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61화
죽어 있던 ‘루카스’, 시체가 된 ‘루카스’, 마법사가 아닌, 도적의 삶을 살았다는 ‘루카스’.
그 또한 소피아의 진실을 목도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뒤엔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의문에 대한 답은 곧 알 수 있게 되었다.
…소피아의 뒤를 밟고, 진실을 알게 된 것까지는 같았다.
그러나 그날, 루카스는 소피아를 설득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도망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포에 질려, 현실을 뒷전에 둔 채로 도망쳤다.
루카스가 생각하기로, 그건 최악의 선택 중 하나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캄캄한 하늘에 광명이 아른거리고, 주변이 밝아질 때쯤 루카스는 지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풍경은 산골짜기의 중심이었는데, 무슨 산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일단 그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라는 건 분명했다.
‘잘못 본 걸 거야.’
루카스는 그리 생각했다. 머리는 식었으나, 현실을 부정하는 건 그대로였다. 어리석지만 그는 보육원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왔던 길의 발자취를 거스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러나 발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큭.”
억지로 성큼성큼 내디뎠다. 억지로라도 걸어 나가면 괜찮을 거라 위안하며. 그러나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만 갔고, 설상가상 심장도 점차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덥지도 않은데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질끈.
입술을 콱 깨물었다. 피가 배어날 만큼 세게.
루카스는 번쩍거리는 고통을 채찍질 삼아서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으나, 곧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꼬마야, 잠시 멈춰라.”
“가진 거 다 내놔.”
루카스는 산의 출구쯤에 대기하고 있던 도적단에게 잡혔다.
이미 전신이 피로에 절어 있는 상태라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도적단은 땡전 한 푼 없는 루카스를 보고 혀를 찼다.
“젠장. 이런 거지는 오랜만이구만.”
“초장부터 운빨 조졌군……. 야, 뭘 멀뚱멀뚱 꼴아봐. 곱게 놔줄 때 꺼져.”
도적단은 딱히 의미 없이 루카스를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순수한 금품갈취인 듯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의 뒤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꼬마야, 너 고아구나.”
얄팍한 인상.
앞서 모습을 드러낸 도적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남자였다. 다만 얼굴엔 끔찍한 상흔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새겨져 있어, 비교적 작은 덩치임에도 소름 끼치는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남자야말로 일대 산맥의 도적 두목으로 악명을 떨치던 ‘흑여우’였다.
흑여우는 루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의 전신을 한 손으로 번쩍 든 다음 어깨에 둘러맸다. 호리호리한 몸으로 믿기 힘든 괴력이었으나, 루카스는 찰나 그의 전신에 발달된 근육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목?”
“어쩌시려고…….”
“데려간다.”
흑여우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이거 놔……!”
루카스는 발버둥 쳤다. 그러나 훗날 생각해 보면, 이때의 자신은 보육원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단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손이 흑여우의 머리를 탁 친 순간이다.
흑여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빠악!
직후 후두부에서 강렬한 통증을 느끼며, 루카스는 그대로 기절했다.
흑여우가 중얼거렸다.
“이제 좀 얌전하군.”
* * *
─루카스를 납치한 흑여우는 그에게 도적으로서의 삶을 강요했다. ‘강요’라고 표현한 이유는, 당연히 루카스는 도적 따위가 될 생각이 없으므로 전력으로 반항심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통하지 않았다.
흑여우는 강했다. 일개 도적단의 두목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루카스로선 도저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남자가, 왜 나 같은 꼬맹일 도적으로 만드는 데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흑여우는, 루카스에게 존재하는 악바리 근성을 보았겠지.
그는 은밀하게 루카스를 부두목이 될 존재로 육성하며, 때때로 말했다.
“날 죽이면 여길 떠나도 된다. 도적단의 누구도 널 막지 않을 거다.”
…편안한 생활은 결코 아니었다. 갖은 고생을 하며 굴렀다.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숲에 한 달 동안 버려졌고, 하루에 한 번 밥을 먹을 수 있단 게, 주변을 경계하지 않고 잠에 드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썩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실명할 뻔한 적도 있었다.
처절하게 발버둥 쳤기 때문인가.
루카스는 보육원에 관한 일을 잊고 말았다. 아니. 잊은 건 아니다. 뒤로 미룬 것이다.
나는 도적단에게 사로잡혔고, 탈출하려면 흑여우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내겐 그럴 힘은 없고, 당분간은 보육원에도 갈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비겁한 핑계를 댔다.
그러나 5년이 흐르고, 루카스는 의도치 않게 도적단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루카스가 흑여우를 죽인 게 아니었다.
그 남자는, 멋대로 죽어 버렸다.
큰 건수였다.
귀족을 노렸으니 당연하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양동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했다.
상대측엔 마법사가 있었다. 무려 5성의 마법사였다. 그가 가진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마법사가 소환한 불꽃에 도적단 대부분이 마른 장작처럼 타올랐다.
흑여우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두목임을 드러내고, 적 대부분의 이목을 끈 것이다.
그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새까만 재가 되어 흩날렸다.
“…….”
루카스는 흑여우의 죽음에 생각보다 큰 충격을 느끼고, 당황했다.
외면하려고 해도 치밀어 오르는 안타까움, 심지어 동정심까지 일었다.
어째서?
지난 5년간 그에게 지옥을 선사했던 남자다. 마지막에 목숨을 살려 준 것에 감동하기라도 한 건가?
모르겠다. 다만, 흑여우는 딱히 루카스를 살리려고 영웅적인 희생을 한 게 아니다. 그는 당시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뿐이다. 자신 하나로, 남은 도적단 수십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그런 남자였다.
도적의 잔당들은 루카스를 두목으로 추대했다. 그는 도적단에서 가장 어렸으나, 지난 세월 동안 흑여우의 오른팔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루카스는 그들을 무시하고 어딘가로 떠났다.
보육원.
더 이상 그곳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낯익은 숲에 들어섰을 때, 루카스의 가슴은 오랜만에 세차게 맥동했다. 그러나 그때의 루카스는 이미 19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두려움을 통제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냇물을 넘어 보육원의 모습을 보는 순간,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보육원은 눈에 담을 수 없었다. 과거 보육원이 있었던 장소엔, 새까맣게 탄 자국만이 남아 있었으니까.
지면까지 태웠을 만큼의 대화재였을 것이다. 타다 만 장작이 주변을 뒹굴었다. 인기척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루카스는 쿵쿵 뛰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도시로 갔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행인을 붙잡으며 수소문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실종사건의 범인은 소피아가 맞았으며, 그녀는 광증狂症에 시달리다가 보육원과 함께 분신焚身했다는 사실을.
* * *
‘루카스’의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아아아아악─!”
루카스는 정신이 듦과 동시에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이건 대체, 무슨 고통이지? 전신의 세포가 가닥가닥 찢기는 듯한…….
아니. 아니! 그딴 게 아니다.
루카스는 고통에 충분한 내성을 갖추고 있었다.
비견할 것조차 감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루카스가 상상 이상의 고통을 느끼게 될 때면, 바로 이 순간의 고통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체.
고통은 하체로부터 느껴진다. 그곳을 내려다보았다.
자각자각자각자각…….
끔찍한 소리.
돌끼리 맞물리는 듯한, 혹은 이빨을 가는 듯한…….
뭐가 됐든, 인간으로 하여금 원초적인 혐오감이 들도록 만드는 소리.
루카스의 하체는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까맣게 물든 게 아니다.
벌레다.
감히 셀 수조차 없는 벌레들이, 루카스의 다리를 뒤덮은 채 갉아먹고 있었다.
“끄악, 악, 억…….”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 그곳엔 ‘사흘벌레’라는 놈이 있지. 손톱보다도 작은, 좁쌀만 한 놈인데 수백만 마리씩 무리 지어 생활한다. 먹잇감을 발견하기 전까진 지극히 온순하지만……. 큭큭
- 정말 걱정해야 할 건 사흘벌레의 존재지. 네가 물리적인 고통에 강대한 내성을 갖췄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놈들이 주는 고통은 네 상상을 아득히 넘어설 거다…….
‘루카스’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런가. 이놈들이 사흘벌레인 건가.
“플레임… 볼……!”
화륵!
플레임 볼이 벌레들을 짓태웠다.
끼에에에엑, 벌레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툭툭 무언가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사흘벌레들은 곧 타진되었다. 벌레는 썩은 시체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 갔다. 놈들은 상대에게 선사하는 끔찍한 고통에 비하여, 스스로의 몸을 지킬 만큼의 방어력은 없는 듯했다.
“아윽, 악…….”
루카스가 헐떡였다.
하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 본 ‘루카스’ 같은 모습이 되었다.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루카스도 시체가 될지도 모른다.
‘먹을 거…….’
피와 살이 될 것이 필요하다.
주변을 둘러보는 루카스에게,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비록 썩었지만, 피와 살을 가진 육체.
‘루카스’의 시체.
…인간을 먹는 것.
그 행위에 완전히 거부감이 사라졌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또 다른 루카스’마저 그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이제,
괴물이 되어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턱.
‘루카스’의 시체를 집었다.
쩌억,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콰득.
썩은 시체를 씹었다. 끔찍한 악취가 기도를 통해 차올랐다. 당장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다. 참는다. 그리고 턱을 더욱 힘차게 움직였다.
씹히는 살결의 감촉, 토할 것 같은 악취를 외면하지 않고 음미한다.
우적, 우적…….
‘루카스의 살점’은 지독히도 맛없었다. 썩은 시체니 당연하다. 구더기 같은 것도 들끓는지, 드물게 피와 살로 느껴지지 않는 묘한 맛도 났다. 그럴 때마다 역겨움은 더욱 커져 갔다.
우적, 우적…….
살점을 씹을 때마다 가슴속이 점점 시커멓게 물드는 느낌이 들었다. 전신이 새까만 색으로 칠해진다. 스스로의 행동을 자각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배덕감이 밀려와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마치 끝없는 나락으로 영원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루카스’의 썩은 시체보다, 그걸 먹고 있는 스스로가 더욱 역겨웠고 그건 진실이었다.
그럴 수밖에.
지금 루카스는 일선一線을 넘고 있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긴 세월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스스로의 행동 범위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선’을 정해두고, 그것에 벗어나는 행위를 저지르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제아무리 견고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도 너무 쉽게 미쳐 버리고 마니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된 자들의 붕괴, 그리고 타락.
루카스는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고, 자신은 결코 그리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맹세를 스스로 어기고 있었다.
루카스는 지금, 스스로가 원해서 그런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즉, 미쳐 가고 있었다.
“쿡, 큭큭, 큭…….”
웃음을 터뜨리며, 동시에 눈물을 흘리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루카스는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루카스’를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식사가 끝났을 때, 루카스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배가 부르다.
허의 세계에서 몇 번인가 식사를 했지만, 이런 만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사라졌던 양다리도 어느새 재생되어 있었다.
루카스는 재생된 두 다리로 시체 한가운데에 섰다. 소매로 얼굴을 닦았으나, 핏물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앙상하게 남은 ‘루카스’의 뼈를 내려다보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먹는 건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