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07화
세디의 폭행엔 점점 이유가 사라졌다. 루카스는 이러한 행동을 화풀이라 부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빠악, 팍. 퍽.
주로 사용하는 건 주먹과 발이다. 루카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기재는 몸을 비틀어 가급적 치명적인 급소를 피하는 거였으나, 그날은 타이밍이 조금 엇갈렸다.
푹 찌르는 듯한 발차기가 루카스의 명치 깊숙이 박혔다.
“컥…….”
루카스가 부릅뜬 눈으로 숨을 토해냈다.
그와 대비되게, 세디의 입가엔 어딘가 즐거운 듯한 미소가 피어났다.
“음. 방금은 손맛이 괜찮았어. 아니. 발로 찼으니까 발맛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표현이 이상한데. 세디가 키득키득 웃었다. 루카스는 몇 번 콜록인 다음,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세디는 웃음을 멈췄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윽.”
세디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현기증. 그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아마 루카스 이상으로, 그녀 자신이 더 확연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괜찮나?”
정신을 차려 보니 루카스는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피를 닦던 세디가 흠칫 몸을 떨었다.
“…뭐?”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나 루카스는 했던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새까만 눈동자에선 세디 특유의 붉은빛이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날 걱정한 거야?”
“그래.”
“하, 하하하. 있잖아. 지금 아버지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세디는 입가를 비틀었으나, 그건 흐르는 식은땀을 막을 수 없었다.
“전신이 구속당한 채 쇠사슬에 묶인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데.”
“너를 걱정하는 것과 내 비참한 꼬락서니에 무슨 관계라도 있나?”
“뭐?”
“설령 내가 죽기 직전이고, 네가 가장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난 널 걱정한다.”
세디가 멈칫했다.
“…그건 답인가?”
“그래. 답이지.”
루카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찾은 관계의 해답.”
빠악.
얼굴이 걷어차였다. 볼 안쪽 살이 찢어졌다. 루카스는 피를 한 줄기 흘렸으나, 신음하지 않았고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여전한 태도, 그리고 표정으로 세디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한 반응에 더 초조해진 건 세디였다.
“쿨럭, 쿨럭!”
세디는 검은 핏물을 한 움큼 뱉어댔다. 그러나 이전처럼 떠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악에 받친 눈으로 루카스를 쏘아봤다.
“늦었어, 늦었어, 늦었어! 한참이나 늦었다고! 이제 와서 그딴 건 바라지 않아! 적어도 지금 내가……!”
빠악, 빡.
루카스의 전신이 삐걱거렸다.
세디는 흥분에 잡아먹힌 상태가 되었다. 때문에 그녀의 폭력엔 자제심이 사라져 있었다. 루카스의 육체는 철저한 파괴를 받았다.
“하악, 학…….”
세디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인지했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했으나, 곧 다시 닫는다.
그리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내가 아버지에게 바라는 역할은 딱 하나야. 주제를 알라는 거.”
“…….”
“그냥 그 꼴로 계속 내 감정의 배출구가 되면 돼. 언제까지고 쭉.”
세디가 불안정한 걸음으로 지하 감옥을 떠났다.
루카스는 지친 미소를 지었다.
* * *
보이드는 어떻게 해서 마나로 그 모습을 바꾸었나.
루카스는 그 순간의 풍경을 완전히 머리에 담았다. 단순히 현상에만 치중한 게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일단은 모두 기억해 뒀다.
마나와 보이드.
일단 이 두 가지 힘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했다. 물론 루카스가 말하는 어느 정도의 이해란, 전체에서 해명하지 못한 부분이 0.1퍼센트 남짓이란 걸 의미한다.
기본 골자까지 완전히 해석한 입장에서 의견을 낸다면, 일단 보이드가 마나로 바뀌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건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벗어선 문제였다.
‘만약 그게 가능하더라도, 단순히 보이드의 힘을 마나로 바꾸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어.’
루카스로서도 마나를 고집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그 자체에서 짙은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마나로는 십이허주는 물론이고 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웬만한 강자들을 상대로도 피로를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많은 걸 버렸고, 보이드를 손에 넣었고, 결론적으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보이드를 다룰 수 없게 되었다고 다시 마나를 사용하게 된다면, 그건 진보가 아닌 퇴보다.
그럼에도 루카스가 기뻐한 이유는 하나다.
비기닝 위저드.
루카스보다 명백히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마법사가, 굳이 수고스럽게 보이드가 마나로 바뀌는 현상을 보여 줬다. 그러한 행위엔 분명한 의도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단순히 보이드가 마나로 바뀌는 게 아니다.
무언가… 무언가 다른 게 있을 것이다.
루카스는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전에도 한 번 들었던 생각.
‘어떻게 마나가 대기 중에 머무를 수 있었던 거지?’
대기에 만연한 보이드가 마나의 존재를 용인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다.
수백 가지의 가능성을 동시에 떠올린다. 그중에서 턱도 없는 것부터 차례차례 없애갔다. 소거법은 이러한 때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가능성이 열 개 정도로 좁혀졌을 때, 루카스는 가장 신경 쓰이는 한 가지 가능성에 주목했다.
‘…바뀐 게 아니라면.’
마나로 바뀐 게 아니라, 단순히 흉내 내고 있을 뿐이었다면……. 어처구니없는 가설이었으나, 곧바로 그를 뒷받침할 추측들이 무성하게 피어났다.
보이드는 마나로 바뀌지 않았다. 그저 마나가 가진 색과 특성, 움직임까지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 본 결과, 그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것을 이해했다.
보이드가 가진 응용력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였으니까, 분자구조는 물론이고 에너지가 가진 고유적 특성까지 흉내 내는 게 가능하다.
…이해는 했다.
물론 실제로 적용시켜 써먹는 것에 관해선 다소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걸 실험해 보려면 보이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순식간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거침없이 산을 오르다 까마득한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다.
…보이드를 사용하는 것.
지금의 루카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열 개.’
육포 조각 열 개를 모았다.
목표했던 수량을 달성한 것이다.
‘오래 지체해선 안 돼.’
육포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숨기는 것도 점점 힘들어진다. 아슬아슬하게 숨길 수 있는 개수가 열 개, 그보다 많으면 들킬 가능성이 대폭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 육포를 모두 먹는다면 쇠사슬을 끊고 지하 감옥을 탈출할 수는 있겠지만, 세디와 정면에서 싸우기엔 턱도 없이 부족하다.
‘…보이드.’
한숨이 나왔다.
루카스는 지난 시간 동안 그 힘을 다시 다루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시도했지만 아무런 실효도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자취를 감춘 목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루카스들은,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이렇게 된 이상 도박성 짙은 수를 감행할 수밖에 없다.
루카스가 육포를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아. 이제 먹으려고?”
문득 들린 목소리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루카스는 옆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어야 할 장소였으나, 목소리는 분명 그곳에서 들렸다.
“세디.”
목소리의 주인을 부르자 감옥의 벽면에 아지랑이가 일었다. 스아아, 검은색 연기와 함께 세디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하고 있었어. 아버지가 순순히 포기하고, 잡혀 있지는 않을 거라고. 어떤 식으로든 분명 탈출을 계획하고 있었겠지.”
“…….”
“실은 좀 더 획기적인 방법을 보여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 꼴로는 제약이 너무 컸나 봐.”
그녀는 루카스가 탈출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말투였다.
그런데도.
“…일부러 날 방치해 놨다는 건가?”
“응.”
“어째서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지.”
“이 순간이 좋은 거야. 일말의 희망과 기대를 품고, 계획을 자행하려던 찰나 좌절되는 이 순간이.”
“…….”
“그럼 좀 더 현실을 또렷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거든. 물론 정신을 부수기에 가장 적합한 순간은 탈출하기 직전이겠지만… 그럼 정신적 대미지가 너무 커서 아예 망가질 수도 있잖아. 게다가.”
세디가 빙긋 웃었다.
“난 아버지를 얕보지 않아. 그런 꼴이 됐어도, 육포를 먹어 팔다리를 되찾게 되면 일이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자. 그럼.”
빠악!
고개가 위로 확 치솟는가 싶더니, 목을 무언가가 되감았다.
그건 놀라울 정도의 유연성을 가진 가시였다. 세디는 가시를 마치 채찍처럼 다루며 루카스의 고개를 벽면에 처박았다.
곧바로 머리를 돌리려는 순간, 후두부에서 압력이 느껴졌다. 세디가 흙발로 루카스의 머리를 짓밟은 것이다.
“여기가 좀 밝았지? 조용한 데다 제법 안락하고. 딴생각할 환경적 요인이 충분히 갖춰진 곳이란 말이야. 그러니 탈출 같은 엉뚱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크, 윽.”
“아무리 나라도 24시간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없어도 헛생각 못 하도록 좀 더 아버지를 몰아세워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곧 회담이 열리면 자리를 좀 오래 비울 수도 있거든. 참. 그 전에.”
꾸욱.
압력이 점점 강해졌다. 쩌적, 적. 벽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루카스의 얼굴은 반쯤 벽에 파묻힌 꼴이 되었다.
“사과해.”
“사, 과?”
“그래.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해. 진심을 담아서.”
세디의 미소가 짙어졌다.
“난 이렇게 아버지를 좋아하는데, 계속 옆에 있고 싶은데. 아버지는 나한테서 도망치려고 했잖아. 그 사실에 엄청 충격 받았어. 가슴이 아파.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정도야.”
“…….”
“그러니까 말해. 미안하다고. 아버지가 나를 피하는 이상, 이 어긋난 관계는 수복할 수 없어.”
─어긋난 관계.
루카스는 왠지 그 말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관계를 개선하려면 잘못한 쪽에서 사과를 해야 하지 않겠어? 그게 내가 배운 도리 중 하나인데.”
…그 말이 맞다. 틀린 거 하나 없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사과했다.
“─안해.”
세디의 미소가 가학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뭐라고?”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좀 더 똑바로.”
“내 실수야. 내가, 잘못 생각했어. 잘못 판단했어. 그러니까, 용서해 줘.”
루카스는 사과했다. 세디는 그의 턱선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를 보았다.
그래. 우는 건가. 울어 버리는 건가.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아버지는 울면 이런 얼굴이 되는구나. 찌릿찌릿한 쾌감이 전신을 질주한다.
우는 모습도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울까.
아버지의,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눈에 담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보고 싶다. 더 보고 싶다. 낱낱이 파악하고 싶다. 파헤치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아껴 둔다. 그럴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한 번에 모든 걸 취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하아아…….”
세디는 마약 같은 중독을 스스로 죽이며, 달뜬 숨을 토해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아버지.”
이 사과에 거짓은 없다.
루카스는 지금 정말,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착각하지 마.”
싸늘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세디의 미소를 지웠다.
“난 너한테 사과한 게 아니야.”
“…뭐라고?”
세디의 얼굴에 분노가 자리 잡았다.
“여긴 아버지와 나밖에 없어.”
“그래.”
“내가 아니라면, 누구라는 건데.”
“[루카스]”
루카스는 눈물 자국을 닦으며 대꾸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세디가 당황했다.
“어……?”
손이다.
잘렸던 루카스의 손이 재생되어 있었다.
언제. 어떻게.
캉!
루카스의 전신을 구속한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난 ‘루카스’에게 사과했다. 못 들은 척한 것에 대해, 눈치채지 못한 척 굴었던 것에 대해, 책임을 내려놓은 것에 대해, 약속을 어기고, 잠시나마 혼자 편해지려 한 것에 대해.”
“무슨, 소리를…….”
“네 말이 맞아. 어긋난 관계를 개선하려면 우선 잘못한 쪽에서 사과를 해야지. 그게 시작이야. 그제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그들은 내 사과를 받아 줬어.”
“어째서?”
“왜냐면 그들은…….”
들린다.
[괜찮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어쩌다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할지도 모르지.]
루카스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심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을 거고.]
[남에게 들키기 싫은 꼴사나운 면을 보여 줄 때도 있을 거야.]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럴 때면 우리는 너를 비난한다.]
[실망도 하고, 분노도 한다.]
[어쩌면 증오까지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한다.]
[모두 다 이해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너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생각과 목소리가 맞물린 순간, 루카스는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이어받았다.
“─루카스니까.”
화악!
전신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