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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27화 (27/857)

27화 친구 (1)

곧바로 하산하려던 프레이의 몸이 멈칫했다. 불현듯 토르쿤타의 말이 떠올랐다.

‘몇몇 녀석들은 나조차 부수기 힘든 무구를 갖고 있었다. 처리하기도 귀찮아서 대충 레어에 박아 뒀지.’

슈하이저의 던전에서 발견된 무구, 혹은 마도구들. 토르쿤타는 그것을 자신의 레어에 박아 뒀다고 했다.

프레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플라이를 써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제법 높은 곳까지 다다랐을 때 드레이크 마운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산이 보였다. 몇 개나 되는 산중에서 거기를 주목한 이유가 있었다.

멀쩡한 산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동굴. 그것도 토르쿤타의 거체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동굴이다.

프레이는 지체하지 않고 그곳으로 갔다.

동굴 근처엔 열댓 마리의 드레이크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프레이를 보자 눈을 부라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프레이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쩌저적.

그 순간 드레이크들의 몸뚱이가 단숨에 얼어붙어 버렸다. 프레이는 냉기가 풀풀 날리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수 속성 마법만큼은 7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군.’

그러나 이 정도 위력을 발휘하는 건 물, 혹은 얼음 마법들뿐이다. 나머지는 사용할 수 없다. 프로즌리버 때문에 마법의 균형이 한군데로 치우쳤다. 밸런스를 중시했던 프레이에겐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 기운을 모두 소화하려면 한 달은 걸리겠어.’

그 이후에 토르쿤타의 심장을 복용해 균형을 맞추고 다시 한 번 그 힘을 소화해 내면, 비로소 완전한 7성의 마법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이는 그 일을 우선순위의 첫 번째로 놓기로 결정했다.

동굴의 입구에 뒤지지 않게 안쪽 공간도 아주 넓었고, 약간 후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토르쿤타에게 느꼈던 열기와 비슷하다. 프레이는 이곳이 토르쿤타의 동지가 맞음을 확신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왼쪽 벽면에는 작은 구멍이 열댓 개 정도 뚫려 있었다.

그것들을 천천히 훑어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고약한 냄새가 났다. 몬스터, 그리고 인간의 시체였다. 뼛조각인 것도 있었고 아직 피가 덜 마른 것도 있었다.

조금 더 구멍들을 뒤졌다.

프레이가 찾던 건 가장 위에 있는 구멍에 있었다.

슈하이저의 무구들.

‘몇 개 없긴 하군.’

거기다 던전에 있는 무구들 중에서도 밑쪽에 포함된 무구들이다. 애초에 슈하이저의 던전에서 다섯 번째 방 이상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두고 갈 정도로 값어치가 없는 건 아니다.

‘샐러맨더의 로브, 쿤크닐의 단검, 프로시즌스, 에이즈의 목걸이.’

샐러맨더의 로브는 특히 화염마법에 강대한 내성을 가졌다. 만약 이걸 걸치고 토르쿤타와 싸웠다면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나머지 세 개는 프레이가 쓸모없는 무구들이다.

그는 로브는 바로 걸치고, 나머지 무구는 아공간 주머니에 챙겼다.

이제는 정말로 하산할 때다.

프레이는 지체하지 않고 이스파니올라로 내려왔다. 제법 서둘렀지만, 해가 뜨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는 세 번째인 술집에 방문하자, 주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대체 뭐 하고 다니는데 올 때마다 몰골이 엉망이오? 머리는 왜 또 그러고?”

만신창이가 된 꼬락서니도 그렇지만, 하얗게 센 머리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프레이의 머리카락엔 묘한 냉기가 감돌고 있어 바라만 봐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명색에 지옥산맥이지 않습니까. 별일이 다 있더군요.”

프레이가 간접적으로 대답을 거부하자, 주인도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방으로 올라가시오. 뜨거운 물을 보내드리지.”

그의 말대로 올라가고 얼마 있지 않아 한 중년 여자가 따뜻한 물을 들고 올라왔다. 아마 주인의 아내인 모양이었다.

프레이는 몸을 모두 씻은 다음, 다시 지저분해진 몰골을 대충 정리한 다음 생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스파니아 베어의 갑옷은 거의 누더기나 다름없어 그냥 버리기로 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워프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카데미로 돌아가려면 우선 카우심포니로 가야 한다.

확인해 보니 수도로 가는 워프는 저녁 7시에 있었다. 아직 열댓 시간의 여유가 있는 것이다.

프레이는 술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눈을 붙였다. 피곤해서인지 금방 잠에 들었지만, 늦지 않고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다.

‘자고 나니 조금 낫군.’

뻐근했던 피로가 조금은 풀린 것 같다.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프레이는 떠날 채비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 주인에게 인사했다.

“이만 떠나려고 합니다.”

“그렇군. 원하는 건 손에 넣었소?”

“예.”

“다행이군. 조심히 가시오.”

주인은 마지막까지 투박하게 배웅했다. 프레이도 긴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값을 치르고 워프를 이용해 카우심포니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으나, 거리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도시의 불빛이 워낙 밝아서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수도는 수도군.’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파니올라에 머물다가 오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실상 프레이가 이스파니올라에 머문 시간은 일주일도 안 되지만.

‘배편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겠어.’

이왕이면 코르테스호에 타고 싶다. 견문 넓고 인성이 좋았던 맥과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간에 항구에 뱃사람은 없을 것 같다.

프레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여관을 찾으려다가 문득 페르안의 생각이 났다. 꼭 준 가문에 방문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던 말.

‘한번 들를까.’

한 가지 곤혹스러운 점은, 페르안의 집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길을 걷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았다.

“준 가문의 저택은 어디에 있습니까?”

퇴근길을 재촉하던 남자는 웬 새파란 꼬맹이가 준 가문의 저택을 물어보자 내심 의아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스파니올라에서 씻었기 때문에 조금 나아졌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지저분하다. 생기 있었던 피부는 까칠했고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길었다.

약 한 달하고도 반을 산속에서 굴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프레이는 깨닫지 못했지만, 명문 아카데미의 상징인 생도복도 샐러맨더의 망토를 둘렀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의 프레이는 귀족의 자제로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경하러 가는 건가?’

그럴 확률이 높다. 준 가문의 저택은 무척이나 우아하고 유려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은 멀리서나마 그 모습을 눈에 담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서쪽에 있는 대로로 쭉 가면 나온다네. 일대에 있는 저택 중 가장 화려하고 커다란 곳이니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고맙습니다.”

프레이는 곧장 서쪽 대로로 걸어갔다.

삼십여 분을 걸었을까. 완전히 해가 져 캄캄해질 무렵, 프레이는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건물이군.’

가장 화려하고, 커다란 곳.

남자가 그리 말한 이유를 알겠다. 저택은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컸다. 족히 10m는 될 듯한 담장에, 정문부터 이어지는 정원의 크기도 압권이다.

프레이는 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한낱 경비병들조차 동작에 절도가 있었다. 또한 그들은 프레이의 허름한 모습을 보고도 존댓말을 고수했다. 교육이 잘되어 있다는 증거다.

“페르안을 보러 왔다.”

프레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친우의 얼굴을 보러 온 것이다. 괜히 위축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준 가문의 사용인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그건 페르안의 위상과 귀결된다.

“…….”

경비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준 가문의 작은 주인인 페르안의 이름을 새파란 애송이가 함부로 부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페르안 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지?”

“친구.”

경비병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친구? 친구라니? 고고하기로 소문난 작은 주인님이 친구?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프레이 블레이크.”

“…헉!”

그 순간 경비병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고 가문에 돌아온 직후 페르안이 했던 당부가 스쳤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내 친우가 올 수도 있다. 이름은 프레이. 블레이크 가문의 삼남이지. 혹 그가 저택을 방문한다면 나를 대할 때처럼 정중히 행동하라.]

‘하, 하지만 말씀하셨던 인상착의와는 좀 다른데.’

다른 건 몰라도 머리카락이 그랬다. 분명 색이 바랜 회색 머리카락이라고 들었는데, 이자는 하얗게 센 백발이다.

‘이 자식이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사기를 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준 가문에서 페르안의 친구를 사칭할 만큼 담이 큰 자가 있을까?

경비병이 깊은 갈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였다.

다그닥.

커다란 마치가 대로를 타고 미끄러져 왔다. 경비병들의 얼굴에 아차 하는 기색이 스쳤다.

‘아가씨가 귀가하는 시간이구나.’

그들은 우선 신원이 불분명한 프레이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 다음 급히 철문을 연다. 그러나 마차는 활짝 열린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비병들의 바로 앞에 멈췄다. 이윽고 마차의 안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사금과도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미녀였다. 나이는 프레이와 비슷한 정도,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노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색기가 느껴졌다.

그녀, 준 가문의 장녀인 라일리아 준은 경비병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아. 그, 그게. 작은 주인님의 친구분이 오셔서…….”

“오라버니의 친구? 아.”

라일리아는 페르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본가로 내려오는 배에서 마음이 꼭 맞는 친우를 사귀었다고 했다. 평소 다른 사람과 곧잘 어울리지 못했던 오라비의 일이기에, 라일리아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약간의 의구심도 품고 있었다. 페르안에게 친구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이 가만히 서 있는 프레이에게 향했다.

‘이 남자가 리치를 쓰러뜨렸다고?’

카우심포니로 오던 도중 해적이 습격했고, 그 해적단에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리치가 있었다는 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그러나 추후 제국에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원을 보냈고, 페르안의 말이 진실임이 판명되었다.

그런데도 라일리아는 납득할 수 없었다. 특히 페르안도 이기지 못한 리치를 다른 자가 쓰러뜨렸다는 말은 더욱 더.

‘오라버니보다 2살 어리다고 했는데…….’

자신과 같은 나이의 남자가 불세출의 천재라고 칭송받는 페르안보다 강하다니? 페르안이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영 미심쩍다.

라일리아는 그런 속내를 감추고 방긋 웃었다.

“프레이 님이셨군요. 오라버니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마차에 타시지요.”

“아, 아가씨?”

“위험합니다.”

경비병들이 급히 제지했지만, 라일리아는 여유롭게 웃었다.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지? 내 옆엔 니하드 경이 있는데.”

프레이는 라일리아의 옆에 서 있는 음울한 인상의 남자를 보았다. 허리춤에 칼이 채워져 있는 걸로 봐서는 기사인 모양이다. 경비병들은 그의 시선만을 받고 침을 꿀꺽 삼켰다.

라일리아의 호위인 니하드의 실력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그는 수도에서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의 칼잡이 중 하나니까.

“하지만 아직 신원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직접 오라버니의 친우라고 말씀하셨잖아. 우선은 오라버니에게 데려다주고, 사기꾼이라면 그때 처벌해도 늦지 않아.”

“…….”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라일리아는 준 가문의 자식 중에서 가장 변덕스럽고, 고집이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이상 강하게 나갔다가는 갑자기 불호령이 내릴지도 모른다. 경비병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라일리아가 방긋 웃으며 프레이에게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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