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하루아침에 달라지다 (4)
이 주일 정도가 흘렀을 때 데이비드가 돌아왔다. 그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반기는 잭과 안토니를 무시하고 프레이를 찾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가 눈을 부라렸다.
“너 이 자식, 네가 누구를 협박한 줄 알고 있냐?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나의 모든 인맥과 힘을 동원해서 너를-”
쿠직
데이비드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말을 하던 도중 프레이의 매직 미사일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으어억…….”
데이비드가 괴성을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감싼 손 사이로 피가 철철 흘렀다. 콧대가 주저앉은 것이 분명했다.
교실 한가운데서 참상을 만들고도 프레이는 무표정하게 독서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프레이를 생도들이 공포에 찬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고 콧대부터 뭉갤 줄은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내려앉은 콧대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다시 가문으로 귀환했다.
이번엔 결투가 아니었기에 프레이도 처벌을 받았다. 다행히 심한 처벌이 아니었다. 디오 교수가 힘을 써 준 것이다. 일주일의 정학과 추가 교습이었는데 그에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정학이 끝나고 등교하는 첫날이었다. 선배 생도 중 한 명이 다가와 눈을 부라렸다.
“네가 데이비드를 건든 놈이냐?”
“넌 누군데.”
도우만 때처럼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명백하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드리미드 가문의 차남인 알렉스다. 스톤해저드 가문에는 어릴 때부터 신세를 많이 졌지. 데이비드는 내가 동생처럼 귀여워하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듣던 대로 건방진 녀석이군. 선배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선배에게 무조건 존댓말을 써야 하는 교칙이라도 있던가?”
“…….”
알렉스는 잠시 할 말을 잃은 기색이더니, 곧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블레이크 가문의 낙오자가 감히…….”
“말이 많군. 드리미드 가문에 대해선 모르지만, 입으로 나불거리는 게 특징인가 봐.”
“감히 본 가문을 모욕하다니……!”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알렉스가 외쳤다.
“왜? 결투라도 하고 싶나?”
“흥. 어차피 거절할 거면서 잘도 나불대는군.”
“거절할 생각 없어.”
“…정말이냐?”
“그래. 원한다면 방과 후에 바로 붙어 주지.”
“하. 데이비드를 꺾었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졌구나. 그 말 후회하지 마라. 너에게 선배로서의 위엄을 보여 주지.”
알렉스는 으르렁거리며 사라졌다.
그리고 방과 후.
약속했던 실습장으로 가니 알렉스가 먼저 와 있었다. 프레이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구경꾼이 제법 많군.”
“크크. 왜.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할 생각을 하니 후회되나 보지?”
그냥 소란스러운 것이 싫었을 뿐이다. 그러나 알렉스는 데이비드를 꼭 닮은 비웃음을 짓고 있어 굳이 정정하기도 귀찮았다.
태도를 보니 알렉스가 사람을 끌어모은 것 같다.
“알렉스 드리미드라면 지난번 글라티드 마도 대회에서 16강까지 올라간 사람 아냐?”
“여러 마탑에서도 눈독 들이고 있다던데.”
“아카데미 교수가 된다는 소문도 있었어.”
“건방진 녀석, 드디어 저 버릇 좀 고치겠군.”
알렉스는 제법 유명한 녀석인 것 같았다.
그러나 프레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매직 미사일.”
“으억!”
“…….”
복부를 감싸 안은 채 주저앉은 알렉스를 보고, 프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말문을 잊었다.
‘마법을 쓰면서 감이나 잡으려고 했는데…….’
‘프레이’의 몸은 루카스와 다르다. 그때와 같은 마법을 같은 마나로 사용해도 위력에는 차이가 난다. 프레이는 그 미세한 차이까지 조정하고 싶었다.
홀로 연습해도 알 수 있지만 이런 실전에서 사용하면 좀 더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매직 미사일 하나에 쓰러지는 허약한 놈을 상대로는 수련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게 아카데미 생도의 평균 수준이라고?’
이들의 평균적인 나이는 열여덟에서 스무 살 정도다.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어린 것도 아니다.
적어도 과거에 보았던 마법사 지망생들은 이렇게 형편없지는 않았다.
알렉스를 쓰러뜨리자 그와 친분이 있는 생도들도 두 팔 걷고 나섰다.
“나는 길라드 가문의 장남인 골고렉스다!”
“나는 피날라크 가문의 차남인 프릭스다!”
“나는…….”
“매직 미사일.”
“꺽!”
“으악!”
“억!”
프레이는 말문을 잊고 말았다. 어쩌면 이 육체를 얻고, 마도학이 퇴보되었단 사실을 가장 절감했던 순간일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생도들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아니. 최악이었다.
물론 괜찮은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생도들도 있었다.
“프레이, 당신 말대로 해 봤어요.”
그중 하나가 지금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이사벨이다. 그녀는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지만, 흥분을 완전히 숨기진 못하는 듯하다.
“트롤의 피가 수식을 새기는 데 효과적인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마정수와 7 : 3으로 조합할 생각을 하다니……. 무척이나 획기적인 시도였어요.”
“하프트롤의 피가 조금 더 효과적이긴 하지. 몬스터 특유의 탁한 기운이 희석되어 있으니까.”
“그렇군요. 그럼 이번엔 어떤 걸 가르쳐 줄 건가요?”
“다음은…….”
프레이는 순간 멈칫했다.
‘나도 모르게 이사벨을 제자처럼 대하고 있었군.’
본능적으로 과거 제자를 가르칠 때처럼 수준에 맞는 과제를 주고, 그걸 수행하는 데 조언을 주고 있었다.
실제로 이사벨의 재능은 눈부셨다.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7성은 물론 8성까지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프레이는 이 일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근데 요즘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죠?”
“뭐가?”
“프레이 별명이 데스 미사일이라는 소문을 들었어요.”
“데스 미사일이라니?”
“매직 미사일 하나로 마법이란 마법은 다 부수고 다닌다면서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데스 미사일이란 별명이 유치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누굴 죽인 것도 아니라서 약간 억울하기도 하다.
“그 녀석들 마법이 너무 형편없던 것뿐이야.”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아카데미에서 누가 제일 강한지 물었었죠. 프레이는 생도 중에서 가장 강해지고 싶은 건가요?”
“그건…….”
프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무턱대고 부정하는 것보단 이걸 빌미로 정보를 얻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싸운 녀석들은 생도 중에서 강한 편이었나?”
“글쎄요. 그들 중에서 주황색 반지나 황금색 목걸이, 파란색 팔찌를 찬 사람은 있었나요?”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 이는 없었다.
“아니. …주황색 반지는 ‘트로우맨 링즈’겠고. 황금색 목걸이랑 파란색 팔찌는 뭐지?”
“스트로우 네클레스, 그리고 피스파운더 암릿입니다. 트로우맨 링즈와 더불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력한 클럽(Club)들이죠.”
그리운 이름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루카스 트로우맨, 슈하이저 스트로우, 이리스 피스파운더.
프레이는 묘한 향수에 잠기며 이사벨의 설명이 귀를 기울였다.
“생도들 중 웬만한 실력자는 모두 그 클럽에 들어가 있어요.”
“너는?”
이사벨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독학이 편해서요.”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근래에 프레이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던 걸 자각하고 있는지라 이사벨의 얼굴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아무튼… 그 클럽 소속이 아니라면 그리 대단한 실력자가 아닙니다. 명망 높은 가문이라도 본인의 실력은 형편없는 경우죠.”
“음.”
실력을 한번 보고 싶긴 했다. 프레이는 어떻게 하면 그들과 붙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여태까지 침묵하고 있는 걸 보니 앞서 붙었던 놈들처럼 생각 없는 자들은 아니야.’
도우만도 면전에서 제안을 거절했음에도 별말 하지 않고 물러났으니까. 데이비드 같은 녀석이었다면 발광을 해 댔겠지.
프레이는 그들의 실력이 궁금했지만, 일부러 찾아가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얌전히 방학을 기다리자.’
마법사를 지망하는 생도들의 실력을 보는 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니까.
* * *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프레이는 식이 끝난 뒤 곧바로 방으로 돌아와 지도를 펼쳤다.
‘텔레포트를 못 쓰는 게 아쉽군.’
최소 7성은 되어야 쓸 수 있는 마법이니, 운이 좋으면 돌아올 때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기숙사의 좌표까지 구해 놓았다.
“좋게 생각하자.”
세상을 보고 견문을 넓혀야 한다.
이론적인 지식은 대략적으로 섭렵했지만, 좁은 아카데미에서 글과 그림으로만 공부하는 것보다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될 거다.
우선은 이 나라, 카스트카우 제국의 수도인 카우심포니로 가야 한다. 다른 길도 있겠지만 그곳에 있는 ‘워프석’을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하다.
워프석이란 것의 존재는 프레이의 흥미를 끌었다. 4,000년 전에는 없었던 이동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금액이 비싸긴 하지만 무척 효율적이고 안전해.’
다른 건 몰라도 워프석을 상용화시킨 건 아주 훌륭한 생각이라고 보았다.
물론 말했다시피 가격이 비싼 게 유일한 흠이었다. 지금 프레이의 전 재산은 약 1골드에 불과했다. 괜찮은 여관에 한 달 정도는 머물 수 있는 금액이지만, 수도는 물가가 더 비쌀 게 분명했다.
명색에 귀족이란 놈의 전 재산이 1골드라니. 다시 한 번 프레이의 처지가 처량했지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은 수도로 가서 생각하자.’
사람이 많은 곳이니 돈을 벌 방법은 많을 것이다. 정 안 되면 몬스터라도 때려잡아야겠지.
프레이는 아카데미의 남문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간 뒤 십여 분만 걸으면 커다란 강이 나온다.
거기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는 게 카우심포니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게다가 아카데미 생도라면 뱃삯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주목해야 될 사실이었다.
프레이는 강까지 쭉 이어진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생도들이 많군.’
카우심포니는 제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살고 있다. 귀족의 비율은 그보다 훨씬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윽고 강에 다다랐다. 웅장하게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배의 모습이 보였다. 강이 조금만 더 작았어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이 될 뻔했다.
그러나 생도가 너무 많았다. 프레이의 차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허용 인원이 꽉 차고 말았다.
곤혹스러워하는 프레이에게 한 선원이 다가왔다.
“웨스트로드 아카데미의 생도분이십니까?”
“그런데.”
“생도증을 볼 수 있겠습니까?”
프레이는 아카데미에서 발급받은 생도증을 보여 주었다. 선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특히 위조가 불가능한 웨스트로드의 인감을 꼼꼼하게 확인한 다음 말쑥하게 웃었다.
“실례했습니다. 니틀러스 호는 만원이군요. 다음 배는 나흘 후에나 있을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배에 승선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당신들 배?”
“네.”
선원은 그리 말하고 한쪽을 가리켰다. 커다란 배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곳에도 배가 한 척 있었다.
크지는 않다. 앞서 만원이 된 배보다 두 배는 작았다. 그러나 허름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심플하고 우아한 곡선이 엿보였다.
“도시국가 지오탄불을 경유하긴 하지만 날씨만 괜찮다면 닷새 내로 카우심포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닷새. 그리 느린 속도는 아니다. 프레이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을 물었다.
“뱃삯은?”
“물론 아카데미 생도분이시라면 무료입니다.”
이것도 좋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될 처지니까.
“그 배에 사람들이 타지 않는 이유가 있나?”
프레이의 말에 선원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저희는 호위 군함이 두 척밖에 붙질 않았거든요. 아시다시피 이 배는 오스칼 제도를 지나가는데, 거기 있는 해적들 소문이 워낙 흉흉한지라…….”
선원은 거기까지 말하고 번쩍 고개를 들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갈매기 똥구멍만큼도 없습니다! 코르테스호의 호위함에는 4성 마법사분이 두 명이나 타고 있으니까요. 무려 마탑 출신의 배틀 메이지십니다. 해전(海戰)에서는 거의 사신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지요! 해적 새끼들은 마법사님 로브 자락만 봐도 꽁무니 빠지게 튈 겁니다!”
안심을 주려고 급하게 말하다 보니 저급한 말이 튀어나왔다.
프레이는 큰 상관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선원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코르테스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목적지까지 신속안전하게 데려다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선원의 나이는 프레이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어린 것 같다. 싹싹한 미소를 짓고 있긴 하지만 앞니가 하나 없는 게 흠이다.
“그럼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프레이는 선원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