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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44화 (265/857)

외전 44화

무법지대가 된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나마 치안이 유지되고 있는 지역이 서아프리카였다. 사냥꾼들이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거나, 조기 진압이 수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악마들이 그 인근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카스와 조안나가 향한 곳은 과거 콩고 공화국이라고 불렸던 땅이다.

사냥꾼 협회 콩고 지부는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아지트라고 할 수 있는 건물도 다 쓰러져 가는 인상의 빌딩이었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지 무척이나 더러웠다.

먼지 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주변 풍경은 더욱 그랬다. 마치 시체들이 사는 도시처럼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엔 우울함과 체념만이 보였다.

방금까지 미국에 있다 와서인지 그들의 우울함이 피부로 체감되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온 듯한 느낌이다.

“…….”

조안나는 멍한 얼굴로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이다. 루카스가 그녀의 반응에 의아해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미국에서 오신 사냥꾼들이 맞소?”

얼굴에 빨간색 문신을 한 흑인 남자였는데, 근골을 보니 무인이나 검사인 듯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조안나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미국에서 온 조안나 골드버그라고 해요.”

“옆의 분은?”

“프레이 블레이크입니다.”

“흠……?”

태도를 보니 루카스에 대해선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다시 조안나에게 시선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직시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콩고 지부에 온 걸 환영하오. 난 이곳 지부장인 데스틴이라고 하오. 얘기는 들었소. 비록 미약하지만, 힘닿는 데까진 지원해 주겠소.”

“고마워요.”

조안나는 충격에서 헤어 나왔는지 특유의 도도한 얼굴로 대답했다.

“서서 얘기하기 좀 그렇군. 따라오시오.”

그리 말하고 데스틴은 등을 돌린 채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외관처럼 무뚝뚝한 성격인 듯하다.

조안나는 그 뒤를 따르며 주변을 힐끗힐끗 둘러봤다.

‘…이 정도일 줄이야.’

다른 지역에 파견 임무를 맡은 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비교적 치안이 유지되고 있는 깨끗한 도시만 들렀고 악마가 가장 많다는 유럽과 아프리카엔 가지 않았다.

최전방 중에서도 최전방인 도시에 온 건 처음이었다.

소문으로 들었고 자료로도 봤다. 그러나 역시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데스틴의 뒤를 따르며 콩고 지부 소속의 사냥꾼 몇과 마주쳤다. 그들은 데스틴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지나갔다. 외부인인 조안나나 루카스에겐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마주친 사냥꾼의 종류는 둘이었다. 전신에서 날 선 칼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지거나, 혹은 지독하게 무기력해 보이거나. 그들의 상반된 태도에 고심하던 찰나, 지부장실에 도착했다.

미국 지부의 화장실보다 지저분하고, 조안나의 집에 있는 방 하나보다 작은 곳이었다.

“대충 앉으시오. 미안하지만 접대해 줄 건 없소.”

“괘,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군.”

데스틴은 솜이 삐져나온 쇼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어둑한 조명이 피로에 찌든 얼굴을 밝혀 주었다.

“…이집트에 갈 생각이라고 들었소만.”

지금 삼마엽 크란이 머물고 있는 장소가 이집트 근방이다. 아마 당분간은 거기 있을 것이다. 공작을 사냥하면서 입은 피해를 수복하고 재정비 기간을 가져야 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그 기간이 끝나면 망설임 없이 다른 지역으로 떠날 것이다. 여태까지의 성향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새로운 사냥감을 찾기 위해.

그러니 지체할 시간은 없다.

“대충 사정은 들었소. 시간 싸움인 것 같은데 이동 수단에 대해선 생각해 봤소?”

“아뇨.”

이집트는 그들의 현재 위치인 콩고 공화국에서 약 3,000km가량 떨어져 있다.

걸어서 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마법을 쓰면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엔 감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악마가 존재하고, 루카스는 세디와의 협상 때문에 악마를 죽이지 못한다.

괜히 고위 마법을 사용했다가 상위 귀족이 냄새라도 맡고 왔다간 일이 귀찮아질 것이다.

그러니 되도록 이집트까진 마법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갈 생각이다. 때로는 돌아가는 게 가장 지름길인 경우가 있다.

물론 시간은 제법 걸릴 것이다. 당연하지만 지금 아프리카 대륙엔 그 어떤 대중교통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데스틴은 안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더니 불을 붙이며 말했다.

“걸어가면 한세월일 것이오. 개인적으로는 군용 트럭을 추천하고 싶군. 닦이지 않은 길이나 평지에서 이동하기 그나마 수월하고, 적재함을 이용하면 휘발유나 식량도 보관할 수 있소. 잠자리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테고.”

“좋은 생각이군요.”

“구, 군용 트럭…….”

합리적인 제안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반면, 조안나의 표정은 핼쑥해졌다. 모양 좋게 빠진 리무진과 고급 승용차밖에 타 본 적 없는 그녀에게 군용 트럭이란 탑승물은 미지의 세계였다.

“물론 그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오.”

데스틴이 담배 연기를 토해 냈다.

“고위 악마는 북아프리카에 진입할 때까진 마주칠 일이 거의 없겠지만 마수 따위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널려 있지. 뭐, 놈들 전투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소. 떼 지어 몰려다니는 것만 빼면 위험할 건 없지. 문제는 다른 놈들이오.”

“회색 태양.”

루카스는 조안나에게 들었던 조직의 이름을 말했다. 데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 인근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만 조금만 일대를 벗어나도 그들의 영역이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군용 트럭이 지나가는 꼴을 결코 그냥 구경만 하지 않을 것이다.

데스틴의 시선이 조안나에게 향했다.

“게다가 당신 정도의 미모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게 뻔하지.”

“으음…….”

조안나가 미간을 좁혔다. 미모에 대한 칭찬. 평소라면 반색했을 말이지만, 상대가 회색 태양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사로잡히기라도 했다간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꼴을 당할 게 분명했다.

“최대한 안전한 루트를 추천해 줄 수는 있지만 아예 안 부딪치고 이집트까지 가진 못할 것이오. 대비책을 생각해 두시오.”

“…….”

“군용 트럭은 내일 아침까지 준비해 두겠소. 식량과 식수, 휘발유, 취침 도구, 조리 도구 및 생필품도 최대한 넉넉히 챙겨 드리겠소. 그 외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주시오.”

* * *

콩고 공화국의 영토는 과거 적토赤土가 관통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흑토黑土, 즉 죽은 땅이 되었다. 거기에 한밤중인 걸 감안해도 날씨가 으슬으슬하다. 하늘엔 먹구름이 껴 있고 고약한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안 자요?”

뒤에서 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목소리의 주인은 조안나다. 루카스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아랫입술을 삐죽이며 한 번 더 묻는다.

“여기서 뭐 해요? 흙바람 맞는 게 취미는 아닐 거고.”

“그냥 있습니다.”

“흐음. 당신 식사도 안 했죠?”

“네.”

“…뭐. 그건 잘 생각했어요. 여기 밥 진짜 최악이더라.”

그녀는 밥을 먹고 온 듯했다. 표정과 말투를 보니 안 먹느니만 못했다는 것만은 알겠다.

조안나는 잠시 이쪽을 바라보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쭈그려 앉았다. 루카스는 그녀가 자신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별것 아닌 화젯거리로 말문을 꺼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조안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그건 루카스로서도 의외의 서두였다.

“저기요. 니나 본부장님은 괜찮아요?”

루카스가 조안나를 보았다. 그녀는 샐쭉한 기색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녀를 압니까?”

“조금요.”

“…죽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순 없어요?”

조안나가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에도 루카스가 대답하지 않자 한숨을 폭 쉰다.

“구린 생각으로 묻는 게 아니라요. 그냥 걱정돼서 물은 거거든요.”

“당신이 그녀를 왜 걱정합니까?”

“그럼 같은 사냥꾼인데 걱정도 못 해요?”

“…….”

“…에잇. 진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조안나가 홱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니나 본부장님을 동경해서 그래요. 내 영웅이니까.”

“아는 사입니까?”

“딱히 안면이 있는 건 아니구요. 뭐, 몇 번 만나기는 했는데 그분께선 절 기억 못 할 거예요. 그냥 제가 일방적으로 존경하는 거라.”

“…….”

“여자 사냥꾼들한테 특히 인기 많은 분들 중 하나거든요. 멋지잖아요. 철혈의 본부장 니나 레드니코바. 최전선에서 사냥꾼을 지휘하는 인류의 방패. 팬클럽까지 있어요.”

전 1급 회원이고. 조안나가 약간 으스대는 말투로 덧붙였다.

팬클럽이라니. 웃지 못할 농담에 루카스가 약간 황망한 시선을 보냈는데, 조안나의 태도는 여전했다. 진짜인 듯하다.

“많이 위중합니다.”

“아…….”

“그래도 극복할 거라 믿고 있죠. 저를 비롯하여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니나는 지금 태어나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육체적 상처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인간은 마음이 망가졌을 때 폐인이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니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고통을 양분 삼아 더 멋진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루카스는 그녀를 믿는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힘들겠지.’

루카스 또한 니나의 재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하고 있으며, 힘닿는 데까진 도움을 줄 요량이다. 지금 당장은 삼마엽에 대한 단서를 찾는 게 우선이지만 이 일이 끝나는 대로 곧바로.

조안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 다시 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프리카엔 와 본 적 있어요?”

“네.”

“다른 곳도 이런 느낌이에요?”

아직 용무가 안 끝났나. 루카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조안나의 태도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낯선 장소에 같이 왔다는 사실에 동질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걸까.

루카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말한 ‘이런 느낌’이 어떤 느낌을 말하는 건지는 주변 풍경을 한 번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절망, 어두움, 피폐, 굶주림.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이 구현화한 듯한 도시였다.

“아니오.”

“그럼…….”

“여기보다 더 심각할 겁니다.”

“아.”

아프리카가 아니라 유럽만 해도 그렇다. 악마왕이 사는 프랑스 인근은 악마 이외의 생명체는 버틸 수도 없을 만큼 독을 품은 땅이 되었고 크란이 위치한 북아프리카엔 고위 악마들이 득실거린다.

그나마 협회와 사냥꾼이 있는 이곳과 달리, 그곳에 방치된 사람들은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마 조안나는 악마들이 활개 치는 최전선까지 파견 임무를 나간 적이 없는 듯하다.

“미국으로 오면 되잖아요.”

그 말에 루카스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국은 오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아요. 왜 굳이 위험지대에서 살아가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

대답은 루카스가 하지 않았다. 그녀의 뒤엔 데스틴이 서 있었다.

“무슨 말이죠?”

“저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말이오. 그럴 수만 있다면 진작 미국으로 갔겠지.”

“그러면 되잖아요.”

“미국이 받아들이는 건 오직 사냥꾼뿐이오.”

“네?”

“미국은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민간인은 수용하지 않소.”

그 말에 조안나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 그럴 리가요. 우리가 매년 수용하는 민간인들은 통계적으로 최소 수천 명은 된다고 알고 있는데…….”

“사냥꾼의 가족이나 지인 한정이겠지.”

데스틴은 입술을 비틀며, 역겹다는 듯 말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아무런 인맥도 없는 인간들은 미국 땅에 발을 디딜 수조차 없소. 그래서 우리는 이 빌어먹을 땅을 벗어날 수 없는 거요.”

그들이 떠난다면 남겨진 민간인들은 죄다 죽을 테니까.

악마나, 혹은 같은 인간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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