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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77화 (77/857)

77화 정리 (3)

프레이와 이반은 스노우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점점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지하로 가고 있는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 뿌리 쪽이다. 후후. 원래라면 여왕을 비롯한 몇몇 장로 엘프들에게만 허락된 장소인데. 영광인 줄 알거라.”

“그런 곳에 우리를 데려간다고?”

이반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영광은커녕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스노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관없노라. 다른 이도 아닌 어머니께서 직접 허락하신 일이니.”

어느 정도까지 밑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더 이상 주위엔 엘프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점점 어두워져 갔다.

프레이는 자신이 흐루히랄의 뿌리 가까운 곳까지 내려왔음을 깨달았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햇볕 하나 들지 않는 곳인데도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반딧불 같은 게 주변을 떠다니면서 일대를 은은하게 밝혀 주었던 것이다.

“이건 뭐야? 날파리?”

“무례한 녀석이구나. 그건 정령이다.”

“…정령이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었나?”

“하급 정령조차 되지 못한 존재들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순수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프레이의 말에 스노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괜히 건드리지 마라. 정령은 그대와 같이 야만적인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야만적이라 미안하구만.”

그리고 가장 지하까지 내려왔을 때, 그곳에는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 다른 곳보다 밝은 장소였고 특이한 점은 중심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반이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나무뿌리가 뻗친 지하에 또 나무가 있다니.”

“굳이 말하자면 이게 바로 흐루히랄의 본체다. 오이딘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흐루히랄의 오염을 결심했을 때 꼭대기가 아닌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나무는 지상에 있는 것들에 비하면 많이 작은 편이었다. 레이널스 대밀림의 나무는 특히나 거목이 많았는데, 이 나무는 그들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다.

그런데도 흐루히랄 이상의 장엄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어 이안마저 괜히 입맛을 다실 정도였다.

나무에 터벅터벅 걸어간 스노우가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그곳에 맺힌 과실을 두 개 땄다. 싱그러워 보이는 붉은색의 과실이었다.

그녀가 씩 웃으며 그것을 내밀었다.

이반이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확실히 풀 반찬은 아니지만 이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건 흐루히랄의 과실이다. 너희처럼 마도를 걷는 자들은 천금을 주더라도 손에 넣고 싶은 보물인데.”

“보물이라니. 뭐. 사과보다 맛있어 보이는 건 인정하지.”

스노우는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프레이를 보았다.

“프레이, 그대라면 이것의 진가를 파악했겠지?”

“그래. 대단하군. 세간에 알려진 영약들에 비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물건이야. 이반, 이걸 먹으면 네 마나가 최소두 배는 늘어날 거다.”

“…정말이냐?”

마도무인에게 있어서도 마나는 아주 중요한 동력원이다. 특히 이반의 무왕권은 다른 무술에 비해 특히나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한다.

이 과실을 먹어서 마나의 절대치가 두 배 늘어난다면, 이반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득이었다.

스노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물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원숭이 같군. 엘프 이외의 누군가가 이 과실을 먹는 건 지난 수백 년간 없었던 일이건만…….”

“흐루히랄께서 아주 큰 자비를 베풀어 주셨군.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야.”

프레이가 과실을 받으며 감사를 표하자 스노우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그리고 이반은 과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입에 넣은 다음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

“음. 맛은 그럭저럭 괜찮군.”

스노우와 프레이의 표정에 경악이 스쳤다.

“이, 이 멍청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렇게 먹으면…….”

“응? 어…….”

이반이 멍한 얼굴이 되더니, 갑자기 붉어졌다. 프레이는 즉시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한 번 후려쳤다.

짜악!

“윽……!”

“집중해라. 방금 과실의 마나를 한 번 흩트려 놓았으니까.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방금 충격이 사라질 때쯤엔 다시 과실의 마나가 폭주할 거다.”

“끄, 끄응…….”

“내장을 온존하고 싶으면 이대로 집중력을 유지해.”

이반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도 한마디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무식한 놈.”

* * *

“일주일은 계속 저 꼴이겠어.”

프레이는 한숨을 쉬며 이반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바닥에 앉은 채 마나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나마 그의 신체가 잘 단련된 일류 무인의 것이라 망정이지, 어설픈 수준이었다면 마나를 먹은 즉시 몸뚱이가 폭죽처럼 터졌을 것이다.

스노우가 한심한 듯이 바라보았다.

“정말 생각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남자군. 저 정도 실력이면서 영약을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은 건가?”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기는 해.”

“뭐?”

“영약을 한 번도 먹지 않고 오직 수련을 통해서만 지금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니.”

“…….”

영약에 의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일류 무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반의 근성은 인정할 구석이 있었다.

특히 그의 무술은 다름 아닌 카사진의 무왕권이었다. 프레이처럼 겉핥기식으로 익히는 거라면 몰라도, 경지를 거듭할수록 점점 극악한 난이도로 다가올 것이다. 적어도 이반의 나이에 일류 무인의 경지에 다다른 건 뼈를 깎는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군.”

스노우도 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이반의 노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힐끗 본 그의 전신은 상처투성이였다. 눈코 뜰 새 없이 지옥 같은 훈련에 매진했겠지.

“어쩔 수 없구나. 프레이, 내일 있을 일정은 그대 혼자서 감당해야 된다.”

“…음.”

프레이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갑자기 귀찮은 일에서 벗어난 이반이 부러워졌다. 그의 속내를 짐작한 듯이 스노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엘프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설마 그들에게 감사를 전할 기회도 주지 않을 생각은 아니겠지?”

“…어쩔 수 없군.”

“잘 생각했다.”

스노우가 활짝 웃었다. 그 순간 어두웠던 지하가 확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스노우의 미모는 파괴적이었다.

‘엘프 마을이니까 이 정도지.’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더 중시하는 엘프들은 스노우의 얼굴을 보고 감탄과 경외만을 느낄 것이다. 만약 미美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인간들의 도시 한복판에 스노우가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프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대는 언제 과실을 먹을 생각인가?”

“음.”

과실을 내려다보았다. 토르쿤타의 심장이나 프로즌리버에 비하면 한 끗 떨어지지만, 8성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은 틀림없다.

게다가 이반처럼 일주일이나 마나를 다스리지 않아도 된다. 프레이의 몸은 이미 영약을 흡수하기 쉬운 체질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그의 조정 능력이라면 하루, 길어도 이틀이면 과실의 마나를 완전히 녹아낼 것이다.

즉,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다.

“천천히 생각하지. 우선은 일정부터 수행하고.”

“음. 좋은 생각이다.”

스노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 * *

다음 날은 무척이나 바쁠 수밖에 없었다.

프레이는 일반 하이엘프들만이 아니라 장로들에게까지 직접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감사드립니다.”

“생명의 은인이시여…….”

처음에만 해도 적대감으로 물씬거렸던 그들의 눈빛엔 고마움과 존경의 빛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하다. 프레이와 이반은 마을을 구한 영웅이었다. 스노우 혼자서 어떻게든 오이딘을 죽이고 본 드래곤까지 없앨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 거의 피해가 없이 사태를 진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반이 없는 게 다행이군.’

프레이는 엘프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는 고마움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프레이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아마 이반의 성격상 이런 간지러운 분위기는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프레이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런 속내와 달리 겉으로 드러난 대처는 아주 훌륭했다.

“조화의 종족들이여, 저 또한 그대들의 용맹함에 찬사를 보냅니다.”

“숲에 새겨진 상흔이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흐루히랄의 자식들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프레이는 겸손함을 유지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했고, 항상 웃는 낯을 유지했다. 중간에 엘프어로 가벼운 인사까지 건네자 엘프들의 반응은 더욱 열성적이게 되었다.

엘프들은 거의 영웅의 재래를 본 것 같은 반응을 보냈다.

‘이 정도라니.’

프레이는 내심 당황했다. 그가 기억하던 엘프는 이보다 훨씬 담백한 종족이었다. 속으로는 진실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겉으로는 절제된 표현을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엘프들의 감정 표현은 웬만한 인간들 못지않았다.

하긴. 4,000년이 흐를 동안 인간과 교류할 정도로 개방적이게 되었으니, 이 정도 반응이 놀라운 건 아닌가.

다음으로 다가온 건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는 카밀이었다. 그녀가 프레이를 보며 말했다.

“완전히 영웅이 되셨네.”

“카밀, 신세졌어.”

그녀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카밀은 오이딘이 습격한 날 프레이의 부탁에 따라 주변에 있던 하이엘프들을 기절시켰던 것이다. 다행히 워낙 경황이 없던 날이었고 카밀의 실력이 뛰어나서 그들의 기절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럼에도 프레이가 그녀에게 신세를 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괜찮아. 별 도움이 못 되어서 내가 더 미안한걸. 게다가 좋은 구경도 했고.”

카밀의 눈이 빛났다.

“히랄가든의 소드나.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 역시 대단한 실력이었어. 그 이반이라는 남자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그 남자는 어디 있어?”

“…조금 사정이 있어서. 요양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할까.”

“음.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는데. 하긴. 본 드래곤을 잡는 게 예삿일은 아니겠지.”

프레이는 카밀의 오해를 풀지 않았다. 그녀는 픽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나중에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겠어? 우리 애들이 다시 한 번 싸우는 걸 원하고 있어서. 나도 약간 몸이 간질거리고.”

“그래.”

카밀이 떠났다. 프레이는 남은 엘프들과 여전히 인사를 한 다음 시악스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악스와 스노우가 탁자에 앉은 채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프레이가 나타나자 시악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여왕 폐하.”

“…음. 그래. 알겠다.”

프레이는 그녀가 도망치듯이 집을 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프레이가 슬쩍 시선을 보내자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본녀가 막 리룬드에 왔을 때, 시악스와 본녀는 둘도 없는 친우였지. 그녀는 엘프치고는 무척이나 호기심이 왕성했거든. 아이스 엘프인 본녀를 보고 허물없이 다가온 건 그녀밖에 없었어. 그때 참 즐거웠는데…….”

스노우는 그때가 그리운 것 같았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젓고 다시 프레이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다시 되찾은 후였다.

“잡설이 길었군. 리키가 그대를 부르고 있다. 곧 있을 데미갓의 모임에 대해서 의논할 게 있다더군.”

“의논을 왜 나한테?”

스노우는 묘한 눈으로 프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키는 그 자리에 그대를 데려갈 생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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