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60화
어린 루카스가 위화감을 느낀 건 열세 살 무렵의 겨울이었다.
그때의 루카스는 보육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엘리, 로한, 퍼거스.
루카스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들이었으나, 모두 작년에 실종되고 말았다.
근 1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대량 실종 사건, 도시의 분위기도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시점까지 범인이 누군지 특정조차 해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영지의 병사나 영주 직속 기사, 마법사들이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귀족에겐 큰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까.
피해자 대부분은 도시 구석진 곳에서 연명하는 어린 부랑자들이었고, 귀족주의적 사고를 가진 영주는 빈민층의 고충에 심드렁한 태도였다.
그러던 차, 범인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영주의 가문에 소속된 견습 하녀를 납치한 것이다.
보고를 받은 영주는 거센 분노를 드러내며, 여태까지와는 다른 확실하고 강경한 대처법을 선보였다.
명목은 도시의 치안을 어지럽히고, 시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극악무도한 납치범의 처단이었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콧대 높은 영주가 자신의 권위에 흠집이 난 것에 모욕감을 느꼈다, 혹은 실종된 하녀가 평소 어린 여자를 밝히던 영주의 노리개였다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오갔다.
명확하지 않은 속사정과는 별개로, 영주의 대처는 신속하게 실효를 거두었다.
주에 한 번씩 벌어지던 실종사건이 뚝 끊긴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장 거리를 순찰하는 경비병의 수가 3배로 늘어나고, 조금이라도 행색이 수상한 자들에겐 수시로 검문을 해댔으니까.
─소피아의 모습이 무척이나 불안정해진 건 그 시기였다.
그녀는 항상 잠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고, 점심에도 꾸벅꾸벅 졸았고,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이부자리로 들어갔다.
그것만이 아니다. 겉모습도 십 년은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셌고, 얼굴엔 주름과 검버섯이 피어났다. 꼿꼿한 허리도 늙은 노인처럼 굽어졌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급격한 노화였다.
아이들은 소피아의 변한 모습에 슬퍼했다. 몇몇 기특한 아이는, 그녀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지 말자고 결의하기도 했다.
의아함을 가진 건 오직 루카스 하나였다. 비록 어렸어도 루카스는 또래에 비해 훨씬 신중했고, 생각이 깊었으며, 무엇보다 의심이 많았다.
루카스는 소피아의 모습에서 짙은 위화감을 느꼈고, 망설임 끝에 그녀의 뒤를 밟았다. 차오르는 죄책감은 애써 무시한 채, 스스로가 과민 반응하는 것이길 바랐다.
기대는 배신당했다.
한밤중에 목격하고 말았다.
시체 담은 자루를 질질 끌고 다니는 소피아의 모습을.
“소피아……?”
“루카스?”
“그건, 뭐예요?”
루카스가 멍한 얼굴로 물어봤으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소피아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자루 안에 있는 무언가는 간헐적으로 꿈틀댔다. 그녀의 손에 들린 칼날엔 아직까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명석한 두뇌는 이미 분석을 마치고,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피아?”
루카스가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진실을 목도했음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 단순한 현실부정이었다.
아마 소피아는 그 사실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루카스, 이리 오렴.”
“소피아?”
“이리 오라고.”
소피아의 목소리가 강압적으로 변한 순간,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말을, 안 듣는구나.”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 순간 공포를 이기지 못해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이때의 루카스는, 비록 공황 상태였음에도 소피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마법은 시전했으나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제압의 의미조차 담지 못했다. 견제에 가까운 어설픈 마법, 소피아는 미약한 상처를 입었으나 몸을 움직이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녀는 곧 늙은 모습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괴력을 내뿜었다.
“루카스으으으─!”
소피아가 포효를 터뜨렸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핏줄이 울긋불긋 솟아올랐다. 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동자로 검을 집어던졌다.
쐐액! 강맹한 기세였으나, 어설픈 투검이었다. 경로가 직선적이라 조금만 몸을 비틀어도 피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미성숙한 시절의 루카스는 포식자를 본 개구리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콱!
“아악!”
루카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얇은 살결을 파고든 칼날의 감촉, 그건 아마 루카스가 최초로 느낀, 가장 선명한 고통의 기억일 것이다.
신경 다발이 툭툭 끊긴 듯한 기분이다. 영창을 이어가기는커녕,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루카스의 뇌리를 채운 건 고통뿐이었다.
소피아가 다가온다.
이제는 공포와 두려움뿐이었다. 마치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루카스는 기어서 도망치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소피아가 발목을 붙잡았다.
우드득.
“아아악…….”
어린 소년의 발목은 소피아의 손아귀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바스러졌다. 그 고통에 루카스는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루카스, 루카스! 왜 집에 있지 않은 거니? 응? 한밤중의 숲은, 위험하단 말이야!”
소피아는 설명할 수 없는 괴력으로, 루카스의 발목이 자루라도 된 것처럼 꽉 잡은 채 빙빙 돌렸다. 때로는 바닥에 패대기치기도 했다. 루카스의 몸은 얼마 안 가 피와 타액,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어윽, 꺽, 꺼억…….”
루카스가 기침을 토해 냈다.
“…아요. 난… 흐윽.”
금방이라도 끊길 듯한, 실낱같은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린다.
“뭐라고? 루카스. 할 말이 있으면, 상대의 눈동자를 보고 확실히 말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니?”
“난 알아요…….”
루카스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소피아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쵸?”
그 말에 소피아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부릅뜬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루카스……?”
어조가 바뀌었다.
소피아가 돌연 머리를 부여잡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비틀었다. 뚜둑, 둑. 관절이 뒤틀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아, 악, 윽”
소피아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얼마나 세게 쥐어뜯었는지 두피에서 핏물이 흐를 정도였다. 그러다 루카스를 바라본다.
그녀는 루카스의 어깻죽지에 박힌 칼날을 뽑았다.
“악…….”
루카스가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소피아는 불안정한 자세로 비틀거리다, 칼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슴을 찔렀다.
촤악.
피가 튀었다.
“소피아……?”
“아윽, 켁. 컥, 칵…….”
소피아는 핏물을 울컥울컥 토해 내며, 칼을 뽑았다. 그런 다음 한 번 더 꽂는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 마치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소피아……!”
루카스가 그녀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어깨와 발목의 고통도 잠시 잊었다.
“소, 소피아. 그러지 마요.”
어린 루카스가 소피아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소피아는 루카스를 뿌리치며 더 거세게 날뛰었다. 곧 그녀의 가슴팍은 선혈 빛 이외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풀썩, 소피아의 몸이 쓰러졌다.
“…미안하구나.”
툭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안해, 루카스.”
소피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내가 나약해서 미안해.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해.”
쿨럭.
물을 잔뜩 삼킨 사람처럼, 소피아의 목소리에 불쾌한 잡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피 섞인 눈물이 흘렀다.
루카스도 마주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용서해 줄게요. 다 용서해요. 그러니까 그만 말해요.”
“마법을 쓸 수 있었구나. 후후. 전혀 몰랐어.”
“네. 숨겨서 미안해요. 나중에, 좀 더 대단한 마법사가 되어서 놀래 주고 싶었어요.”
“충분히 놀랐단다. 정말, 대단했어…….”
소피아가 흐릿하게 웃었다.
“마법사……. 네게 잘 어울리는구나, 루카스.”
“소피아, 상처가 심해요. 집으로, 아니. 도시로 가요. 솜씨 좋은 의원을 알아요. 지난번에 엘리가 다쳤을 때, 상처 자국 거의 없이 치료해 줬어요. 그 사람이라면 소피아도…….”
루카스는 두 손으로 소피아의 상처를 막으며 떠들었으나, 소피아는 흐릿하게 웃었다.
“좀 더 빨리 이랬어야 했는데…….”
핏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루카스에게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으나.
“…….”
공기 소리를 두어 번 내뱉은 게 고작이었다.
반쯤 들렸던 손이 툭 떨어졌다.
* * *
루카스는 우두커니 멈춘 채, 밀려오는 기억의 파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 기억에서 지웠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괴로워져서, 버틸 수가 없어서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기로 했다.’
[소피아 트로우맨에겐 악마가 깃들어 있었다.]
‘루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중인격이라 볼 수도 있겠지. 아마도 그녀의 출신 내력과 깊은 연관이 있을 터였다. …한밤중, 그녀가 잠에 들 때면 또 하나의 인격이 눈을 떴지. 아주 음험하고, 추하며, 사악한 인격이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던 소피아의 모습도 거짓은 아니었단 거다.]
“…….”
[소피아가 그 사실을 자각한 건, 내가 14살 될 무렵의 가을이었다. 그녀가 받은 충격은 우리 이상이었을 거야. 진실을 알게 된 후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이미 또 다른 인격의 장악력이 더 강해졌으니까. 그녀는 죽지 못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겠지. 또 다른 소피아가 경고했으니.]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면, 보육원의 아이들을 모조리 죽인 다음 돼지 먹이로 줄 거야.’
[지옥을 살아가는 기분이었을 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소피아의 정신은 조용히 썩어갔다.]
‘루카스’가 말했다.
[너의 기억을 더욱 엿보았다.]
“…….”
[이리스 피스파인더. 그녀 또한 대의를 위해 수많은 참극을 못 본 체했고, 때로는 손에 직접 피까지 묻혔다. 과거의 너는 그런 행위를 이해했다. 그녀의 비극에 동조했지. 왜냐면, 그때만 해도 네겐 감성感性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리스와 소피아는, 경우가 달라.”
루카스의 목소리엔 더 이상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깨달을 정도로.
[뒤틀린 행동을 벌였다는 점에선 동일하지……. 소피아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스스로 지옥 길을 걷기로 한 이리스보다 더욱 안타까운 경우다.]
“…….”
[과거의 넌 이리스를 용서했다. 하지만 지금의 넌 아니야. 네가 정해 둔 원리원칙은, 감성을 가진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소피아는, 너의 엄격한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나는.”
‘루카스’가 연이어 말했다.
[잘못된 길을 헤맬 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
[인간은 실수하고 실패하는 생물이지. 그 속에서 보다 나은 가능성을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더 근사한 존재로 발돋움할 수 있다. 하지만 넌 그런 가능성을 내게 보여 주지 못했다.]
이어지는 ‘루카스’의 말은 그에게 가장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루카스, 네가 가진 사고방식은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니야.]
…몇 번이고 들었던 말이다. 그때마다 루카스에겐 부정할 여력이 있었다.
설령 신이나, 군림자가 그딴 말을 지껄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은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카스’가 하는 말이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의 본질은 인간이라고 여겼다. 절대자가 되고 난 이후에도 한참이나 그랬다.
그러나 아니었다.
루카스는 변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나는, 언제부터.
내가 증오한 이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거지?
[넌 인간과는 너무 동떨어진 존재지만… 그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에 대해서 맡겨도 되겠군.]
‘루카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가져가라, 루카스. 나의 가능성, 그 전부를…….]
희미한 목소리는 차츰 연기처럼 사라졌다.
스으으─
채워진다.
무언가,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가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존재 그 자체가 충족되는 듯한 느낌, 환희나 쾌락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무언가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강해지고 있다.
원리는 불명이지만, 그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루카스는 막대한 충족감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슴이 뜯겨나간 듯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능성’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커져만 갔다.
─사리진 ‘루카스’의 말에도 틀린 건 있었다.
이 순간까지만 해도, 루카스에겐 희미하지만 인간성이 남아 있었다. 그건 미약하지만, 가장 강렬한 인간성 중 하나였다.
바로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꼴이 되었음에도, 루카스는 스스로를 줄곧 인간으로 여겼다. 몇 번 길을 헤매거나, 불확실함에 휩쓸릴 때도 있었으나, 그 가장 깊숙한 곳엔 자신이 인간임을 확신하는 무언가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르게 되었다.
쐐기를 박은 건 사라진 ‘루카스’의 말들이었다.
그가 남긴 말로 인해.
“…아. 그렇군.”
루카스는 문득 자각했다.
“난 더 이상, 인간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