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59화 (59/857)

59화 용병 (3)

마차는 총 다섯 대였다. 인원은 상인들과 용병, 마부까지 합해서 마흔 명. 짐을 싣기에는 마차의 수가 적었지만, 아공간 주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짐칸에도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프레이는 4번째 마차에 탑승했다. 이제 꼬박 몇 주는 이 마차 안에서 생활해야 되는 것이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지켜보는데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

추한 모습을 한 늙은 여자였다. 검버섯이 핀 얼굴에 매부리코, 쭈글쭈글한 피부에 언뜻 보이는 들쑥날쑥한 치열까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봐서는, 아마 이 여자가 자신을 포함한 단 두 명의 마법사 중 하나인 것 같은데.

‘환각마법.’

그녀는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제법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그것뿐이다.

스윽.

안구에 마나를 집중하자 노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러나 프레이는 그녀의 외모보다도 다른 것에 시선이 갔다.

길쭉한 귀, 엘프다.

금발벽안에 백옥 같은 피부는 엘프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다는 하이엘프의 특징이었다. 프레이의 눈이 복잡해졌다.

‘왜 하이엘프가 여기 있는 거지?’

게다가 자신을 주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환각마법을 눈치챈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수준으로 꿰뚫을 만한 수준이 아니니까. 단순히 같은 마법사에게 보내는 흥미의 시선? 그렇게 생각하기엔 눈빛이 좀 복잡한데.

프레이가 한창 그녀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가려고 할 때, 알콘이 말을 걸어왔다.

“카인, 컨디션은 좀 어때?”

여전히 넉살 좋은 태도였다. 프레이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초원을 가로지르는 며칠간은 긴장 풀고 있어도 돼. 숲에 진입하고부터가 진짜거든.”

대밀림으로 가려면 초원과 숲을 반복적으로 가로질러야 된다. 초원은 사방이 탁 트여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접근하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시야가 좁은 숲은 다르다.

짐을 노리는 도적들, 그리고 위협적인 몬스터들도 대부분 숲에서 마주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알콘, 저기 있는 노인은 누굽니까?”

그때쯤 그녀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자신의 지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알콘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과 같은 5성의 마법사지. 마찬가지로 A급 용병이고. 이름은 시악스. 성은 모르고.”

“음…….”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도 비슷할걸. 좋게 말하면 조용하고 나쁘게 말하면 음울한 성격이라서 다가가기 힘들거든. 뭐라고 해야 되나. 약간 벽을 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알콘이 어깨를 으쓱인다.

“용병 중에선 은근히 저런 자들이 많지. 개인적 성향이 강한 부류 말이야.”

“용병 생활은 오래했습니까?”

“내가 알기로 최소 5년은 했을 거야.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지. 필라트 주변에서 상주한 지 꽤 시간이 되서 근방에서는 ‘녹색바람의 시악스’라는 이름으로 제법 유명해.”

그녀가 모습을 숨긴 건 그리 놀랍지 않다. 과거에도 엘프의 외모는 항상 눈에 띄었기 때문에 항상 로브를 푹 눌러쓰고 다녔던 것이다.

‘엘프들도 이제 마법을 배웠으니까. 지금의 세상에는 그녀처럼 정체를 숨긴 채 행동하는 엘프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어.’

프레이는 그녀를 주시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 쪽에서 먼저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저녁을 배식을 받은 시점에 시악스가 다가왔다. 프레이는 일부러 남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 스프를 떠먹고 있었다. 다행히 알콘도 다른 용병들과 부대끼고 있었다.

“잠깐 괜찮은가, 젊은이.”

프레이는 힐끗 시선을 주며 태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고맙네. 아. 나는 시악스라고 하는 늙은이일세. 자네는 분명… 카인 릭스톤이었지?”

프레이는 늙은이처럼 말하는 시악스가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봤자 자신의 눈에는 절세의 미녀가 애써 노인의 말투를 흉내 내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게 이상한 건 아닌가. 하이엘프에 저 외모면 적어도 100살은 되었을 테니.

“제가 카인 릭스톤입니다. 녹색바람 시악스 님, 고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음. 별건 아닐세.”

노골적인 금칠에도 난처한 듯이 볼을 긁적일 뿐이다. 확실히 용병에 걸맞은 성격은 아니었다.

“제게는 무슨 볼일입니까?”

프레이가 직설적으로 묻자 잠깐 망설이던 시악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혹시 정령사인가?”

“네?”

“정령의 기운을 느껴져서 말이야. 그것도… 상당히 희귀한 정령의 기운이.”

‘아.’

그제야 프레이는 시악스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어둠의 정령 ‘다크밍’과 계약을 맺은 것을 눈치챈 것이다. 하이엘프들의 정령사로서의 자질은 굉장하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재능 있는 자들은 초월자로 분류되는 정령왕과도 계약을 맺는다.

아마도 그녀는 상당한 수준의 정령사일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정령과 계약을 맺은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겠지.

마치 자신이 그녀의 환각마법을 꿰뚫어본 것처럼.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숨길 일은 아니었으니까.

“시악스 님은 정령사입니까?”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네.”

“저는 정령과 계약을 맺긴 했지만 정령사는 아닙니다.”

지팡이를 흔들며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묘해진다.

“어떤 정령과 계약을 맺었나?”

“그것까지는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 시악스 님은 제가 정령과 계약을 맺은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

그러자 시악스의 표정이 대번 난처해진다. 아마 핑계는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물은 것 같다.

프레이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그녀의 정체가 엘프인 걸 알고 있다. 이 이상 추궁할 필요는 없다.

“말 못 할 이유라면 괜찮습니다.”

“고맙네.”

“대신 다른 질문을 해도 괜찮습니까?”

“물론. 최대한 대답해 주겠네.”

“시악스 님이 이 임무를 받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

시악스는 잠시 망설였다. 기색을 보니 이것도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앞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어떻게든 쥐어 짜내는 투로 얘기한다.

“숲에 출현했다던 언데드가 신경이 쓰여서.”

“언데드가?”

“그렇다네. 대밀림 근처에 언데드가 나타난 건 이례적인 일이야. 적어도 지난 천여 년간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지.”

프레이가 낮게 웃었다.

“천 년이라.”

그러자 시악스가 몸을 움찔거렸다. 인간이 선택하기엔 세월의 단위가 너무 크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프레이는 시악스가 왜 남들과의 교류를 피하고 평소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거짓말에 서툴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도 잘 인지하고 있다. 실수로 이상한 말을 내뱉어 의심을 사기보다는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 걸 택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추한 늙은이의 외모를 연출한 거겠고.

‘애초에 엘프가 거짓말을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고.’

그래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적어도 4,000년 전의 엘프보다는 훨씬 융통성이 생긴 것이다.

“스프가 식겠습니다.”

“…그렇군.”

다시 한 번 화제를 바꿔 주자 시악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스프를 먹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자신도 식사를 이어갔다.

알콘의 호언장담대로, 초원에서는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평안한 여정이 계속되었다. 용병들도 풀어진 태도였고, 알콘 또한 그걸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고 숲에 진입하게 된 시점부터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다.

알콘도 여태까지의 여유로운 태도를 완전히 지우고,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큼 딱딱한 표정이 되었다.

“오늘부터는 수시로 주변을 감시한다. 총 3개조로 나누어 운영하고, 별도로 2개의 정찰조를 더 만들겠다.”

알콘은 각 인물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조장과 조원을 정해 주었다.

거기에 프레이와 시악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만이 아니라 불침번이나 야영, 식사 준비, 그것들의 뒤처리에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덤키의 말대로 용병계에 있어 마법사는 귀족이었다. 주변 용병들도 마법사들에게 부럽다는 시선을 보낼 뿐,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프레이도 주변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환각마법 아래 감춰진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고작 언데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프레이의 표정이 심각해진 건 다른 것에 있었다.

희미하지만 신력의 편린이 느껴진다.

‘…이곳에 어포슬이 있단 말인가?’

에이제그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는 언데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에이제그가 떠난 이후에 데미갓의 수족들이 이 숲을 찾은 걸까?

언데드, 그리고 데미갓. 언뜻 보면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순간, 프레이는 베니앙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로드가 가장 신임한다고 알려진 존재가 다섯 있어요. 데미갓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힘을 가진 그들을, 우리는 [아포칼립스]라고 부릅니다]

[로드만큼은 아니지만, 그들 또한 데미갓들에게 강한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아포칼립스 중에서 셋의 힘을 파악했어요. 칼, 독, 그리고 죽음이죠.]

‘…죽음을 다루는 데미갓.’

서클이 만든 대형 토벌대를 괴멸시킨 그 데미갓의 능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트로우맨 링즈의 서클 라운더로 있는 동안 정보를 얻은 것이다.

‘저항력이 약한 자들은 닿으면 즉사하는 연기를 토해 낸다고 했지. 그것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자들을 수족으로 부릴 수도 있고.’

그렇다면 언데드의 기원은 데미갓에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반신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그건 파괴자로서의 면모만 보았을 때다.

적어도 프레이는 그들이 창조의 권능을 행사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곳에 진짜 데미갓이 있는 거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된다. 지금의 경지로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테니까. 그러나 프레이는 그 확률이 낮은 것을 알고 있다.

‘만약 데미갓이 있다면 신력의 흔적이 이렇게 옅을 리가 없지.’

이곳에 있는 건, 혹은 있었던 건 데미갓의 어포슬이나 그 수하일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프레이에겐 오히려 기회가 되는 것이다.

어포슬을 죽이고 결정을 손에 넣으면 8성의 길로 크게 한 발자국 내디딜 수 있으니.

프레이가 신경 쓰이는 건 대밀림 근처에 있다는 무왕권의 계승자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왜 숲에 있는지 이유를 몰랐다. 혹시 데미갓과 관련되어 있다든가.

‘아니면 그놈이 데미갓의 부하라든가.’

프레이는 그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카사진의 진전眞詮을 이은 후계자가 데미갓의 꼭두각시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프레이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죽일 것이다.

카사진은 항상 무왕권이 데미갓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무술이 될 것이라 말했다. 프레이는 그 말을 존중한다. 그 또한 죽은 친우의 무술이 더럽혀지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 * *

숲에 진입하고 이틀째 되는 날, 정찰조장 중 하나가 알콘에게 보고했다.

“알콘 대장! 7시 방향에서 언데드 무리가 발견되었소!”

알콘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더 자세히 말해라.”

“더 다가가면 눈치챌 것 같아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수십 구요. 구울이나 스켈레톤 같은 하급 언데드만이 아니라, 듀라한과 데스 나이트도 같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오.”

“7시 방향이면… 제길. 경로상 충돌을 피할 수도 없군.”

알콘이 투덜거리며 검을 뽑았다.

“렉슬러, 넌 이곳에서 마차를 지켜라. 용병을 열 명 붙여 주지.”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모두 나를 따라오도록 한다. 카인, 무기에 인챈트 마법을 걸어 줄 수 있나?”

“네.”

“좋아. 시악스 님도 좀 도와주십시오. 작업이 끝나는 대로 곧바로 출발할 테니 서둘러 주시고.”

빛을 제외하고 언데드에게 가장 잘 통하는 속성마법은 불이다. 프레이는 용병들의 무기에 화 속성 인챈트를 걸어 주었다. 이걸로 하급 언데드는 재생하지 못하고 쉽게 처치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데스 나이트나 듀라한 같은 고위 언데드다.

놈들은 최소 5성 마법이 아니면 제대로 데미지를 줄 수 없을 것이다. 프레이는 우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알콘의 표정을 봐서는 자신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S급 용병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겠군.’

잠시 후 토벌대가 출발했다. 프레이와 시악스는 사제와 함께 끝단에 위치하게 되었고, 가장 앞에는 레인저들이 서게 되었다.

사박.

용병들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몇몇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언데드와의 싸움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용병들도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한다. 특유의 끈질김과 그로테스크한 외모, 악취가 사자死者 특유의 더러운 느낌이 너무나도 거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데스 나이트나 듀라한 같은 고위 언데드는 A급 용병이라고 해도 목숨을 걸어야 될 정도로 강대한 존재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한 용병단은, 펼쳐진 광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건.”

“여기서 무슨 일이…….”

언데드들이 있던 곳.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있었던 장소에는 그들이 남긴 잔해물밖에 없었다. 부서진 뼛조각과 곤죽이 된 썩은 살덩이, 산산조각 난 칠흑의 갑옷들.

언데드들은 전멸해 있었다.

“바, 바로 방금 전이었는데.”

“아직 30분도 안 지났잖아.”

자연히 소멸한 것이 아니다. 이건 누군가가 직접 없앤 것이다. 언데드의 시체라고 하니 어감이 이상하긴 했지만, 프레이는 그중 데스 나이트의 시체에 주목했다.

가슴에 커다란 주먹 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등의 갑옷은 무언가가 뚫고 나온 것처럼 찢겨져 있다. 데스 나이트의 갑옷이라면 강철보다 단단한 강도를 가졌을 텐데, 그게 종잇장처럼 찢긴 것이다.

‘마나를 불어넣어 내부부터 박살 낸 거다.’

아마 갑옷 안은 바깥보다 훨씬 처참할 것이다.

프레이는 언데드를 모조리 없앤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무왕권의 후계자. 그가 틀림없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