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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41화 (41/857)

41화 어포슬Apostle (2)

리암슨은 마을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하는 걸 깜박했는데 중간에 이상한 시체가 하나 있더군.”

이상한 시체라?

곧바로 리암슨이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마을 중앙에는 까맣게 그을린 시체가 있었다.

카밀이 쪼그려 앉아 시체를 살펴봤다. 혹시 몰라 만지진 않았다.

사인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불에 탄 게 아니야. 이건 전격에 당한 것 같은데.”

“뇌전을 다루는 데미갓의 어포슬인가 보군.”

프레이는 그 말에 미켈을 바라보았다.

“어포슬은 데미갓의 힘을 대행한다고 말했죠. 어느 정도까지 그 힘을 빌려올 수 있습니까?”

“음. 그러고 보니 그것에 대해 자세히 말해 준 적이 없었군.”

미켈은 내심 자신이 프레이를 베테랑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웬만한 일에도 평정심이 흐트러지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그가 도저히 루키로 취급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데미갓이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힘을 대륙에 온전히 행사할 수는 없다네. 우리는 모르지만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특정한 구역이 아니라면 그 힘을 제한받지.”

그것까지는 알고 있다. 중요한 건 그 조건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했다는 거지만. 짚이는 건 있지만 확신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프레이는 내색하지 않고 미켈의 말에 집중했다.

“그 제한을 벗어날 수 있는 게 바로 어포슬이란 존재일세. 모든 데미갓은 자신의 의지하에 한 명의 어포슬을 만들 수 있다네.”

“한 명이 최대입니까?”

“우리가 알기로는 그렇다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어포슬은 자신이 모시는 데미갓의 권능을 빌릴 수 있게 되고.”

프레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서클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절망적인 상황 아닙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네. 데미갓에게도 나름대로 리스크가 있으니까.”

프레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리스크라 하심은?”

“어포슬을 죽이면 그 영향이 데미갓에게까지 간다네.”

미켈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서클에선 카스트카우에 숨어 있는 데미갓들의 존재를 몇 파악하고 있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세월이 걸려 얻어낸 귀중한 정보야.”

그건 대단한 일이었다.

데미갓이 작정을 하고 모습을 감춘다면, 추적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그 소재를 찾기 요원하니까.

그러나 프레이는 이 대목에서 데미갓의 오만함을 엿봤다.

아마 그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엿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대처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리키는 건 명백하다.

제깟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던 자신들을 해할 수 없으리라 확신하는 것이다.

“한 번은 카스트카우에 있는 데미갓의 어포슬을 토벌한 적이 있었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지.”

“신기한 일?”

“데미갓이 사라졌네.”

“……!”

미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우리는 확신했다네. 어포슬을 죽이면 그 영향이 데미갓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프레이에게는 그 이상의 낭보가 없었다.

데미갓과 정면으로 붙는 게 미친 행위란 건 이미 과거에 겪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다른 방법으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포슬이란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굳이 그런 존재를 만든 이유가 뭘까?’

분명 4,000년 전에는 없었던 존재였다.

긴 세월을 지내면서 어포슬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걸까?

아니면 원래 쓸 수 있었지만, 이제야 꺼낸 다른 이유가 있을까?

‘…….’

아무튼 여기서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더 생겨났다. 데미갓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어포슬을 토벌할 가치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일세.”

“충분합니다.”

그때 주위를 둘러보던 리암슨의 시선이 마을 뒤쪽에 있는 언덕에 닿았다.

“얘기 끝났으면 이제 어포슬을 찾으면 되겠군. 나와 스승님은 저 언덕 위로 올라가 보겠다. 주위 일대가 한눈에 보일 것 같군.”

“그럼 나와 미켈 님은 마을을 한 번 더 훑어보지요.”

“그러세.”

리암슨과 카밀이 사라졌다.

미켈은 홀로 남은 프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스물입니다.”

그 말에 미켈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스물……! 그 나이에 7성의 경지를 이룩했단 말인가. 정말… 정말 믿을 수 없군.”

그의 경악은 당연한 것이었다.

대륙의 역사를 거슬러도 저 정도로 젊은 나이에 7성의 경지를 이룩한 마법사는 없을 테니까.

천재라는 말도 부족할 만큼의 재능이 아닌가?

“서클에는 7성 마법사들이 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도 않아. 7성이라면 어느 서클에 가더라도 포스 아너의 직급을 받을 수 있네.”

셰퍼드, 그리고 루케스라는 마법사가 포스 아너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 높은 직위는 서클 라운더, 그리고 서클 마스터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프레이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입을 열었다.

“피스파인더 암릿에 흥미가 생기는군요.”

“음? 우리 서클에 관심이 있나?”

“이리스 피스파인더의 흑마법과 계약, 소환술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마법사라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후후! 그렇군.”

미켈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는 셰퍼드의 반응으로, 각 서클원들이 스스로 소속된 단체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다.

미켈은 그 사실을 모르고 낮게 웃었다.

‘만약 프레이가 우리 서클에 온다면 엄청난 힘이 될 거다.’

어쩌면 루시드 소드나 스트로우 네클레스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 나갈 수도 있다.

이 전도유망한 젊은이의 재능이 널리 퍼진다면 서클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기를 쓰고 프레이를 데려가려고 눈을 부릅뜰 테지.

본격적인 영입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먼저 침을 묻혀 둘 수 있는 것. 이건 굉장한 이점이다.

판단을 마친 미켈이 입을 열었다.

“피스파인더 암릿, 루시드 소드, 그리고 스트로우 네클레스. 이 세 개의 서클을 두고 흔히 삼강三强이라고 부른다네. 구성원이 가진 힘이나 숫자, 영향력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지.”

“그렇군요.”

“우리 피스파인더 암릿은 다른 두 개의 서클에 비하면 수가 적은 편일세. 애초에 우리는 계약자나 소환사의 비중이 크니까. 물론 나처럼 순수한 마법사의 비중도 적지는 않지만.”

계약자는 마계魔界에 있는 악마들과 계약을 맺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소환사는 그 악마, 혹은 마물들을 소환하는 자들을 말한다.

미켈의 말대로 소환사나 계약자라는 직업은 마법사 이상으로 재능에 대한 영향력이 깊다.

단순히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수장이신 마스터 알탄께서는 마계의 대공 중 하나인 바르바토스와 계약을 맺었다네.”

“탐욕의 바르바토스와?”

그 말에는 프레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계의 대공들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그 이상으로 위험하고 오만한 존재다. 인간들을 벌레 취급하는 걸 당연시 여기기 때문에 인간이 대공급 악마와 계약을 맺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미켈의 얼굴에 뿌듯함이 어렸다.

“자네도 마계의 악마에 대해 조금 알고 있나 보구먼. 내 말은 전부 사실일세.”

“그건… 대단한 일이군요.”

프레이도 대공과 계약을 맺은 건 이리스밖에 보지 못했다. 그녀는 무려 세 명이나 되는 대공과 계약을 맺었긴 했지만, 그 알탄이란 남자도 한 명의 대공이랑만 계약을 맺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피스파인더 암릿이라고 해서 마녀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군요.”

“말했지 않나. 나 같은 순수한 마법사도 있다고 말일세. 모든 서클이 그렇다네. 스트로우 네클레스에도 마도무인이 있고, 루시드 소드에도 마법사가 있다네. 수준은 약간 떨어지고 수도 적지만.”

미켈은 리암슨이 있는 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직업은 큰 문제가 아니라네. 비밀결사를 표방하는 주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서클은 개방적인 조직이야. 그건 저자들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하긴. 다크엘프와 손을 잡고 싸울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으니까.

“이건 특별히 말해 주는 건데, 우리 서클의 포스 아너 중엔 하프 데몬도 있다네.”

“…….”

이후에도 미켈은 쉴 새 없이 피스파인더 암릿의 장점에 대해 열거했다. 프레이는 흥미 있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역시 핵심적인 정보는 말해 주지 않는군.’

가장 궁금한 서클 마스터, 서클 라운더의 정체에 대해선 더 이상 일언반구도 없다.

그나마 서클 마스터의 이름이 알탄이라는 것과, 대공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이것 또한 핵심적인 정보는 아니었다.

아마 알탄이 대공과 계약했다는 사실은 웬만한 서클원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 정도 업적은 내세워야 삼강이라는 위명에 부끄럽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미켈이 아는 게 별로 없을 가능성도 있겠어.’

미켈은 제3마탑의 층주를 맡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지만, 서클에서는 간부의 직위조차 얻지 못한 서클원일뿐이다.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으면 셰퍼드 정도의 간부와 얘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얘기가 대강 마무리될 때쯤 리암슨과 카밀이 돌아왔다.

카밀이 특유의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언덕 너머에 숲이 있는데 거기가 수상하더군.”

“수상해?”

“피비린내가 났고 숲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죽은 숲. 그건 죽은 숲이었어.”

리암슨이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크엘프도 일단은 숲의 종족이기 때문에 숲이 손상된 광경을 보면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우선은 숲의 앞까지 갔다. 프레이는 묘하게 기분 나쁜 바람을 맞으며, 리암슨이 말한 ‘죽은 숲’이 어떤 느낌인지 실감했다.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싱그러운 숲내음도 나지 않는다. 마치 생명이라는 단어만 쏙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카밀이 혀를 찼다.

“이건 껍데기만 남은 거야. 나무까지 모두 죽었어.”

“생기를 모두 빨린 건가.”

“맞아.”

카밀은 프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쪽 무릎을 꿇고 대지에 손바닥을 댔다.

“…숲 전체가 함정일 가능성이 높아. 무언가 결계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어 엿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들의 눈빛이 저절로 프레이에게 향했다.

“어쩔까?”

“…….”

프레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미 죽은 숲이라고 했지. 그러면 모두 날려 버려도 괜찮겠나?”

“상관은 없지만 어떻게? 결계까지 있어서 불로 태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태울 생각은 없어.”

숲에 불을 지르는 건 위험하다. 프레이는 숲에 가까이 다가간 다음, 천천히 살펴봤다.

‘이거군. 결계.’

카밀이 말한 대로 숲을 둘러싼 막이 느껴졌다. 프레이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리암슨이 카밀을 바라보며 말했다.

“프레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거죠?”

“…식을 살피고 있는 것 같은데.”

“결계의 식요?”

“그래.”

카밀이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이미 만들어진 식을 파훼하는 건 무척이나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모된다.

미켈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 정도 결계를 완전히 파훼하려면 최소 이틀은 걸릴 텐데…….’

식을 파훼하려면 마법사의 경지도 경지지만, 무엇보다 두뇌가 특출해야 한다. 수십, 수백 개로 얽혀 있는 식들을 오로지 암산으로 답을 도출해 내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실수한다면 훨씬 꼬이거나, 그 리스크를 직접 몸으로 받기도 한다.

그때 프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돌아왔다. 카밀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대로 파훼할 거라면, 우리가 보초를 서 줄게. 너는 식에 집중해.”

“그럴 필요 없어.”

프레이는 이상한 눈으로 카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면?”

“결계는 이미 파훼했다. 이제 다음 단계다. 숲 전체를 쓸어버려야겠어.”

“뭐, 뭐?”

“잠깐 물러나.”

카밀과 리암슨, 그리고 미켈까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프레이는 숲을 바라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윈드스톰Windstorm.”

휘이잉.

일대에 광폭한 바람이 불었다. 미켈은 급히 배리어를 시전했다. 바람이 너무 거칠어서 몸이 날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카밀과 리암슨도 급히 배리어 안으로 들어왔다.

쿠우우.

프레이의 로브가 거세게 펄럭였다. 그의 앞에 생겨난 거대한 폭풍은, 이미 자연재해급으로 커져 있었다.

미켈이 입을 쩍 벌린 채 그 가공할 마법을 올려다보았다.

‘마, 말도 안 돼.’

요동치는 마나! 그리고 폭풍!

미켈은 프레이가 갓 7성에 진입한 마법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가 선보이는 마법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건 이미 경지를 대성했다고 칭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쿠와아아.

폭풍이 문자 그대로 숲을 박살 내며 전진했다. 나무가 뿌리째로 뽑혔고, 거대한 바위가 조약돌처럼 하늘을 날아다녔다.

카밀조차도 그 초월적인 광경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폭풍이 멎었을 때.

“…….”

완전히 박살이 난 숲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프레이는 깨달았다. 저 남자가 어포슬이란 사실을.

그때였다.

남자의 얼굴을 본 미켈의 눈이 찢어질듯 부릅떠졌다.

“이,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돼.”

“아는 사람입니까?”

“아, 아너 루케스……!”

“뭐?”

리암슨의 표정이 뒤틀렸다.

미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분은 제3마탑의 부탑주인 아너 루케스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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