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00년 만에 귀환한 대마도사-7화 (7/857)

7화 하루아침에 달라지다 (2)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데이비드는 일찌감치 공터에 나와 있었다. 마침 의무실을 들렀다 온 안토니가 말했다.

“잭은 괜찮다더라. 저녁쯤이면 일어날 거라는데?”

“증상은 뭐래?”

“교수님도 아직 모르신대. 뭐, 마나 탈진이겠지.”

“흠.”

데이비드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생도들이 모이고 있다.

제인 교수가 모습을 드러낸 건 거의 막바지였다. 그녀는 아카데미에 몇 없는 여교수였지만, 나이가 마흔을 넘겼는데도 미혼이었다. 그녀의 수업을 한 번이라도 들은 생도들은 그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케빈 교수와 비슷할 정도로 성격이 나쁘다. 그리고 수업에 열성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마지막 사항은 데이비드에게 특히나 중요했다.

만약 오늘 수업의 담당 교수가 디오였다면 목적을 이루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는 모든 생도를 공평하게 대했다. 아마 불세출의 천재라 칭송받는 페르안과 떨거지 프레이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인은 다르다. 데이비드는 그녀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좋은 쪽으로 이용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와?’

설마 도망간 건 아니겠지? 데이비드는 그리 생각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예전의 프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놈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마침 프레이가 실습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비드가 이죽이려는 순간이다. 그의 옆에 있는 이사벨의 얼굴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이사벨 트리즈나인? 그녀가 왜 프레이 옆에?’

그들은 무언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 놀라운 건 이사벨의 표정이다. 평소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지금은 표정에 생기가 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을 하고, 심지어 낮게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

자신의 추파엔 쌀쌀맞은 대꾸조차 주지 않았던 이사벨이었다. 그런 그녀의 처음 보는 모습에 데이비드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제인 교수는 힐끗 프레이를 보았다.

‘프레이 블레이크, 디오 교수님이 사정이 있어 수업에 출석하지 못할 거라 말했는데?’

의아했으나 그녀에게 큰 상관있는 일은 아니다. 제인은 주위를 쓱 둘러본 다음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 모였군. 그럼 출석을 부르겠다. 이안 더라이트.”

결석자는 없었다. 제인은 고개를 끄덕인 채 말을 이었다.

“오늘 오후 수업은 실전 교습이다. 생도들은 1 : 1로 시합을 한다. 단, 공정성을 위해 1성 마법의 사용만을 허가하며 본 교수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시합은 중지될 수 있다. 질문 있나?”

데이비드가 손을 들었다.

“데이비드 생도, 말하도록.”

“시합 상대는 어떻게 정해집니까?”

“본 교수가 정한다. 비슷한 수준의 생도들끼리 붙일 테니 걱정 말도록.”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데이비드는 한 치의 흑심도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프레이와 싸우고 싶습니다.”

“프레이 생도와?”

제인의 표정이 묘해졌다.

“데이비드 생도는 3성을 목전에 두고 있지 않나? 프레이 생도와는 수준이 맞지 않을 텐데.”

“어차피 1성 마법만을 사용할 수 있으니 큰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제인은 그의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이곳에 있는 모든 생도가 덤벼들어도 1성 마법으로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일류 기사가 손에 쥐어진 과도로 풋내기 병사 수십을 제압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곧 3성에 오를 데이비드와 매직 미사일 몇 발만 쏴도 마나 탈진 증상을 보이는 프레이.

안 봐도 결과는 뻔하다.

그런데도 제인은 딱히 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스톤해저드 가문에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지.’

제인은 데이비드의 가문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해라.”

제인의 말에 생도들이 술렁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어제 데이비드가 프레이를 위협하는 걸 보았던 것이다. 몇몇은 제인의 무책임한 결정에 조용히 혀를 차기도 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프레이가 손을 들었다. 데이비드가 그의 의중을 짐작했다는 듯이 비웃었다.

‘이제 와서 네가 뭔 소리를 하든 못 뒤집을 거다.’

스톤해저드의 눈치를 보지 않는 교수들은 극히 소수다. 적어도 데이비드가 알기로는 디오와 아델리아뿐이다.

특히 케빈과 제인은 뜻대로 움직이기 쉬웠다. 프레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이미 결정난 것을 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말해 봐라.”

“실전 교습에는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한쪽이 크게 다치면 다른 쪽은 처벌을 받습니까?”

제인의 시선이 프레이에게 닿았다. 그녀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쳤을 때를 상정하는 건가?’

직접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니 혹여 교칙으로 처벌할 수 없는지 묻는 것이다. 프레이의 의중은 알겠지만 그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제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투를 해야 되는 순간은 너희들의 생각보다 훨씬 잦다. 계속 마도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면 더욱. 그리고 결과에 대해선 오직 승복만이 있을 뿐이지. 그 누구도 그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마법사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걸고 치러지는 신성한 결투다. 설령 가족이나 부모라고 할지라도 참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교습은 역사적으로 실전과 다름없게 진행되고 있지. 프레이 생도, 네가 훗날에 치러지는 결투에서 팔을 잃었다고 치자. 결투가 끝난 후 너는 상대를 원망하며 다른 이의 손을 빌려 복수를 꾸밀 것이냐?”

“아니오.”

“그래. 알면 되었다.”

제인은 둘러서 말했다. 시합에서 패하면서 입은 부상으로 상대를 처벌할 수는 없다고. 목숨을 잃는다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데이비드는 그 정도로 손을 쓸 생각은 없다.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는 배려해 주지.’

아예 불구로 만든다면 아무리 스톤해저드의 힘이 있어도 완벽히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

데이비드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앞서 말했다시피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내가 직접 중단할 것이다. 더 질문 있나?”

“없습니다.”

“그럼 내친 김에 두 생도의 대결을 먼저 시작하지. 프레이, 데이비드. 실습장으로 가라.”

프레이와 데이비드는 실습장으로 가서 마주 섰다. 약 스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다. 그 주위를 나머지 생도와 교수가 둘러쌌다.

“도망치지 않은 건 칭찬해 주지.”

데이비드가 대놓고 비웃었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할지 말해 줄까? 우선은 네 성대부터 박살 낼 거다. 넌 말을 할 수 없게 되겠지. 당연히 기권도 못 하겠고. 그런 다음은 사지를 박살 낼 거다. 네놈이 기는 꼴을 보고 싶으니 다리부터.”

그 정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협하면 원래 프레이가 지었던 표정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프레이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물었다.

“1성 마법으로 그 정도 파괴력을 낼 수 있나?”

“상관없다. 비전 마법을 사용할 거니까.”

대답을 하면서도 놈의 무표정이 거슬렸다. 그러나 ‘비전 마법’이란 말에 프레이의 표정이 드디어 변했다.

“비전 마법. 가문을 짊어질 직계 혈통만이 전수받을 수 있는 기술. 그걸 여기서 쓰겠다고?”

“그래. 크크. 왜 무섭나?”

“…….”

데이비드는 프레이의 얼굴에 공포가 번질 것이라 생각했다. 비전 마법은 가문의 형체 없는 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것이다.

대다수의 마법사 가문이 갖고 있는 비전 마법은, 가문의 비장의 기술이기 때문에 철저히 베일에 감싸져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가 주목하는 건 그 점이 아니다.

‘비전 마법은 경지에 구애되지 않는다.’

조건만 맞춰진다면 1성 마법사도 사용할 수 있는 게 비전 마법이다. 실전 교습의 허점을 오묘하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이다.

디오처럼 깐깐한 교수라면 몰라도, 제인은 크게 나무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시작!”

제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이비드는 그 즉시 스톤해저드 가문의 비전 마법인 ‘스톤레이지’를 사용했다. 대지에 있는 암석을 뽑아내 단숨에 대상에게 쇄도殺到시키는 기술이다.

암석의 크기는 데이비드가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조막만 한 암석만을 뽑아내도 프레이의 성대를 박살 내는 건 충분할 것이다.

쿠구구.

대지가 들썩이며 광석이 뽑혔다. 프레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중얼거렸다.

“매직 미사일.”

“하하하!”

데이비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프레이가 매직 미사일 이외의 마법을 쓰는 걸 본 생도는 없으니까.

그런데 설마 스톤레이지 앞에서도 매직 미사일을 쓸 줄은 몰랐다.

‘넌 지금 항복을 선언했어야 됐다! 프레이 블레이크!’

콰지직

“꺼억……!”

데이비드는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뒤늦게 목젖에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으어억…….’

그런데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완전히 망가진 건가?

“비전 마법을 이딴 곳에 낭비하는 놈을 차기 문주로 지목하다니. 스톤해저드 가문의 수준도 알 만하군.”

맨정신이었다면 분노를 터뜨렸을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데이비드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태껏 스톤해저드의 후광 아래 금이야 옥이야 자란 데이비드에게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그제야 데이비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프레이의 매직 미사일이 스톤레이지를 뚫고 자신의 목까지 박살 낸 것이다!

“그래서 뭐라고 했더라? 목 다음엔 발을 분지를 거라 했던가?”

우웅

프레이의 앞에 다시 매직 미사일이 생성되었다. 데이비드는 꺽꺽거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 그만! 항복! 항복하겠다!’

그는 미친 듯이 외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힘없는 쇳소리만이 나왔고, 그마저 프레이에게 닿지도 않을 정도로 미약했다.

쿠직.

‘끄어어억…….’

데이비드는 눈을 까뒤집었다. 거의 기절할 것 같았다. 차라리 그러면 편할 것 같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정신을 놓을 수가 없다.

‘아, 알겠다.’

프레이가 시작 전에 제인에게 물어보았던 게 떠올랐다.

그건 자신의 몸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프레이는 자신을 반병신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고작 이게 고통스럽나? 성대가 망가지고 다리뼈가 좀 분질러졌다고?”

프레이는 무섭도록 무심했다. 데이비드는 그의 표정도 무서웠지만, 목소리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의 목소리엔 높낮이가 거의 없었다.

“네놈 같은 쓰레기는 마법사라 이름 달 자격이 없어. 내가 비루한 꿈을 접는 데 조금 거들어 주지.”

‘그, 그것만은 안 돼……!’

만약 그렇게 되면 데이비드는 가문에서 버림받는다. 마법사 가문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과거의 프레이가 여실히 보여 주었다.

비전 마법도 그의 형제들 손에 넘어갈 거고, 그는 평생 가문의 울타리 안에서 요양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될 거다.

우웅.

매직 미사일.

데이비드는 그 별 볼일 없는 1성 마법이 그토록 무섭게 보일 수 있단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공포에 찬 눈동자로 매직 미사일을 바라보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