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57화
[……!?]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의식을 잃을 뻔했다.
그건 격통이라 불릴 레벨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입안에서 터진 대폭발.
그래. 그건 대폭발이었다.
루카스의 관찰은 정확했다. 카즈에게도 약점은 있었고 입은 그중 하나였다. 입안에는 비늘이 없다. 그렇다고 단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혓바닥이 부드럽지 않은 생물은 거의 없다.
폭발은 혀와 이빨, 입천장을 부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카즈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두개골이 떨리고 내장이 떨렸다.
카즈의 전신이 전극을 맞은 개구리처럼 파르르 떨렸다.
“거, 극, 각…….”
입에서 피가 철철 샌다. 부서진 이빨과 혓바닥 살이 그와 섞여서 탁류처럼 흘러내렸다.
“허윽, 허억…….”
루카스도 바닥에 주저앉은 채 헐떡였다.
그는 보석에 남은 마나를 자극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마법보단 술법과 흡사한 방식이었다. 필요한 마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는 마나’조차 지금의 루카스에겐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생명력과 기력을 마나로 치환했다. 효율적으로 최악인 데다 부작용도 무시무시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덕분에 의식이 흐릿하다. 극도의 마나 고갈 상태. 이건 혼절을 피할 수 없다.
카즈는 아직 살아 있다. 쇼크 상태긴 하지만, 죽이기엔 한참 부족하다.
마무리를 해야 될 건 루카스의 역할이 아니다.
“세, 디.”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카즈의 비늘은 단단하다. 그럼에도 약점은 있다.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을 때면 견고한 방어력을 가지지 못한다. 힘을 줘서 근육을 단단히 응축시키는 것처럼, 그 또한 비늘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방어력을 올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격통으로 몸부림칠 때.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 순간이 온다면, 자연스럽게 카즈의 방어력은 급락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웬만한 병장기는 무시하고 타격을 무효화할 정도는 되겠지.
하지만 세디의 주먹은 ‘웬만한 병장기나 타격’ 수준이 아니었다.
파앗!
용탄을 맞고 날아간 세디가 쏜살처럼 카즈에게 달려들었다. 전신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지만, 눈가엔 독기가 서려 있다.
빠악!
[꺽……!]
카즈의 턱이 위로 홱 올라갔다. 후두둑, 도무지 공략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무적의 비늘이 마치 부서진 대리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건 정말 제대로 들어갔다. 전과 달리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걸 시각적으로도 깨달았다.
그러나 쾌재를 부리기엔 한참 이르다. 잡생각을 지운다. 방심할 때가 아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이길 수 없다.
퍼버버벅!
카즈의 전신을 마치 샌드백이라도 된 것처럼 후려쳤다. 불과 콤마 몇 초도 안 될 시간 동안 수십 대 이상을 때려 박고 있다.
세디의 주먹이 검붉게 부풀어 올랐다. 아마 옷 밑의 살결도 변색되었을 것이다. 허용량 이상의 악기가 육체를 좀먹고 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비명을 지르는 관절을 억지로 움직인다.
한 대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세게.
[칵, 큭, 컥…….]
카즈는 사방이 핑핑 도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두개골 안의 뇌가 빙글빙글 돌고, 입안은 미친 듯이 쓰라리고, 내장은 배배 꼬이는데, 세디의 연타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만한 상황이 아니다.
카즈는 본능적으로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지금 상황은 지극히 위험하다.
‘어떻게든, 막아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세디가 주먹에 악기를 욱여넣었다.
투둑.
여태까지와 다르다. 힘을 집중하는 데만 몇 초나 소요하고 있다. 그만큼 커다란 한 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녀의 주먹이 검게 변색되며 실핏줄이 돋아났다.
위험하다. 카즈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건 맞으면 안 된다.’
누구라도 할 법한 당연한 생각이었으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세디는 준비를 마쳤다.
처음의 일격처럼, 다시 한 번 안면.
꽈앙!
[꺽.]
포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카즈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듯 하늘을 날았다.
족히 수십 미터는 날려 버렸다. 아예 보이지 않을 만큼 꺼져 줬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이게 세디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이었다.
“하악……! 하악……!”
세디가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루카스는……?
“…기절, 했나.”
그렇겠지.
역시라고 해야 되나. 마지막까지 대단한 일을 해 주었다. 의도적인 도발로 카즈를 끌어들여 그의 입에 스태프를 처넣었다.
다만 방식이 너무 위험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뻔했던 것이다.
목숨을 건 도박. 자신의 생명을 판돈으로 한 승부수.
‘그런데도…….’
왜인지, 루카스에겐 그러한 모습이 아주 익숙하게 보였다.
알고 있다. 필멸자 출신의 절대자란 대다수가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마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지금의 자리를 손에 넣었겠지.
세디는 문득 그가 걸어온 삶이 어떤지 강한 호기심이 들었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숨을 헐떡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카즈가 날아간 지점. 시야가 흐릿해 잘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만약에 놈이 한 번 더 일어난다면… 이제는 단언할 수 있다.
결코 이길 수 없다.
물론 그녀는 카즈가 백번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데미지를 줬다. 무방비한 신체에 수백 대 이상을 때려 넣었고, 얼굴을 구성하는 뼈란 뼈는 다 가루가 될 만큼의 일격도 선사했다.
일어날 수 없어야 된다. 그게 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발.”
생전 처음 간절함을 담아 기도했다.
바라건대, 저 역겨운 자식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한동안 주저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기도가 하늘에 닿은 걸까.
다행히 카즈가 일어나는 기색은 없었다. 사방에 퍼진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그랬다.
죽은 건 아니겠지만… 기절이라도 했다면, 어떻게든 도망칠 시간은 벌 수 있다.
놈은 이 섬에 묶여 있다고 했으니까, 일단 다른 섬으로만 도망쳐도 된다. 그리 생각하며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세디는 말문을 잊었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언제 움직였지? 보지 못했다. 일어나는 기척도 깨닫지 못했다.
반대편에 있어야 될 존재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프군.]
카즈가 히죽 웃었다. 피범벅이 되어 부서진 치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혀가 찢어졌을 텐데도, 그는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나? 추해 보이나?]
“…….”
이놈은, 대체, 좀비라도 된다는 거야?
카즈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말했다.
[치아가 거의 다 부서졌어. 혀는 반쯤 찢겼고. 당분간 음식을 씹기 힘들 것 같군. 입천장도 다 까졌고, 식도까지 타 버렸으니. 이렇게 아픈 건 태어나서 두 번째다. 그리고.]
싸늘한 눈동자가 루카스를 향했다.
[이토록 기분이 더러운 건, 생애 처음이고.]
그 여자와 싸웠을 때와 다르다.
명백히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게 완패당한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납득은 간다.
그런데 루카스는 어떻지? 살짝 짓누르면 터져 버릴 듯 연약한 놈이다. 자칭 절대자라는 듯하지만, 카즈는 그 개소리를 믿지 않았다.
아니.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나보다 약하다. 절대적으로 약하다. 그게 진실이었다.
그런 쓰레기한테 이토록 몰리고 말았다.
더없는 굴욕이고,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자만과 과시욕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분노와 증오가 채웠다.
이제부터 카즈가 할 행동이 무엇인지는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저벅.
루카스를 향해 걸어갔다. 놈은 이미 기절해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이라면 더없이 손쉽게 끝장을—
[…….]
발걸음을 멈췄다.
카즈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흑발의 소녀를 내려다봤다.
[비켜라.]
“…뭘 하려고.”
[그 남자를 죽이겠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카즈는 굳이 덧붙여 나갔다.
[원래라면 고문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려고 했지. 태어나서 이만한 굴욕을 느낀 건 처음이니까. 운이 좋게도, 나는 그러한 방법들에 대해 다식하다. 아무리 고고한 척, 품위 있는 척 콧대 세우는 놈이라도 일주일이면 사료 먹는 돼지보다 비참한 꼴로 만들어 낼 수 있지.]
고고한 정신을 망가뜨리는 방법 따위는 셀 수 없을 만큼이나 알고 있다. 예전 죽음의 섬이 풍요로웠을 적 그렇게 외치는 놈들이 많았다.
힘으로는 나를 짓누를 수 없다.
몸은 패했어도 긍지마저 굴복하지는 않겠다.
그런 놈들을 바닥부터 망가뜨리는 건 제법 재밌는 유희거리였다.
[하지만 귀찮아졌다. 아니…….]
조금 생각하던 카즈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워졌다. 그래. 인정하지. 방금 전 일격을 맞고 그 남자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그건 카즈가 할 수 있는 적에게로의 최대급 찬사였고, 경의의 표현이었다.
축 늘어져서 기절해 있는 저 남자.
그가 카즈에게 둘도 없는 위협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이 자리에서 죽여야겠다.]
세디가 오싹한 느낌을 느꼈다. 척추에 칼날이 파고드는 듯한 싸늘함이다.
카즈의 태도는 명백하다. 그는 자신의 뜻을 물릴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러니 이대로 가면, 루카스는 죽는다.
…죽어?
루카스가?
‘하.’
혓바닥이 모래알이라도 씹은 것처럼 까끌까끌하다.
입에 담기조차 싫은 말이란 건가.
‘언제부터였지?’
루카스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악마왕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검은 가시의 마왕에게 받았던 총애, 마기, 절대자로서 쌓은 외력까지 모든 걸 잃었다.
남은 건 필멸자로서의 몸뚱이와 세디라는 이름뿐이었다.
격락.
그 말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그녀의 비참한 꼴을 표현하는 데 그 이상 정확한 표현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루카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제안했다.
자신의 화신이 되어 다시 한 번 절대자가 되지 않겠냐고.
사실 당시엔 그 제안 자체에 그리 큰 흥미가 없었다.
세디는 지쳤고 상처 입은 상태였다. 모든 걸 바쳐 경애하던 주인에게 버림받았다. 그 사실에 얼마나 큰 절망을 느꼈나.
전신을 황홀케 만들던 충만감, 소속감이 사라졌다.
이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듯했다.
그 느낌이 죽을 만큼 싫어서, 막무가내로 루카스에게 빌붙었다.
그에게 아버지란 역할을 요구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인 걸 알고 있었다. 절대자란 족속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고 있으니, 반쯤 미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순간이 오더라도 또다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루카스는 받아들여 줬다.
그는 세디가 첫 번째 자식이라고 말해 줬다.
…쑥스러웠다. 그걸 감추려고, 괜히 말을 돌리며 놀려댔다.
사실 세디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도 루카스가 첫 부모였다. 낳아 줬다고 죄다 부모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죽음 직전에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엔 제법 즐거웠다.
루카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검은 가시의 마왕 때와는 다르다.
일방적인 게 아닌, 쌍방 간의 교감을 느꼈다. 루카스는 서툴지만, 분명 그녀를 딸로 대해 주려고 애썼다.
언젠가 루카스가 말했다.
‘아버지가 딸에게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이상적인 부녀 관계란 어떤 것인지.’
‘그러니 너도 진지하게 고심해 다오. 아버지란 존재에게,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그 이후에 나름대로 고심했고, 깨달았다.
루카스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생명의 은인과 다를 바 없다.
‘아니.’
그런 거창한 포장은 필요 없어. 부모자식인데 뭐.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도리, 효도.
그 단어는 마음에 들었다.
“카즈.”
[뭐지.]
“네가 원하는 건 나겠지.”
[…….]
“만약 내가 네게 순종한다면.”
이 순간, 세디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걸 스스로 할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놓아줄 수 있나.”
희생이라는 거. 직접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세디가 그리 생각하며 억지로 웃었다.
루카스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 구토가 나올 만큼 역겨운 녀석과 함께하는 것도 참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카즈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한동안 세디를 내려다보더니, 이윽고 말했다.
[…어쩔 수 없군.]
그 말에 세디가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이다.
[—라고. 처음 마주쳤을 때 곧장 그리 말했다면,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줬겠지.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늦었어.]
“뭐……?”
[비켜라, 나의 반려자여.]
카즈가 무심히 말했다.
[너까지 죽여 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