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09화
화륵.
루카스는 화염구 하나를 만들었다.
파이어 볼? 아니다.
5성 마법인 플레임 볼.
‘경이로울 정도의 완성도.’
페르안은 조용히 감탄했다.
검의 명인이 발검만으로 상대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듯, 페르안 또한 하나의 마법만으로 루카스에게 내재된 마도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발현된 플레임 볼.
굉장하다. 굉장하지만…….
‘어째서?’
마법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플레임 볼을 사용한 이유를 모르겠다.
왜 화염 마법이지?
닉스에겐 불꽃이 통하지 않는다. 7성, 혹은 8성 마법을 써도 효과가 있을지 의심이 드는데, 고작 5성에 불과한 플레임 볼이라면 수십, 수백 구를 날려도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태울 수 없을 것이다.
루카스가 그 사실을 모를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분명 누군가의 체내에 인공적으로 마나룸을 만들고, 그를 이용해 마법을 쓰는 건 전무후무한 방식이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제대로 마법이 펼쳐지는지 확인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발현의 확인이 목적이라면 굳이 5성 마법인 플레임 볼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파이어 볼, 아니. 매직 미사일 따위로도 충분할 테니까.
화르륵!
그러나 루카스는 오히려 플레임 볼 수십 구를 더 만들어 냈다. 그런 뒤 인공태양에게 천천히 접근한다.
그 모습이 자못 위태롭다. 무슨 생각이지?
페르안은 루카스가 범상치 않은 내력의 소유자란 걸 받아들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그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예상할 수 없었다.
자살이라도 할 셈인가.
꽈앙!
폭발이 일어났다.
루카스의 바로 지척이었다. 기적적으로 휘말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머리와 옷자락은 폭발의 후폭풍만으로 세차게 휘날렸다. 남자치고 가냘픈 몸뚱이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다.
꽈앙!
다시 한 번 폭발. 이번엔 더 가깝다. 페르안은 초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설마 아무런 대책도 없는 건가? 저대로라면 불구덩이에 스스로 달려드는 부나방과 전혀 다를 바 없지 않나.
꽈앙!
“…….”
세 번째 폭발이 일어났을 때,
페르안은 위화감을 느꼈다.
폭발은 다시 한 번 지척에서 일어났지만, 루카스는 휘말리지 않았다. 여전히 머리카락과 옷자락은 휘날리고 있지만, 상처는 없다.
첫 번째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행운이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는?
꽈앙!
페르안의 생각대로다.
루카스가 폭발에 말려들지 않은 건 우연이나 운 따위가 아니었다.
까닥.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에 따라 플레임 볼이 떠오르며, 인공태양이 만들어 낸 홍염과 부딪쳤다. 얽매인 불꽃은 곧 스파크를 일으켰고.
꽈앙!
그리하여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 거였나.”
페르안은 루카스의 의도를 뒤늦게 깨달았으나, 놀라움은 훨씬 더 커지고 말았다.
저 남자는 인공태양의 폭발을 인위적으로 일으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직접 만들어 낸 플레임 볼을 이용해서!
페르안도 연산력에는 자신 있었다. 전장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넓은 시야도, 예상 밖의 사태에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 또한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루카스가 보여 주는 기술은, 그에게 있어서도 신기神技에 가까운 경지였다.
꽈앙!
“…….”
그러나 루카스의 상황은 페르안이 관찰한 것만큼 여유 있지 않았다.
물론 폭발은 더 이상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인공태양이 1분 후에 일으킬 거대한 폭발도 마찬가지다. 그는 태양 내부에 진입한 뒤, 플레임 볼을 이용해 작은 폭발을 연달아 일으키며 태양 안에 축적되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즉 폭발의 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이다. 계산대로라면 플레임 볼 수십 구를 소모해 10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이 태양 내부에서 닉스의 위치를 찾는 것.
‘…뜨겁군.’
태양 내부는 후끈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루카스는 때때로 워터 볼을 사용해 머리부터 물을 흠뻑 적셨다. 그럼에도 소모된 마나에 비하면 구현된 물의 양은 쥐꼬리만 했다.
그렇다고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흠뻑 적신 물이 모두 증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초, 이 반복 행위를 그만둔다면 루카스는 눈 깜박할 사이에 전신 화상을 입을 것이다.
워터 볼 사용, 배리어 전개, 플라이 마법 유지.
그리고 닉스를 만난 이후에 사용할 마법까지 고려한다면, 이 이상 플레임 볼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즉 지금 두른 플레임 볼을 모두 쓰기 전까지 닉스를 찾아야 한다.
꽈앙!
플레임 볼 하나가 다시 사라졌다.
…일렁이는 홍염紅焰의 온도는 모두 동일하지 않다. 극단적으로 온도가 높은 것도, 다른 것에 비하면 온도가 낮은 것도 있다.
폭발이 일어나는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두 줄기의 홍염이 서로 얽매이며 결합, 순간적으로 일정 온도를 넘어서면 스파크와 함께 폭발이 발생한다.
물론 루카스도 정확한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모른다. 그가 일으키는 폭발은 감에 의존한 결과물이었으니까.
다만, 대마도사의 감感이란 웬만큼 정확한 결과값보다 훨씬 정확했다.
꽈앙!
…얼마나 깊게 들어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한 줌의 기대감을 섞어 예상하자면, 중심부까지는 진입한 것 같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루카스가 지나온 공간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보이는 거라곤 홍염과 불꽃뿐. 픽 웃음이 새어 나온다.
닉스를 멈추지 못한다면,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다.
‘…닉스.’
그녀는 완전히 폭주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는 이성이 남아 있을 것이다.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이유는 하나다.
닉스가 정말로 정신을 놓고 폭주했다면, 내뿜은 불꽃의 위력이 고작 이 정도에서 그칠 리 없을 테니까.
이 인공태양.
엄청난 규모로 보이지만, 약해진 루카스조차 내부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내부가 허술하다.
만약 닉스가 완전히 폭주한 상황이고, 그녀가 내보일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태양을 만들었다면 진작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형상물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싸우고 있어.’
폭주하기 싫어서, 모든 걸 불태우는 게 싫어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루카스는 닉스를 도울 것이다.
“허억, 허억…….”
…점점 숨 쉬는 게 힘들다.
남은 플레임 볼은 세 개다.
이 시점까지 왔다면, 최소한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아.”
─새빨간 머리카락.
처음엔 그것 또한 홍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무 얇고 가늘다.
닉스다.
멍한 얼굴로, 가만히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꽈앙!
루카스는 다시 한 번 폭발을 만들어 내며,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닉스의 전신은 타오르고 있다.
여태까지 느낀 어떤 불꽃보다 뜨겁다. 손을 댈 수는 없다.
“…후우.”
그래도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다.
적어도, 그녀의 눈동자는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거기 있겠지, 토르쿤타.”
“…….”
닉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멍한 눈동자로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이 감각을 공유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다.
반응을 보였다면 루카스의 목소리는, 분명 그에게 닿을 것이다.
“잘 들어라, 토르쿤타. 지금부터 나는 닉스를 죽일 거다.”
움찔─
인형 같은 표정에 확연한 반응이 생겼다.
초점 없는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번뜩였다.
콰가각─
루카스의 손에 마법으로 가공된 얼음의 낫이 쥐어졌다. 이걸 만드는 데 남은 마나를 죄다 욱여넣었다. 때문에 이 고온 속에서도, 낫은 제 형상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기억하고 있나? 네게 유쾌한 기억은 아니겠지만, 이스파니아 산맥에서 난 이 얼음의 낫으로 너의 목을 베었지.”
“…….”
“토르쿤타, 생존에 대한 너의 욕망을 알고 있다. …넌 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해 왔지. 타인의 육체에 빌붙어 사는 초라한 꼴이 되고서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어.”
그것이 토르쿤타였고, 루카스가 기대를 거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아마도 토르쿤타는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갇혀 있겠지. 그리 확신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가 건재했다면 닉스의 정신이 이토록 망가지지 않았을 테니까.
닉스는 강한 힘을 가졌지만, 어렸다. 세상의 풍파를 모른다. 슬픔에 익숙하지 않았고 분노를 다스릴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동족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를 탓하며 망가져 버렸겠지.
…토르쿤타가 있었다면.
천 년의 연륜을 가진 토르쿤타의 조언이 있었다면, 닉스는 이렇게까지 부서지지 않았을 것이다.
루카스는 닉스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얼음의 낫에 분명하고도 확실한 살기를 담았다.
“부디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마.”
닉스의 죽음을, 너 자신의 죽음을 결코 용납하지 않기를 바란다.
루카스는 얼음의 낫에 살심을 담았다.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일념을 모조리 불어넣었다.
그런 뒤 닉스의 새하얀 목을 향해 휘둘렀다.
푸화악!
“큭…….”
닉스를 감싸고 있던 불길이 사나운 기세로 치솟더니 낫을 밀어냈다. 순간적으로 낫을 놓칠 뻔했다.
엄청난 힘. 그리고 열기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루카스는 힘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
“크으으……!”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고, 으스러진 이빨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느끼지 못할 만큼 여력을 짜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그극─
얼음의 낫이 삐걱댄다. 벌써 한계인가? …아니. 다르다.
삐걱대는 건 낫이 아니라 루카스의 육체였다.
거기에.
‘마나룸이…….’
루카스의 육체 내부에 구현화된 마나룸이 사라지려 하고 있다.
어째서? 마나엔 아직 여유가 있는데. 페르안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기 때문인가?
…생각할 여유는 없다.
‘조금만, 더…….’
마침내 얼음의 낫은 닉스의 목젖에 닿았다. 선명하게 맺힌 핏방울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작 이 정도로 닉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토르쿤타의 정신이 강제로 깨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딱 한 뼘.
한 뼘만 더 파고든다면…….
콰직!
“…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마나룸이, 사라졌다.
스르르…….
냉기를 풍기던 얼음의 낫은 액체가 되어 허망히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렸다.
플라이 마법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루카스의 몸뚱이가 불구덩이로 낙하했다.
‘…….’
육체도, 정신도 진작 한계였다. 의지력만으로는 더 이상 심신을 지탱할 수 없었다.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혹사한 대가가 반동이 되어 돌아왔다.
더 이상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힘없이 떨어지는 육체,
솟구치는 홍염은 먹잇감을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혓바닥을 날름대고 있었다.
불꽃에 루카스의 육체가 삼켜지기 직전.
덥석.
누군가 그의 손을 낚아챘다.
“…흥.”
냉소적인 코웃음.
“어울리지 않게 무식한 방법을 쓰다니……. 진짜로 이 몸이 죽었으면 어쩌려고.”
“…….”
“네놈에게도 여유가 없었단 건가. 뭐, 좋다. 초라한 꼬락서니를 봐서 한 번 봐주도록 하지.”
이미 정신을 잃은 루카스는 대꾸할 수 없었다.
눈동자.
닉스의 눈동자는 더 이상 홍안紅眼이 아니었다.
그녀는 포식자를 연상케 하는 황금색 눈동자를 번뜩이고 있었다.
드레이크 킹, 토르쿤타는 루카스를 품에 안은 채 중얼거렸다.
“우선은 축하라도 해야겠군. 진심으로 환영하마, 루카스 트로우맨. 비록 미쳐 돌아가는 세상일지라도, 네놈은 성공적으로 귀환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