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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209화 (209/857)

209화 결전 (6)

승산은 있다. 아예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루시퍼가 그토록 허무하게 죽는 걸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담할 수 없는 승부엔 변수가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럼에도 승률이 절망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카앙!

묵직한 충격.

프레이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산보다 거대한 망치가 전신을 후려친 것 같다. 감히 그리 단언할 정도의 충격이 뼛속까지 새겨졌다.

로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몸에 희끄무레한 잔영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일찍이 루시퍼가 눈치챘던, 공격의 전조다. 프레이는 그 잔영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가시화된 신력의 흔적인가.’

그런데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건 공간이 그의 신력을 똑바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소가 나올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드의 권능은 자신들이 속한 차원을 한 단계 넘어선 곳에 존재하고 있다.

카앙! 카앙!

충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로드의 공격엔 형체가 없었고, 그에게 동작이란 이미 불필요한 것이다. 의식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를 읽을 수 없다. 프레이는 보이지 않는 공격을 몸으로 받아 냈다. 물론 맨몸은 아니다. 신마력 전체가 단단한 갑주처럼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신마력이 갉아먹히고 있다. 이대로 쭉 버틸 수는 없다. 수세를 공세로 바꾸지 않는 한, 이 승부에 승산은 없다.

거기에 프레이는 연이은 충격 속에서 한 가지 확신을 했다.

‘로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그는 프레이를 산 채로 생포하려는 셈이다. 이유는 예상이 간다. 자신에게 있는 신력을 완벽하게 흡수하기 위해서겠지.

프레이가 죽은 이후, 다른 데미갓들처럼 결정을 남기리란 보장은 없으니.

‘활로를 뚫을 길은 그 점을 파고드는 것뿐.’

비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이려는 자와 사로잡으려는 자.

그 마음가짐의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싸움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프레이와 로드의 싸움은 의지의 격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심상세계에서 밀레드와 인드라, 그리고 리키를 꺾었던 때와 같다.

누구의 의지가 더욱 견고한가.

그 사실을 가르는 데, ‘사로잡는다’라는 마음가짐은 분명 결정적인 순간에 로드를 흔들리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카앙!

로드의 공격이 점차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아무런 내색도 하고 있지만, 프레이는 그의 공격에서 희미한 조급함을 읽었다.

그럴 수밖에.

칼투드가 죽었다. 그 말은 노즈독이 동면에 빠졌거나, 밀려오는 수마에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노즈독은 히투메 이카르에 있을 것이다. 그곳엔 드로를 비롯한 프레이의 동료들도 있다. 그들 모두가 노즈독을 적대하고 있으며, 무방비가 된 데미갓을 찾아내 죽이는 건 일도 아닌 강자들이다.

로드는 노즈독의 죽음을 개의치 않는다고 했으나, 그가 가진 결정은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을 것이다.

‘이 정도 공격으로는 나를 쓰러뜨릴 수 없을 텐데?’

로드는 너무 강해졌다. 어쩌면 그 스스로도 자신의 전력을 모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힘을 쏟아부을 수 없다. 그는 천천히 단계를 올려 가고 있다. 그의 권능이 점점 거세진다.

그럼에도 프레이의 방어는 좀 더 견고해지고 있었다. 권능의 강약은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의 공격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견제만으로 프레이를 제압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을 느낀 걸까?

끊기지 않을 것만 같았던 로드의 공격이 순간적으로 뚝 하고 멈췄다.

공격 방식을 바꾸려는 생각이겠지.

프레이의 눈이 빛났다. 그가 노리던 순간이었다.

“섬광의 창이여, 적을 꿰뚫어라.”

프레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직 미사일.”

[……?]

로드의 행동이 순간적으로 멈칫거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그로 인해 실낱같은 빈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프레이가 발현한 매직 미사일이 그에게 쇄도했다.

빠르지 않다.

크기도 평범하다.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로드도 마법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니, 웬만한 마법사들보다는 훨씬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은 아무런 특징도 없는 기본적인 마법─

[……!]

그 순간 고요히 매직 미사일을 바라보던 로드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제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매직 미사일이 로드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매직 미사일은 소멸했다.

겨우 그 정도. 수백 미터도 날아가지 못하고 사라지는 기본적인 마법.

그럼에도 공격을 허용할 수는 없었다. 매직 미사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는 마나가 아닌 신마력이었다.

그러나 프레이의 공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화마가 뱉어 내는 구슬이 비상한다. 파이어 볼.”

화륵!

허공에 주먹만 한 화염이 피어났다. 그러나 이번엔 로드도 가만히 좌시하지 않았다. 곧바로 공간의 권능을 사용해 파이어 볼을 소멸시켰다.

프레이는 개의치 않고 주문을 이어 갔다.

“그들의 목소리마저 옭아매라. 체인 라이트닝.”

“대지의 호령이 너를 집어삼킨다. 어스 퀘이크.”

“나의 적은 염화의 들판에서 영원히 춤을 출지니. 플레임 볼.”

프레이의 마법이 연이어 발동되었다. 로드도 즉각적으로 그 마법들에게 대응했다. 상쇄시키거나, 피하거나, 혹은 막았다.

공통점은 그 공격이 자신에게 직격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로드는 생각했다. 위협적이다. 분명히 위협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어설프다.

그는 플레임 볼을 소멸시키며 말했다.

[마법. 너에겐 가장 손에 익은 무기겠지. 하지만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발상은 조금 구시대적이군. 어설퍼.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싸우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

[너의 공격은 기습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처음 공격이 빗나간 시점에서 이미 나의 경계는 높아졌고, 이제는 마법의 탈을 쓴 너의 비수들은 의미가 없어졌다.]

로드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묻어났다. 자포자기한 건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저딴 어설픈 마법으로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

프레이는 묵묵히 중얼거렸다.

“…고막을 찢어발기는 얼음의 비명. 프로스트 스크림.”

휘오오오-

그리고 휘몰아치는 얼음폭풍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가장 손에 익은 무기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다. 프레이가 최근에 몰두한 건 마법이 아닌 신마력이니까. 심상세계에서 보낸 800여 년의 시간 동안, 그는 신마력을 다루는 데 모든 집중을 쏟았다.

찌지직!

얼음폭풍이 찢겨져 나갔다. 이것 또한 로드의 힘이었다.

“응집된 용암이 포효를 토해 낼지니. 라바 블래스트.”

꽈과광!

이 마법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빨랐다. 아마 일반적인 라바 블래스트보다 훨씬 강력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로드는 당황하지 않고 그 공격을 피했다. 점점 위력이 오르고 있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거다.

프레이가 사용하고 있는 마법은 점점 그 경지를 높여 가고 있으니.

[…….]

로드가 위화감을 느낀 건 그 순간이었다.

점점 경지를 높여 가?

그래. 그랬다.

프레이가 사용한 마법들은 한 단계씩 그 경지를 높이고 있었다.

1성의 매직 미사일부터 2성의 파이어 볼. 3성, 4성, 5성, 6성의 마법을 걸쳐…….

7성의 라바 블래스트.

로드가 고개를 들어 프레이를 직시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나의 손짓에 얼어붙은 시대가 차가운 한숨을 토한다. 아이스 에이지.”

콰가가각!

프레이의 발끝에서부터 뻗어 나온 냉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손길을 대지로 뻗쳐 나간다. 로드는 그 마법에 대응하지 않고 공중에 날아올랐다.

‘의지력을 이토록 낭비하는 이유가 뭐지?’

초월체가 된 이상 무엇보다 아껴야 되는 에너지는 마나도, 육체의 피로도 아닌 정신력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권능의 근간을 이루는 힘이다. 쓸데없이 낭비한다면 장기전에서 필연적인 패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반적으로 보면 자신보다 약한 프레이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게 그리 이상한 광경은 아니다. 이딴 마법으로 장난질만 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프레이가 구사하는 마법들이 효율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굳이 마법이라는 외관적 특징을 구현하기 위해 쓸데없는 의지력을 낭비하고 있다.

차라리 신마력을 쏟아붓는 편이 훨씬 위협적이고 힘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알고 있나, 로드. 9성의 마법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프레이의 조용한 목소리가 문득 차갑게 들렸다. 로드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내려다봤다.

9성의 마법사가 발현할 수 있는 앱솔루트 필드.

그건 마법이라고 할 수 없다. 단순한 권능이다. 그곳에서 파생되어 나온 앱솔루트 빔 또한 그렇다.

“…일반적으로 경지를 구분하는 건 수식의 복잡성이지.”

1성 마법보다는 2성 마법이, 2성 마법보다는 3성 마법의 수식이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 경지가 7성을 넘어서면, 풀어 낸 마도수식이 열 장의 종이를 빼곡히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영창이나 시전어를 내뱉는 것도 그 수식을 보다 뚜렷하게 떠올리고,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함이다. 자기최면의 일종이라고 봐도 좋다.

그래서 여태껏 프레이와 만난 모든 이들이 놀랐다. 프레이의 무영창, 그리고 신속한 마법의 시전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으니까.

물론 무저갱에서 보낸 4,000년의 세월이 없었다면 아무리 프레이라도 불가능했으리라.

“나는 9성의 마법을 만들었다, 로드.”

[마법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랬지. 하지만 이번 건 좀 다를 거야.”

[…펼쳐 봐라. 한 번 봐주지.]

로드가 말에 프레이는 픽 웃었다.

“눈치가 느리군. 이미 사용했다.”

[…무슨 뜻이지?]

프레이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1성부터 8성까지의 마법을 모두 시전했다. 굳이 영창까지 더해서 완벽하게 발현시켰지. 덕분에 내게 있는 신마력의 절반이 사라졌다.”

[…….]

“나의 공격이 끝났다고 생각하나?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팟!

로드는 등에서 화끈한 열기를 느꼈다. 돌아보지 않고 몸을 숙였다.

화륵!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은 파이어 볼이었다. 로드의 안색이 굳었다. 자신의 등 뒤에 마법을 펼친 건가?

아니. 그런 단순한 게 아니다.

콰가각!

이번엔 아이스 스피어. 그리고 매직 미사일이 동시에 날아왔다. 이 마법들 또한 프레이가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피하고, 막는다. 그러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했다는 듯이 그 수가 점점 불어났다.

[…이건.]

“이미 발현된 마법들이다. 네가 피하고, 상쇄시켜도 사라지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나겠지. 그리고 그 위력과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나의 의지력이 받쳐 주는 한, 이 마법의 포격은 결코 끝나지 않아.”

프레이는 잠시 침묵하다가 덧붙였다.

“이 모든 공정을 동시에 계산하니, 8성 마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식이 짜지더군. 그야말로 머릿속이 잿더미가 될 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수식이. 그래서 나는 이걸 9성의 마법 인피니티 필드라 부르기로 했다.”

이미 주변 일대는 프레이의 신마력이 집어삼켰다. 로드가 가진 공간의 권능이라고 해도 쉽게 몰아낼 수는 없다. 지금처럼 수세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프레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수식을 계산하는 데 모든 집중을 쏟아야 된다.

꽈과과광!

로드의 몸을 수십 개의 마법이 뒤덮었다. 1성의 마법이든, 9성의 마법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마법들이 신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그는 피해야 된다. 혹은 막아야 한다. 프레이는 이미 발현한 마법을 따로 컨트롤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마법을 하나씩 더해 가며, 로드에게 치명적인 빈틈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이걸로도 로드를 죽일 수는 없겠지.’

프레이의 눈이 가라앉았다. 언뜻 우세를 점한 것으로 보이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이렇게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프레이는 다음 단계의 마법을 준비했다.

그 유무조차 불분명한 환상의 경지이자 마도학의 끝이라고 알려진 9성의 위 단계.

10성 마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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