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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37화 (37/857)

37화 아델리아 (1)

“으으으……!”

니키타가 앓는 소리를 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눈엔 핏발이 섰다.

그가 모든 신경을 극한까지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도 에너지 볼은 주먹보다 더 작아지지 않았다.

그가 필사적으로 층주를 바라보았다.

“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게 자네 한계일세. 더 작게 만들려고 하면 신경이 망가질 게야. 이만 마나를 거두게.”

“으으…….”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대다수의 마법사들의 한계가 그 정도였다.

에너지 볼을 줄이지 못한 마법사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흠… 통과.”

“돼, 됐다!”

물론 합격자도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린 몇몇이 쾌재를 불렀고, 층주들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합격을 선고했다.

그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제3마탑의 층주 중 한 명인 미켈은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번 시험의 수준은 평균 이하인가.’

그때 미켈의 시선이 두 명의 다크엘프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있는 에너지 볼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남자 엘프의 앞에 있는 에너지 볼도 훌륭했지만, 여자 엘프의 에너지 볼은 거의 손톱만 한 크기였다.

미켈은 그녀의 정밀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마법을 배운 지 얼마나 됐소?”

“20년.”

“으음……! 훌륭하군. 합격이오.”

그런 다음 덧붙인다.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더 시험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군. 마도서의 열람을 허락하겠소. 자네들도 동의하나?”

“동의하겠다.”

“훌륭하군.”

층주들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과 리암슨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프레이에게 손을 흔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부럽다.”

“젠장. 재능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마법사들이 질투 섞인 시선으로 엘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미켈의 시선은 다음 순서를 향하고 있었다.

프레이였다.

그의 앞에는 에너지 볼이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미켈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뭐야? 포기한 거야?”

“그런 것 같은데.”

“근데 뭐 저리 당당하게 서 있어?”

“역시 저놈은 전형적인 마도무인인 모양이군.”

“다크엘프랑 치고 박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 마법에도 능할 리가 없지.”

그때였다.

미켈이 뚜벅뚜벅 프레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믿을 수가, 없군.”

미켈은 프레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건 허공이었다.

아니, 허공이 아니었다.

처음엔 의아하던 마법사들이 하나둘 눈가를 좁혔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의 얼굴에도 경악이 번져 나갔다.

“저, 저…….”

“마, 말도 안 돼…….”

그제야 마법사들은 깨달았다.

프레이의 눈앞에 있는, 티끌만 한 에너지 볼의 존재를.

‘이 정도까지 축소화시키다니?’

미켈조차 저 정도까지 줄일 자신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느 층주에게 물어도 답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건 마법의 경지가 높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자네의 이름은?”

“프레이.”

“…프레이. 그렇군.”

잠시 고민하던 미켈이 또렷한 눈동자로 말했다.

“자네도 더 이상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네.”

“그 말씀은?”

“통과일세. 그리고…….”

그는 주위를 힐끗 둘러보며 말했다.

“괜찮다면 잠시 얘기나 나누지 않겠나?”

* * *

프레이는 미켈을 따라 마탑의 9층으로 올라갔다.

마탑에 머물고 한 달이 지났지만 이곳에 온 건 처음이었다.

7층 위는 마탑의 중요 관계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켈은 프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디 출신인가?”

중의적인 질문을 던지는군. 그러면서도 일부러 타이푼의 귀걸이에 힐끗 시선을 준다.

여기에 대한 화제를 이어 가고 싶지 않다면, 블레이크 가문이라고 대답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레이는 그러지 않았다.

“제3마탑은 셰퍼드 공작의 소개로 오게 되었습니다.”

“으음.”

서클의 일원인 셰퍼드의 이름을 말하자 미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군. 이번에 아너 셰퍼드가 제대로 된 인재를 찾았어.”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하다.

“스트로우 네클레스에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호오. 떠돌이 출신이었구먼. 그렇다면… 우리에게 오겠나?”

설마 이렇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질 줄은 몰랐기 때문에, 프레이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우리라면?”

“피스파인더 암릿일세.”

3대 세력 중 하나인가.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어느 곳에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거 아쉽군.”

“그것 때문에 부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최소 5성의 경지를 달성한 마법사로 보이는군. 틀렸나?”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반쪽짜리 7성이긴 하지만, 최소 5성이란 말도 틀리진 않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켈의 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자네는 데미갓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어느 정도는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얼마 전에 우티아노에서 데미갓의 흔적이 발견되었네.”

“……!”

프레이의 눈에 싸늘한 기색이 감돌았다.

“흔적이라면?”

“정확히 얘기하면 그들을 숭배하는 광신도들의 흔적이지. 데미갓에게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의식마저 빼앗긴 자들이야. 물론 그러한 자들은 대개 잔챙이니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닐세. 하지만 그들 중에 어포슬이 있을 확률이 높아.”

“……?”

“모르나 보군. 데미갓에게 직접 선택받은 존재. 그들은 스스로를 어포슬Apostle이라고 부른다네. 그들은 데미갓의 전유물인 신력神力을 사용할 수 있지.”

처음 듣는 존재다.

적어도 4,000년 전에는 없었다.

“우티아노는 나와 아너 루케스가 담당하는 구역일세.”

“아너라는 건 뭡니까?”

“음. 자네는 서클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별로 없군.”

그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설명했다.

“포스 아너. 간단히 얘기하면 서클의 간부일세. 그보다 높은 직위는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서클 마스터와 2인자인 서클 라운더밖에 없지.”

셰퍼드도 포스 아너라고 들었다. 그의 경지는 7성이었으니, 서클에서 간부를 맡으려면 7성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서클 마스터와 서클 라운더는 그보다 더 강할 확률이 높겠어.’

프레이는, 어쩌면 귀환을 하고 가장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었다.

“서클 마스터께서는 어느 정도의 경지를 이룩했습니까?”

“…….”

미켈이 잠시 말문을 잃은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에 대해선 나는 할 말이 없네. 서클 마스터의 경지는 나 따위가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프레이가 보기엔 미켈도 어디 가서 꿇릴 수준의 마법사는 아니었다.

최소 6성의 경지 중입에는 다다른 실력이 분명하다.

그런 미켈이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서클 마스터의 경지가 궁금했다.

‘…반년, 아니. 이제 5개월 뒤에 있는 시험.’

그곳에 가면 서클 마스터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을 것이다.

자신과 친우들의 이름을 잇는 자들.

현대에서 데미갓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고 있고, 그들과 대적할 힘을 가진 확률이 높은 자들이다. 때문에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만나야 될 자들이기도 하다.

프레이는 그들이 순수하게, 과거의 영웅을 향한 동경심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웠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4,000년 전의 영웅들은 모든 인간들에게 신화적인 인물들이다. 프레이는 여러 책을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 누구보다 지혜로웠다고 칭송받는 슈하이저 스트로우.

마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버린 이리스 피스파운더.

무예의 끝을 보았다고 전해지는 카사진.

검 한 자루로 제왕의 위치에 오른 루시드.

그리고 역사상 유일하게 대마도사의 이름을 허락받은 루카스 트로우맨.

이목을 끌고, 사람을 모으기에 자신들 이상으로 적합한 미끼도 없었을 테지.

물론 원망할 생각은 없다. 데미갓과 맞서 싸우려면 이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이용해야 된다.

그 생각엔 프레이도 적극 찬성이다.

다만 정도를 넘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

직접 만난다면 그들의 실력과 진의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서클에 들어가지도 않은 저에게 어포슬에 대한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뭡니까?”

“…지금 마탑에는 서클원이 없다네. 아너 루케스는 급한 일이 생겨 아지트에 호출되었고. 그러던 와중에 어포슬의 흔적이 발견된 거라네.”

여기까지 말하자 프레이도 그의 의도가 예상이 갔다.

“제 도움을 바라십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네.”

미켈은 양손으로 깍지를 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너 루케스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말 것을 명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마을 몇 개가 흔적도 없이 증발할 수도 있어.”

“굳이 외부인인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는… 마탑에 서클원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네.”

스윽.

미켈이 소매를 들추자, 손목에 채워져 있는 묵색 팔찌가 드러났다. 프레이는 그것이 이리스의 유물임을 직감했다.

“서클은 지금 이상으로 은밀하게 움직여야 될 거야. 트로우맨 링즈의 서클 마스터가 데미갓에게 죽은 이후 놈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활발해졌으니까. 원래라면 우리도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얘기를 나누지는 않아.”

“…….”

“이 방만 해도 그렇다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벽면에 마도술식이 새겨져 있지.”

“엿듣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 파해할 조짐을 보인다면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짜 놨군요.”

“……! 그, 그렇다네.”

미켈은 잠시 당황해서 대답했다. 벽면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는데, 그가 짜 놓은 마도술식의 진면목을 너무나도 쉽게 파악당했기 때문이었다.

‘으음. 도무지 이십 대로는 보이지 않는군.’

마치 노회한 마법사와 얘기를 나누는 것 같다.

거기에 티끌만큼도 안 되었던 에너지 볼의 크기에 은연 중에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까지…….

미켈은 단 한 번도 인재에 탐이 난 적이 없었지만, 눈앞에 있는 청년은 예외였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잠시 헛기침을 하던 미켈이 말을 이었다.

“물론 자네에게 큰 역할을 바라는 건 아니야. 나는 자네를 보험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니까.”

“보험?”

미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실은 동맹 관계인 서클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네. 1개월 전의 일이지.”

“1개월 전이라면… 아.”

프레이가 혹시나 하는 시선을 보내자 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엘프, 그들도 서클의 일원이라네. 동시에 내가 요청한 [검은이빨]의 지원군이지.”

과연. 그렇다면 마탑의 마도서를 열람하는 걸 순순히 허락해 준 이유도 납득이 갔다.

아마도 그게 지원에 대한 대가가 아니었을까.

시험에 참가한 건 형식적인 과정이었고.

“지원군을 부른 입장에서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네. 다크엘프들의 좋지 않은 소문들을 많이 들었거든. 그때 타이푼의 귀걸이를 차고 있는 자네를 본 걸세.”

프레이가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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