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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159화 (380/857)

외전 159화

절대자들끼리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잦은 경우는 아니다. 애초에 하나의 세계에 파견되는 절대자는 거의 한 명이니 마주칠 일 자체가 웬만해선 없다.

만에 하나 다수의 절대자가 파견되더라도 그들은 정해진 임무—대부분 우주의 균형을 조율하는—를 수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서로 간의 충돌은 시간과 심력을 소모하는 결과를 낳는다. 때문에 뜻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도 대부분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대립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면 절대자들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한다.

싸움.

절대자 간의 싸움에서 승패를 구분 짓는 건 살아온 세월 같은 게 아니다.

첫째로 격.

절대자는 4개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각 단계 간의 차이는 명백하다. 가장 밑단에 있는 대리자보단, 군림자 다음에 위치한 지배자가 일반적으로 더 강하다.

—일반적으로.

즉,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루카스가 그 증인 중 하나였다. 그는 대리자일 시절 지배자를 이겼다.

두 번째 이유, 상성에서 유리한 고지를 취했기 때문이다.

절대자들 사이에도 상성이란 게 존재한다. 웬만한 존재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자들에겐 모두 각각의 삶이 있었다. 그들 중 절반은 태생적으로 초월자, 혹은 준 초월자의 자리에 서 있던 무시무시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루카스와 같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고되고 힘든 여정 끝에 절대자의 자리에 오른 자들이다.

절대자가 되기 전 살아온 삶은, 곧 그 스스로의 속성을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여태까지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합쳐져 절대자로서의 기원이 확립되는 것이다.

가령 수백만 마리 이상의 벌레를 죽인 절대자와 태생부터 벌레의 모습을 가졌던 절대자가 있다.

이 경우엔 전자의 격이 한두 단계 뒤처지더라도 실제 싸움에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한 힘을 원력原力이라고 한다.

루카스로 예를 들면, 그는 필멸자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절대자에 준하는 존재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패배해도 다시 일어났고 끝내 데미갓이란, 준초월자에 준하는 존재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종의 명운을 건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러한 삶이 루카스가 가진 마법에 속성을 부여했다.

루카스의 마법은 다음의 조건을 충족시킬 때 더 강해진다.

대적하는 존재가 자신보다 명백히 강할 때.

혹은 그 존재가 절대자, 초월자, 불멸자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 때.

반대로, 필멸자 출신 절대자들에겐 그 힘이 약소하게나마 제약된다.

누군가는 각기 다른 우주에 속해 있던 존재들끼리 상성이 존재하는 게 모순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자들이 살아온 삶은 물론,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소사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는 저장 공간이 있다.

가장 거대한 서고라 불리는 허공록이다.

대부분의 절대자는 ‘신의 일기장’이라 부르길 선호하는 곳. 그곳에 넘치는 정보의 대해는 감히 신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신의 위엄이 드러난다.

비록 가진 힘이 군림자보다 약할지라도, 절대자들의 싸움에서 상성을 정하는 건 그의 손끝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물론 신은 허위적인 사실을 허공록에 기록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루카스는 그가 가진 권능 중 하나인 신력의 기원에 대해 떠올렸다.

데미갓은 과거 드래곤이라 불리던 용족과 명운을 건 전쟁을 치렀다.

절대자에 준하는 두 종족의 처절한 전쟁이었고, 자연스레 신의 일기장에도 제법 큼지막한 글씨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결국 승리한 건 데미갓이다. 이러한 개념은 신력의 원력原力에 큰 영향을 끼쳤고, 결과적으로.

신력은 용족을 상대로 할 때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 * *

‘이럴 리가 없다.’

카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몸을 꿰뚫은 전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능의 기술. 카즈는 그러한 힘에 거의 무적에 가까운 방어력을 자랑했다.

루카스가 사용한 마법도 그렇다. 그와 같은 힘을 일찍이 겪은 적은 없지만, 완벽하게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콰르릉!

다시 한 번 천둥이 내려쳤다.

카즈는 망설였다. 아까 전의 그 공격은 우연인가? 한 번 더 맞아 볼까?

‘나의 비늘이, 약해졌을 리가 없다.’

그런 생각과 달리 카즈의 육체는 멋대로 움직였다. 실로 수백 년 만에 공격을 피한 것이다.

콰앙!

내려친 천둥이 지면을 검게 그을려 놓았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비늘을 뚫어낼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이까짓 지면은 아예 두 동강을 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고작 검게 그을려 놓는 선에서 그치다니.

그러나 의문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그전에 루카스에게서 다시 한 번 공격이 날아왔다.

공격? 카즈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놈은 어처구니없게도 돌덩이를 던져댔다.

—그럼에도 카즈는 다시 한 번 공격을 피했다.

저까짓 크기의 돌멩이라면 하늘에서 폭포처럼 쏟아져도 무섭지도, 가렵지도 않다.

분명 그럴 텐데…….

‘천둥.’

전신을 일직선으로 관통한, 그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자 절로 몸이 반응했다. 루카스가 펼치는 사소한 공격 하나하나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만약 놈의 책략이라면, 카즈는 아주 단단히 말려든 것이다.

“공격을 피해 본 경험이 별로 없군. 빈틈투성이야.”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후두부에 강력한 충격이 느껴졌다.

콰직!

[크악!]

다시 한 번 비명을 토해 내고 말았다. 카즈가 급히 뒤를 향해 팔을 휘적거렸다. 공격도, 방어도 아닌 충동적인 동작.

미숙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동작이라도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단순한 허우적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루카스는 살짝 고개를 젖혀 카즈의 공격을 피하고, 그가 뻗은 팔을 붙잡은 다음 수도로 내려쳤다.

콰직!

비늘이 부서졌다. 그것만이 아니라 손목뼈까지 부러졌다.

이번엔 비명을 토해 내지 않았지만, 고통을 참아 낸 게 아니고 너무 놀라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은 것이다.

루카스는 연격을 이어가려다 문득 멈칫했다.

쿨럭.

식도를 타고 시꺼먼 피가 역류했다. 뱉어내고 싶다. 토해 내고 싶다. 그러지 않고 억지로 삼켰다. 이쪽의 몸 상태를 카즈에게 알려선 안 되니까.

루카스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전신이 식은땀에 번들거리고 있다. 누군가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접한다면 비명을 내지를 것이다.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것만으로 육체가 갈가리 찢기는 고통이 쉴 새 없이 몰려들 테니까.

당연한 결과다.

악기를 억지로 신력으로 치환시킨 다음, 그 힘으로 데미갓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다.

고작해야 8성의 경지를 달성한 시점에서 이딴 짓을 저지르는 건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혹자는 자살행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설상가상, 방금 전 용탄의 후폭풍에 의복마저 찢겨나갔다.

지금 루카스는 이 땅의 악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피부가 점점 변색되어 가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한시라도 빨리, 승부를 봐야 한다.

‘결정타.’

카즈를 죽일 결정타가 필요하다.

루카스는 데미갓의 권능을 몇 가지 떠올렸다.

죽음, 바람, 화염.

부족하다. 지금 몸 상태론 ‘아포칼립스’라고 불리던 이들의 권능을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베어낸다.’

어떤 것이라도 베어낼 수 있는 검을 떠올렸다.

날붙이가 없으니, 거의 박살 난 스태프를 양손에 쥔다. 그리고 자세를 취했다.

카즈 또한 심상치 않은 전조를 느꼈다. 뭔지 모르겠지만 위험하다. 우선은 거리를 벌려야—

[……!]

몸을 비틀었다. 반응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카즈의 경계심이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스걱.

그럼에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팔이 완전히 절단됐다. 어깨부터 겨드랑이까지 깔끔히 잘려 나갔다.

카즈가 눈을 부릅떴다. 비늘은 물론이고 뼈까지 한 번에 잘렸다. 푸슉, 뒤늦게 피가 터져 나왔다.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마음 편히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루카스가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격할 여유는 없다. 그저 피하는 걸 반복한다. 잘린 단면에서부터 느껴지는 고통이 어마어마하다. 팔 하나가 없으니 몸의 균형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카즈는 루카스의 공격 대부분을 피해냈다.

‘어째서?’

방금 전보다 약해졌고, 느려졌는데 모든 공격을 피하다니.

카즈는 루카스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느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서두르고 있다……!’

놈은 어떻게든 빨리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하고 있다. 왜 여태까지 눈치채지 못했지? 카즈는 자세히 루카스를 관찰했다.

그제야 고통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신에 번들거리는 식은땀, 검붉게 변색된 피부, 입가를 타고 흐르는 선혈.

‘놈은 정상이 아니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루카스의 육체는 죽어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걸 눈치채지 못했지? 이유는 하나다. 루카스의 표정이 너무 덤덤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뒤늦게라도 눈치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카즈가 내릴 판단은 하나다.

‘시간 끌기.’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자멸할 게 분명하다.

정면대결은 피한다. 루카스는 스스로의 몸을 버려 가면서까지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다. 대놓고 붙어 주는 건 미련한 짓이다. 이대로 도망치다 보면 그가 손쓸 필요도 없이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

어느 정도 승산이 보여 얼굴이 펴진 카즈와 달리, 루카스의 표정은 좋지 않다.

카즈의 움직임이 달라진 걸 깨달은 것이다. 카즈는 더 이상 공포에 몰려 있지 않았다. 비록 팔 하나를 잃었지만, 루카스의 몸 상태에 대해 눈치챘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 이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방금 전 공격으로 끝장냈어야 됐는데, 그러지 못했다. 간발의 차로 카즈가 회피했고 팔 하나를 자르는 것에 그쳤다.

이제 유리한 고지에 선 건 루카스가 아닌 카즈다.

‘포기하기엔 일러.’

아직 승산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루카스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이젠 대놓고 토해 냈다. 몸 상태가 엉망이라는 걸 들켰으니 더는 숨길 이유가 없어졌다.

승부는 거의 막바지, 남은 건 체력 대결이다.

루카스의 몸이 먼저 망가질지.

혹은 그 전에 카즈가 일격을 허용할지.

아마 결말은 간발의 차이로 갈리게 될 것이다.

* * *

공격을 피한다.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한다.

…대체 언제까지?

‘왜?’

카즈가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엔 숨길 수 없는 동요와 공포가 엿보였다.

명백하게 시간을 끌었다. 단 한 번도 맞붙지 않았다.

이제 곧 쓰러지겠지. 곧 죽겠지.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파앗—

다시 한 번 루카스의 공격을 피했다. 처음보다 느려졌나? 모르겠다. 머리가 엉망진창이다. 체력 소모가 너무 크다.

카즈가 이를 악물었다.

루카스의 상태는 겉으로 보기에도 반송장이다. 변색된 피부가 진물처럼 흘러내리고 있고, 걸음걸이는 위태롭다. 아마 속은 훨씬 더 엉망일 것이다. 내장이 거의 녹아내렸을 테니까.

도저히 움직일 만한 꼬락서니가 아니다. 아니, 살아 있을 만한 상태도 아니다.

그런데도 움직인다.

카즈는 질려 버리고 말았다. 루카스의 지독한 무표정과 담담함에.

이 좀비 같은 녀석은 직접 끝장내지 않는 이상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스를 노려봤다. 이제 공포는 거의 희석되었다. 공격을 피하면서 냉정함을 되찾은 것이다.

그 냉정함을 토대로 상황을 분석한다.

비록 팔 하나를 잘렸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이쪽이 우위다.

딱 한 번이면 된다. 그럼 저 지긋지긋한 놈의 가늘고 질긴 명줄을 완전히 끊어 버릴 수 있다.

용탄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끝장을 낸다면, 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지금 놈은 방심하고 있을 것이다.’

카즈는 아주 오랫동안 단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으니 반격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 틈을 파고든다.

루카스가 다시 한 번 다가와 주먹을 내뻗었다.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더 동작이 느려진 것 같다. 당연히 빈틈도 훨씬 더 컸다.

피한다. 그리고 이번엔 거리를 벌리지 않고, 오히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가슴 쪽이 완전히 비어 있다. 카즈가 손톱을 세웠다. 사용한 적은 별로 없지만, 놈의 연약한 살갗을 찢어발기고 폐와 심장까지 조각내기엔 충분하다.

‘죽을 시간이다……!’

카즈는 그리 생각하며 루카스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뭣…….]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보였다. 루카스는 일절의 동요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을 아주 오래 기다린 듯한…….

‘내가 공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카즈가 이를 악물며 루카스의 가슴을 할퀴었다.

찌지직!

살갗이 찢어졌다.

그게 전부였다. 카즈의 일격은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루카스가 직전 허리를 한계까지 뒤로 젖혔기 때문이다.

손가락 두 개를 세운 다음, 그걸로 카즈의 잘린 팔에 꽂았다.

푹!

[큭!]

이미 잘린 팔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루카스의 손가락 두 개가 잘린 팔의 단면에 꽂혀 있었다.

“…이미 잘린 부위는 네겐 급소나 다름없지. 입안과 같이, 에너지를 억지로 욱여넣어도 너로선 막을 길이 없단 뜻이다.”

[뭐, 뭣……?]

“정말 끈질긴 적이었다, 네놈은.”

[이, 자식……!]

승부를 결정지은 듯한 말투에 덜컥 겁이 났다. 무엇을 할 셈이지? 카즈가 급히 몸을 버둥거렸지만 이미 늦었다.

콰가가각—!

손가락에서부터 신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카즈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 포악스런 힘은 카즈의 잘린 왼팔에서부터 시작해 순식간에 심장까지 다다랐다.

퍼걱—

그리고 심장이 터졌다.

[…….]

그 자리에 석상같이 서 있던 카즈가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울컥, 울컥!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죄다 피가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어, 으, 억…….]

카즈는 마지막으로 불신 어린 눈으로 루카스를 바라본 뒤, 그 자리에 쓰러졌다.

“…….”

바람이 한차례 불었다. 그 미풍에 하마터면 루카스도 쓰러질 뻔했다. 비틀거리는 신형을 억지로 다잡았다.

—카즈를 쓰러뜨렸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 거의 절대자에 근접한 존재를 죽인 것이다.

그렇지만 루카스의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엔 시체가 된 카즈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카즈의 분석은 정확했다. 루카스는 반송장이었고, 이제 곧 그의 뒤를 따라 주검이 될 것이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쓰러지면 안 된다. 이대로 의식을 잃으면 죽는다.

위대한 필드에서 죽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모르지만, 게임 형태의 세계라 해서 죽음이란 개념이 가볍게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보다 혹독하겠지. 군림자에게 존재를 저당 잡힐지도 모르니까.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의식이 흐려져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무릎에 힘이 탁 풀리며, 루카스의 신형이 기우뚱 쓰러졌다.

“…….”

그러나 지면의 감촉이 생각보다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쓰러진 게 맞기는 한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정말, 어쩔 수 없네요.

쓰게 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 듯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루카스는 눈을 뜨고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의식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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