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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58화 (279/857)

외전 58화

그건 아무런 기교도 없는 주먹질이었다. 검면으로 받아낸다. 이종학의 육체라면 코끼리의 돌진이라고 해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먹에 실린 힘은 재해 그 자체였다.

카앙!

충격을 이기지 못한 이종학의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쓰러지지 않고,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단 것만으로 스스로가 대견해질 지경이다.

이종학은 삐걱거리는 무릎의 고통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지면을 박찼다. 그의 몸이 굴라드를 향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떠올린다.

배웠던 검법들을 하나씩, 하나씩 떠올렸다.

매화검법梅花劍法, 복마검법伏魔劍法, 구궁검법九宮劍法, 난파풍검법亂破風劍法, 태청검법太淸劍法, 칠십이파검법七十二波劍法,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등.

유명한 검법만이 아닌, 조금이라도 장점이 있는 검법들은 모조리 머릿속에 박아 두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완전히 손에 익을 때까지 휘둘렀다. 하루에 세 시간도 자지 않고, 식사마저 거르고 검을 휘둘렀고, 실전에서 목숨을 걸고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검법들 중에서도 가장 몸에 익은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물론 전혀 다른 문파의 초식들이다. 과거 대륙을 호령했던 고수들이 수백 년 동안 다듬은 검법들.

‘이미 완성된’ 검법.

그걸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는 것.

어떤 천재라도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래서 이종학은 재결합하지 않고 재해석했다. 전혀 다른 문파의 검법에서도 공통점과 동일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들을 연계한다면 훌륭한 연속기로 승화할 수 있단 것 또한.

물론 그 사실을 안 게 이종학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무인들 또한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도 한 번도 그런 시도가 없었다.

당시의 무인들이 스스로의 출신 문파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다른 근본의 무술을 자신들이 배운 무술에 접목시킨다. 그건 여태껏 쌓아 온 무업과 선조에 대한 치명적인 모욕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시대가 아예 달라졌다.

출신 문파에 대한 자부심, 갈고 닦은 무공에 대한 자신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생존.

이종학은 머리가 하얗게 셀 만큼 고민하며, 검법들을 다듬었다.

그는 무술의 근원에 대해 떠올렸다. 기본적으로 모든 무술은 대인對人에 기초하고 있다. 가령 상대가 네발 달린 짐승이라면, 웬만큼 뛰어난 검법으로도 제대로 된 대처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근육의 밀도, 장기의 위치, 골격, 크기, 습성까지 모두 전혀 다른 생물이니까.

그리고 이종학의 적은 짐승 따위는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끔찍한 존재였다.

악마.

태생적으로 인간보다 강한 존재다. 그들과의 싸움에 대적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냥해야 된다. 사냥은 말하자면 편법의 극치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으니 도구를 사용하고, 비겁함을 무릅쓰며, 상대의 장점을 봉하고, 이쪽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린다.

검법을 사냥의 기술로 다듬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검법,

이종학은 그 검법을 멸악신검滅惡神劍이라고 불렀다.

멸악신검을 만든 이후로, 그는 인룡이라 불리며 동아시아 지역의 영웅이 되었다.

승승장구가 이어졌다. 그의 멸악신검은 귀족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노력이 보상받은 기분이 들엇다.

상해에서 있었던 공작 토벌전이 있기 전까진 그랬다.

카앙!

멸악신검이 막힌다.

제왕검법과 천하삼십육검을 결합해서 만든 절초, 악즉참惡卽斬이 이토록 쉽게.

‘멸악신검으로는.’

인간이 만든 검법으로는 닿지 않는단 말인가? 여태껏 했던 노력도 아무런 의미 없이, 닿지 못할 허상을 쫓고 있었을 뿐이었나?

‘인간의 힘엔 한계가 있다.’

노디에소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가 보여 준 신위神威, 그리고 제안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아시아 사냥꾼들 대부분이 그에게 넘어간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종학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토록 달콤한 과실에, 정말로 아무런 대가가 없을까.

논리 따위는 없다. 다만 여태껏 이종학이 경험한, 살아온 삶이 강하게 말했다.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을.

“…….”

고전하고 있는 이종학과 다른 이유로, 굴라드는 지금 상황에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싸움에 진작 질렸다.

인간과 노는 것.

악마에겐 좋은 유희거리 중 하나다. 게다가 상대는 인간 중에서도 특상등품에 분류해야 될 존재가 아닌가. 다른 장난감보다는 단단해서 노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 질리게 되었다.

그때부턴 이 놀이를 끝내려고 했다.

그러기 힘들었다. 뒤쪽에 있는 여자 때문이다.

‘마법사인가.’

아마 그렇겠지. 마나가 요동치는 걸 보니.

굴라드는 마법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다. 인간이 가진 모든 기술을 단순 수작질로 폄하하며, 털끝만큼의 관심도 갖지 않는 다른 악마들과는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그런 굴라드기에 때때로 자신의 몸을 굳게 만드는 계집의 마법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마법의 방해가 없었다면 진작 이종학을 생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굴라드는 조안나의 뒤에 서 있는 존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프레를 도륙 낸 두 명의 악마. 대부분의 인간은 저 둘을 자신의 부하로 여기고 있다. 의도한 것이긴 했지만,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는 건 시시한 일이다.

명령하지 않는다. 손짓도 필요 없다. 그저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생각은 그들에게 닿는다.

탓.

두 명의 악마가 조안나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녀는 아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을 테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기껏해야 마법사.

“아……!”

조안나가 아연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콰직!

하늘에서 떨어진 건 젊은 남자였다.

사막 바람에 대비한 두터운 망토로 몸을 둘러싸고 있다. 굴라드는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돌연 허공에 출현한 남자의 얼굴엔 당황이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순식간에 주변을 살펴보더니, 자신이 떨어질 곳을 확인한다.

그 이후의 움직임은 경탄이 나올 정도였다. 공중에서 빙글 한 번 몸을 돌며 쌍칼을 꺼내더니, 착지와 동시에 악마 둘의 목을 꿰뚫어 버렸다.

“크륵…….”

“켁!”

남자는 성대가 꿰뚫려 발버둥 치는 악마들에게서 검을 뽑았다. 그런 다음 왼쪽에 있는 놈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빠악!

악마의 머리가 뿌리째 뽑혀 골목을 굴렀다. 뜯겨 나간 목에서 울컥울컥 피가 샘솟았다. 얼마나 출혈량이 많은지 약간 떨어져 있던 조안나의 얼굴까지 튈 정도였다.

그녀는 새빨간 선혈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어딘가 꿈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크아아!”

남은 악마가 벌떡 일어나더니 흉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남자는 그 패도적인 기세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를 좁혔다.

이어지는 깔끔한 격투기, 군더더기 없는 어퍼컷이 악마의 성대를 꿰뚫어 버릴 듯 가격한다. 이미 바람구멍이 뚫린 목울대에 다시 한 번 타격이 들어간 것이다.

악마가 괴성을 지르며 비척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남자가 잠시 눈가를 좁혔다. 그는 자신의 주먹을 슬쩍 내려다보더니, 곧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타앙!

딱 한 발.

탄알이 이마에 명중했다. 저 정도 악마의 살갗과 두개골을 고작 권총 탄알로 뚫어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쑤시개로 바위를 찌르는 것과 같겠지.

콰직!

그런데도 탄알은 무리 없이 두개골을 부수고 뇌까지 헤집은 다음, 뒤통수로 빠져나왔다.

남자는 허리춤에 있는 건 숄더에 권총을 넣었다. 서부극 건맨 부럽지 않은 동작이다.

“…….”

잠시 침묵이 가라앉았다. 남자의 갑작스런 등장과 파격적인 무위에 모두 말문을 잃었다.

남자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바로 앞에 있는 조안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봐.”

“네, 네?”

“이 도시, 징가인가?”

“그런, 데요.”

“…….”

그러자 남자의 눈빛에 불신의 기색이 스쳤다.

“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을 텐데…….”

불쾌한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 표정은 자존심에 상처가 난 야수 같았다.

조안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놀라서 알아차리는 게 늦었는데, 그녀는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이곳에 오기 전에 그의 사진을 수도 없이 보았다. 심지어 그 사진은 아직도 그녀의 품 안에 있었다.

그녀가 아프리카까지 온 이유.

“삼마엽 크란…….”

크란은 대답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굴라드와 이종학이 보였다.

“귀찮은 놈이 왔군.”

굴라드는 그리 중얼거리며 이종학을 내려다봤다.

“네놈과 협공하면 귀찮아지겠어.”

“……!?”

콰앙!

그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이종학의 옆면을 후려쳤다. 이종학은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피를 흩뿌리며 날아갔다. 그의 몸뚱이는 건물 두 개를 부순 다음에야 멈췄다.

“쿨럭!”

이종학이 핏덩이를 울컥 쏟으며, 자신을 후려친 그림자를 보았다.

그건 굴라드의 어깨 언저리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날개였다.

“공작 토벌전이라도 하고 있던 건가?”

크란이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조안나가 말끝을 흐렸다.

“그, 그게…….”

“설마 이게 너희 둘이서 싸우고 있던 건 아니겠지.”

“두 명 더 있었는데 죽었어요.”

“그래도 네 명인데? 간덩이가 부었군.”

“휘말린 거예요. 원래 토벌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어찌 됐든 여기 오공작이 있단 건 알고 있었을 텐데?”

“그건…….”

크란이 냉소적으로 코웃음 쳤다.

“협회 녀석들 중에 오공작을 토벌할 놈은 없어. 닐, 그 개자식이 직접 나선다면 모를까.”

“…협회장님을 아세요?”

이 질문에 크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오공작 굴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둘 다 운이 좋았군.”

“네?”

“지금 놈은 원래 힘의 반도 못 쓰는 상태야. 네놈들과 놀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조안나는 그 말에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반도 못 쓰는 상태라고? 인룡 이종학을 갖고 놀고, 그녀가 사용한 비장의 마법으로 콤마 몇 초밖에 묶어 두지 못한 저게?

조안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크란의 갑작스런 등장 이후로 한심한 모습만을 계속 보였다. 이 이상 추태를 보일 수는 없다.

“어떻게 그걸 아나요?”

그녀의 한결 차분해진 물음에, 크란은 방금 전 죽인 악마들의 시체를 발로 툭 건드렸다.

“이놈들이 굴라드다.”

“…네?”

“분열할 수 있는 거겠지. 응용력이 무궁무진한 능력이지만 아마 분열을 거듭할수록 본신의 힘은 약화되겠지.”

“아……!”

그렇다면 평소에 ‘대역’으로 내세웠던 굴라드 또한 그의 분신일 확률이 높았다.

“하하하.”

굴라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크란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권능에 대해 잘 알고 있군. 누구한테 들었지?”

“이집트에 있던 겁쟁이.”

그 말엔 굴라드도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이 얼음을 덧씌운 것처럼 차가워졌다.

이집트에 있던 공작이 죽었다는 사실은 그 또한 보고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겁도 없이 나를 죽이러 왔다는 건가. 알고 있나? 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 대륙 전체를 이 잡듯 뒤져 네놈을 찾으려고 했다. 내 수고를 덜어 줘서 고맙군.”

“나는 사냥꾼이다.”

크란이 맹수의 으르렁거림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냥할 자신이 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네놈은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

“큭큭. 그래. 상대가 삼마엽이라면…….”

화악!

굴라드의 날개가 촥 펼쳐졌다. 활짝 펼쳐진 그의 양 날개엔 박쥐의 그것처럼 혐오스러운 피막이 있었고, 건물보다 거대했다.

“돌아와라.”

오오오—

그 순간 도시 곳곳에 있던 분신들이 굴라드에게 날아들었다. 이종학은 그 모습을 아연히 바라봤다. 굴라드의 분신들은 거대한 박쥐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양다리엔 무언가 단단히 잡힌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시체.’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그게 어떤 이들의 시체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회색 태양의 일원들이다.

터덕 터더덕…….

굴라드는 분신들을 받아들였다. 분신들은 마치 찰흙처럼 그의 몸에 달라붙더니 그대로 흡수되었다. 그에 따라 위압감도 점점 커져 갔고, 조안나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으윽…….”

바로 방금 마음을 다잡았는데 다시 꺾일 것 같다. 입술을 콱 깨물며 억지로 평정을 유지한다.

이종학이 바라보고 있는 건 점점 쌓이는 시체의 산이었다.

애초에 놈들은 회색 태양의 위치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곧바로 움직이지 않은 건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죽이기 위해서였겠지.

“큭…….”

무력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종학은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비뼈가 부서져 격통이 심하다. 숨을 쉬기도 힘들다. 그래도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팟.

그리고 마침내 굴라드가 모든 분신체를 받아들였다.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악기가 흘러나왔다. 숨을 쉬기 힘들어질 정도로 막대한 기.

“…….”

그러나 막상 굴라드의 표정은 묘했다. 그는 무언가 계획이 어긋난 사람처럼 보였다.

“뭐냐?”

크란이 의아하게 묻자 굴라드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설마 그게 네 진짜 힘은 아니겠지?”

“…….”

물론 아니다.

분신이 하나 덜 돌아왔다. 무려 3할의 힘을 가져갔던 분신이었는데.

‘…엘리저 키파토시.’

회색 태양의 보스.

3할의 힘을 가진 분신은 분명 놈을 죽이러 갔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넉넉할 정도였다. 굴라드가 가진 3할의 힘은 웬만한 공작에 필적할 정도니까.

그때였다.

하늘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그 모습을 본 조안나가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거렸다.

“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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