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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176화 (397/857)

외전 176화

수심 수천 미터.

인간의 형상쯤, 진작 찌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압이 존재하는 곳.

그 시커먼 곳에서 노디에소프는 비로소 ‘가라앉는 걸’ 멈췄다.

“…….”

주변을 둘러보았다. 완전한 암흑이 보였다.

사실 ‘보인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지상에 있는 그 어떤 장소도 이보다 어둡지는 않을 테니까.

햇볕 한 줄기 닿지 않는 완연한 어둠의 세계가 이곳이었다.

어둠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그러나 노디에소프에겐 두려움이 없었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서 혹은 절대자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곳은 바다니까.

그에게 있어선 고향과도 같은 장소니까.

애초에 그가 가라앉는 걸 멈출 수 있었던 것도 심해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바다 저 밑바닥까지 처박혔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일곱 이빨의 용의 힘인가.’

지금 그녀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알고 있다. 그녀에 비하면 노디에소프가 받았던 제약은 제약도 아니다.

전성기 시절의 약 82만분의 1.

그게 신녀가 현시점에서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이다.

…일곱 이빨의 용의 상징체라고 할 수 있는 ‘일곱 이빨’.

과거 대우주에 우뚝 서 있던 절대자들의 영혼이 담긴 그릇.

태양거인에게 듣기로, 용龍은 이빨 하나를 잃을 때마다 가진 힘이 7분의 1씩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신녀는 이빨 중 6개를 잃었다.

‘오싹하기 짝이 없군.’

만약 그녀가 되찾은 이빨이 2개만 되었어도, 노디에소프는 그녀의 적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3개만 되어도, 단순 계산으로 치면 지금보다 마흔 배가량은 더 강해진다. 4개가 되면 거기서 다시 한번 7배가 강해지고…….

‘불안전한 상태지.’

일곱 이빨의 용으로 존재하기 위해선 싫든 좋든 7개의 인격체를 갖춰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일곱 이빨의 용의 정체성, 그 자체니까.

신녀가 되고, 그녀는 급한 대로 영혼을 끌어모았을 것이다. 아마 그 시점에서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영혼들만을 선발했겠지.

그럼에도 지금 신녀의 내면에 자리 잡은 혼魂들은 ‘절대자’라 부르기엔 애매한 존재들뿐이었다.

‘애초에 지금의 신녀가 일곱 절대자의 격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녀의 대처에 미흡했던 점은 없었다. 그러나 이게 현실이다.

약해진 신녀는, 결코 노디에소프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불시의 일격으로도 끝장을 내지 못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제대로 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목과 복부의 상처도 완치되었다.’

신녀가 천상계 전체에 형성되어 있던 결계를 모두 해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노디에소프는 본신의 힘을 대부분 되찾았다.

푸화악!

수심 수천 미터 끝자락에서 수면 위까지 단숨에 치솟아 오른다.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거룩한 광경이었으나, 실상은 그 용을 죽이러 가는 살해자였다.

노디에소프는 대륙의 바다를 돌파한 다음, 단숨에 하늘 대륙까지 치달았다. 대륙의 밑바닥, 그가 만들어 낸 구멍이 보였다. 그곳에 몸뚱이를 욱여넣는다.

다시 한번 하늘 대륙의 바다에 잠겼고, 얼마 가지 않아 그 수면마저 재차 뚫어 냈다.

“…….”

“…….”

그리고 약 콤마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그는 두 개의 심해를 돌파하고 루카스의 앞으로 돌아왔다.

신녀는 없다.

이곳에 있는 건 루카스 하나다.

이상한 일이다.

루카스를 바라본다. 전력 차이는 명백하다. 그런 말로도 부족할 만큼 극명한 격차가 있었다.

지금 루카스는 무슨 수를 써도 노디에소프를 이길 수 없다.

…아니.

이 순간만이 아니다. 루카스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그보다 더 거슬러 가면 ‘지구’에서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이 남자는 노디에소프의 적수가 아니었다.

이길 기회는 많았고, 죽일 기회는 더 많았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만 보면, 노디에소프는 아직까지 루카스를 죽이지 못했다.

물론 그때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었다.

급변하는 상황, 뜻밖의 사태, 제삼자의 도움, 그리고 스스로의 방심…….

……결국 자질구레한 핑계고, 변명이다.

무릇 절대자라면 그딴 장애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었어야 됐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는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상하다고.

지금의 루카스에겐 초탈함만이 느껴졌다. 투쟁심마저 사라진 것처럼, 모든 걸 내려놓은 평온한 얼굴.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인 거냐.”

노디에소프는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내심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 끈질긴 남자가 그런 허무한 결말을 바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보이는 태도와 현 상황을 종합하면 그 이외의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어쩔 거냐? 나를 죽인 다음에, 혹시라도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나?”

“그럴 리가. 우선은 너의 끄나풀을 모두 지워 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 부유 대륙을 침몰시킨다.”

“행성 스케일의 전무후무한 재앙이 일어날 텐데.”

“이 세계에선 전무후무하겠지. 허나 내겐 비일비재한 일이다. 단순히 화풀이를 하는 것도 아냐. 육지 대부분이 물에 잠기면, 지상 어딘가에서 조각상을 찾고 있는 레티프와 악마왕의 위치도 특정할 수 있게 되겠지.”

“…그렇군.”

노디에소프는 지구에서 누구도 데리고 오지 않은 대신, 필드에 진입한 순간부터 본신의 힘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 등의 어드밴티지를 받았다.

반면 루카스와 레티프, 카사진은 힘이 제약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선 시간 싸움이란 거다.

다른 절대자들이 힘을 되찾기 전, 되도록 약할 때 모조리 끝장내고 싶다는 게 본심이겠지.

하늘 대륙이 땅에 떨어지면 거대한 해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규모는 루카스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십중팔구 육지 대부분이 물에 잠길 테고, 물은 노디에소프의 근원과도 같은 물질이다. 레티프와 카사진의 위치를 특정하는 건 물론, 어느 정도 견제까지 할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노디에소프 입장에선 더없이 원만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목적을 위한 첫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다.

루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죽음을 앞둔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엔 한 점의 동요도 없었다.

그의 심신은 명경지수처럼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노디에소프.”

“뭐냐.”

“같이 가자.”

“…뭐?”

노디에소프가 인상을 찌푸린 순간이다.

돌연 치솟은 어둠이 일대를 뒤덮었다.

* * *

여긴, 어디지?

노디에소프가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이 캄캄한 공간이다.

불과 방금 전 가라앉았던, 수심 수천 미터의 심해보다 더 어두운 것 같다.

…마치 빛이 닿지 못하는 게 아닌,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공간.

“루카스 트로우맨…… 내게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으득 이를 갈았다.

마지막 순간에 돌연 그의 몸을 뒤덮은 ‘어둠’.

일순 외력을 전신에 둘러 방어하려고 했지만, 어둠은 공격력을 갖고 있던 게 아니었다.

노디에소프는 그 거대한 어둠에 삼켜졌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 장소다.

‘[필드]에 이런 장소가 있었던가?’

저벅-

고즈넉한 공간에서, 발소리가 울린 건 그 순간이다.

루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뿐인 공간에서, 그의 얼굴은 유난히도 창백해 보였다.

아니. 창백한 것만이 아니다.

그의 전신에서 은은한 광휘가 흐르고 있었다.

저건… 마나가 아닌 것 같은데.

“나를 어디로 데리고 온 거냐.”

“물이 없는 장소.”

“…….”

그 말에 노디에소프가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이곳엔 물이 없다.

아니, 물만이 아니라 공기조차 없다.

아무것도 없다.

루카스 트로우맨과 노디에소프.

단둘만이 존재하는 텅 빈 세계.

“하.”

노디에소프는 그만 비웃고 말았다.

최후의 수단, 최후의 수단…….

마지막까지 분위기를 잡더니, 고작 이딴 거였나? 물이 없는 공간으로 나를 이동시키는 거?

“이게 네 최후의 수단이라면, 진실로 실망을 금치 못하겠군.”

“…….”

“물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면 네가 유리할 거라 생각했나? 네놈이 기껏 생각해 낸 수단이 이따위 것이냐?”

노디에소프가 오른팔을 들었다.

출렁-

그 순간, 그의 팔이 액체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곧 물이다. 벌써 잊은 건가. 더 이상 내겐 아무런 제약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하라. 네 눈앞에 있는 건 온전한 권능과 격을 가진 절대자다. 그래, 이제 알겠군. 신녀의 일격에 죽지 않은 순간, 이미 결말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너의 패배가 정해졌지. 노디에소프. 인정人情을 버린 정령왕이여.”

노디에소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지경이 돼서도 여전히 혓바닥만큼은 건재하다.

그 모습이 같잖고, 우습고, 추하다.

“…말을 섞을 가치도 없군.”

액체화된 팔에서 물방울이 스르르 떨어져 나왔다.

손을 휘젓는다.

치잉-

수천 개의 물방울은 그 형태를 바꾸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루카스를 겨냥했다.

이 창 하나하나에 행성을 멸망시킬 만한 외력이 실려 있다.

노디에소프의 시선이 루카스에게 향했다.

저 얼빠진 상태로는 방어도, 회피도, 그 어떤 대응도 불가능할 것이다.

“잘 가라.”

마지막 손짓과 함께 창이 루카스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일순간에 걸레처럼 만들었다. 포악한 물방울은 그의 살점 하나, 핏물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소멸시켰다.

─그랬어야 됐다.

“<사라져라>”

그 한마디에 창이 사라졌다.

“어?”

“<꿇어라>”

쾅!

“……!”

무릎에 으스러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노디에소프의 눈이 부릅떠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백히 그의 인지 범위를 넘어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 어……?”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

그가 창조한 액체는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지고,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루카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을 깜박일 수조차 없다.

마치 몸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

‘대, 대체…….’

“종언終言.”

루카스가 무심한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렇게 묻고 싶은 얼굴인 것 같아서 대답해 줬다. 내가 가진 권능의 이름이지.”

“권, 능, 이라고……?”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네놈이 이만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망가져 가는 그 몸뚱이로……! 힘이 제약된 그 상태로……! 아무리 초월체를 깎아 내도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직 모르겠나. 이곳이 군림자가 만든 [필드]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뭐라고……?”

다른 세계?

다른 세계라고?

노디에소프가 눈을 부릅떴다.

“개소리는 집어치워라! 네놈에게, 네까짓 놈에게 퍼스널 스페이스를 만들 권능이라도 있다는 것이냐─!”

그의 전신에서 물방울이 쏟아져 나왔다.

쏟아진 물방울이 합쳐져서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만들었다.

멸세거인滅世巨人.

태양거인을 모티브로 만든 이 기술은 두말할 것도 없이 노디에소프의 비기였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우주를 멸망시킬 만한 힘이 이 거인에겐 존재했다.

그럼에도 루카스의 표정은 덤덤하다.

“개념을 바꾸겠다. 이 세계에서 불은 차갑고, 대지는 부드러우며, 바람은 단단하다. 그리고 물은.”

화륵

“타오른다.”

“뭐? 끄아아악!”

노디에소프가 비명을 질렀다.

그가 만들어 낸 멸세거인이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했다. 치솟은 불길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이윽고 노디에소프의 몸뚱이까지 좀먹기 시작했다.

이게, 이게 뭐지?

물이 그의 전신을 ‘태우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개념을 바꾼다고?’

말도 안 돼!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의 법칙을 바꾸지 않는 한!

“네, 네놈이, 정말로 세계를 만들었다는 거냐? 절대자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가진 ‘창조의 권능’이 네놈에게 있단 말이냐!”

노디에소프가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공간 창조, 퍼스널 스페이스.

창조의 권능을 가진 절대자는 희귀하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적어도 노디에소프는 군림자 이외엔 그런 권능을 가진 절대자를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루카스가 그 힘을 가졌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없다.

“나의 권능이 아니야.”

루카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힘은 내 최대이자 최악의 적이 가지고 있었던 권능이다. 신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 신과 가장 닮았던 존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거기에 영겁의 세월이 더해졌다면… 어쩌면 군림자와 같은 높이까지 다다를 수 있었던 존재.”

그가 가졌던 또 다른 이름은 ‘신과 가장 가까운 자, 미카엘’.

절대자가 되고 나서 알았다.

그 어떤 절대자도 그러한 이름을 가지진 못했다.

절대자의 정점에 서 있는 네 명의 군림자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천세계에서 그러한 힘을 가졌고, 그리 불렸던 건 오직 하나,

로드(Lord)뿐이었다.

“허, 허, 허,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노디에소프는 고함을 지르며 외력을 끌어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신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외력이 새어 나가고 있다.

“아, 아, 아아아…….”

이런 건, 이상하다. 생전 처음 접하는 사태가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 정체불명의 공간은, 노디에소프에게 미지의 공포를 주었다.

…공포?

‘이 내가, 절대자인 내가 공포를 느낀다고?’

숨을 몰아쉬었다.

무기력증, 무력감, 공포.

새어 나가는 외력을 막을 수가 없다.

육체가, 정신이, 아니.

존재 그 자체가 사라지는 듯한 감각이다.

의식이 차츰 희미해진다.

“아직 이곳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았던가? 나와 4000년의 악연을 가진 세계지. …환영하겠다.”

그 속에서 루카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바닥없는 지옥. 무저갱無底坑에 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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