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8화
“아으, 끄, 하, 윽.”
“꺼, 꺼걱…….”
신자들이 새까만 연기를 토해 내며 전신을 떨었다.
레티프.
뇌존의 오른팔인 절대자가 부린 뇌격에 직격당했으니까.
그런데도 그들의 육체가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레티프의 힘 컨트롤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레티프의 행동에 자비나 동정심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네놈은 누구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번개에 직격당하지 않은 신자 몇몇이 경계 섞인 시선을 보냈다.
레티프가 픽 웃으며 손가락을 죽 그었다.
퍼퍼펑!
그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번개가 ‘세로’로 쳤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번개가 출현한 것이다.
완벽한 직선으로 그어진 전류가 그대로 신자들의 몸을 반으로 찢어발겼다. 신자들은 억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죽었다.
“어……?”
신자 하나가 멍청한 목소리를 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간이 날파리처럼 죽는 광경을 처음 보았다.
게다가 이 죽음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소란과 비명을 동반하지 않는 죽음에서 공포를 느끼기까지 짧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 악마다!”
“도망쳐!”
마치 뒷북이라도 치듯, 신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그 행동들은 소음을 낳았다.
그리고 레티프는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파지직!
레티프의 이마에서 뻗은 푸른 전류가 그들의 전신을 감쌌다.
신자들은 그극거리는 소리를 내며 게거품을 물었다.
이윽고 일대엔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이제야 좀 조용하군.”
레티프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아리드를 보았다.
“안녕.”
아리드는 멍한 얼굴로 레티프를 올려다봤다.
아이러니하게도 방금 벌어진 참상에서 가장 안전했던 건, 여태껏 악의 섞인 폭력으로 고통 받던 아리드였다.
“대체 이게 무슨……?”
“얘기는 조용한 데에서 하는 게 좋으니 주변 청소를 좀 했다. 아니면 장소를 옮기는 게 나았나, 소통자?”
“소통자…….”
생전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레티프는 아리드의 반응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조금 망가졌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뭐. 계속 쓸 것도 아닌데”
“아……?”
뒤이어 몸이 둥실 떠올랐다.
갑작스런 상황에 아리드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건가요?”
“별거 아니야. 네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데리고 가려고.”
“필요한 일……? 그, 그게 어떤 건지부터 설명해 줘야…….”
“그건 괜찮다. 딱히 네가 몰라도 일을 진행하는 덴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
“…….”
순간 아리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에 질식당할 뻔했다.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레티프의 태도는 온화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입가엔 호감 가는 미소까지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아리드는 눈앞의 남자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을 버둥거렸지만, 보이지 않는 밧줄에 대롱대롱 묶인 것처럼 의미 없는 움직임을 낳을 뿐이었다.
‘누, 누가 좀…….’
도와줘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다.
“멈춰라.”
“…….”
레티프가 고개만을 빙글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일남일녀가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늙은 노인과 차가운 표정의 여인이다.
“아…….”
아리드의 시선이 향한 건 노인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하, 할아버지.”
“슬레이 교주.”
반면 레티프는 흥미로운 기색이었다. 그는 내친김에 몸까지 완전히 돌렸다.
“네 종교놀음은 잘 구경했다. 재밌더군.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빠삭하게 꿰고 있어야 그렇게 놀 수 있는 건데…….”
‘…나를 알고 있다.’
슬레이는 그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두 다리를 재생하는 데 남은 힘을 모두 사용했다. 솔직히 말하면 서 있는 것도 힘든 지경이다.
그럼에도 슬레이는 이 자리에 섰다.
그의 시선이 아리드, 하나뿐인 손자에게 향했다.
…광휘와 함께 태어난 기적의 아이.
지금은, 그 아이와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슬레이의 시선이 다시금 레티프에게 향했다.
“그 아이를 데려가서 무얼 하려는 거냐?”
“네가 알아도 될 만한 일이 아니야.”
“…그럼 다른 걸 묻겠다. 그 ‘일’이 끝난 다음에, 아리드는 어떻게 되나?”
그건 슬레이의 연륜이 빚어낸 의문이었다.
레티프는 아마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슬레이를 비롯한 대다수의 인간은,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절대자.’
이 남자 또한 절대자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전신이 덜덜 떨린다.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슬레이는 그러한 욕구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억눌렀다.
지금만큼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역할을 다한 도구엔 여러 가지 처분법이 있지.”
레티프가 히죽 웃으며 아리드를 가리켰다.
“그래서 내 앞에 선 이유가 뭐지? 중요한 도구가 망가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게 되셨나?”
그 발언에 아리드의 눈빛이 흐릿해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떨군다.
그 모습을 보고 슬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여태까지 아리드의 저런 얼굴을 보지 못했던 거지.
‘아니.’
보았다.
몇 번이고, 몇 십 번이고, 몇 백 번이고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못 본 체하고, 외면하고, 무시한 건 바로 슬레이였다.
“아니야.”
아리드는 도구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아이는 나의 손자다.”
그 이외의 이유는 필요 없었다.
이토록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억울한 폭력에 노출되었음에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아리드를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슬레이는 진물이 줄줄 흐르는 발을 내디디며 레티프를 노려봤다.
“내가 네 앞에 선 건 손자를 지키기 위해서다.”
“…….”
아리드는 말문을 잃은 얼굴로 슬레이를 보았다.
슬레이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물어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고, 사과하고 싶은 일도 산더미다.
하지만, 아마도.
“혈육의 정이라. 사뭇 감동적인 발언이구나.”
슬레이가 바라는 감동적인 재회는 이루어질 수 없겠지.
“하지만 나는 내 앞에 선 이유를 물었는데. 이해력이 부족한 듯하니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 주지.”
파지직—
그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레티프가 손가락을 들었다.
“밟아 터뜨려 죽이기도 귀찮은 필멸자 나부랭이가, 왜 내 앞을 막아선 거냐?”
* * *
절대자의 대다수가 희로애락 같은 원초적인 감정에 무뎌져 있다.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바싹 마른 사막처럼 감흥이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감정 자체가 마모된 거라 할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삶은 끝나지 않는 여행이고, 기억이란 창 바깥에 아른거리는 풍경이다. 처음엔 경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풍경도 수억 번 감상하다 보면 질리고,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노디에소프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한 일에는 가슴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이 시간을 천천히 만끽하고 있었다.
절대자인 그에게 있어, 이 정도 ‘즐거움’을 주는 사건은 결코 흔치 않았으니까.
콰직!
세디의 팔이 뭉개졌다. 그에 노디에소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건 아끼던 장난감에 흠집이 났을 때 가질 법한 감정이었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뤘어야 됐는데.
반면, 등골을 훑는 비열한 쾌감 또한 확실히 느껴졌다.
세디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녀의 사지 중 이제 멀쩡한 건 왼발밖에 없다. 오른발은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고, 오른팔은 축 늘어져 있었다.
필멸자가 되었으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망가진 사지를 되돌릴 수 없다.
즉, 세디는 불구가 되었다.
전前 절대자.
한때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서 있던 이가 격락하여 필멸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
‘추하고, 역겹군.’
그리고 그런 세디를, 한때의 절대자를 짓밟으며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 노디에소프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비명이라도 질러 보는 게 어떤가? 혹시 모르지. 그걸 보면 내 마음에 일말의 자비가 싹틀지도.”
“…꺼져.”
세디가 숨을 몰아쉬며 차갑게 대답했다. 그 반응에 노디에소프가 웃었다.
진심으로 비명을 바란 건 아니다. 오히려 정말로 그랬다면 흥이 팍 식어 버렸을 것이다.
노디에소프는 죽기 직전까지 세디가 저런 태도를 고수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출렁—
허공에 물방울 하나가 맺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확인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물방울.
그걸 바라보는 세디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하아, 하악…….”
자신의 숨소리 이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전신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 작은 물방울 하나가, 수천 개의 날붙이보다 훨씬 위험한 무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핏—
그 순간 물방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디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비틀었다. 사라졌던 물방울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아릿한 고통과 함께 목덜미가 뜨뜻해졌다. 피가 쏟아진 거겠지.
그러고 보니 목 근처엔 급소가 있다. 피하지 못했다면 방금 공격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아니지.’
일부러 급소를 맞추지 않은 것이다.
놈은 세디가 반응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속도로 공격했다.
‘개 같은 자식.’
세디의 입가가 비틀렸다.
갖고 놀고 있다.
그럴 마음만 먹었다면 세디는 진작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것이다.
‘방심放心.’
약자가 강자를 이길 때 가장 큰 변수를 낳는 요소.
그러나 힘의 차이가 이토록 극심하다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
갓난아기를 앞에 두고 호랑이가 낮잠을 잔들 변하는 건 없으니까.
‘그런데 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있지?’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 건가?
현실적으로 세디를 도와서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존재는 루카스밖에 없다. 하지만 그 또한 지금 남을 도울 만한 여유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게 아니야.’
세디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녀가 이토록 처절하게, 노디에소프의 혐오와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발버둥 치는 이유는 훨씬 단순했다.
죽기 싫으니까.
살고 싶으니까.
쿠직!
몸을 지탱하던 왼발마저 뭉개졌다. 아무리 세디라도 두 다리 없이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비척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후우.”
노디에소프가 고개를 저었다.
즐거운 시간이지만 슬슬 끝을 선고할 때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힐끔 옆을 본다.
오공작 시파크나.
굼벵이의 모습을 한 괴물은 촉수로 기절한 크란을 속박한 채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노디에소프가 세디를 끝장내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즐기게 해 줘서 고맙다, 세디 글라스턴.”
우웅.
노디에소프의 손에 외력이 맺혔다.
대면함과 동시에 입에 담은 말은 진심이다.
그는 한때의 절대자가 필멸자가 되어 윤회의 고리에 사로잡히는 것보단, 차라리 영멸하는 편이 낫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노디에소프라면 가능하다. 절대자의 외력이라면, 혼 하나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멸시키는 것쯤 일도 아니다.
그때 세디가 중얼거렸다.
“…렸어.”
“뭐라고?”
“내 이름 틀렸다고.”
세디가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세디 트로우맨이다.”
노디에소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또한 트로우맨이 누구의 성인지는 알고 있었다.
“시시하군.”
그가 진심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포옹—
뒤이어 허공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컸고, 물빛이 아닌 피를 머금은 듯한 흉험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걸 쏘아내기만 하면 끝이다.
끝인데…….
그러지 못했다.
“…….”
노디에소프의 움직임이 멈췄다. 허공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스르르 사라진다.
세디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조금이긴 하지만 확실히 굳었다는 것을.
뒤이어 노디에소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세디도 홀린 듯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시선에 끝에 있는 존재를 보는 순간.
“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리고 말았다.
“하하.”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째서 이곳에?
악마왕과 싸우고 있지 않았나?
그쪽 일은 잘 마무리한 건가?
수많은 의문을 뒤로하고, 그녀는 우선 포근한 안심감을 느끼고 말았다.
지금만큼은 전신을 찌르는 듯한 고통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었구나.
‘꼴사납고, 기분 나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입가가 씰룩이고, 가슴이 간질거리고, 묘하게 쑥스러웠지만.
그보다 훨씬 기뻤다.
“…진짜, 더럽게 늦었네.”
세디가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니.
“죽을 뻔했잖아, 아버지.”
루카스를 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