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카데미의 열등생 (1)
“프레이가 자살할지도 몰라요.”
디오 교수는 그 말을 듣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차라리 장난을 치는 거면 좋으련만, 적어도 아카데미에서 디오에게 이런 장난을 칠 만큼 담이 큰 생도는 단 한 명도 없다.
즉 이 생도는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말해 보도록.”
디오의 목소리가 들리자 생도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차가웠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애들 얘긴데…….”
데이비드. 그 이름이 나오자 디오는 단숨에 두통이 몇 배나 심해지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스톤해저드.
고작 2학년에 불과하지만 그는 디오로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생도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의 부모가 백작이라는 사실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디오의 집안 또한 그에 꿀리지 않을 만큼 명망 높은 곳이니까.
게다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상, 설령 공작의 자제라고 해도 교수에게 대놓고 반항할 수는 없다.
문제는 데이비드란 생도가 무척이나 교활하다는 것에 있다.
그는 부모의 후광을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또 교칙의 허점을 능숙하게 파고들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악독했다. 특히 그는 약자를 짓밟는 일엔 일종의 광적인 집착까지 보이고 있었다. 모두들 쉬쉬하는 일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가문에서 버림받은 프레이는 그런 데이비드의 저열한 욕망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데이비드가 무슨 짓을 했지?”
“내일 오후에 있을 실전 교습에서 프레이의 양팔을 분지를 거라고 말했어요.”
“양팔을?”
“그것만이 아니에요. 성대를 박살 내고 눈을 실명시켜서… 두, 두 번 다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 거라고.”
양팔이 망가지고 성대가 박살 나고 실명이 된다면, 그 옛날 대륙을 오시했던 8성의 마법사가 아닌 이상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디오는 프레이에 대해 떠올렸다.
조금 소심하긴 하지만 천성이 착한 생도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센스도 좋다. 무엇보다 수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을 뒤엎고도 남을 단점이 존재한다.
프레이 블레이크의 마나 감응도가 절망적일 정도로 낮다는 것이다. 마법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수준이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농민조차 그보다는 뛰어난 감응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명망 높은 블레이크 가문의 자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 때문에 가문에서도 오물 취급을 받으며, 거의 내쫓기듯 아카데미로 오게 되었다.
일 학년 때까지만 해도 가문의 속사정을 모르던 생도들은 블레이크 가문이라는 사실로 프레이를 경계했다. 몇몇은 떡고물이 떨어질까 싶어 친한 척 굴기도 했다.
그러나 프레이의 출신 내력은 오래가지 않아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모든 생도가 그를 외면하거나 비웃게 되었다.
블레이크 가문의 떨거지.
그것이 아카데미에서 프레이가 가진 위치였다.
“후우.”
디오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는 프레이를 나쁘지 않게, 아니. 오히려 좋게 보고 있다. 그는 무척이나 총명한 생도였고, 마법에 대한 열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하지만 신은 프레이에게 열의만을 주고 재능은 내리지 않았다.
내일 오후에 있을 실전 교습. 데이비드가 정말 프레이를 반병신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팔 하나 정도는 정말 부러뜨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가문이라면 그 정도 일을 덮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스톤해저드 가문은 특히 아카데미의 교수진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
아마 블레이크 가문도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이런 결과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레이가 블레이크 가문의 사생아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웬만한 귀족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쓰레기들.’
디오 교수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앞에 있는 생도가 히끅 딸꾹질을 할 정도로 살벌한 눈빛이다.
“…곧 통금 시간이니 기숙사로 돌아가도록. 프레이에겐 내가 가 보겠다.”
“네, 네.”
생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후다닥 돌아갔다. 생도 중에선 저처럼 데이비드의 악행을 불쾌하게 여기는 자도 많다. 그 누구도 대놓고 티를 낼 수 없을 뿐이지.
디오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야겠군.’
분명 마구간 옆에 있는 가장 값이 싼 기숙사일 것이다. 디오는 부디 프레이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았길 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루카스는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지긋지긋한 봉인에서 비로소 해방된 순간이었지만, 그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지 않았다.
루카스는 곧바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내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봉인당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었다.
약 4,000년.
봉인을 당하고 무려 40세기가량이 흐른 것이다.
그 긴 세월 중에서 육체를 얻은 건 이번이 최초였다. 여태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매불망 꿈꾸던 순간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다.
“이 녀석이 내 환생체(幻生體)라니.”
두통과 함께 프레이의 삶을 단편적으로 엿보았다.
프레이 블레이크.
이 녀석은 제법 명망 높은 마법사 가문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여기까지는 상관없다. 아니, 애초에 루카스에겐 환생체가 농민의 자식이든 황제의 적자든 상관없다.
문제는 프레이라는 인간에게 있다.
‘마나 감응력이 절망적이군.’
마법사 가문에서 태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재능! 이 정도면 아예 재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일성급, 가장 기초적인 매직 미사일뿐이다.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군.”
프레이의 유년기는 모진 굴욕과 수모, 그리고 공포만이 맴돌았다. 행복한 기억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혈육은 가족을 의미하지 않았다.
바로 위에 있는 두 명의 형. 그들의 재능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프레이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라면 그들은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었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면 응당 보듬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손길을 주지 않았다. 두 명의 형은 빛나는 재능만큼이나 올바른 인성을 갖지 못했고, 그건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거의 쫓겨나듯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고.”
루카스는 힐끗 허름한 모포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알약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 있었다.
‘약.’
단순한 수면제지만 저토록 많은 양을 한꺼번에 삼킨다면 기다리는 결과는 하나뿐이다.
자살. 프레이는 죽음으로 절망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이 몸을 얻을 수 있었던 거겠지.’
실상 프레이의 정신은 이미 한 번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프레이 또한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삶을 포기한 순간, 프레이는 육체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 덕분에 루카스가 프레이의 몸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예 다른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프레이의 기억을 모두 받아들였으니까.
지금의 그는 루카스지만, 프레이의 정신과 기억도 어느 정도 섞여 있다.
“후우.”
루카스는 프레이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기 시작했다.
4,00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 루카스는 환생체의 눈으로 바깥을 보는 것이 가능했으나, 그 주기는 매우 길었고 심지어 비정기적이기까지 했다.
어떤 때는 수백 년간 어둠 속에 처박혀 있던 때도 있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단편적이었고, 바깥의 동향을 알기는커녕 의문만이 증폭되어 갔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
루카스는 눈을 감고, 천천히 프레이의 기억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점점 묘해졌다. 처음엔 오묘한 듯하다가, 명백하게 이상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린다. 이윽고 모든 기억을 받아들였을 때, 그는 으득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4,000년! 무려 4,000년이 흘렀다……!”
마도학을 수십 단계는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적어도 루카스는 그리 생각한다. 그런데도 프레이의 기억에서 엿본 작금의 세계는 충격적이었다.
“그 시절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니?”
말 그대로, 마도학은 물론 사회나 경제도 발전이 미미하다. 기술적 진보도 마찬가지다. 마치 4,000년 동안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심지어 마법은 오히려 퇴보한 것 같다.
4,000년 전, 인간 중에선 오직 대마도사 루카스만이 구성(九星)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지만, 그 바로 밑의 팔성급 대마법사들도 제법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팔성은커녕, 칠성조차 거의 없는 것과 같다.
모두 사라진 건가?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은거라도 하고 있는 걸까?
“…후우.”
분노를 터뜨린다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루카스는 감정을 식히며, 우선 무엇부터 해야 되는지부터 생각했다.
‘우선은…….’
예전의 힘을 되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지금 프레이의 마나 보유량은 물 한 컵도 안 된다. 대해(大海) 수준이었던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호수 정도의 마나는 모아야 한다.
똑똑.
노크 소리. 누구지?
루카스는 잠시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차갑게 생긴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금발을 올백으로 넘기고, 거기에 외눈 안경까지 어우러져 깐깐한 인상을 더했다.
“밤늦게 미안하군.”
루카스가 눈썹을 찌푸리며 기억 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디오 펄스만 교수.’
아카데미에서 가장 유명한 세 명의 교수 중 하나다. 별명 짓기 좋아하는 생도들은 그를 ‘아이언하트’라고 부르고 있다. 철의 심장, 문자 그대로 그는 감정을 내비치는 경우가 극히 적었다.
게다가.
‘제법이군.’
루카스는 한눈에 디오의 수준을 알아챘다.
5성급 마법사. 나이는 삼십 대 전후로 보이는데, 재능을 감안하더라도 훌륭한 성취다. 아마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겠지.
“…….”
한편 디오도 나름대로 놀라고 있었다.
프레이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평소 축 쳐져 있던 눈썹엔 힘이 있었고, 위축되어 있던 어깨가 반듯하게 펴져 있다.
비굴해 보이던 표정이 전체적으로 무심하게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의구심을 느끼는 디오의 시선에 무언가 보였다.
“…저건.”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대량의 알약을 발견한 것이다.