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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81화 (81/857)

81화 강해질 수 있는 수단 (3)

“으음…….”

이반은 침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빌어먹을 마나를 드디어 진정시켰다. 그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며칠 동안 꼼짝도 못했더니 근육이 찝찝해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한마디로 최악의 컨디션.

“드디어 일어났나.”

이반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프레이가 서 있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며 그를 훑어본다.

“얼마나 지났지?”

“일주일하고도 이틀.”

시간 감각이 엉망이다. 체감으로는 나흘에서 닷새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이반은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프레이를 힐끗 보았다. 그와는 달리 말끔한 차림새였다.

“과실의 마나가 너한테는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나 보군.”

“난 안 먹었어.”

“응?”

프레이가 품에 있는 과실을 보여 주자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너도 이 근처에서 가부좌를 틀었지 않냐? 그런 기척을 느꼈는데.”

“맞아. 나는 과실이 아니라 다른 걸 먹었다.”

“…….”

이반이 묘한 얼굴이 되었다.

프레이가 한 말도 아리송했지만, 그것보다도 그의 기세가 더 신경 쓰였다. 약 일주일 전에 보았을 때와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일반인 같은데?’

대마법사는커녕 마법을 전혀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다. 실제로 그의 몸에서는 털끝만큼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스승처럼. 그리고 그건 프레이가 한층 더 범상치 않은 인물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이반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혹시 너… 나아간 거냐?”

그 성의 없는 말에 프레이가 씩 웃었다.

“그래.”

“넌 7성의 마법사였지. 그럼 지금은…….”

“8성이다.”

“…….”

이반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도무인인 그조차도 8성의 마법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알고 있다.

“…너,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스물이었던가.”

아니면 스물 하나? 프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반은 그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도 천재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랐지만 프레이는 격이 달랐다.

‘…아니.’

이걸 재능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나?

프레이는 이반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듯 말했다.

“너는 이제 어쩔 셈이냐?”

“어?”

“비록 반쪽짜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리키가 말한 오이딘을 죽였어. 그에게 받은 임무는 완수한 셈이지.”

“음…….”

프레이의 말이 맞았다. 오이딘은 죽였고, 흐루히랄의 과실이라는 나름대로의 수확도 얻었다. 리룬드는 괜찮은 마을이었지만, 이반에게는 최악의 장소였다.

“원래 하던 일이나 하러 가야겠지.”

“원래 하던 일?”

“그래. 나는 카사진의 유물을 찾고 있다.”

“유물이라면…….”

“호왕虎王의 장갑, 거인의 허리띠. 그리고 광풍狂風의 목걸이. 카사진의 삼신기지.”

이반이 쯧하고 혀를 찼다.

“광풍의 목걸이는 스승님이 갖고 있는데, 호왕의 장갑과 거인의 허리띠는 어디 있는지 몰라. 그딴 마도구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지만, 스승님이 카사진을 뛰어넘으려면 삼신기를 모두 찾아라 하더군.”

“스승님?”

“전대 무왕권의 계승자다. 더럽게 강하고, 그 이상으로 성격이 더러워.”

이반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프레이는 이반에게서 이 정도 반응을 끌어낸 스승이란 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자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몰라. 3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는데, 나한테 호왕의 장갑과 거인의 허리띠를 찾으라는 쪽지가 있더군. 할 것도 없어서 그때 이후론 나름대로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신기를 찾는 건 이반에게 있어 필요한 일이 맞았기 때문이다.

“카사진을 뛰어넘으려면 그 세 개의 유물을 다 찾기는 해야 될 거다.”

“응? 어째서?”

“그래야만 무왕권의 절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정말이냐? 아니. 근데…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어떻게 무왕권을 쓸 수 있었는지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정신 사나운 일이 연달아 일어나 잠시 잊었던 것이다.

프레이는 딱히 시치미도 떼지 않고 어깨만 으쓱였다.

“어쩌다 보니.”

“말 안 해 주시겠다. 음. 뭐, 상관없지. 그리 궁금하지는 않으니까.”

이반은 의외로 쿨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프레이가 숨기는 것이라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묘한 느낌이었다. 이반은 여태껏 스승 이외의 누군가에게 이러한 신뢰의 감정을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됐어.’

중요한 건 이 녀석이 믿을 만하고, 강하다는 것이니까.

“프레이, 너는 어떡할 생각이냐?”

“리키가 말한 데미갓의 모임에 참석할 거다.”

“엉? 거기에 네가 왜?”

“그건…….”

프레이는 리키에게 들었던 얘기를 간단히 설명했다. 블레이크 가문에 대한 얘기도 어느 정도는 이야기해 주었다. 어차피 이반이 자신의 출신 성분을 알았다고 태도가 바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호. 그러니까 너는 마나와 신력을 골고루 다룰 수 있는 잡종이라는 거군.”

“…….”

예상대로의 반응이었지만, 잡종이라는 비유는 썩 좋게 들리지 않았다. 프레이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아무튼 목숨을 걸어야 되겠는걸.”

“위험한 일이긴 해도 죽을 생각은 없어. 그리고 이반, 그 이후에 말인데.”

프레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이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약 1년하고 6개월 뒤에 정기회의가 있다고 한다. 각 서클의 중요 인사들이 모조리 참석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하더군.”

“그래. 알고는 있다.”

스승에게 몇 번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반은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고 스승 또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다음엔 모습을 내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뒤엎을 생각이다.”

“…엉? 뒤엎어? 뭐를?”

“전부 다. 네가 말했잖아. 지금의 서클은 가축들이 득실거리는 돼지우리라고.”

프레이가 웃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고. 그러니까 한 번 솎아 낼 필요가 있지. 냄새도 빼고, 정리도 하고. …대청소가 될 거다.”

“대청소라!”

이반은 흥분한 기색이었다.

다른 녀석의 말이었다면 무시했을 거다. 그도 서클의 존재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프레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다르다.

계획은 모른다. 정확한 전력도 모른다

그런데 가능할 것 같다. 이 녀석은 승산이 없는데 싸우는 멍청이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말을 왜 내게 하는 거냐?”

“네가 도움을…….”

“도움을……?”

이반의 표정이 거만해졌다. 프레이는 그 모습이 뭔가 고깝게 느껴져 말을 바꾸었다.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어법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무슨 상관이랴. 뜻은 정해졌을 텐데. 프레이는 그리 말하고 이반에게 손을 내밀엇다.

“으하하!”

이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찔끔 눈물까지 흘리며, 프레이의 손을 꽉 잡았다.

“1년 반 후.”

“1년 반 후.”

이반은 속으로 생각했다.

‘야단났군.’

그때가 너무 기다려져서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 * *

이반은 남쪽으로 간다고 말했다.

“사막국가 실키드. 스승님의 말로는 카사진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이라더군.”

“아마칸 사막이 있는 곳인가?”

“그렇다.”

리키에게 카사진의 최후를 들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일단 거기서 흔적을 찾아보려고. 지루하지는 않을 거야. 그곳의 전사들은 대단하다고 들었으니까.”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투를 빌겠다.”

“오냐.”

이반이 떠났다. 대밀림을 나가는 그의 안내를 맡은 건 시악스였다. 그녀는 이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모두 훌훌 털어낸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눈빛에 존경의 기색이 무럭무럭 뿜어져 나온다.

하긴. 마을을 지킨 영웅이니까 저런 태도도 이해는 간다.

프레이는 그들의 뒷모습이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스노우.”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소드나라고 부르도록.”

하늘에서 툭하고 스노우가 떨어졌다. 그녀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 저번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본녀는 은신에 제법 자신이 있었단 말이다.”

“8성이 되었으니까.”

정말로 8성이 되었군. 스노우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시악스에게 들었던 얘기가 떠오른 것이다.

“…8성이 되면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것이더냐?”

“그래. 그리고 이게 전부도 아니고.”

“…….”

“그것보다 리키한테 데려다줄 수 있나? 지금 바로 만나고 싶은데.”

“알겠다.”

프레이는 스노우와 함께 리키가 있는 오두막으로 이동했다. 프레이는 이제 진을 그리는 과정까지 생략하고 워프를 시전했다. 영창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마치 블링크 마법이라도 사용하듯이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리키의 오두막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오지 마라!]

“……!”

리키의 목소리였다.

프레이와 스노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근처에 숨어라! 빨리!]

처음 들어 보는 리키의 다급한 목소리, 그것만으로 상황의 급박함은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판단은 빨랐다. 프레이와 스노우의 시선이 찰나간 마주치고, 순식간에 양쪽으로 흩어진 다음 풀숲에 모습을 숨겼다.

벌컥

그와 동시에 오두막 문이 열렸다.

“…….”

모습을 드러낸 건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프레이는 그녀의 샛노란 눈동자를 보는 순간 오싹해졌다.

‘데미갓이다.’

노즈독이나 리키 수준의 압박감은 아니었다. 즉 아포칼립스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데미갓, 방심할 여유는 없다.

츄릅.

그녀가 두 갈래로 찢어진 혀를 낼름거렸다.

“이상한데~ 분명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는데에~”

묘하게 말끝이 늘어져 듣기 괴로운 목소리였다. 뒤따라 나온 리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착각을 한 거겠지, 히드라.”

“그으런가~ 으음~”

히드라라 불린 여자가 머리를 기우뚱거렸다. 그때였다.

“…….”

그녀의 시선이 스노우가 숨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으응?”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다시 한 번 혀를 낼름거린다. 그녀가 타박타박 스노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프레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력을 눈치챈 건가?’

스노우의 표정은 더욱 심각했다. 그녀는 칼자루에 손을 올린 채 히드라가 걸어오는 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어디 가는 거냐, 히드라.”

리키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히드라가 다시 한 번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저기서 기척이 느껴져~”

“…저기 있는 건 내 어포슬이다.”

“으응? 정마알?”

“그렇다. 그리고 나는 우리들 중에 있는 배신자의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 어포슬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 줄 생각이 없다.”

리키가 날이 선 말투로 쏘아붙였는데도, 히드라는 태평해 보였다.

“으응. 그렇지이. 맞아. 로드도 그랬어. 어포슬의 정체는, 숨겨야 된다고…….”

그때였다. 히드라가 갑자기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히히히! 히히히… 근데 너무 재밌다.”

“뭐가 웃기지?”

“실은 방금 보았거든. 나는 눈이 많으니까… 너보다 9배나 많다구. 그래서 놓치지 않았다는 거지이~”

히드라가 히쭉 웃었다.

“리키, 네 어포슬은 엘프였구나아? 어.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노즈독이 뿌려 두었던 미끼도 엘프-”

그 순간이었다.

여태까지 당황하던 리키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

슈칵.

히드라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녹색의 핏물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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