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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147화 (368/857)

외전 147화

탁 트인 부두엔 실용을 넘어서, 예술적인 미를 뽐내는 선박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용인들의 조선업 수준에 대해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노인은 넓은 정박장을 느릿한 움직임으로 누비고 다녔다.

그 뒤를 따라가면서, 루카스는 점점 주변이 한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박은 물론이고 인적도 드물어진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슈.”

노인은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지, 특유의 굼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거요. 이 도시 치안이 좋다 생각하는 얼간이들이 생각보다 많수다.”

“아닙니까? 투쟁의 섬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 1위에 뽑혔던데.”

루카스가 그리 묻자 바람 새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기 간행물을 보았군? 댁 같은 사람들 때문에 출판사가 망할 일이 없는 거겠지.”

“…….”

“간행물의 가장 역겨운 점이 뭔지 아시오? 자기네들 주관을 명백한 진실인 것처럼 기사를 써 재낄 수 있단 거유.”

시니컬한 말투였다.

그러나 딱히 루카스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한탄에 가까운 어조다.

“물론 외부인이니 그런 것까지 알 수는 없겠지. 다만 이 도시의 대영주는…….”

노인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못 들은 걸로 해 주쇼. 눈뜨면 저세상 아른거리는 노인네 혼잣말일 뿐이니.”

루카스는 아카드의 대영주를 알고 있다.

얼마 전, 캉키를 죽이기 전에 직접 만나기도 했었다.

스페라.

소년의 얼굴을 가진 용인이었다.

물론 어리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지 않았다. 몇 번의 대화를 나누자, 그 속에 수백 년 묵은 능구렁이들이 도사리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뇨. 주의하겠습니다.”

루카스가 그리 대답할 때쯤 노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 부두엔 소형범선 한 척이 덩그러니 정박해 있었다.

낡은 배다.

노인이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도 없으니 아마 해를 바라보는 것이리라.

“아직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

“배 안에 선장이 나자빠져 있을 거유. 말코 할아범 소개로 왔다고 말하쇼.”

“감사합니다.”

“댁은 사람을 잘 찾아왔소.”

잘난 척한다고 말하기엔 평탄한 어조였다.

노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누구한테 이 늙은이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댁 같은 손님에게 딱인 놈이거든. 겉모습은 좀 미덥지 못해도 걱정 마슈.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실력을 가진 뱃놈이니.”

그리고 할 말을 마쳤다는 듯 등을 돌리고 휘적휘적 자리를 떠난다. 무정하기까지 한 태도였으나, 루카스는 딱히 아쉬움을 느끼진 않았다.

노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고 배에 올라탄다.

끼익—

발을 딛는 순간 갑판이 비명을 질렀다. 루카스가 부주의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선장이 잘 거란 말에 나름 발끝에 주의를 기울였다.

겉도 낡아 보였지만, 내부는 그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형선이라 그런지 선루船樓의 크기도 작았다.

우선은 그곳부터 가기로 했다.

똑똑.

“…….”

똑똑.

몇 번 반복해서 문을 두드렸는데도 묵묵부답이다.

루카스는 문을 좀 더 세게 두드릴지, 그냥 안으로 들어갈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끼익.

툭.

문을 연 직후 발부리에 무언가 부딪쳤다.

“끄응…….”

시선을 밑으로 당기자 중년 남자가 보였다.

루카스는 우선 그의 독특한 외모에 주목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에겐 익숙하나, 이곳 천상계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생김새였다.

그는 손톱이 뾰족하지 않았다. 반쯤 벌린 입안에 보이는 치열도 날카롭거나 삐죽하지 않고 골랐다. 비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외부인이었다.

“으음…….”

발부리가 허벅지 쪽을 쿡 찌른 것 같다. 세게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잠에 빠진 걸 깨우기엔 충분했는지, 남자가 게슴츠레한 기색으로 눈을 떴다.

“…….”

잠시 눈알을 굴려 주변을 훑어보다 루카스를 직시한다.

“…뉘쇼?”

“말코 할아범의 소개로 왔습니다.”

“…손님이군.”

걸걸한 목소리로 내뱉고는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긴다. 만약 소심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죄책감을 느낄 정도다.

그는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루카스에게 턱짓했다.

“좀 비켜 주시오.”

슬쩍 상체만 비틀어 틈을 만드니, 그는 밖으로 나가 가래침을 탁 뱉고 다시 돌아왔다.

“그럼… 우선 돈은 있소?”

“얼맙니까.”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다르지.”

“사찰도로 갑니다.”

“그건 드문 행선지군.”

“불가능합니까?”

“그건 아닌데 값이 많이 나갈 것이오.”

“얼맙니까.”

다시 한 번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왔다.

중년 남자, 아마도 선장으로 보이는 그가 대답했다.

“왕복 3,000에루.”

상당히 비싼 뱃삯이다. 루카스는 시세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고 왔다.

다른 칠도七島를 왕복으로 이용해도 저보단 값이 덜 나올 것이다. 하물며 사찰도는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다.

선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미리 말하지만 에누리해 줄 맘은 없소. 만약 싫으면 그냥 다른 데 알아보…….”

루카스는 금화 30개를 꺼내는 것으로 그의 말문을 막았다.

개당 100에루의 가치를 가진 금화였다.

“…….”

그러자 선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루카스의 넉넉한 금전 사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낮잠 자기 딱 좋은 시기인데.”

그리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섬엔 특별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 출입할 수 있소.”

“알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선 걱정이 없다. 아리드에게 받은 용패면 자격을 증명하는 데 충분할 테니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이 배에 대해서다.

루카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실, 아마 조타실과 병행하고 있는 듯한데 다른 방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갑판 밑의 선창船倉도 짐을 싣는 용도인 듯하고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선원은 없습니까?”

“나뿐이오. 그 정도로 큼직한 배도 아니잖소.”

“…….”

루카스는 뱃일에 대해 해박한 편이 아니지만, 비록 소형선이라도 혼자 운항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고 잇다.

허세를 부리는 건가. 표정 관리에 능한 사기꾼인가.

아까 그 노인과 한통속으로, 루카스를 벗겨먹으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때때로 보여 주는 태도가 기묘하다. 마치 루카스가 마음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으면 하는 기색을 팍팍 풍긴다.

“…사찰도라.”

그때 선장이 낮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갑판으로 나갔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카스는 무슨 생각에선지 뒤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차 한 잔이 식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선실로 돌아온 선장이 퉁명스레 말했다.

“사흘 뒤에 출발하겠소.”

제멋대로인 발언이었다.

루카스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도 무방했다.

선장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싫다면 다른 데 알아보…….”

“사흘 뒤에 오겠습니다.”

“…….”

그는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선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딱딱한 바닥에 반쯤 몸을 눕히며 말했다.

“대금은 그때 받겠소.”

“쉬십시오.”

루카스는 짧게 인사하고 소형선에서 내렸다.

달칵.

문을 닫는 소리는 조금 뒤늦게 들렸다.

* * *

그날 저녁.

루카스는 아카드의 어느 여관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있었다. 항구도시라 그런지 어류를 사용한 음식이 많았다. 하늘 위에 존재하는 이 기묘한 바다에도 해양생물은 존재하는 듯하다.

한창 생선뼈를 바르고 있는 도중이다.

투둑 투두둑…….

바깥에서 빗소리가 들렸다.

직후 루카스는 위화감을 느꼈다.

‘빗소리?’

묘한 시선으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물줄기가 창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다. 물론 비가 오는 것쯤이야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곳은 천상계다.

구름 위에 있는 세계. 그런 곳에 비가 내린다?

덜컹!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소나기라도 맞은 것처럼 홀딱 젖어 있었다.

“젠장! 재수 옴 붙었군!”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훌훌 털었다.

물벼락을 맞은 여관 점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바깥에서 털고 오시지?”

“미안하네, 점주. 일단 방에서 씻고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어. 물기는 조금 있다 말끔히 닦아 놓을 테니 용서해 주게.”

그러자 점주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다면야. 뜨끈한 스튜라도 먹겠나?”

“배도 꺼졌으니 고기도 넉넉히 넣어 주면 좋겠군.”

점주가 요리사에게 스튜 10인분을 지시하며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인가? 스카이스톰(Skystrom)이라도 일어났나?”

“올해 최대 규모로.”

스카이스톰. 처음 듣는 단어다.

“피해 정도는?”

“우리야 출항길 늦춰진 게 다지. 초입에 눈치채고 뱃머리를 돌렸으니. 다른 데는 난리도 아니야. 새벽 일찍 출항에 나섰던 수하르 상단은 거의 끝장난 것 같더군. 상선 2척이 침몰하고 나머지 배에 실려 있던 화물도 대부분이 쓸려나갔어. 인적 피해와 변상금까지 추산하면 거의 파산한 셈이지.”

“운 더럽게 나빴군.”

점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뱃놈들 목숨이 바다 마음에 왔다 갔다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정도를 넘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스카이스톰의 전조를 파악할 만한 안목을 가진 건, 아카드의 날고뛰는 선장 중에서도 다섯이 넘지 않으니.”

남자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말했다.

“최소 사흘간 출항은 꿈도 못 꿀 거야. 챔피언십 때문에 다른 섬에서 올 손님들도 많은데, 후우. 야단났군.”

* * *

사흘 후.

루카스는 소형선이 정박한 곳으로 향했다.

해당 선박은 사흘의 시간을 홀로 피해 간 듯,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선장이 갑판에 서 있었다. 그는 파이프를 뻐끔대며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카스가 배에 올라탔다.

끼익—

갑판의 비명이 벨이 되어 주었다.

후우, 연기를 한 번 내뱉은 선장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찰도로 가는 데 나흘 정도 걸릴 것이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요.”

“…….”

선장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했다. 루카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약간 알게 되었다.

다른 배에 승선할 것을 권할지 말지에 대해서겠지.

물론 선장의 실력에 확신을 품게 된 지금, 더 이상 다른 배를 찾을 마음은 없었다.

“…그 주변 해역은 특히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

선장도 루카스가 이제 와서 마음을 바꿀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는지, 순순히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줬다.

“위험 부담 없는 항로는, 내가 알기로 하나뿐이오.”

“알겠습니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찰도엔 외부의 배가 이틀 이상 정박할 수 없소. 그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 같으면 날짜를 말해 주시오. 기상이변만 아니라면 기일에 대기하겠소.”

그러나 루카스의 볼일은 사찰도에 있는 게 아니다.

그곳을 경유해 죽음의 섬으로 가는 게 최종 목적이었다.

죽음의 섬은 천상계를 대표하는 칠도 중에서도 거대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그 넓은 땅 대부분이 사람이 살기 힘든, 오염된 대지다.

당연히 세디에 대한 행방을 수소문할 수도 없을 테니, 실상 그녀를 찾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돌아갈 길은 알아서 찾겠습니다.”

자연스레 루카스의 대답은 그리 나올 수밖에 없었다.

“편도라도 대금은 깎아 줄 수 없소.”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루카스는 궁핍하지 않다.

그는 미리 준비해 뒀던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선장은 깐깐한 말투와 달리, 받은 돈주머니를 확인하지도 않고 대충 품에 쑤셔 넣은 다음 말했다.

“식사는 하루 두 끼씩 나오겠지만, 맛은 기대하지 마시오.”

“식량은 챙겨 왔습니다.”

“준비성이 철저하시군.”

선장이 그리 말하며 파이프를 털었다.

“그럼 출항합시다.”

그 순간이었다.

[경고!]

[죽음의 섬은 극히 위험한 장소입니다! 출입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섬을 목표로 한 순간부터 수십, 수백 번이고 들린 목소리다. 경고음이 들릴 때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으나, 큰 틀은 비슷했다.

“…….”

루카스는 귓전을 울리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죽을 수 있다는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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