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94화
이질적이다.
이곳에서 만나고, 싸웠던 존재들은 모두가 그랬다.
생김새나 습성만이 아니다. 전투 방식 또한 카사진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종류였다.
그건 십이허주라는 강대한 존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귀, 신식자, 골든아이.
그리고 얼어붙은 대지에서 싸우게 된 [네 번째 짐승]과 [죽음벌레]
이놈들의 싸움 방식은 카사진이 알고 있던 전투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엔 분명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카사진의 자존심은 그러한 사실을 변명거리로 삼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설령 상대가 얼마나 낯선 전법을 사용했던지 간에, 이겼다면 그놈이 더 강한 게 맞다.
전패全敗.
카사진은 이 세계에서 승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화염에 둘러싸였을 때 고함을 지른 탓이다. 덕분에 불길이 입 안을 파고들어 목구멍까지 태워 버렸다. 침을 삼킬 때마다 정신을 잃을 듯한 고통이 뇌리를 찔러 댔다.
화끈함과 달리 사지는 서늘했다. 얼음에 구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0초 정도였나?
내가 이 꼴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카사진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실 남자인지도 모르겠다. 놈은 로브로 전신을 감싸고, 얼굴엔 가면까지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든 노인을 연상케 하는 흉물스런 느낌의 가면이었다.
지팡이를 쥐고 있는 오른쪽 손목. 유일하게 노출된 건 그 부분인데, 새까만 장갑을 낀 탓에 살갗이 보이지 않았다.
지독히도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녀석인가.
“…넌.”
잠시 후, 그럭저럭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뭐냐……?”
비록 좀비의 울음처럼 탁한 음성이었으나 일단 발음은 나쁘지 않았다.
“놀랍군.”
상대는 건조한 태도로 감탄했다. 새어 나온 목소리 또한 노인의 것이었다.
“기도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을 텐데 벌써 말을 할 수 있다니. 포식으로 재생시킨 건 아니고… 무술 내력 중 하나인가?”
무왕권의 내력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카사진의 내력이다. 이러한 회복력은 그가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아마 다른 이들이 무왕권을 익힌다고 해서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잘린 팔이 새로 돋아나고 완전히 망가진 내장이 수복될 만큼 대단한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화상을 입은 기도에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한계였다.
“너, 내가 알고 있는 놈이냐?”
카사진이 다시 물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네 전투 방식이 눈에 익으니까.”
앞서 말한 십이허주들은 이렇지 않았다. 그들은 카사진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독창적이고, 예상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싸움 방식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아니었다.
비기닝 위저드는 마법魔法을 사용했다.
물론 그렇다고 능숙히 대응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카사진은 그와의 싸움에서 가장 처참한 형식의 패배를 맛봤다.
“네가 사용한 마법. 그건 내가 알던 거였다.”
“…….”
그러자 노인, 비기닝 위저드는 흘흘거리는 묘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단지 그렇게 느낀 것뿐일세. 젊은이.”
“뭐?”
“마법은 누군가가 이해하게 둬서는 안 되지. 난 그 철칙을 아주 섬세하게 지키고 있고. 왜, 속임수를 들킨 광대만큼 우스꽝스러운 것도 없잖은가?”
“…….”
“자네 또한 방향은 다르지만, 마나를 이용하여 전투에 임했지. 갈래는 다르지만 마도학의 동행자라고 할 수 있을 터.”
가면 너머의 비기닝 위저드가 빙긋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뭐? 친구하자고?”
“아니. 살려 준다는 걸세.”
“…날 죽일 수 있다는 듯 지껄이는군.”
페일을 의식하며 한 말이었다.
비기닝 위저드가 그걸 느꼈는지 픽하고 짧게 웃었다.
“그 여인을 너무 믿지 말게. 그녀는 분명 강하지만, 이곳은 나의 행성이야. 실권자가 누군지는 올바르게 파악하는 게 좋지 않겠나?”
가면 너머로 푸르스름한 눈동자가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이 자리를 이어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네. 청기사여. 벌써 교체될 리가 없지 않나? 심지어 그 남자는 마법사라 보기엔 조금 무리가 많아 보이는데.”
“…음. 그 의견엔 동의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저도 일만 아니었으면 이런 데는 오고 싶지 않았거든요?”
페일의 목소리는 여전히 경쾌했으나, 카사진은 그녀가 비기닝 위저드를 약간 꺼려하고 있단 사실을 눈치챘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설마 저 노인네가 페일보다 더 강하기라도 하다는 건가?
“아무튼 결과는 알았으니까 이만 가 볼게요.”
“멀리 나가지 않겠네. 아. 그리고 이건 오지랖으로 생각해도 되는데.”
비기닝 위저드의 시선이 카사진을 향했다.
“아무래도 그 젊은이가 찾는 존재는 서쪽에 있을 것 같군.”
* * *
‘서쪽’.
카사진은 그 지역이 처음 발을 들였던 사막지대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또 다시 싸움을 치렀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재밌다고 느낀 싸움도 그곳에서 겪었다.
꽈앙!
주먹이 찌르르 울렸다.
전신이 불이라도 쬔 것처럼 뜨겁고, 심장은 기분 좋게 쿵쿵 뛰었다. 카사진은 호전 섞인 미소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이봐. 당신, 이름이 뭐지?”
“남궁옥南宮玉.”
청삼의 장년인은 서늘한 기세로 칼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대는?”
“카사진.”
“흠. 카 대협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요?”
“뭔 개소리야. 그건.”
잠시 어처구니없어 하던 카사진이 다시금 픽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랑 싸우는 건 참 즐겁군.”
“그렇소?”
“그래. 아마도, 당신이 내 사정을 봐주고 있기 때문이겠지.”
“…….”
“시치미 떼지 마. 당신, 검을 열 번 휘두르기 전에 날 죽일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있잖아.”
남궁옥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지도전指導戰이라고 하는 거요.”
“과연. 날 가르치고 있다는 건가.”
카사진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인간인가?”
“달리 무엇으로 보이오?”
“아니, 미안하군. 똑바로 인간으로 여기고 있어. 그냥… 기뻐서 말이지.”
남궁옥의 표정이 묘해졌다.
“기쁘다니?”
“인간이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 마침 나도 검을 쓰는 녀석을 하나 알고 있는데, 물론 나랑 좋지 않게 끝나긴 했지만…….”
카사진은 말끝을 흐렸다.
“…언젠가 그 녀석도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겠지. 인간이니까.”
“…….”
“잡담이 길었군. 지도전도 좋지만, 역시 난 당신의 전력이 보고 싶은데.”
남궁옥이 담담하게 말했다.
“죽을 수도 있소.”
“두려워할 거라 생각하나?”
“…당신은 준비하시오.”
남궁옥의 주변에 매화가 피어올랐고.
카사진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 * *
“목숨줄 하나는 진짜 끈질기네요.”
“…아니, 그랬다면 난 죽지도 않았겠지.”
페일은 만신창이가 된 카사진을 보며 고개를 기우뚱했다.
“죽다뇨?”
“여기 저승 아니냐? 난 죽어서 여기 온 거고.”
“흐음.”
페일이 더 말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그리고 십이허주인가 뭔가 하는 놈들은 염라대왕, 은 아니고. 음.”
왕이란 존재는 따로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왕성이란 곳은 멀리서 봤으니까.
“그 바로 밑쯤에 위치한 관리직 정도 아닌가?”
“재밌는 견해네요.”
틀렸단 건가.
추측이 빗나갔음에도 카사진은 오히려 씩 웃었다.
“그럼 여기가 저승은 아니란 거군? 정보 고맙다.”
그러자 페일이 눈을 깜박였다.
“…와~ 뭐야. 방금 유도 심문한 거예요?”
“응? 유도 심문? 그게 뭔데?”
“허. 이런 바보한테 속다니.”
잠시 허탈해하던 페일이 고개를 저었다.
“됐고요. 이제 이 구역엔 십이허주 하나만 남았거든요? 개인적으론 아저씨가 그 자리를 계승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지만요.”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뭔데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카사진의 목소리는 여태까지 중 가장 진지했다.
생각 없이 페일의 뒤를 따라다니면서도, 한쪽으론 계속 데미갓에 대해서 생각했다.
루카스가 행방불명 됐고 자신까지 죽어버렸다.
그가 판단하기에, 현 대륙에서 데미갓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이제 다섯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난 강해졌다.’
이곳에서 몇 달간, 페일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급진적으로 강해졌다. 비록 대부분의 싸움을 두들겨 맞다가 끝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얻어 가는 건 엄청났다. 이곳에서의 싸움은 데미갓과의 투쟁보다 훨씬 영양가가 높았다.
만약 지금 돌아갈 수 있다면, 데미갓 둘까지는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 그게 얼마나 막강한 전력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로드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어떤 방법인데.”
“간단해요. 내 비밀 친구가 되면 되요.”
“비밀… 뭐?”
“비밀 친구.”
페일이 히죽 웃었다.
“근데요, 아저씬 그럴 자격이 없어요.”
* * *
사막지대에서 마지막으로 향하게 된 곳은 [구덩이]란 곳이었다.
엄청나게 깊은, 시커먼 심연. 그곳엔 이성이 없는 듯한 악마들이 원시적인 모습으로 돌아다녔는데, 몇몇 강한 놈들이 있긴 해도 아주 위협적이진 않았다.
십이허주는 그 가장 밑바닥에 있었고,
여태까지 마주한 그 어떤 존재와도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이건 뭐야?”
처음 조우했을 때 그건 동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 5미터 정도의 동상이다.
머리엔 여섯 개의 뿔이 나있고, 등엔 두 쌍의 날개가 돋아나 있었으며, 꼬리는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0번째 악마.”
“뭐?”
“당신 세계에도 악마란 개념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있었지.”
이리스가 사역하는 악마들을 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공작이라고 불리는 지옥의 지배자들은 아주 강했고.
마계란 장소에서, 그들은 데미갓 못지않은 힘과 권위를 가진 절대자라는 듯했다.
“말하자면 저건 모든 악마의 근원이라고 할까, 악마란 개념 자체가 저기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어요.”
“…뭔 소린지 모르겠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가?”
“그것도 그렇고, 원래 좀 이해하기 힘든 존재라서.”
페일이 낮게 웃었다.
“자. 가서 동상에 손을 짚고 부탁해 봐요. 나랑 싸우자고.”
“…….”
영 내키지 않았으나 우선은 그 말을 따랐다.
그리고 걸어가는 도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렇게 페일의 말에 이토록 순순히 따르는 거지?
…가까이서 본 악마 동상은 실제 크기보다 훨씬 거대한 것처럼 보였다. 턱, 손을 짚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이건 금속으로 만든 동상이었다. 물론 어떤 금속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야. 일어나 봐. 싸우자.”
카사진이 투박한 말을 입에 담은 순간, 동상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쿠르르……!
동상의 전체全體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알 껍질이 금이 가듯, 동상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투둑, 툭. 파편이 떨어지며 놈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
카사진은 양손을 교차시켰다.
악마는 그대로 손날을 내려찍었다.
꽈앙!
단순히 그게 전부인데도 카사진의 육체를 포함한 지면이 움푹 꺼졌다.
“끄윽……!”
말도 안 되는 충격이다. 비릿한 핏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상만이 아니다.
단련된 근육과 단단한 뼈, 순간적으로 두른 마나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방금 일격으로 오른 손목의 뼈가 나갔다.
뒤이어 복부가 진탕 뒤집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걷어차였다는 사실을 날아가면서 깨달았다. 그래도 이번엔 반격했다. 다리로 걷어찰 때 놈의 종아리와 정강이에 주먹을 두 방 먹여 준 것이다.
문제는 이 공격이 실효를 거두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지만.
“카악, 퉷.”
피 섞인 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든다.
[─……]
악마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살벌한 안광을 흘린 채 카사진을 바라볼 뿐이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너도 육탄전을 좋아하냐? 응? 일단 무기는 없어 보이는데.”
[…….]
“좋아. 한번 진득하게 싸워 보자. 개새끼야.”
카사진이 포악하게 웃었다.
* * *
싸움은 오래 이어졌다. 카사진은 그 사실이 놀라웠다.
여태까지 십이허주와의 싸움이 이토록 길게 이어진 적은 없었다.
‘뭐지?’
이 악마는 강하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십이허주, 카사진이 몇 번이나 싸웠던 그 괴물들과 동률의 강함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할 만하다.’
다른 십이허주랑 달리 싸움이 성립되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다.
설마 이놈도 남궁옥처럼 나의 사정을 봐주고 있는 건가? …모르겠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 동상 악마는 이성이나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싸움은 이례적일 만큼 길게 지속됐으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빠악!
머리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크…….”
이 새끼, 다른 건 몰라도 내구도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전신을 수백 번 이상은 공격했는데 제대로 들어갔다는 느낌을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전신이 뭔, 환상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카사진은 그런 생각과 함께 그대로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역시나 그를 반겨 준 건 페일의 얼굴이었다.
“…또 졌군.”
“그러게요~”
페일이 능글맞게 웃어 댔다. 저 얼굴에 주먹 한 방 먹이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럼 다음 상대는 누구지?”
“아뇨.”
페일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 상대는 없어요. 카사진.”
“…….”
페일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느꼈죠? 상성이 맞는걸요. 이건 예상하지 못했네요. [0번째 악마]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거든요.”
“뭔 소리야.”
“당신은 [0번째 악마]가 되기 위해 이곳에 온 거라고요.”
“…….”
내가, 악마가 된다고?
“이제부턴 싸워요. 계속 싸워요. 이길 때까지 싸워요.”
“…….”
“하지만 악마와 싸우기 위한 자격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죠. 패배할 때마다 아저씨는 하나씩 상실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되도록 빨리 이겨 내는 게 좋겠죠.”
페일이 킥킥 웃더니 몇 발자국 물러섰다.
카사진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싸울 때마다 상실한다고? 헛소리. 카사진이 지켜야 될 건 이 세계에 하나도 없다. 지금 와서 그가 잃을 게 더 뭐가 있단 말인가.
‘계속 싸워야 해?’
그건 카사진도 바라던 바다.
방금 전의 싸움에서 그는 또다시 강해졌다.
그리고 상대의 패턴 또한 파악했다.
이번엔 보다 전략적으로 전투에 임하면, 초전보단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후우…….”
카사진은 악마를 바라보며 숨을 내뱉었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악마가 이번엔 먼저 달려오기 시작한다. 일정 영역 내로 접근해야 움직이는 꼴이 마치 전투골렘을 연상케 한다.
물론 그 기세는 골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포악했다.
꽝, 꽝.
놈이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땅이 흔들렸다. 이번엔 처음부터 공세를 취할 생각인가? 전면전은 승산이 없다. 우선 방어에 치중하며 빈틈을 노리는 게 좋다.
그럼 무왕권에도 몇 없는 방어의 자세를─.
“……?”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방어 자세?
그게 뭐였더─.
꽈앙!
생각을 잇기도 전에 충격이 엄습했다. 옆구리를 걷어차인 것이다. 몸통만한 발에 차인 거라 휴지조각처럼 굴러갈 수밖에 없었다.
“윽.”
안개라도 낀 것처럼 머리가 혼란스럽다.
무왕권의 방어 자세… 분명 그런 걸 만들었다. 내가 직접. 분명 이런 순간에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건 아니잖아. 병신아.’
아무리 내가 멍청해도 하필 이 시국에 잊어버리다니?
“큭.”
이를 악물었다.
고민에 잠길 틈은 없다. 0번째 악마가 다시금 접근하고 있었다.
우선은 공격, 공격하는 수밖에.
우웅
주먹에 마나를 한계까지 응축시켰다.
무왕권 비기祕技, 수아獸牙.
극한으로 응축된 마나는 곧 송곳니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이 상태에선 단순히 주먹을 내다 꽂거나, 휘두르는 것만으로 상대의 전신을 할퀴듯 파괴하는 게 가능하다. 육체 부담이 엄청 심하지만, 지금은 뒤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카사진이 내달리듯 악마를 향해 나아갔다. 놈도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낀 듯하다.
주먹이 꽂히기 직전 어떤 자세를 취했고.
“……!”
카사진의 표정이 굳었다.
꽈앙!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이 일어났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페일은 더욱 짙은 미소를 만들어냈다.
“…네놈.”
카사진의 표정이 굳었다.
수아가 들어가기 직전 악마가 취한 자세.
틀림없다.
그건, 카사진이 취하려고 했던.
[무왕권]
악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고.
[바위방패…….]
카사진을 보며 헤벌쭉 미소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