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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119화 (119/857)

119화 멸문 (7)

샤를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가 보인 행동을 이해한다면 모두가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대단해.’

방금 전에 프레이는 ‘블레이크 가문 전체’를 범위로 차원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원래 샤를이 고안했던 범위보다 수백 배는 넓힌 것이다. 자연스럽게 소모되는 마나도 수십 배는 늘고 마도식 또한 새로 짜야 했을 것이다.

덕분에 차원이동마법은 대마법大魔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스케일이 되었다. 대체 프레이의 최대 마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더 대단한 건 따로 있었다.

‘차원이동마법은 가문 전체에 발현됐지만, 정확히 아펩만을 특정했어.’

그건 무식하게 마나만 많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마도연산력. 샤를은 방금 전에 행한 프레이의 연산력이 7성 마법사 수십이 붙어도 수행하지 못할 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설프게 시도했다간 반작용으로 뇌가 녹아 버릴 정도의 처리량이다.

그걸 홀로 해냈다.

주륵.

“아……!”

프레이는 눈과 코, 입에서 동시에 피를 흘렸다. 샤를이 다급한 기색으로 다가오자 프레이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렇다고 몸 상태가 호전되는 건 아니다. 머리가 어지러워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다.

‘무식한 방법을 써 버렸어.’

자신도 정확한 한계를 몰랐던 마나도 간당간당하다. 당장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으니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인츠와 레티아가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 상황이다. 눈을 가늘게 뜨자 전황이 대강 파악되었다.

레티아의 권능은 바람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정신없이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의외인 건 하인츠의 힘도 그녀와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상황은 하인츠에게 좋지 않다.

‘힘의 차이가 심해.’

하인츠는 레티아의 하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종류의 권능인 만큼 허를 찌르기도 힘들다. 중간중간 마법을 섞으며 반격하지 않았다면 진작 제압당했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레티아는 하인츠를 상대하며 사정을 봐주고 있다.

“…….”

프레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슴푸레하다. 곧 날이 밝을 기색이다. 그 말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다.

“샤를, 하인츠를 도와 레티아를 죽여야 한다. 데미갓이 오기 전까지.”

“가능할까요? 그녀의 힘은 보통이 아닙니다.”

“알아. 그래도 해야 돼.”

지금의 몸 상태로 데미갓 둘을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최소한 레티아는 죽여야 수지가 맞는다.

무엇보다 이대로 도망친다고 해서 레티아가 자신들을 순순히 놓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프레이는 숨을 가다듬었다.

‘마나도 바닥이고, 정신력도 거의 써 버렸군.’

과도한 마도연산 때문에 아직까지도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 같다. 정신력도 너덜너덜하니 신력을 쓰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해야 된다.

프레이는 밤하늘로 비상했다. 샤를이 그 뒤를 따랐다.

“…….”

레티아는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하인츠의 옆에 선 프레이를 노려보았다.

왜 이 남자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건가.

“…아펩 님은 어디 있지?”

“죽였다.”

“거짓말하지 마라.”

“한 번 찾아보든가.”

레티아의 시선이 캄캄한 지상을 향했다. 그러나 어둠의 권능을 가진 데미갓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싸웠고 내가 이겼지. 그리고 이제 네 차례다.”

“웃기는 소리!”

콰아아-

레티아를 주위로 광풍이 휘몰아쳤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몸뚱이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갈갈이 찢길 것 같다.

하인츠는 바람의 벽을 세우며 말했다.

“상상 이상으로 강하더군, 어머니는.”

“그래 보이는군.”

레티아는 프레이가 여태껏 싸웠던 그 어떤 어포슬보다 강하다. 물론 데미갓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만약 프레이가 만전의 상태였다면 충분히 이길 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덜너덜해진 지금의 프레이에겐 아펩보다 까다로운 적일 수도 있다.

“8성 마법. 한 번은 더 쓸 수 있다.”

“그걸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나?”

“모르지. 하지만 해 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렇지.”

하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창을 마치는 데 1분은 걸릴 거야.”

지금 프레이의 마나로 무영창 마법을 쓸 수는 없다. 마법을 완벽하게, 그리고 가장 큰 위력으로 시전하려면 꼼꼼하고 정확한 영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레이의 말을 이해한 듯이, 샤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하인츠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해 보는 수밖에 없나.”

“부탁한다.”

프레이는 곧바로 눈을 감고 영창을 시작했다.

하인츠와 샤를은 레티아를 보았다. 점점 광풍이 거세지고 있다.

“라운더 샤를과 프레이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물어볼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 같은데, 아너 하인츠.”

“짧게 끝날 얘기는 아니라는 거군요.”

그 말에 샤를이 낮게 웃었다.

“뭐. 조급해하지 마라. 내 예상대로라면 너도 조만간 알게 될 거다. 아마도 우린 한배를 탄 것 같으니까.”

“피스파인더 암릿을 탈퇴할 생각입니까?”

“그분이 그걸 바란다면.”

“…….”

그 말에 하인츠는 침묵하고 말았다. 샤를은 피스파인더 암릿의 가장 오래된 서클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녀가 서클의 일에 관계되지 않고 대륙을 떠도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사실이 희미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 샤를이 프레이의 한 마디에 언제든지 서클을 나갈 수도 있다니.

대체 프레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쿠아아아.

광풍이 거세졌다. 레티아의 손가락이 움직이려는 순간이다.

샤를과 레티아의 시선이 부딪친다.

욱신.

“큭……!”

그녀는 갑자기 두개골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심령장악… 귀찮은 능력이구나, 뱀파이어.”

“흥.”

샤를은 보란 듯이 웃어줬지만, 그녀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어포슬의 정신은 이미 데미갓이 깊게 관여하고 있다. 심령을 완전히 장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집중력을 깨뜨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결정타는 입힐 수 없다.

‘괜찮아.’

그녀의 역할은 레티아의 제압이 아니다. 단순한 시간벌기다.

쿠콰콰콰-

덕분에 몰아치는 광풍의 위력은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샤를은 박쥐 떼로 방패를 만들었고, 하인츠는 같은 바람의 힘으로 레티아의 공격을 상쇄시키려 애썼다.

레티아는 그들의 뒤에 있는 프레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프레이가 무언가 준비를 하는 모양이군. 너희들은 시간을 끌겠다는 것이고.”

그녀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팟.

“……!!”

레티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샤를과 하인츠가 급히 그녀의 움직임을 쫓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큭……!”

뒤에서 프레이의 침음이 들렸다. 어느새 프레이의 뒤로 이동한 레티아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피피핏.

프레이는 직후 몸을 젖혔다. 평소의 그라면 트리플 캐스팅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블링크를 사용하면 되지만, 지금은 하나의 영창에 집중하기도 벅차다. 게다가 이미 비행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도중이다.

한계까지 몸을 젖힌 그의 턱 끝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쐐애액.

‘극한으로 압축된 공기인가?’

상당한 파괴력이다. 게다가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톱날 같은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에, 맞는다면 단순히 구멍이 뚫리는 게 아니라 날이 상한 칼날에 난도질당한 것처럼 살점이 너덜해질 것이다.

치료하는 건 물론, 후유증도 오래 남을 상처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하나라도 맞으면 위험하다.’

공격이 보이지 않는다. 심플하지만 그만큼 까다롭다.

게다가 방금 보여 준 순간적인 스피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인츠는 물론이고 샤를과 프레이조차 한순간 그녀의 움직임을 놓쳤다.

“마스터!”

샤를이 급히 다가와 그를 엄호했다. 하인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나올지 모르니 떨어져 있는 것보다 옆에서 호위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그래야겠어.”

그사이 레티아는 모습을 감추었다. 하인츠가 낮게 중얼거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속도로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그저 바람에 모습을 숨긴 것일 뿐.”

“바람에 모습을 숨겨?”

언뜻 이해되지 않는 표현에 샤를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거군.”

“예. 까다로운 건 여전합니다만… 이렇게 된 이상 저도 몸을 사릴 상황이 아니군요.”

“음?”

하인츠가 주먹을 꾹 쥐는 순간이었다.

휘오오오-

전조도 없이, 그의 몸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샤를이 흠칫 몸을 떨었다. 가공할 냉기가 느껴졌다.

‘마법?’

아니. 마나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창을 하지도, 시전어를 내뱉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하인츠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마나가 아니었다.

신력.

냉기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덕분에 레티아의 형체가 드러났다. 모습을 숨기고 있던 그녀의 몸에 눈보라가 묻어 위치가 드러난 것이다.

스윽.

레티아는 아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잔뜩 화가 난 듯, 분노한 목소리를 토해 냈다.

“하인츠! 여기서 얼음의 권능을 쓰겠다는 것이냐?”

“쓰라고 준 힘이지 않습니까.”

“감히……!”

하인츠 블레이크.

긴 실험 끝에 탄생한 더없이 귀중한 샘플이다. 그는 무려 두 개의 권능을 다룰 수 있었다. 그녀의 주인인 레이린도 이 사실을 알고는 크게 기뻐했다. 하인츠를 더 연구하면 크리쳐만이 아닌, 어포슬. 나아가 데미갓의 힘도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레티아 또한 하인츠를 각별하게 아꼈다. 장남인 미샤엘이나 남편인 이사카보다 훨씬.

그런 하인츠가 지금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레티아도 더 이상 사정을 봐줄 생각은 없다. 레티아가 진정한 권능을 행사하려던 순간이었다.

핏.

“……?”

문득 가슴에 싸늘한 감각을 느꼈다. 눈보라, 하인츠의 힘이 아니다. 냉기와는 다르다. 그런데 뭐지, 이 싸늘함은?

“쿨럭……!”

레티아는 피를 토하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의복에 서서히 핏물이 번져 나갔다. 그녀는 무거운 고개를 들어 프레이를 보았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프레이는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아직 이름은 짓지 않았다.”

“…네가 만들었다는 것이냐?”

대답하지 않는다. 만들었다, 라고 말할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다.

그러나 레티아는 다르게 해석했는지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하. 말도… 안 돼.”

유언치고는 초라했다.

그게 블레이크 가문을 이면에서 주물렀던 존재의 유언이라면 더욱.

그녀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지더니 지면으로 떨어졌다.

프레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운이 좋았다.

방금 전에 사용한 마법은, 굳이 말하자면 매직 애로우의 발전형이다. 위력도 속도도 매직 애로우보다 수백 배는 빠르고 강했지만 기본적은 틀은 같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매직 애로우와 달리 기척도, 모습도 희미하기 때문에 쉽게 눈치챌 수 없다는 것이다.

“끄, 끝난 겁니까?”

샤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인츠는 씁쓸한 얼굴로 모친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감상에 잠길 틈은 없다.

퍼뜩 정신을 차린 샤를이 프레이에게 말했다.

“아. 이,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이 자리에서 도망쳐야 됩니다. 얼마 안 있으면 데미갓이…….”

“…아니.”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늦고 말았어.”

동쪽 끝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샤를의 표정이 굳었다. 새벽이 밝고 있었다.

쿠우우-

중압감이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하늘에는 일남 일녀가 서 있었다. 둘은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졌는데, 둘 모두 합이라도 맞춘 듯 짓고 있는 싸늘한 표정 때문에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레티아가 원군으로 부른 데미갓이 블레이크 가문에 도착한 것이다.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펩이 안 보이는군.”

“설마 저 벌레들한테 당한 건 아닐 테고.”

“흥… 족치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어떻게 되었는지 말이야.”

데미갓이 천천히 낙하한다.

프레이는 대현자의 스태프를 만지작거렸다. 이곳에 저장된 워프 마법을 사용하면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찰나의 시간이 필요하다. 눈을 깜박이는 것보다 짧은 시간, 그러나 상대는 데미갓이다. 섣부르게 움직이면 그대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생각해야 돼.’

어떻게 할 것인가.

대화를 하는 척 시간을 끌까?

막무가내로 써 버릴까?

아니면 아펩을 들먹이며 억지로 빈틈을 만들까?

모든 선택지가 도박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데미갓은 가까워지고 있다. 프레이가 이를 갈며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쩌저적-

아무런 전조도 없이 뒤쪽에 있는 공간이 갈라졌다. 샤를은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건 워프 마법의 전조다.

저벅.

그곳에서 일단의 무리가 걸어 나왔다. 샤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들이었지만, 가장 앞에 있는 존재는 특히나 섬뜩한 모습이었다.

붉은색 흉광을 내뿜고 있는 존재는 리치였다. 그러나 샤를은 여태껏 저토록 소름끼치는 기운을 발산하는 리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갖고 있던 리치의 이미지를 단숨에 깨뜨릴 정도로 온몸에서 사기死氣가 느껴졌다.

“저 두 명이… 전부가 아니었단 말인가.”

하인츠의 얼굴에도 절망이 드리웠다. 완벽히 포위당했다. 도저히 도망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에 서 있던 데미갓 남자가 묘한 얼굴로 말했다.

“네놈들은 뭐냐?”

[파라곤.]

리치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듣는 순간, 프레이는 자신이 사흘 전에 행한 도박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이로의 요청으로 도움을 주러 왔다, 프레이 블레이크.]

프레이의 원군 요청을, 제11마탑주 카이로 위르세만이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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