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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 외전-5화 (226/857)

외전 5화

민하린은 루탄의 소개를 들을수록 혐오감이 커지는 걸 느꼈다. 마치 출하 직전의 고깃덩어리가 된 듯한 끔찍한 기분이다.

그와 별개로 심장이 점점 옥죄는 느낌과 함께 식은땀이 흘렸다.

긴장하고 있는 건가?

‘당연한 일이지.’

그 순간 커튼이 걷히고, 강철 우리가 위로 치솟았다.

악마가 좋아할 법한 화려한 연출이다.

“오오…….”

“상등품이군.”

“S급이 분명해.”

민하린의 모습이 드러나자 귀족들이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민하린은 속이 메스꺼워졌다.

“욱…….”

장내를 빼곡히 채운 악마 귀족들. 그중엔 백작 이상의, 소위 고위 귀족이라 불리는 자들도 많았다. 하나만 나타나도 일대 지형을 죽음으로 물들여 버리는 괴물들이 한두 명도, 수십 명도 아닌 백여 명에 가깝게 있다.

그들이 은연중에 내뿜는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인간에겐 독과 같은 공기를 만들어 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 독기를 살짝 들이켜는 것만으로 피를 토할지도 모른다.

민하린도 목줄로 인해 내성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마주한 것뿐인데 안 그래도 초췌한 안색이 더욱 핼쑥해졌다.

오금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을 뻔했는데, 갑자기 몸에 힘이 들어갔다.

키릭.

“윽…….”

목덜미에 따끔한 기분이 든다. 뒤이어 전신이 빳빳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마취라도 된 것처럼 감각이 희미해진다.

목줄에 있는 기능.

원리는 모르지만, 지금 그녀는 스스로의 육체에 대한 제어권을 상실했다.

육체가 멋대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민하린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마치 스스로를 팔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은 자세다. 이런 굴욕적이고 끔찍한 호객 행위가 달리 있을까.

“화이트 플라워.”

루탄이 그리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인간 노예에 관심이 많은 고객님들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겁니다. 자작 셋과 남작 하나, 그 외에도 수백 명의 동족을 살해한 이 사냥꾼의 활약을! 놀랍게도 상품의 나이는 20대 초반입니다.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좀 더 가꾸고, 오래 유지시킬 수 있겠지요.”

‘미쳤어.’

민하린은 입술을 깨물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완전히 미쳤다.

루탄의 말대로 민하린은 악마 자작 셋과 남작 하나, 그 외에도 악마 수백 명을 사냥했다.

그건 인간들 입장에선 칭송받아야 마땅한 일이 맞다. 하지만 이들에겐 아니지 않나.

같은 동족이 아닌가? 이들에게 민하린은 대량학살마나 살인범 취급을 받으며 돌팔매를 맞아야 된다.

아니었다.

귀족들의 눈은 역겨운 탐욕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민하린이 동족 수백 명을 죽였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있어 상품의 가치를 올려 주는 업적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저급한 수집욕을 만족시킬 부연 설명이었다.

어떻게 지성을 가진 생물이 이토록 추악할 수 있는 거지?

‘…악마.’

왜 이들이 그리 불리는지 알겠다.

이들은 지성을 가졌으며, 의복을 입으며, 때에 따라 집단을 이루고, 거래할 수 있으며, 고풍스러운 말투를 구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과연 지성 종족이라 부를 수 있는가?

민하린의 눈엔 본능과 쾌락으로 만들어진 추악한 괴물이 고등한 지능을 가진 척 흉내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몇몇 귀족들이 손을 들었고, 각 라인에 배치된 악마들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귀족들은 낮은 목소리로 가격을 말했다.

악마들이 들은 가격은 곧 루탄에게 전달되었다.

“…….”

루탄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퍼스트 웨이브부터 뜨거운 반응이군요. 하하. 역시 대단한 안목들이십니다.”

그 목소리엔 잔잔한 열기가 묻어 있었다. 이쯤 되니 민하린의 모습이 황금 덩어리로 보일 정도였다.

아니. 귀금속 따위는 악마에게 큰 가치가 없다. 민하린은 그 자체만으로 루탄에게 있어 하나뿐인 보물이다.

“가장 높은 책정가는 10만. 책정인은 산드로 공작님이십니다.”

장내가 작게 술렁였다.

민하린의 가치는 이곳에 있는 귀족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퍼스트 웨이브부터 10만이라는 거액이 나올 줄은 몰랐다.

높은 가치를 가진 상품일수록 웨이브는 늘어난다.

민하린 정도의 상품이라면 퍼스트, 세컨드에 이은 써드 웨이브까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웨이브로 넘어갈 때마다 일전에 매긴 책정가보다 1.5배는 높은 가격을 매겨야 한다.

즉, 바로 다음 있을 세컨드 웨이브에서 최소 15만이라는 금액을 제시해야 된다는 뜻이다.

“으음.”

“이건 안 되겠군.”

산드로 공작의 자금력을 알고 있는 몇몇 귀족은 침음과 함께 민하린에 대해 단념했다. 그는 체스터 상회 최대 고객 중 하나였으며, 마음에 든 상품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수집욕과 집착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할 만하다고 판단한 몇몇 귀족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듯했다.

그때였다.

“옆에 있는 건 다음 상품이오?”

귀족이 가리킨 건 루카스였다.

루탄은 힐끗 금발의 남자에게 시선을 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오. 덤입니다.”

“덤이라……?”

“정신이 망가진 상품입니다. 그 이외엔 멀쩡하지요. 보다시피 얼굴도 제법 괜찮은 편이고, 의외로 몸뚱이는 튼튼하더군요. 정 쓸모가 없다면 실험용으로 사용하셔도 무방합니다. 물론, 굳이 원하지 않으신다면 수령하지 않으셔도 되겠지요.”

“흐음.”

그 말에 산드로도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그를 보는 건 두 번째였다. 그 당시엔 민하린에게 가려져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는데, 찬찬히 뜯어보자 루탄의 말대로 나쁘지 않은 생김새였다.

꾀죄죄하지만 수컷치고는 제법 반반한 얼굴. 제대로 씻기고 관리만 잘 한다면 제법 봐줄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산드로 공작의 주름투성이 얼굴에 아이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세컨드 웨이브를 시작하겠습니다.”

산드로는 손을 들어 악마를 호출했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

책정가를 들은 악마가 몸을 흠칫거렸다. 그가 확인을 원하는 것처럼 산드로를 바라본다. 산드로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들은 책정가는 곧바로 루탄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조명 밖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산드로 공작.’

시간을 끌기 싫다는 건가?

아무튼 상회에게 있어 나쁜 일은 아니었다. 결코.

루탄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가장 높은 책정가는 100만. 책정인은 산드로 공작님입니다.”

그 말에 귀족들이 소란스러워졌다.

“100만이라고……?”

“아무리 네임드 사냥꾼이라지만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산드로 공작의 마음에 제대로 들었나 보군.”

단숨에 액수가 10배나 높아지자, 다른 귀족들도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루탄이 다시 한 번 빙긋 웃었다. 아직 웨이브가 하나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아마 경매를 더 진행해도 시간 낭비일 뿐이다. 산드로가 갑자기 액수를 올린 이유도 그런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서다.

“이번 상품의 주인이 결정된 듯하군요.”

민하린이 고개를 떨궜다. 단념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눈앞까지 들이닥치니 겁이 났다. 산드로 공작의 주름진 얼굴을 보니 자신이 괜한 짓을 벌인 것 같아 후회도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에 대한 역겨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멀쩡한 척, 괜찮은 척, 태연한 척 굴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후회라니?

스스로가 우습고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울분을 꾹 참으며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무엇이 괜찮은지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민하린은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추스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그녀 자신 이외에 누가 위로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이벤트는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고객님께 감사드립니다.”

루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상품의 책정인분들은 각 라인에 배치된 안내인들에게 대금을 치러 주십시오.”

대금.

그 말에 민하린은 작은 의문을 느꼈다.

악마들에게도 화폐라는 개념은 있었으나, 실제로 사용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금은보화에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악마들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나?

“아…….”

민하린은 ‘대금을 치르는’ 광경을 보았고, 말문을 잃었다.

한 귀족이 소매에서 꺼낸, 마치 먹물을 머금은 것처럼 새까만 수정. 민하린은, 사냥꾼인 그녀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영혼 수정.

인간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보석.

아니, 감옥이라고 불러도 좋다. 일단 저곳에 갇힌 영혼은 결코 스스로 탈출할 수 없다. 수정이 깨지거나, 소유자인 악마가 풀어 줄 때까지 영겁의 세월을 고통 속에서 발버둥 쳐야 한다.

민하린은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00만.

산드로가 그녀를 구입할 때 언급했던 숫자다. 단위가 너무 커서 연결시키지 못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왔을 텐데.

금은보화에도 별 감흥을 가지지 않는 게 악마들이다. 그런 존재가 가장 탐내며, 커다란 집착을 보이는 게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많은 혼을 흡수할수록 그들의 격은 높아진다. 작위를 승작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영혼 흡수라고 들었다. 수정은 그 과정을 좀 더 매끄럽게 만들어 줄 도구였다.

이곳에 있는 귀족들은 모두 경매에 참가했다. 다시 말해 모두 영혼 수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 공간에 있는 백여 명의 악마 귀족들.

그들에게 묶여 있는, 죽음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 * *

이벤트의 하이라이트. 루탄은 그렇게 말했다. 다시 말해 경매는 막바지였다.

민하린을 마지막으로 이벤트도 끝났다.

“나와라.”

강철 우리에서 나왔으나, 이제부터 기다리는 건 자유와는 더욱 거리가 먼 생활이다. 차라리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루카스도 그녀의 뒤를 따라 우리에서 나왔다. 그는 여전히 긴장감 없는 흐리멍덩한 얼굴이었다.

“따라와라.”

그 말이 전부였다. 강제로 이끄는 것도 아니다. 손목과 발목엔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지만, 조금 무리한다면 도망치는 데 무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악마는 도망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처럼 굴었다.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고.’

애초에 이곳은 악마들의 영토 한복판이니. 거기에 목줄을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지구 반대쪽으로 도망쳐도 의미가 없다.

이제 꼼짝없이 자신을 사간 악마, 산드로 공작에게 갈 수밖에 없다.

‘기회를 봐서 나를 사간 악마를 죽일 것이다.’

돌연 이종학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민하린은 스스로 자문하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없다.

상대는 악마 귀족 정점에 위치한 공작 중 하나다. 만전의 상태로도 생채기 하나 입히기 힘든 괴물. 목줄 때문에 약화된 지금이라면 승산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 고집이라고 해도 좋다. 포기하는 순간 승산은 희박한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질 테니까.

‘해내 보이겠어.’

그 순간 악마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가 문을 향해 정중히 노크했다.

“누군가?”

“체스터 상회입니다, 산드로 공작님. 입찰하신 상품을 가져왔습니다.”

“들어오게.”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민하린의 머릿속은 하앟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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