렇다면 지금 하는 게 배식이란 건가?

터무니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갓난아기가 먹어도 간에 기별조차 가지 않을 만큼 적다.

한 사람에게 할당되는 건 고작해야 말라비틀어진 콩 한 덩이에 불과했다.

“조, 조금만 더…….”

한 소년이 애처로운 목소리를 낸 순간이다. 뚱뚱한 괴물이 희멀건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배를 걷어찼다.

“크엑.”

소년이 헛구역질을 하며 쓰러졌다. 괴물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넓적한 발로 소년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연약한 몸뚱이는 얼마 안 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소년은 배식받은 콩을 흘리고 말았다.

“아, 안 돼.”

소년은 고통에 정신 못 차리는 와중에도 허겁지겁 다시 주웠다. 그리고 모래와 작은 돌조각이 섞인 콩을 입에 욱여넣듯 집어넣었다.

“…….”

루카스의 눈동자가 침체되었다.

분석은 둘째치고 일단 다 죽이고 생각할까.

충동적이지만 다분히 인간적인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만 더.’

억지로 인내심을 발휘하고 상황을 지켜본다.

배식 시간은 무척 짧았다. 아마 10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콩 한 덩이가 전부였으니, 실질적인 식사 시간이 짧은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잠시 숨을 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은 일절의 대화조차 없이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꼴로 휴식을 취하다가.

짜악!

[작 업 시 간 이 다.]

괴물의 박수 소리와 함께 어기적어기적 일어났다. 얼굴엔 다시금 절망이 피어났으나, 몸뚱이는 익숙한 듯 도구를 찾는다.

그때였다.

“으극, 허억…….”

구석에 있는 한 소년이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전 뚱뚱한 괴물에게 실컷 얻어맞은 소년이다.

일어서려다 넘어지고 그러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루카스는 소년이 근성이나 독기만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부상을 입었다는 걸 깨달았다. 골절이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그리 외쳤지만 이젠 허벅지마저 부르르 떨리기만 할 뿐 일어서는 시늉조차 이룰 수 없었다.

그 광경을 거대한 괴물이 포착했다.

[못 움 직 이 겠 나.]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는 중간에 있는 괴물에게서 들렸다.

“히, 히익!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직 움직일 수 있어요!”

소년이 더욱 거세게 발버둥 쳤다. 상체만 버둥거리는 꼴이 애처로웠다.

“자, 잠깐만. 누가 좀, 잠시 일어서는 것만 도와줘요. 제발…….”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리 외쳤으나,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 요구를 못 들은 척했다.

[못 움 직 이 는 군.]

그와 동시에 괴물의 팔 중 하나가 소년을 향해 쭉 뻗어 갔다. 그리고 소년의 전신을 벌레라도 잡듯 낚아챘다.

“억.”

괴물은 손바닥 또한 무척이나 거대해서 손에 붙들린 소년의 모습은 생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 아아. 엄마…….”

[그 럼 먹 겠 다.]

괴물의 가슴이 쩍 갈라지고, 그곳에서 보라색 혓바닥이 날름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괴하고도 공포스러운 광경에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되자 더 이상 루카스도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마법을 사용해서 저 괴물을 죽인다. 은밀하지만 파괴력이 부족하지는 않은 걸로. 이런 순간, 이런 장소에서라면…….

…루카스가 일련의 생각을 진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보다도 훨씬 짧았다. 아마 고려를 마친 뒤 마법을 전개해도, 소년을 구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후에 일어난 일은 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소리조차 없이.

소년을 삼키려던 괴물의 거체가 둘로 나뉘어졌다.

“……!”

베었다.

그걸 깨닫지 못했다.

루카스는 깜짝 놀란 와중에도 급히 떨어지던 소년을 바람으로 감싸 부드럽게 착지시켰다.

쿠웅!

동시에 괴물의 거체가 쓰러지며 일대에 먼지 폭풍이 일어났다. 천장에 달린 조명등이 흔들거리며, 작업장 전체가 깜빡깜빡거렸다. 흙과 돌조각이 후두둑 떨어지자 몇몇 사람은 머리를 감싸며 웅크리기도 했다.

루카스는 급히 떨어지던 소년을 바람으로 감싸 부드럽게 착지시켰다.

그리고 괴물을 죽이고 자신의 행위를 숨길 생각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자를 보았다.

“…….”

페일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조각을 맨몸으로 받는 모습이 마치 빗물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아, 으으……?”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불스아이가 죽었……?”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허리를 폈다.

루카스도 어쩔 수 없이 통로 바깥으로 나섰다.

“페일.”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느 시점부터 그녀는 무척이나 조용해졌다. 언제부터였지? 페일의 태도가 이상해진 게.

“페일.”

한 번 더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페일이 고개를 돌렸다. 일순 보인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했다. 그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헤실헤실 웃을 때의 페일,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청기사.

그 두 모습과는 또 다른 일면을 발견한 것 같다.

페일은 루카스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소년이었으나 소년이 아니었다. 페일의 눈동자는 소년을 향해 있었으나, 머리로는 전혀 다른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배고프다.”

페일의 눈동자에 서서히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장소는 불쾌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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