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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246화 (467/857)

외전 246화

처음부터 강한 인간이란 없다. 성장成長은 인간이 태생부터 함께하는 숙명이다.

루카스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도 연약했던 시기, 지킴을 받던 시기, 다시 말해 성장기란 분명히 존재했다.

4000년 후의 미래에서,

루카스 트로우맨은 과거의 문헌들을 찾아보았다.

빛의 시대, 마도학의 번성기.

그리고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영웅들 중에서도, 루카스에 관한 기록은 아주 상세했다. 역사학자나 마법사들 간의 해석 차이는 분명 존재했으나, 그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마법사의 우상이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선구자란 것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루카스의 행적에 관해서도 아주 치밀하게 분석한 서적이 많았다.

그리고 모든 기록물에서, 루카스 트로우맨의 유년기에 관한 기록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루카스의 행보가 소상히 기록되기 시작한 건 청년기, 즉 그가 마도학에 입문하여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이후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루카스란 존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간이 아니다.

부모가 있었을 것이다. 형제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에게 있어 유소년기의 기억은 흐릿한 기억인가, 흐릿해지고 싶은 기억인가.

루카스는 아득한 과거에 대한 언급을 꺼려 했다. 가족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생각을 죽이고 있었으며, 가장 각별한 사이였던 친구들조차 루카스의 유소년기에 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법을 접하기 전의 루카스가 한심하고 초라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의 얘기를 스스로 꺼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이 또한 일리 있는 생각이었으나,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루카스 스스로도 그 확실한 이유를 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루카스에게도 약한 시절이란 분명 존재했다.

그보다 강한 마법사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걸었다. 책을 보며,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배우는 과정이 즐거웠고,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언제부터지?’

새로운 마법을 배울 때의 설렘이 느껴지지 않았다. 때 묻지 않은 서적을 펼칠 때의 두근거림도 없었다. 저명한 마도학자의 강의를 듣기 전에도 기대감이 들지 않았다.

─이 수식보다 더 효율적인 것이 있을 텐데?

─서적의 정보가 잘못됐군.

─저 마도학자의 강의는 이상해.

처음엔 자신이 오만해졌다고 생각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들이 으레 겪게 되는 과정으로 여겼다. 실제로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내면 깊숙이 스승으로 여긴 건 단 한 명뿐이지만─ 이들은 언제나 겸손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니다.

무언가 다르다. 아니, 남들과 다르다.

루카스는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부턴 모든 걸 스스로 해결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조언이나 가르침을 갈구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재능을 드러냈다.

좀 더 효율적인 수식에 대해 알렸고, 서적에도 잘못된 내용이 있다고 외쳤으며, 강의 내용 중 틀린 내용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설파했다.

지적받은 이들 대부분이 납득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루카스의 사회적 위치는 낮았고, 마법사란 족속은 대개 자존심이 강했으니까.

그래서, 루카스는 그들과 싸웠다.

때로는 혀로, 때로는 지식으로, 때로는 주먹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마법으로.

루카스는 ‘자신보다 강한 마법사’ 대부분을 꺾었다.

그때 루카스의 가슴은 세차게 고동치고 있었다. 싸우는 게 즐거운 게 아니라, 스스로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강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때때로 쉽게 확증 짓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으나, 그럴 때면 가슴은 더욱 거세게 뛰었다.

그래. 데미갓의 존재를 깨닫기 전, 어쩌면 그때부터,

루카스는 약자弱者의 입장이란 걸 즐겼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지?’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누구도 루카스의 지적에 토를 달지 않고 경청하게 됐다.

배우는 게 아닌 가르칠 입장이 되었다.

의문이 생겼을 때, 누군가의 조언도 기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문득 깨달았을 때.

루카스가 걸어가고 있는 길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혼자였다.

의문이 생긴다면 그에 관한 답은 오롯이 그 자신이 찾아야 했다.

발자국 하나 남겨져 있지 않은 길.

거칠고, 황량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길.

이제부터 걸어 나가야 될 길을 보면서, 루카스는 두려움 같은 걸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다.

아직 꺾어야 될 존재가 산재해 있던 그때가.

* * *

‘나보다 강한 마법사.’

양인현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루카스는 스스로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심장의 고동만큼은 분명하게 빨라졌다.

당혹, 경악, 불신, 희미한 기대감.

복합적인 감정의 파도는, 이윽고 육체에도 영향력을 행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삼천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마법들은 각기 다른 갈래를 갖고 있다.

양인현의 말을 떠올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흉내 낸 ‘누군가’의 말이겠지만.

‘알고 있어.’

루카스 또한 절대자로서 많은 우주를 순회했고, ‘다른 우주의 마법’에 대해서도 접했다.

비록 세세한 차이가 있을지언정, 루카스 알고 있는 마법과 맥락은 같았다. 마나의 본질을 해석하고, 조율하여, 법칙을 적용시키는 것만큼은 동일했다.

처음엔 그 연유가 이해가지 않았다. 모든 우주는 서로 간섭할 수 없다. 당연히 정보 공유도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마나에 대한 해석이 이토록 비슷하다니.

…얼마 안 가, 그것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서로 단 한 번도 접하지 않은 민족民族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구조의 무기를 개발하는 일은 존재했다. 비록 그것들엔 세세한 형태의 차이가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같은 종류에 속하는 무기임은 분명했다.

그러니 마나라는 요소를 발견한 지적 생명체들이, 비슷한 개념의 사용법을 터득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뿌리는 같다.’

보다 높은 경지를 추구할수록, 그들의 마법은 점점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게 된다.

…본연의 모습이란, 아마도 종언終言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언은 루카스가 정의한 마도학의 끝이었다.

마나에 담긴 무궁무진한 힘, 가능성, 그 모든 것을 끌어내 물질적으로 법칙을 조정하는 것. 현실 조작이라고 불러도 위화감이 없는 절대적인 힘.

양인현은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존재는 루카스보다 아득히 강한 마법사라고.

아득하다? 그건 함부로 사용해도 될 표현이 아니다. 루카스 트로우맨이란 존재에게, 마도학이란 분야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루카스는, 양인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두근-

그걸 알기 때문에, 루카스의 심장은 더욱 거세게 고동쳤다.

* * *

꽈앙!

양인현의 검기와 루카스의 마법이 격돌했다.

앱솔루트.

공간마저 찢을 수 있는, 9성 마법의 권능이 고작 검 한 자루에 가로막힌다. 심지어 양인현의 얼굴엔 조금의 난색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앱솔루트의 힘을 받아 내다가, 가볍게 한 걸음 내디뎠다.

콰직, 허무한 소리와 함께 쭉 앱솔루트 라인이 산산이 부서졌다.

“…….”

루카스는 말문을 잃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검술만으로 공간空間에 간섭할 수 있는 경지. 양인혁은 루카스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검사, 스노우보다 아득히 높은 곳에 서있었다.

양인현에 관한 정보를 크게 수정해야 된다.

상대는 필멸자를 완벽히 초월한 괴물, 최소한의 기준으로 잡아도 절대자다.

“…….”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다.

펄럭, 양인현의 옷자락이 일렁였다. 바람이 아닌 유형화된 기세.

다시 한번, 앱솔루트 라인을 쏘기 전에 느껴졌던 희미한 기세가 느껴진다.

루카스조차 생전 처음 겪는 기운이다. 즉 모든 것이 정체불명. 어떤 원리로, 어떤 형태로,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가운데, 루카스가 확신에 가깝게 느끼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결코 양인현이 쉽사리 출검出劍하게 둬선 안 된다.

츠즛─

전신을 두른 검붉은 빛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마나룸에 채워져 있던 마나가 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다.

8성 이하의 마법은 양인현에게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저 괴물의 진격을 잠시라도 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억제력이 바로 앱솔루트다.

하지만 앱솔루트 라인조차 양인현의 일검一劍을 버티지 못했다.

그렇다면.

‘…앱솔루트 필드.’

속으로 뇌까린 순간, 일대가 루카스의 영역으로 잠식되어 갔다. 검붉은 빛이 광포하게 주변을 집어삼켰다.

“흠.”

주변의 색채가 반전하고, 자신의 움직임에 약간의 제약이 붙었음에도.

양인현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검 한 자루를 쥔 채로 루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정도군.”

어깨 관절을 풀듯, 고개를 살짝 비튼다. 뚜둑. 짤막한 소리가 잠시 울렸고 그게 전부다.

양인현의 준비 동작은 그걸로 끝이었다.

핏, 끊어질 듯 희미한 소리를 남기며, 양인현의 신형이 다시 사라진다.

‘빠르다.’

최초의 조우에서 그의 움직임을 놓쳤을 때보다 훨씬 신속하고 은밀한 움직임. 마나를 잔뜩 소비하여 펼친 앱솔루트 필드조차 그에겐 아무런 억제력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다.

스걱─

팔뚝이 베였다. 살점이 한 움큼이나 떨어지며 핏물이 튀었다. 루카스는 고통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오른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덥석, 뻗어진 손이 양인현의 멱살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

양인현이 침음 비슷한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듯했으나 루카스는 기다리지 않았다.

꽈앙!

손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단순한 폭발이 아니다. 앱솔루트의 권능으로 공간을 한계까지 응축시킨 다음 터뜨렸다. 웅크리고 있던 공간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뻗어 나가며, 맞닿는 모든 물질을 강제적으로 밀어낸다.

제아무리 단단한 물질이어도 공간 자체를 짓이기는 힘은 막을 수 없다. 유일한 변수는 양인현이 펼칠 검법이겠으나,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검사의 간격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검법을 펼치기엔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앱솔루트 버스트(Absolute burst)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기술이며 리스크도 크지만, 그에 상응할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초근거리에서 제대로 들어갔다면, 아무리 양인현이라도 성하지 못할 것이다.

“…….”

루카스의 손목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일순 주변에 자욱하게 깔린 연기가 시야를 막고 있다.

양인현은…….

“자신의 손까지 버린 건가. 어울리지 않는 무식한 전투 방법…….”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앙!

청명한 소리와 함께 연기가 순식간에 걷혔다. 털어내듯 휘두른 칼에서 강풍이 휘몰아친 것이다.

탁 트인 시야 너머,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양인현이 서 있었다. 루카스의 표정이 굳었다.

‘…상처가.’

전혀 없다. 목 소매 부분이 약간 찢긴 것이 전부다. 오른손을 바친 결과가 고작 옷 한 조각인가.

루카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과거 로드와 대면했을 때가 떠오를 만큼의 암담함.

마나 또한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남은 수단은, 이제 거의 없다.

“절망한 척을 하는군.”

양인현의 말은 서늘한 칼날처럼, 루카스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절망한 척이라고?”

“순간적인 임기응변으로만 싸우고 있지 않나. 뒷일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건 네 방식이 아닐 텐데.”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했으나, 루카스는 양인현의 알 수 없는 분노 또한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절대 공간을 형성하여 나의 움직임을 읽는 것. 제법 괜찮은 한 수였지만, 최적의 수단은 아니었을 터. 이후의 대처는 더욱 역겨웠다. 스스로의 손을 버린, 자멸에 가까운 공격을 말하는 거다.”

“…….”

“뒤를 생각하지 않는 싸움 방식이 나쁜 건 아니지. 하지만 네겐 승리를 위한 절실함, 생존을 향한 갈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네겐, 필사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그런 자와 합을 나누는 건 아주 끔찍한 일이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야.”

양인현의 목소리에 서서히 열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네놈이 나를 이용하려 들고 있다는 점이다.”

빠득

양인현이 이를 갈며 말했다.

“네놈은, 나를 이용해서 죽을 생각을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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